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로드쇼 필름 디스트리뷰터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처음에는 부족하고 서툴지만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하게 마련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성공조차도 단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영화계에서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했다. 계속해서 비범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거장들의 첫 영화는 그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을까? 그래서 현재 생존해있는 70세가 넘은 거장들의 첫 영화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들은 과연 떡잎부터 달랐을까? " - 기자말

무언가 좋아하는 것이 있을 때, 우리의 일상은 좋아하는 것 중심으로 흘러가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 것이고,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상의 모든 움직임을 안무처럼 생각할 것이다. 취미는 때로 취미를 넘어 인생의 전부가 되기도 하는데 호주 출신의 영화감독, 조지 밀러 또한 영화에 대한 열정이 외과 의사였던 그를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거장으로 만들었다.

2015년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가 개봉했을 때 전 세계 관객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열광적이었다. 기괴한 분장과 세기말의 암울한 배경, 별다른 설명 없이도 압도적인 캐릭터들, CG로 재현할 수 없는 날 것의 액션은 단순한 플롯을 폭발적인 힘으로 끌고 간다. 보는 사람의 눈과 정신을 폭주하는, 가히 충격적인 비주얼의 영화는 오랜 시간 이 영화를 기다린 팬들의 갈증을 단 번에 해소시킨 것은 물론이고 <매드 맥스>를 몰랐던 관객들로 하여금 도대체 조지 밀러는 누구이며, 예전 시리즈는 어떠한지 찾아보게 만들었다.

멀지 않은 미래, 경찰 맥스(멜 깁슨 분)가 폭주족들에 의해 동료 경찰 구스와 가족을 잃고 복수극을 펼친다는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첫 번째 <매드 맥스>는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라고 볼 수는 없지만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조지 밀러가 바라본 미래는 희망적이지 않다. <매드 맥스>는 범죄가 만연한 세상에서 법과 원칙만으로는 소중한 가치를 지킬 수 없는 암울한 세상을 그리고 있는데 제작비의 한계 때문인지 배경으로서의 공간은 시골 풍경이 대부분으로 공간이 주는 암울한 미래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로드쇼 필름 디스트리뷰터


주인공 맥스에게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희망적이고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무자비한 범죄자들과 그런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경찰이 있는 일터이다. 평화와 안식의 시간은 너무도 짧고, 결국엔 범죄에 의해 잠식당해 버린다. 맥스가 영화 속에서 상대하는 범죄자들은 폭주족으로 이들의 폭주에는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다. 이들은 무리지어 다니며 약에 취해 보이는 것 마다 강탈하고 이유 없이 폭행을 저지르며 여성들을 희롱하고 강간한다. 시종일관 혀를 날름거리고, 고함을 지르는 이들의 기괴하고 광기마저 느껴지는 폭주 모습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갱단의 리더 격인 극악무도한 토커터(휴 키스 번: 그는 2015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악당 암모탄을 연기하기도 했다)와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냉철한 버바, 그리고 별 생각 없이 범죄를 저지르지만 사람을 죽일 만큼의 악함은 없는 막내 조니까지. 크게 세 부류의 캐릭터로 나뉘어지는 이들 무리의 성격은 어떤 한 조직을 구성할 때 흔히 채워 넣게 되는 전형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마치 정신병자 같은 이들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말투에서 캐릭터들의 특이점이 드러난다.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이들 갱단의 범죄를 미래라는 설정과 함께 영화를 극적으로 몰고 간다. 조직원들끼리의 의리를 제외하고 이들 범죄 집단에게는 약점, 그러니까 스스로를 약하게 만드는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칠 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경찰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로드쇼 필름 디스트리뷰터


이들이 악이라면 이들의 대척점에 있는 경찰은 선일까? '정의의 전당'의 고꾸라진 간판과 황폐한 도로를 지나 들판에서 사랑을 나누는 커플을 몰래 지켜보는 경찰의 모습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경찰의 무너진 권위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찰을 살해하고 도주하는 나이트 라이더(폭주족 갱단의 일원)를 쫓는 것 역시 경찰 대 범죄자가 아니라 범죄자 대 범죄자의 대결처럼 보인다.

검정 가죽 자켓과 바지를 유니폼으로 입고 폐건물과 다름없는 경찰서에서 일하는 경찰관들의 작업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그들 중에는 폭주족 패거리 못지않게 거친 경찰들도 있지만 온순한 편인 맥스는 특출한 정의감을 가진 것도 아니고 딱히 두드러지는 특징이랄 게 없는 캐릭터다. 오히려 그의 동료 구스가 타협을 모르는 다혈질의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튀는 성격 때문에 그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동료의 억울한 죽음에 괴로워하는 맥스는 경찰서장의 권유로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고 여행 중 마주친 폭주족 갱단에 의해 아내와 아이까지 잃는다. 여자와 아이 가릴 것 없이 폭주하는 갱단은 맥스를 영화의 제목처럼 매드 맥스로 만들어 버리고 맥스는 자비 없는 복수를 결심한다.

영화는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인물의 내면적 갈등을 고민하는 대신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을 원초적이며 즉각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영화에는 뜬금없는 극의 진행과 장면들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색소폰을 연주하는 맥스의 아내 제시의 모습이라든가 폭주족들이 해변 가에서 마네킹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장면은 뜬금 없다기 보다 기괴한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갱단으로부터 도망치는 젊은 커플의 모습의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갱단에 의해 폭행당하고 강간당한 젊은 커플의 경우 이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구스가 갱단의 표적이 되고 결국 죽임까지 당하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지만 전후 맥락 없이 무작정 도망가는 커플과 쫓는 갱단들의 모습만 담아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로드쇼 필름 디스트리뷰터


단돈 35만 달러, 적은 돈은 아니지만(1970년대 인 것을 고려하면 더욱), 장편 액션 영화를 찍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돈으로 완성한 <매드 맥스>는 엉성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게다가 차 추격씬의 경우 지금 보아도 흠 잡을 데 없을 만큼 훌륭한데 이는 감독의 타고난 감각 때문일 것이다. 후에 <매드 맥스> 시리즈를 흥행 시키고 2015년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나올 수 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매드 맥스 2>에서 액션 장면들은 더욱 완성도 있게 만들어진다. 

<매드 맥스>시리지의 성공으로 조지 밀러 감독은 헐리우드로 진출해 <로렌조 오일>, <꼬마돼지 베이브>, <해피 피트>등 액션과는 거리가 먼 가족 드라마 영화들을 감독하고 제작한다(대부분 호주와 미국의 합작 영화). '포스트 아포칼립스'장르의 대가라고 불리는 그의 필모그래피라고 하기에 조금 의아한 영화들이지만 영화들은 흥행에 있어 나쁘지 않은 성과들을 이루었다.

처음에 부족했던 이야기의 개연성과 캐릭터가 단단해지고 미술, 의상, 카메라의 움직임 등 말 그대로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진 것을 2편을 통해 목격한 관객들은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기대했던 것 이상의 상상을 뛰어넘는 대작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벽돌만 했던 핸드폰이 사진도 찍고 쇼핑도 하고 검색도 할 수 있는 스마트 폰이 된 것처럼 <매드 맥스>시리즈는 진화했고,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를 보여준 표본과 같은 영화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매드 맥스 조지 밀러 멜 깁슨 포스트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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