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급하게 어딘가로 이동해야 할 때가 있는데, 대부분은 택시를 잡아타고는 한다.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있듯이 택시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경험이다. 달리는 말과 함께 올라가는 요금이 워낙 비싸지만 시간을 아끼는 대가로는 아깝지 않다. 요즘에는 어플로 승하차 장소를 미리 지정할 수도 있으니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말하자면 버스나 지하철보다 훨씬 비싸지만 편리함은 비교할 수도 없이 크다.

편리함에 수반하는 반작용도 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세상에 가득한 게 택시인데 내 앞에서 멈추지 않는 이들. 정말로 급한 일이라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타고 싶은 심정이 든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택시를 타고도 시간 엄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는 곱절의 화가 나게 된다. 첫째로는 급한 일을 해결하지 못했고 둘째로는 돈은 돈 대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택시 쪽에서 먼저 승차거부를 하는 게 더 낫다. 택시가 나를 거부한 게 아니라 내가 택시를 거부했다는 자존심을 얻기 때문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작품 포스터

영화 <택시운전사>의 작품 포스터ⓒ 쇼박스


<택시운전사>에서는 편리한 교통수단인 택시를 타고 광주의 현장으로 진입하는 외국인 기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치만 분)가 나온다. 그는 잔혹 무도한 역사의 참상을 목격하려는 의도로 급히 택시를 잡아 탄다. 그리고는 자신과 표면적으로 이어져 있지 않은 이 사건에서 '기자'라는 직업의 사명을 지고 현장에 투입된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는 낯선 이가 낯선 곳(상황)에 급히 달려가려는 목적성이 있고, 그때가 아니라면 안되는 시의성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의 광주에서 언론이 맡은 역할이기도 하며, 현재의 우리가 택시를 애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목은 <택시운전사>이고 주인공 '만섭(송강호 분)'의 직업이 '운전사'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택시'의 역할을 맡은 언론보다는 그것을 운전하는 만섭을 조명하고 있다. 언론을 운전하는 만섭이라는 문장, 말하자면 언론에는 운전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며 그 운전사는 바로 만섭과 같은 소시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문장의 앞뒤를 바꾸어 놓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현재가 오가는 체험을 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택시운전사>가 우리를 데려간 현장은 1980년 5월의 광주이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권기이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그 시기의 언론은 독재의 사슬 아래 손발을 옭아매인 상태이고, 그러므로 국민은 언론에 의해 통제된다. 이때,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언론이 국민을 통제하는 수직적인 계급도에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힌츠페터다. 그에게 언론이란 국민의 말을 정부에 전달하는 중재자이며, 그런 이유로 광주의 시간을 담으려 택시에 올라타게 된다.

그리고 힌츠페터의 이러한 태도는 영화가 개봉한 2017년의 한국인들이 공감할 만한 것이기에 '현재성'을 띄게 된다. 세월이 흘러 도착장소와 추후 행선지를 이미 알고 있지만, 직접 보지 않고서야 명쾌하지 않을 역사의 뿌연 안개가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광주로 달려가는 택시를 불러내도록 했다. 말하자면 이 영화 제목 <택시운전사>에서 택시는 현재에서 출발했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게 될 인물은 힌츠페터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이 영화에서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는 국적도 외모도 이질적이어서 광주 시민의 관심을 한몫에 받는다. 그렇지만 그가 '외부'에서 왔다는 이 이질감이 오히려 '외부로' 목소리를 내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게 된다. 분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여겨져야 할 그이지만 소설과는 반대로 '이상한 나라'의 구원자로서 여겨지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궁금하게 여길 수 있는 부분은 힌츠페터와 현재를 동화시키는 이 영화가 과거에 해당하는 '택시' 그리고 운전자 '만섭'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다.

시대를 뛰어넘는 힘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요즈음의 젊은 관객들이 현재를 대표하는 것이라면, 그 시대를 살아본 중장년층은 과거성에 해당한다. 이것이 과거라고 명확하게 지칭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과거를 현재로 여기며 살아가는 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젊은 관객들이 현재만을 살아가는 것과는 달리 중장년층은 과거와 현재 둘 다 오고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시간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기 때문이며, 그래서 젊은 관객들은 교과서로만 체득한 광주의 참상을 어른들보다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현재로 대표되는 힌츠페터는 이 영화를 보는 젊은이들의 모습과 닮았다.

그는 일본에서 동료 기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광주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려 한다. 그렇지만 광주는 외부지역과 분리되어 있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젊은 관객 또한 '시간'을 결코 뛰어넘을 수가 없다. 이때, 이 영화가 현재에서 과거로 달려간다고 짐작했던 우리는 광주를 가르는 경계선이 '시간'임을 알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현재가 역사로 남는 것처럼, 한번 지나오면 되돌아올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되는 이 작은 도시가 하나의 역사로 설정된 것이다. 그 역사에 진입하기 위해 선택된 것은 만섭의 택시이며, 그런 면에서는 마치 드로리안(영화 <빽 투 더 퓨처> 속 자동차 형태의 타임머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만섭이 운행하는 이 작은 드로리안은 1980년 5월 18일의 광주를 향해 달려가게 된다.

