그야말로 극한 경기들만 치르면서 올라왔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20년 만에 토너먼트에 진출했던 크로아티아 대표팀이 7월 12일 새벽(이하 한국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4강전에서 잉글랜드를 꺾고, 사상 첫 결승 진출을 일궈냈다.

경기 시작부터 크로아티아에게는 힘든 경기였다. 16강전과 8강전을 모두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를 거쳤고, 대표팀 평균 연령도 잉글랜드보다 많아서 체력 회복에 힘들었다. 결국 크로아티아는 경기 시작 5분 만에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가는 전반전을 치렀다.

하지만 후반전이 시작되고 20여 분이 지난 뒤 이반 페리시치(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면서 경기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3경기 연속 연장 혈투에 들어간 크로아티아는 연장후반 4분 마리오 만주키치(유벤투스)의 극적인 역전골에 힘입어 승부차기까지 가기 전에 경기를 끝냈다.

 2018년 7월 12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의 경기. 크로아티아의 이반 페리시치가 득점 후 기뻐하고 있다.

2018년 7월 12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의 경기. 크로아티아의 이반 페리시치가 득점 후 기뻐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3경기 연속 극한 연장전, '감동 그 자체' 보여주는 크로아티아

사실 크로아티아의 이번 월드컵은 결코 쉬웠던 경기가 한 번도 없었다. 조별리그에서 3전 전승을 거두긴 했지만, 조 편성부터가 죽음의 조라 불렸던 D조였다. 첫 경기에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니콜라 칼리니치(AC 밀란)가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교체 출전을 거부하는 등 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결국 즐라트고 달리치 감독은 선수단의 의견을 조합, 칼리니치를 과감하게 집으로 보내버렸다. 엔트리 1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크로아티아는 월드컵 남은 일정을 계속 치르게 되었고, D조 톱시드 팀이었던 아르헨티나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3-0 완승을 거뒀다. 3차전 아이슬란드와의 경기에서는 후반전 동점골 허용으로 인해 하마터면 승리를 놓칠 뻔했다.

토너먼트 일정은 그야말로 극한 그 자체였다. 덴마크와의 16강전은 경기 초반 서로 1골 씩을 주고 받은 뒤 나머지 120여 분 동안 한 골도 터지지 않으면서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양 팀의 골키퍼들이 눈부신 선방을 보이는 혈투 끝에 크로아티아는 간신히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전 상대는 역시 16강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거쳤던 개최국 러시아였다. 전반전에 서로 1골 씩 주고받았던 두 팀은 연장전에서도 서로 1골 씩을 주고받으며 2-2 무승부를 기록했고, 골키퍼 다니엘 수바시치(AS 모나코)가 햄스트링 경련에도 불구하고 투혼을 발휘한 덕분에 승부차기에서 또 한 번 성공했다.

2경기 연속 승부차기까지 거치면서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지칠대로 지쳤다. 3일의 휴식이 있긴 했지만,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일단 크로아티아는 체력 안배 차원에서 전반전을 버티다가 후반전에서 반격하는 작전을 시도했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잉글랜드 키어런 트리피어(토트넘)의 환상적인 프리킥이 터지는 바람에 1실점했지만, 크로아티아는 후반전에 기어이 동점을 만들었다.

월드컵에서 3경기 연속 연장전을 치렀던 사례로는 공교롭게 상대 팀인 잉글랜드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한 차례 기록한 적이 있었다. 당시 잉글랜드는 16강전에서 벨기에, 8강전에서 카메룬을 상대로 연장전 승부를 치른 뒤 4강전에서 서독(당시 우승)을 상대로 승부차기 혈투를 펼쳤다. 승부차기에서 서독을 넘지 못했던 잉글랜드는 개최국 이탈리아에도 패하면서 4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크로아티아는 결국 연장후반 만주키치의 집중력 덕분에 승부차기까지 가지 않고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이전에 2경기 연속 승부차기를 성공했던 사례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의 준우승 팀인 아르헨티나(8강전 유고슬라비아, 4강전 이탈리아 상대)가 있었지만,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서 서독에게 패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는 2경기 연속 승부차기 이후 승리를 거둔 최초의 사례를 남기게 됐다.

 2018년 7월 12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의 경기. 크로아티아의 마리오 만주키치가 결승골을 득점한 뒤 환호하고 있다.

