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영화 포스터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영화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주의!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예술이 목적을 가질 수 있을까? 세상을 바꿀 수는 있을까? '우리'의 일상에서 예술을 마주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과연 '우리'가 예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가장 보통의 존재, 우리들을 일컫는 말이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이 모든 질문에 답을 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제이알(JR)과 아녜스 바르다, 두 사람은 각자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예술가다. 남성과 여성. 서른셋과 여든여덟. 키가 크고 키가 작고. 닮은 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에게는 '예술'이라는 교집합이 있다. 이야기를 수집하고 선택해서 프레임 안에 그것을 가둔 다음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가지고 관객, 즉 당신에게 다가감으로서 그들이 수집한 이야기는 다시 수천, 수만 가지의 이야기로 재탄생되는 자유를 가지게 된다.

사진작가이자 설치미술가인 JR과 50년 넘게 영화를 만들어 온 아녜스 바르다. 서로를 몰랐던 (물론 개인적으로) 두 예술가가 만나서 함께 작품을 만들고, 그 여정은 한 편의 놀라운 영화로 기록된다. 두 사람은 카메라 모양의(실제 사진 스튜디오 기능을 하기도 하는) 트럭을 타고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얼굴과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얼굴이 담고 있는 소소하지만 위대한 역사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한 장면.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과거를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텅 빈 탄광촌 주택가, 홀로 자신의 공간을 지키고 있는 여인에서부터 생산성은 떨어질지언정 옛 방식으로 염소 농장을 하며 치즈를 생산하는 농부까지. 개인과 공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소멸해나가고 그 모든 과정은 사람의 얼굴에 흔적을 남긴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삶이 단지 개인의 역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역사로 다가오게끔 두 예술가는 그들의 얼굴에서 소소하지만 위대한 역사의 힘을 포착하고 그것은 작품이 되어 감동을 전달한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되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가 된다는 말. 참 뻔한 말이지만 그 말이 사람의 얼굴에 담길 때 그 뻔한 말은 놀라움이 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인 동시에 출연자이기도 한 아녜스와 JR 두 사람 각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방인에서 작업 파트너이자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된 두 사람의 관계 역시 영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며 여러 에피소드들과 유기적인 구성,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아녜스가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장-뤽 고다르를 회상하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다. 선글라스를 절대 벗지 않는 JR의 얼굴이 젊은 시절 역시 늘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고다르를 연상시켜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녜스에게 그와의 추억은 그녀를 그녀의 동지이자 남편, 자끄 드미가 살아있던 젊은 시절로 데려간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한 장면.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55년이라는 나이 차는 그들이 함께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JR이 짓궂은 농담을 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면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이 영화를 보는 묘미 중 하나다.

길에서 마주친 이방인들은 마치 놀이를 하듯 즐거운 마음으로 두 사람의 작업에 참여하고 그들의 익숙한 일상이 낯선 예술로 재탄생 하는 것을 보면서 감탄한다. 아녜스와 JR이 마주한 각각의 에피소드를 여기서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놀랍고 재밌는 이야기들은 영화를 보면서 직접 확인하기를 바란다.

추신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한 장면.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아녜스와 JR이 고다르가 연출한 <국외자들>에서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장면(이 장면을 찍은 시점이 고다르를 만나러 갔다와서 인지 아니면 그 전인지 궁금하다)이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클라이막스였다. 고다르의 영화를 보면서 막연하게 '이런 게 영화구나...' 하고 생각했던 씨네키드의 눈물을 쏙 빼놓을 만큼 아름다운 이 장면은 영화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두근거리고 벅차오르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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