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축구인들에게 월드컵이란 '꿈의 무대'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을 위해 수많은 축구인들이 열정을 불태운다. 하지만 월드컵이 항상 모두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영광의 이면에는 그만한 책임과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잘 할 때는 세상을 모두 품에 안은 듯하지만 못할 때는 어마어마한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월드컵에서의 추억이 지우고 싶은 일생일대의 악몽이나 트라우마로 남는 경우도 많다.

콜롬비아 산체스, 독일 외질, 브라질 네이마르... 욕받이 된 선수들

어느덧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수많은 '희생양'들이 탄생했다. 콜롬비아의 미드필더 카를로스 산체스는 두 번이나 PK를 내주는 뼈아픈 대형 실수를 저지르며 탈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산체스는 조별리그 첫 경기인 일본전에서 전반 3분 만에 카가와 신지의 슈팅을 손으로 막아냈다가 페널티킥을 내주며 퇴장 당했다. 콜롬비아는 선제골 허용에다가 수적 열세까지 놓여 결국 1대 2로 패했다.

다행히 콜롬비아는 세네갈-폴란드와의 남은 경기에서 승점을 따내며 기사회생했지만 잉글랜드와의 16강전에서 사고는 또 벌어졌다. 문전에서 거친 몸 싸움을 벌이던 산체스가 해리 케인에게 파울로 페널티킥을 내 준 것. 이 득점은 이날 잉글랜드에 허용한 유일한 골이었다. 콜롬비아는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지만 승부차기 끝에 잉글랜드에 무릎을 끓었다. 월드컵 이후 산체스의 SNS 계정엔 그를 비난하는 극성 팬들의 댓글이 폭발하고 있다. 심지어 선수와 가족에 대한 살해 협박까지 등장해 충격을 줬다.

독일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고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한국에 덜미를 잡히며 사상 최초로 조별리그에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독일 축구 팬들은 유독 메수트 외질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토니 크로스, 토마스 뮬러, 사미 케디라 등 이번 월드컵에서 여러 독일 선수들이 부진한 것을 고려하면 외질에게 비난이 집중되는 상황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알고 보면 이는 월드컵 이전부터 누적된 구설수와 무관하지 않다.

터키계 독일인 외질은 팀동료 일카이 귄도간과 함께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기념 사진을 찍어 논란이 됐다. 독일과 터키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은 데다 에르도안은 서방에서 독재자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있는 인물이다. 독일 내에서는 외질을 월드컵 명단에서 제외하고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강경한 반응까지 나올 정도로 여론이 좋지 않았다. 이 사건은 독일 대표팀 내부 분위기에도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올리버 비어호프 독일 대표팀 단장은 "외질을 대표팀에 발탁한 것은 실수"라고 발언했다가 사과하는 해프닝이 있었고, 라인하르트 그린델 독일축구협회 회장은 "외질이 사진 논란에 해명해야한다"고 언급하는 등 후폭풍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외질은 자신을 향한 비난 여론에 충격을 받아 대표팀 은퇴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의 네이마르는 '엄살' 논란으로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브라질은 월드컵 8강전에서 벨기에에 2-1로 패하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브라질의 에이스로 기대를 한몸에 모았던 네이마르는 2골 1도움을 기록했으나 경기력은 전반적으로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다.