2018년 7월 12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의 경기. 크로아티아의 마리오 만주키치가 결승골을 득점한 뒤 환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경기 운영 착오, 결승 징크스 넘지 못한 잉글랜드

비록 경기에 패했지만, 잉글랜드 역시 이번 대회를 통해 각종 징크스를 깨뜨리면서 4강까지 올라왔다. 월드컵 승부차기에서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던 잉글랜드는 16강전에서 콜롬비아를 상대로 승부차기에서 성공했다. 스웨덴에 상대전적이 매우 열세였으나 8강전에서 그 징크스마저 털어버렸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서 몇 차례 경기 운영에 있어서 착오를 보인 점이 있었다. 벨기에와의 G조 조별리그 3차전은 두 팀 모두 16강 진출을 확정지었기 때문에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고 후보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며 다양한 전술을 실험해 본 경기였기 때문에 패했어도 나름 납득할 수 있는 패배였다.

그러나 16강전에서 잉글랜드는 패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은 뒤에 지나치게 걸어 잠그는 작전을 썼다가 추가 시간에 동점골을 헌납했고,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는 체력 소모를 하게 됐다. 비록 승부차기 징크스를 깨뜨렸지만 하마터면 잉글랜드는 16강전에서 여정을 멈출 뻔 했다.

잉글랜드는 8강전에서 스웨덴을 상대로는 확실하게 2골을 넣으며 승리를 굳혔다. 고질적인 징크스를 깨뜨리기 위한 모습이 돋보였던 덕분이었다. 그러나 4강전에서 체력적 우세를 예상했던 잉글랜드는 경기 초반 프리킥 선제골이 성공한 뒤 너무 일찍 골문을 닫아 걸으려고 했다가 일격을 당했다.

동점골이 터지고 나서 잉글랜드 선수들은 혼란에 빠졌다. 게다가 연장전에서는 선제골을 넣었던 트리피어가 햄스트링에 경련이 일어났는데, 이미 연장전 추가 교체 카드까지 4명을 모두 교체했던 상태였다. 결국 잉글랜드는 퇴장 선수가 없었음에도 1명이 부족한 채 경기를 마무리하는 안타까운 해프닝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크로아티아는 1998년 월드컵에 첫 출전한 이래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결승에 오르는 성과를 달성했다. 동유럽권 팀이 결승에 오른 사례는 1962년 칠레 월드컵(브라질 우승)에서의 체코슬로바키아 이후 무려 52년 만에 있는 일이며, 아직 우승에 성공한 동유럽 팀은 나오지 않고 있다.

잉글랜드는 자국에서 개최했던 1966년 월드컵과 1990년 월드컵 이후 4강에 올라온 것이 세 번째였다. 그 중 결승에 진출했던 적은 우승했던 1966년 한 번으로, 이번 경기 패배로 인해 원정 첫 우승의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벨기에와 잉글랜드의 리턴 매치, 역대 월드컵 리턴 매치는?

대신 잉글랜드는 아직 하나의 기록 도전이 남아있다. 벨기에도 잉글랜드도 아직 3위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두 팀 모두 마지막 남은 기록 도전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회 득점 1위 해리 케인(토트넘, 6골)과 공동2위 로멜루 루카쿠(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골)는 득점왕 타이틀을 놓고 마지막 경기에서 진검 승부를 벌이게 되었기 때문에 3,4위 결정전이라고 해서 결코 관심권 밖의 경기가 아니다.

사실 벨기에와 잉글랜드는 G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이미 한 차례 승부를 봤다. 벨기에가 잉글랜드에게 승리하면서 조 1위를 결정지었지만, 이번에는 32개국 전체 순위 중에서 3위와 4위를 결정짓는 경기에서 만나게 됐다.

한 대회에서 다시 만나 2경기를 치른 리턴 매치는 여태까지 총 5번이 있었다. 1954년 스위스 대회 서독과 헝가리, 1962년 칠레 대회 브라질과 체코슬로바키아, 1982년 스페인 대회 폴란드와 이탈리아, 1994년 미국 대회 브라질과 스웨덴 그리고 2002년 대한민국/일본 대회 브라질과 터키가 있었다.

이 중 처음에 이겼던 팀이 다시 이기는 경우는 가장 최근에 한 차례 있었다. 2002년 대한민국 울산에서 열린 C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브라질이 터키에게 2-1 승리를 거뒀는데, 4강전 일본 사이타마에서 다시 만났을 때 브라질이 다시 1-0 승리를 거둔 기록이었다(브라질 7전 전승, 터키 3위).

조별리그에서 비기고 토너먼트에서 승부를 가린 경우는 세 번이었다.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체코슬로바키아가 조별리그에서 비긴 뒤 결승전에서 승부를 가렸고(브라질 우승),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1차리그에서 이탈리아와 폴란드가 득점 없이 비겼다가 4강전에서 이탈리아가 승리를 거뒀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브라질과 스웨덴이 조별리그에서 1-1로 비겼다가 4강전에서 브라질이 1-0 승리를 거뒀다.

