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7일 오전 3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8강 브라질과 벨기에의 경기. 벨기에의 케빈 데 브라위너가 팀의 두 번째 골을 득점한 후 환호하고 있다.

2018년 7월 7일 오전 3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8강 브라질과 벨기에의 경기. 벨기에의 케빈 데 브라위너가 팀의 두 번째 골을 득점한 후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8 러시아월드컵 4강 대진표가 완성됐다. 프랑스와 벨기에, 잉글랜드와 크로아티아의 대결로 압축된 준결승전은 모두 유럽팀의 경연장이 되며 사실상 유로 2018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자동으로 이번 대회도 유럽팀의 우승이 확정된 것은 2006년 독일 대회 후 4회 연속이다. 월드컵 4강이 모두 유럽팀으로만 채워진 것도 역시 독일 대회 이후 12년 만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세계축구 시장의 중심은 유럽이다. 세계 각자의 최정상급 스타 선수들은 소수를 제외하면 전성기에 대부분 유럽으로 모인다. 4강 진출팀의 선수구성을 살펴봐도 스페인-잉글랜드-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이른바 '유럽 5대 상위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4강 진출국 중 크로아티아 이외 3팀, '20대 선수'로 세대 교체 성공

벨기에의 에당 아자르-로멜로 루카쿠-케빈 데 브라위너, 프랑스의 폴 포그바-킬리앙 음바페-앙투안 그리즈만,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델레 알리-라힘 스털링, 크로아티아의 루카 모드리치-이반 라키티치 등은 모두 유럽 빅리그에서 에이스로 활약하여 각 포지션의 세계 정상급으로 꼽히는 선수들이다. 높은 수준의 리그에서 배출된 양질의 선수층이 곧 팀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7월 4일 오전 3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월드컵 16강 잉글랜드와 콜롬비아의 경기. 잉글랜드의 선수들이 승부차기 승리 후 환호하고 있다. 경기는 1-1(승부차기 4-3) 잉글랜드의 승리로 끝났다.

7월 4일 오전 3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월드컵 16강 잉글랜드와 콜롬비아의 경기. 잉글랜드의 선수들이 승부차기 승리 후 환호하고 있다. 경기는 1-1(승부차기 4-3) 잉글랜드의 승리로 끝났다.ⓒ AP/연합뉴스


'세대교체'에 성공했다는 것은 이번 대회 4강팀의 중요한 차이다. 크로아티아를 제외하면 벨기에-잉글랜드-프랑스는 모두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한동안 국가대항전 무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벨기에와 프랑스는 특유의 다문화-다인종 정책과 유소년 시스템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하여 세계적인 유망주들을 대거 육성해내며 '황금세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팀은 유럽팀 중 흑인 선수와 이민자 2~3세대 출신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잉글랜드도 자국 EPL을 통하여 길러낸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과감한 새 판 짜기에 나선 것이 대성공을 거뒀다. 나이는 젊지만 선수들이 일찍부터 자국리그와 유럽클럽대항전 등 큰 무대에서 활약하며 경험 면에서는 베테랑에게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나란히 이번 대회 선수단의 평균연령이 26세로 나이지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젊은 팀이며, 벨기에도 27.6세(13위), 크로아티아가 27.9세(15위)로 비교적 젊은 편에 해당한다.

젊은 감독들의 리더십도 주목할 만하다. 월드컵 4강팀 모두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지도자들이 팀을 이끌고 있으며 로베트로 마르티네즈(스페인) 벨기에 감독을 제외하면 모두 자국 출신 감독들이다. 이들은 모두 자국대표팀을 맡기 전까지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나 명성은 그리 높지 않았던 인물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점유율 축구의 비중이 줄어들고 '선 수비 후 역습' 위주의 실리축구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이번 월드컵에서 개인의 능력보다는 팀의 조직적 완성도, 감독의 유연한 전술적 역량이 더 부각되고 있는 대회이기도 하다.

 2018년 7월 6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프랑스와 우루과이의 8강 경기. 프랑스의 라파엘 바란이 득점 후 동료 앙투안 그리즈만과 기뻐하고 있다.

2018년 7월 6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프랑스와 우루과이의 8강 경기. 프랑스의 라파엘 바란이 득점 후 동료 앙투안 그리즈만과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디디에 데샹 프랑스 감독은 현역 시절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 때 주장으로서 우승을 이끌었던 황금세대의 일원이다. 2012년 7월부터 프랑스대표팀을 맡아 어느새 6년째 이끌고 있는 장수 감독이기도 하다. 개성 강한 선수들이 유독 많은 프랑스에서도 특유의 강단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스캔들을 일으켰던 공격수 카림 벤제마를 과감하게 제외하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역대 월드컵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차지한 것은 마리우 자갈루(브라질), 프란츠 베켄바워(독일) 단 2명뿐이다.

