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5일 발표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신보 < Liberation > 앨범 커버.

지난 6월 15일 발표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신보 < Liberation > 앨범 커버. ⓒ 소니뮤직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에게 지난 10년은 그리 쉽지 않았다. 일렉트로닉을 대대적으로 이식한 4집 < Bionic >(2010)과 좀 더 다채롭게 구성한 5집 < Lotus >(2012)는 다소 난해하고 들쑥날쑥한 만듦새로 쓴맛을 봤다. 대중과 평단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레트로 싱어로 변신했던 3집 < Back To Basics >(2006)가 마지막이다. 핏불('Feel this moment'), 어 그레이트 빅 월드('Say something') 등과의 협업이 아니었다면 그의 이름을 되새길 기회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6년 만에 발매한 6집 < Liberation >에는 고뇌의 흔적이 가득하다. 신보의 키워드는 앨범 제목 그대로 '해방'이다.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 유행에 대한 강박은 걷어내고, 잘 할 수 있는 것과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매번 새로운 콘셉트로 대중을 매혹했던 그가 가면을 벗고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자체로 돌아온 것이다. 화려한 소리 장식 대신 알앤비와 힙합을 중심으로 정돈된 톤을, 일정치 않은 곡 단위의 펀치 대신 인트로와 인터루드(interlude)를 적소에 활용해 부드러운 흐름을 만든 것도 포인트다. 물론 이는 카니예 웨스트, 앤더슨 팩(Anderson .Paak), 엠넥(MNEK), 줄리아 마이클스 등 앨범에 참여한 특급 뮤지션들의 공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은 음반의 초반부에서 두드러진다. 영화 <문라이트>(2016)의 음악을 담당했던 니콜라스 브리텔(Nicholas Britell)이 선사한 서곡 'Liberation'과 'Searching for Maria'를 보자. 아길레라의 미들 네임이 마리아임을 생각하면, 이는 곧 해방과 함께 자신을 찾아 나선다는 뜻으로 읽힌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의 'Maria'를 무반주로 소화한 노래는 마이클 잭슨의 1972년 고전 'Maria(You were the only one)'을 인용한 'Maria'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그는 어린 마이클 잭슨과 멜로디를 주고받으며 비장미를 쌓아 올리고, 펑크(funk) 록의 옷을 입은 'Sick of sittin'에서 감정을 폭발시킨다. 실로 짜릿한 전개다.

과거의 그가 아니기에 나올 수 있었던 앨범

'Right moves', 'Like I do' 등 감각적 힙합 비트를 동원한 중후반부에선 'Accelerate'를 주목할 만하다. 평범을 거부하는 카니예 웨스트가 선사한 노래는 수록곡 중 가장 이질적이다. 신경질적으로 바뀌는 리듬, 촘촘하게 교차하는 랩과 보컬, 종잡을 수 없는 진행은 불친절의 극치다. 분명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곡이나, 복잡한 가운데서 발견되는 규칙성과 여기서 비롯되는 키치함이 재미있다. 한편, 'Beautiful', 'Hurt' 등으로 획득한 '발라드 퀸'의 명성은 본 앨범에서도 유효하다. 몽환적인 신스 사운드의 'Masochist', 가스펠의 요소를 딴 'Unless it's with you'가 두루 아름답지만, 피아노 반주에 맞춰 극적인 감정 표현을 연출한 'Twice'는 반드시 확인해야 할 곡이다.

앨범 전반에서 개인적 자유를 소망하는 그는 여성을 위한 외침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어린 소녀들이 저마다의 꿈을 털어놓는 간주곡 'Dreamers'와 이들에게 손을 건네는 'Fall in line'의 이야기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파워 보컬 데미 로바토와 호흡을 맞춘 노래는 '그들이 만든 규칙'에 순순히 따르지 않겠노라 우렁차게 소리 높이며 여성들을 대변한다. 2집 < Stripped >(2002)의 'Can't hold us down'이 그랬듯, 각국의 소녀들과 여성들에게 오랫동안 용기를 불어넣을 곡이다.

적지 않은 수록곡을 밀도 있게 담아냈다. 록과 소울, 알앤비와 힙합을 아우르면서도 산만하지 않다. '냈다 하면 히트'였던 과거의 그가 아니기에 낼 수 있는 솔직한 앨범이다. 핑크,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또래 가수들과 달리 늘 앨범 제작에 긴 시간을 들였던 그는 이번 앨범 이후로 공백기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다가오는 가을에는 10년 만에 순회공연도 개최한다. 이제 그는 오랜 부담과 압박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그의 앨범으로썬 처음으로 히트를 겨냥한 댄스곡이 없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병 속의 지니('Genie in a bottle')가 마침내 '해방'되는 순간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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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평론가 |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 음악 작가 | 팟캐스트 <뮤직 매거진 뮤브> 제작, 진행 http://brunch.co.kr/@minjae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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