처음에 이겼으나 다시 만났을 때 진 사례도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 월드컵에 처음 참가했던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이었는데, 당시 헝가리는 조별리그에서 대한민국과 서독에게 승리했다. 하지만 4강전에서 우루과이와 연장 혈투를 펼쳤던 헝가리는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서독에게 패하며 우승 기회를 놓쳤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월드컵에서 리턴 매치 전적은 처음 이긴 팀이 항상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벨기에와 잉글랜드의 경우 둘 다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던 조별리그 3차전에서 주전 선수들 일부를 빼고 실험적인 경기를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3,4위 결정전이 진검 승부가 될 전망이다. 벨기에와 잉글랜드의 3,4위 결정전은 15일 오후 11시에 킥오프한다.

20년 만에 다시 만난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운명은?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는 프랑스와 크로아티아는 20년 전 프랑스 대회 4강전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개최국이었던 프랑스는 C조 1위로 8강전까지 4승 1무(8강전 승부차기)를 기록하며 4강까지 올라왔고, 첫 출전이었던 크로아티아는 H조 2위로 8강전까지 4승 1패를 기록하며 올라왔다.

당시 4강전에서는 프랑스가 2-1 승리를 거뒀고, 여세를 몰아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3-0으로 격파한 뒤 통산 첫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크로아티아는 4강전에서 패했지만, 3,4위 결정전에서 거스 히딩크가 이끌던 네덜란드를 2-1로 꺾고 3위에 올랐다.

이후 프랑스와 크로아티아는 모두 굴곡진 월드컵 성적을 기록했다. 당시 우승했던 프랑스는 2002년 무득점 탈락의 굴욕을 겪었고, 2006년 준우승, 2010년 A조 4위, 2014년 8강의 성적을 기록했다. 8강 이상 아니면 조별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는 극과 극의 모습이었다.

크로아티아는 2002년에 이탈리아를 꺾었지만 에콰도르에게 발목을 잡히면서 1승 2패 조 3위에 머물렀다. 2006년에는 2무 1패로 조별리그 탈락, 2010년에는 본선에 참가조차 하지 못했으며, 2014년에도 1승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공교롭게 프랑스와 크로아티아 모두 20년 전과 지금 두 상황이 전성기 가도를 달리는 시점에서 만났다는 점이 있다. 프랑스는 C조 1위(2승 1무)를 기록한 것을 포함 6경기 모두 연장전 없이 5승 1무를 기록하고 있으며, 크로아티아는 D조 1위(3승)를 포함하여 6경기 4승 2무를 기록했다(승부차기는 무승부 반영).

문제는 체력적으로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조별리그 3차전에서 일부 주전 선수들을 빼면서 체력 안배까지 하고 연장전 없이 결승에 올라왔지만, 크로아티아는 토너먼트 3경기를 모두 연장전으로 치렀기 때문이다. 연장전 한 번에 30분씩 추가됨을 감안하면 크로아티아는 정규 90분 경기를 한 번 더 치른 셈이다.

프랑스는 6경기 모두 리드를 빼앗긴 적이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여유 넘치는 경기를 진행해왔다. 특히 16강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는 무려 4골을 몰아쳤고, 종료 직전 1점 차까지 추격을 당했지만 승리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2018년 7월 12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의 경기. 크로아티아의 골키퍼 다니엘 수바시치가 잉글랜드 해리 케인의 슛을 막아내고 있다.

2018년 7월 12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의 경기. 크로아티아의 골키퍼 다니엘 수바시치가 잉글랜드 해리 케인의 슛을 막아내고 있다. ⓒ AP/연합뉴스


크로아티아는 토너먼트 여정이 너무나 힘겨웠다. 16강전부터 결승전까지 4경기를 모두 연장전으로 치른 사례는 아직까지 없으며, 연장전 3경기 이상을 치른 팀 중 우승한 사례도 아직까진 없다. 그러나 크로아티아는 짜릿한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분위기만큼은 프랑스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2경기 연속으로 승부차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기에 골키퍼 수바시치의 자신감은 절정에 달해있다.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결승전은 16일 오전 0시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킥오프한다. 어느 팀이 우승하든 그 팀은 자국 축구 역사의 황금 시대를 열 것이 확실시된다. 아직 많은 기록들의 작성을 남겨두고 있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고 포효할 팀은 어떤 팀이 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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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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