 2018년 7월 2일 오후 11시(한국시간) 러시아월드컵 브라질과 멕시코의 16강 경기. 브라질의 네이마르(왼쪽)가 득점 후 팀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2018년 7월 2일 오후 11시(한국시간) 러시아월드컵 브라질과 멕시코의 16강 경기. 브라질의 네이마르(왼쪽)가 득점 후 팀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네이마르는 이번 대회 내내 실력보다 과도한 헐리우드 액션으로 더 주목을 받았다. 조별리그부터 시작된 상대팀의 거친 견제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다소 과한 리액션을 취하며 그라운드에 자주 쓰러지기도 했다. 네이마르는 4년 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8강전에서 콜롬비아의 거친 반칙에 허리 부상을 당하며 준결승에 결장해야 했고 조국이 독일에 1-7로 참패하는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지난 2월에는 리그 경기중 오른발 골절상을 당하며 수술대에 올라 월드컵 출전조차 불투명한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네이마르로서는 자기 방어심리가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분명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친게 문제였다. 신체접촉이 빈번한 축구에서 과도한 눈속임 동작으로 파울을 유도해내는 선수들은 '다이버'라고 칭하며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번 대회에서 네이마르가 드러누워 경기를 중단시킨 시간만 15분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코스타리카전에서는 노골적으로 PK를 끌어내기 위해 앞쪽에서 옷자락을 잡혔음에도 뒤로 넘어지는 '발연기'를 했다가 VAR에 적발당해 망신을 사기도 했다.

심지어 멕시코전에서는 상대 선수에서 가벼운 신체접촉에도 마치 중상이라도 당한 듯 과장된 비명을 질러대는 모습이 빈축을 샀다. 대회 초기만 해도 네이마르에 쏟아지는 파울에 동정론이 강했지만 뒤로 갈수록 반응은 점점 싸늘해졌고 네이마르의 할리우드 액션을 모아놓은 동영상과 패러디가 유행하는 등 그야말로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월드컵이 남긴 상처, 20년 동안 지속되기도

이번 대회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선수는 단연 장현수를 꼽을수 있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신태용호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할만큼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던 장현수지만 이번 대회 한국이 허용한 3실점에 모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팬들의 집중적인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멕시코전에서 두 번이나 결정적인 태클 실수를 저지른 장면은 이영표-안정환 등 선배들로부터도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월드컵] 장현수 조현우 김영권, 아쉬움 가득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장현수(20), 조현우(23), 김영권(19)이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1대2로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 [월드컵] 장현수 조현우 김영권, 아쉬움 가득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장현수(20), 조현우(23), 김영권(19)이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1대2로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장현수는 이미 평가전에서도 잦은 실수로 불안하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은바 있어서 월드컵 개막 전부터 팬들에게 미운 털이 박혀있는 상태였다. 역시 비슷한 평가를 받고있던 동료 김영권이 월드컵에서 장현수와 정반대로 눈부신 활약으로 재평가를 받은 것과 대조를 이룬다. 대회 기간내내 각종 축구관련 커뮤니티와 SNS에는 장현수를 비난하는 댓글이 넘쳐났고,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에 장현수의 대표팀 자격박탈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오며 과열된 극성여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경기는 끝나더라도 월드컵이 남긴 상처는 누군가에는 평생의 회한으로 두고두고 남을 수도 있다. 1950년 브라질월드컵 결승전에서 우승을 호언장담했던 홈팀 브라질은 우루과이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는 '마라카낭의 비극'을 겪었다. 당시 브라질 전국에서 울분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거나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등 사회적 파장이 엄청났다. 훗날 54년 뒤 독일에 참패한 '미네이랑의 비극'도 나왔지만 후폭풍으로 따지자면 당시가 더 컸다.

월드컵이 낳은 희생양 중 가장 최악의 사례는 역시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콜롬비아 축구대표팀 주전 수비수였던 에스코바르다. 당시 콜롬비아는 미국과 조별예선 2차전에서 에스코바르의 자책골로 인하여 1-2로 패배했고 1승 2패에 그쳐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축구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고, 결국 대회가 끝난 이후 귀국 이후 한 술집에서 괴한들로부터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세계축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사제관계로 인연을 맺었던 차범근 전 감독과 하석주는 지난 5일 방송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해 월드컵에서의 상처 때문에 무려 20년간이나 서로 얼굴을 대면하지 못한 사실을 고백하여 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당시 뼈아픈 백태클 퇴장으로 멕시코전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던 하석주는 이후로도 경질당한 차범근 감독에 대한 죄책감으로 일부러 그를 피해다녔다는 사실을 밝히며 눈물까지 흘렸다. 누군가에게 손가락질하기는 쉽지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 되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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