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신림동. 이곳엔 15분에서 30분 남짓되는 단편 영화만 상영하는 영화관이 있다. 영화관의 이름은 '자체휴강시네마'. '짧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언제든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건 아닐까?

볕이 좋은 지난 6월 29일 오후, '자체휴강시네마'를 찾았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여기에 단편영화 상영관 '자체휴강시네마'라는 곳이 있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여기에 단편영화 상영관 '자체휴강시네마'라는 곳이 있다. ⓒ 유지영


 단편영화 상영관 '자체휴강시네마'

박래경 '자체휴강시네마' 대표 "단편 영화는 주로 젊은 층이 볼 것 같았다. 대학가를 돌아다니다 신림동으로 왔는데 대학과 관련된 이름이면 좋겠다 싶었다. 휴강, 공강, 폐강 같은... 폐강은 너무 우울하고 휴강이 좋겠다 싶어서 '자체휴강시네마'로 지었다. 영화관의 이름을 짓는데 5분 걸렸다." ⓒ 유지영


 단편영화 상영관 '자체휴강시네마'

단편영화 상영관 '자체휴강시네마' ⓒ 유지영


영화관 입구에는 매달 상영되는 단편 영화의 '라인업'이 붙어 있었다. 문을 열고 지하로 들어가니 몇 개의 카페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자리에 '자체휴강시네마' 박래경 대표가 앉아 있었다.

영화관은 조용하고 한산했다. 관객은 아무도 없었다. 박래경 대표는 "장마철이고 고시생들은 앞으로 시험이 많이 있다. 방학을 해서 학생들은 지방으로 가기도 한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박래경 대표는 '자체휴강시네마'를 2017년 1월에 시작해 1년 반째 운영 중이다. 현재 서울에 단편 영화 상영관은 이태원의 '극장판'과 신림에 있는 '자체휴강시네마' 두 곳뿐이다. 

 단편영화 상영관 '자체휴강시네마' 내부

단편영화 상영관 '자체휴강시네마' 내부 ⓒ 유지영


 단편영화 상영관 '자체휴강시네마' 내부

단편영화 상영관 '자체휴강시네마' 내부 ⓒ 유지영


자리에 앉자 그는 태블릿PC를 하나 들고 왔다. 태블릿PC에는 문 앞에 붙어있는 영화 상영작이 나와 있었다. 박래경 대표는 다섯 편의 영화 내용을 직접 일일이 소개해주면서 영화 선택을 도왔다. 박 대표 말에 따르면 '자체휴강시네마'의 경쟁력은 자신의 말밖에 없단다. 단편 영화는 예고편도 없고 배우나 감독도 모두 일반 관객들에게 생소한 사람들이다. 그렇다 보니 관객들에게 설명을 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이 과정을 "쇼핑"에 비유했다.

영화의 장르는 다양했다. 일상물부터 공포나 로맨스, 혹은 사회 문제를 감독의 시선으로 진득하게 다룬 작품까지. 영화를 한 편 고르고 8명 정원인 '영화관'으로 들어간다. 원하는 자리를 골라 앉으면 그때부터 영화가 시작된다. 온전히 홀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자체휴강시네마는 따로 예약을 받지는 않는다. 영화관에 오는 순서대로 영화를 볼 수 있다. 먼저 온 관객은 3천 원을 내고 영화를 선택해서 한 편을 본다. 영화 상영 중에 영화관에 도착한 관객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래봤자 최대 30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을 많이 받을 형편이 되지 않는다. 하루에 관객이 스무 명 가량 오면 그 날은 관객이 많은 날이다.

'표값' 3천 원 중에 천원은 단편 영화를 제작한 감독의 몫으로 돌아간다. 영화관 오픈 시간은 오후 1시에서 새벽 2시까지. 밤에 수업을 끝내고 오는 학생 관객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홀로 운영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따로 들진 않지만 가끔 힘에 겨워 영화관을 조금 더 늦게 열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아직 고민 중이란다.

<초행>이나 <피의 연대기> 같은 장편 독립 영화도 상영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지 않고 있다. 장편의 경우 단편과 달리 영화관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지나간 영화는 여러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편영화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이 박 대표의 생각이다.

'자체휴강시네마'의 고민

 단편영화 상영관 '자체휴강시네마'의 박래경 대표.

단편영화 상영관 '자체휴강시네마'의 박래경 대표. ⓒ 유지영


박래경 대표는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면서 단편 영화를 접하게 됐다. 깊이 있는 단편 영화가 한국에 많이 있음에도 상영하는 곳이 없어 잊히는 작품들이 많다는 아쉬움이 박래경 대표로 하여금 '자체휴강시네마'를 만들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단편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다른 영화관들을 두고 박래경 대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영화관을 유지하기 위해 장편 영화 상영 위주로 가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최근에 부산 국도예술관이 없어졌다. 부산은 영화 도시인데 독립영화관이 없다는 게 마음이 아프더라. 독립 영화가 독립이 안 된다. (웃음) 단편 영화는 너무 많다. 절대적인 영화 제작 편수로만 보면 90%가 단편이다. 지금도 아마 감독님들은 어디선가 단편 영화를 찍고 있을 거다.

아무리 유명한 감독이라도 단편은 찍는다. 지금은 단편이 장편으로 건너 뛰기 위한 징검다리처럼 여겨지고 있는데 그런 생각에 (나는) 반대한다. 단편 영화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 나중에는 단편만 찍는 감독님들도 생겼으면 좋겠고 장편 영화를 찍는 유명한 감독님들의 단편도 보고 싶다. 장편은 돈이 드는 일이고 엎어질 수도 있다. 굉장히 긴 기획을 요하는 일이니 말이다. 감독들의 단편 영화 제작기를 다룬 JTBC <전체관람가>처럼 감독들이 카메라 앞을 떠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편영화 상영관 '자체휴강시네마' 벽면에는 관객들이 붙이고 간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단편영화 상영관 '자체휴강시네마' 벽면에는 관객들이 붙이고 간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 유지영


단편 영화를 장편만큼 즐겨 찾는 사람이 없는 탓인지 '자체휴강시네마'는 늘 경영상 어려움에 처해있다. 박 대표는 "돈 문제라면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다"면서도 "좋은 관객들을 많이 만났고 매순간이 추억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언제까지 영화관을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을 그만둔다고 해도 영화관에 왔던 단골 손님들은 계속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 마지막 사법고시가 있었을 때 그 고시에 합격한 단골 손님이 오셨다. 원래 여기 신림동은 사법고시생들이 많이 살아서 고시촌인데 고시가 폐지됐으니 마지막 고시생인 것 아닌가. 더는 여기가 고시촌이라 불릴 이유가 없어진 거다. 이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이 오시는데 동네의 역사 한 페이지가 끝나는 느낌이라 굉장히 신기했다. 그 분께는 당연히 축하한다고 좋은 일 많이 해달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뒤로는 안 오신다. 아마 연수원 들어가시고 그러면 바쁘시겠지. 그 손님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덧붙이는 글 '자체휴강시네마' 홈페이지. 매달 상영작을 볼 수 있다. http://huegang.com
자체휴강시네마 단편 영화 상영관 신림 고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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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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