그런데 이 작은 택시가 광주로 달려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영화 속에서 만섭이 힌츠페터를 맡은 이유가 돈인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물리적으로 보면 <백 투 더 퓨쳐>에서 드로리안을 움직이는 것은 현대의 것보다 훨씬 많은 전기였다. <택시운전사>에서는 시대의 평범한 다른 것들처럼 기름 수 리터를 연료로 움직인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영화의 제목에서 힌츠페터를 '택시'로 말했었고 만섭을 '운전사'로 칭했었다. 말하자면, 운전사가 없으면 택시가 움직이지 않으니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힌츠페터가 아니라 만섭인 셈이다. 힌츠페터가 연료가 되었고 만섭은 그것을 사용해 달려갈 뿐이다. 다르게 반복하자면,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가 아니라 중장년층이다. 젊은 세대를 연료 삼아 중장년층은 과거로 달려간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요약하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라는 삼엄한 테두리를 넘는 힘은 젊은 세대에게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는 젊은 세대의 호응 없이는 광주의 참상을 목격할 수 없다는, 그 이전에 접근조차 힘들다는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 말하자면 두 가지 세대 중 어느 하나만 있어서는 '목격'이라는 '목적'을 이루어 낼 수 없다. 당사자로서의 주관적인 시선과 목격자로서의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것 모두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전 세대에 고루 걸쳐 사랑받게 된 이유는 아마도 그런 것 때문이리라고 감히 추측해 볼 수 있다. 또한 '천만영화'가 시대의 부름을 받아 태어난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 영화가 광주를 호명하는 적절한 시기에 도달했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운전사로 호명된 관객

이 영화에서 현재와 과거를 찾아내는 작업은 들어 맞는 것 같으면서도 영 아닌 듯 보이기도 한다. 분명 역사라는 것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지속성'을 띄고 있음을 고려해보면 이와 같은 해석은 이분법의 고랑 속으로 관객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디딤돌처럼 양쪽이 명백하게 나누어져 있다면 그 사이의 강물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젊은 세대의 호응 없이 역사를 목격할 수 없다는 발언은 '현재'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을 간과한다고 지적할 수 있다. 역사의 산증인인 사람들이 우리 곁에 아직 있다. 물론 그중에서도 더욱 오래된 역사는 데이터로만 남아있기도 한다. 그것을 다시금 살려내는 게 젊은 세대의 몫이지만 그럼에도 발굴되지 않을 어느 역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결국 후손들에게까지 미루어질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런 시급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 했을 것이며, 그것을 위해 관객에게 역사로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힌츠패터와 만섭이 관객들을 아우르는 방식은 현재에서 과거로 '함께' 점프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역사로의 참여를 요구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만섭이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통해 그 요구를 내비친다. 카메라에 비치는 것은 만섭뿐만 아니라 뒷부분에 넓게 남겨진 '빈차' 팻말이다. 관객은 그 팻말을 보며 이 영화의 동행자로서 빈 곳을 비집고 들어가 앉아야 할 것만 같은 충동을 느낀다. 그렇다면 이 장면에서 만섭이 노래를 부르며 혼잣말을 하는 것은 뒷좌석에 앉혀진 관객들을 향해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하지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긴 해도 계몽적인 성격은 아니다. 그에 관한 증거는 이 영화에서 만섭이 '아버지'로 설정된다는 점과 그가 마주한 광주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충실한' 소시민으로 묘사된다는 점에 있다. 만섭이 택시를 타고 위험한 도전을 하는 것은 자식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함이며, 만섭이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는 장면에서 사람들의 모습은 평소에도 그렇다는 듯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들은 만섭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기름을 넣어주고 자동차 수리를 해주는 등의 편의도 아끼지 않는다. 이것은 소시민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광주에 온 만섭과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여전히 소시민임을 포기하지 않는 광주 시민들의 모습을 병렬로 연결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 병렬 연결이 현재에서 과거로 지속된다는 점이다. 아직 광주로 가기 전, 그러니까 현재에 있는 만섭이 영화 도입부에서 데모하는 학생들을 향해 호통치는 장면은 그가 먹고살기에 급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데모하는 학생들의 안위보다 학생이 깨먹은 자동차 부품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모습은 하루하루가 고달픈 소시민 혹은 서민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광주로 가서 알게 된 사실, 말하자면 과거의 현장에서 발견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들 덕분에 자신의 삶이 안락할 수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과거에 묶인 사람들이 그토록 변화를 요구했기에 광주 밖의 자신이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가 이 드로리안을 타고 마주한 현장에서 얻은 깨달음이란 아마도 타임패러독스다.

같은 소시민의 삶이지만 그토록 다르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생각이 바뀌었다거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에게 시간이란 특정 부분을 소명할 이유가 없으면 구태여 지칭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는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건물에서 살아갔을지 생각해보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누군가 이곳이 유명한 유적지였다고 말하지 않는 한 이곳은 그저 인식 밖일 뿐이다. 말하자면 사람은 언제나 현재만을 생각하고 무언가가 그들을 과거로 유도해야만 과거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에서 만섭이 힌츠패터로부터의 소명을 받은 것은 아마도 운명적인 무언가다. 현재에서 과거로 달려가 과거에서 현재로 진실을 전달해야만 하는 그와 운명을 함께하게 되는 건 소시민 만섭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1980년 만섭의 드라이브 장면에서 시작해 2017년에도 택시 일을 계속하는 만섭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그건 아마도 이 택시가 다시 한번 과거로 이어지리라는 지속성을 믿는 듯 보인다. 이로써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서도, 스크린을 끝마치고 나서도 광주를 생각해보게 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