마르티네즈 감독은 시간이 흐를수록 재평가를 받고 있는 감독이다. 주로 빅리그의 중하위권팀에서 '생존왕'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던 마르티네즈는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정상급 미드필더 나잉골란의 엔트리 제외, 케빈 데 브라위너의 수비형 미드필더 기용 등 변칙에 가까운 용병술로 벨기에의 화려한 선수층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실수를 인정하고 유연한 전술적 변화를 가져간 끝에 8강에서는 강호 브라질을 경기력으로 압도하는 등 점점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감독과 즐라트코 다리치 감독은 '대타'로 투입되어 대박을 터뜨린 케이스다. 유로 2016의 부진으로 사임한 로이 호지슨 감독의 뒤를 이어 감독대행을 거쳐 정식 지휘봉을 잡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경험 부족에 대한 우려를 딛고 과감한 세대교체와 정교한 세트피스를 앞세워 '뻥축구'-'스타병'으로 악명 높던 잉글랜드의 체질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리치 감독은 현역 시절 국가대표 경력이 없고 지도자 경력을 대부분 자국리그와 중동에서 보내면 무명에 가까웠으나 지난해 10월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안테 차치치 감독의 후임으로 갑작스럽게 크로아티아 대표팀을 맡아 8개월에 조국을 20년 만의 월드컵 4강으로 이끄는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강팀들의 월드컵 탈락이 한국 축구에 시사하는 것들

상대적으로 이번 대회에서 이변의 희생양이 된 전통 강호들의 경우, 대체로 세대교체 실패와 슈퍼스타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가 오히려 독이 된 경우가 많았다. 4년 전 브라질 대회 우승국 독일이나 '티키타카'로 한 시대를 호령했던 스페인의 몰락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수년간 대표팀에서 검증된 활약을 펼친 선수들 위주로 보수적인 선수단 운용을 고집했으나 상대국의 철저한 전력 분석 속에 기존 선수들의 부진과 대안의 부재라는 약점을 드러내며 무너졌다.

네이마르(브라질)나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에딘손 카바니(우루과이) 등 걸출한 스타플레이어 한두 명의 활약에 의지하던 팀들은 에이스가 부진하거나 부상을 당할 경우 팀 전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유럽의 독주는 대항마였던 남미의 몰락과도 무관하지 않다. 월드컵에서 총 9번이나 정상에 오르며 유럽(11회)과 함께 세계축구를 양분해왔던 남미는 이번 대회에서는 우루과이와 브라질이 각각 8강에서,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가 16강에서 일찌감치 탈락하며 힘을 쓰지 못했다. 4팀 모두 유럽팀과의 맞대결에서 탈락했다는 것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코파아메리카 2연패에 빛나는 남미의 또 다른 강자 칠레는 정작 월드컵에서는 지역예선의 벽도 넘지 못했다.

'제3대륙'과의 격차도 아직은 여전했다. 아시아-아프리카-북중미는 조별리그에서 간간히 유럽 강호들을 제압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선전하는 수준에 그쳤을 뿐 '대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아프리카는 출전 5개국이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아시아와 북중미도 각각 일본과 멕시코만이 조별리그를 통과했으나 16강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당분간 세계 축구에서 유럽의 확고한 우위가 지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편으로 유럽의 강세라는 큰 틀은 유사하지만 전혀 달라진 부분도 존재한다. 이번 대회 준결승에 오른 4팀 중 우승 경험이 있는 나라는 잉글랜드(1966년)와 프랑스(1998년)뿐이다. 두 팀은 각각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이 유일하다. 월드컵 우승 경험이 없는 크로아티아는 3위(1998년), 벨기에는 4위(1986년)가 각각 최고성적이다. 월드컵 초창기를 제외하면 4강팀의 역대 우승-결승 진출 횟수가 가장 적은 월드컵이 됐다.

 2018년 6월 2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의 러시아 월드컵 D조 2경기 당시 장면.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크로아티아의 이반 스트리니치와 마르셀로 브로조비치를 상대로 경기하고 있다.

2018년 6월 2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의 러시아 월드컵 D조 2경기 당시 장면.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크로아티아의 이반 스트리니치와 마르셀로 브로조비치를 상대로 경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그동안 월드컵 터줏대감으로 꼽혔던 독일과 브라질, 스페인,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전통의 강호들이 대거 몰락한 결과다. 역대 월드컵에서 우승 경험이 있는 이 6개국 중 한 팀도 4강도 오르지 못한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당장 지난 대회만 돌아봐도 4강팀(독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네덜란드)이 완전히 물갈이 됐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는 지역예선에서 탈락했고 독일은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은 16강에서 탈락하는 충격적인 이변이 속출했다. 세대교체 실패와 전술적 대안의 부재, 과거의 성공에 안주한 매너리즘은 축구 강호들의 몰락에서 한국축구도 교훈을 얻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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