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미드나잇 선 영화 <미드나잇 선> 메인포스터

▲ 미드나잇 선영화 <미드나잇 선> 메인포스터ⓒ 시네그루키다리이엔티


01.

지난 2007년 개봉한 일본 영화 <태양의 노래>는 동명의 소설을 모티브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색소성 건피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소녀가 처음 느낀 사랑의 설렘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완성해내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로맨스. 햇빛을 받으면 생명에 위험까지 느끼게 되는 병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며 자연스럽게 제한된 환경에서 발생하는 애틋함을 잘 활용한 작품이었다. 실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던 일본 가수 YUI는 이 작품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일본에서만 10억 엔 이상의 수익을 거두며 흥행에 성공했다. 국내에서는 뮤지컬로 리메이크되어 소녀시대의 태연이 주연을 맡았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던 작품. 스콧 스피어 감독의 <미드나잇 선>은 <태양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영화 <미드나잇 선> 스틸컷 영화 <미드나잇 선> 스틸컷

▲ 영화 <미드나잇 선> 스틸컷영화 <미드나잇 선> 스틸컷ⓒ 시네그루키다리이엔티


02.

스토리의 큰 뼈대는 동일하다. XP라는 희귀병을 앓는 주인공 케이티(벨라 손 역)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애틋한 사랑을 만나 삶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보내게 된다는 것. 원작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인 음악을 차용한다는 것 역시 유사하다. 눈에 띄는 변화는 관계를 시작하는 지점에서의 주체가 바뀌었다는 점. 원작에서 사랑에 빠지게 된 소녀 카오루(YUI 역)가 코지(츠카모토 타카시 역)에게 적극적으로 돌진했던 것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찰리(패트릭 슈왈제네거 역)가 병을 앓고 있는 소녀 케이티에게 먼저 사랑을 건넨다. – 두 작품 모두 앓고 있는 병으로 인해 행동에 제한이 있는 소녀들이 창밖으로 소년을 먼저 인지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설정을 갖는다. – 이 변화는 원작과 달리 하이틴 로맨스 장르의 특징을 십분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앓고 있는 질환으로 인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여자와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봐왔던 설정이 아닌가. 병이 깊어지면 갑자기 연락을 끊는다던가, 마음은 아프지만 그의 안녕을 위해 떠난다든가 하는 것들.

03.

전작에 비해 더 큰 역할을 부여받은 캐릭터가 있다면 카오루의 아버지인 잭(롭 리글 역)이다. 딸바보지만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케이티가 찰리를 몰래 만나러 가기 위해 거짓말을 하다 죄책감에 순순히 털어놓자,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이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한 것이 화가 난다고 말하는 인물. 그는 케이티가 어린 시절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고 홀로 그녀의 병간호를 도맡아 온 아버지다. 찰리를 대하는 모습 역시 인상적이다. 딸을 걱정하는 마음과 동시에 딸이 좋아한다며 데리고 온 그를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병이 악화되고 집으로 찾아온 의사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그동안 혼자 속에 담아 온 그녀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내며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인물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그녀가 남들 다 하는 일상적인 일조차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음을 슬퍼하고 애원하는데도 그녀의 건강만 바라보며 아픈 마음을 눌렀다는 그 속내. 자식이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딸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케이티의 목소리를 듣고는 누구보다 좋아하던 모습도 계속해서 잔상이 남는다.

영화 <미드나잇 선> 스틸컷 영화 <미드나잇 선> 스틸컷

▲ 영화 <미드나잇 선> 스틸컷영화 <미드나잇 선> 스틸컷ⓒ 시네그루키다리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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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이 작품에도 지금의 우리를 돌아볼 부분이 있다. 케이티의 병을 악화시킨 결정적인 이유. 표면적으로는 그녀가 남자친구인 찰리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 내면에는 오랜 시간 자신을 향해 수군거리고 손가락질하던 세간의 시선이 있다. 어린 시절 직접 집으로 찾아와 오랜 친구가 되어 주었던 모건(퀸 쉐퍼드 역)을 제외하고는 영화의 처음에서 나왔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질병 혹은 뱀파이어로 여겼던 부분들이 그녀에게는 큰 상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밝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단 며칠이라도 일반인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여기서 그녀가 일반인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은 병이 없는 상태로 보내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편견이나 손가락질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뜻이다.

05.

애초에 이 영화에 투입된 예산 규모를 보면, 제작 단계에서부터 이 작품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작품에 투입된 예산은 280만 달러. 최저 예산으로 최대 효과를 본 것으로 잘 알려진 제임스 완 감독의 <쏘우>(2004)가 120만 달러 정도였으니 대충 감이 올 것이다. – 보면 알겠지만, 사실 <쏘우>는 장소도 그렇고, 등장인물도 그렇고 애초에 제작비가 별로 들어갈 곳이 없다. – 이 작품이 시애틀 로케 촬영까지 마친 것을 고려하면 결코 높은 제작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런 부분들은 영화 속에도 분명히 묻어난다. 케이티가 시애틀에서 연주하는 장면에서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는 군중의 모습이라던가, 찰리가 참가한 수영 대회에서 카메라로 최대한 가려놓은 규모적인 부분이라던가. 하지만 감독은 이런 핸디캡들을 작품의 전체적인 방향에 맞춰 매끄럽게 진행하고 있다. 특히, 전작에 비해 두 사람의 사랑을 아련함이 아닌 밝은 분위기로 이끌고 간 지점은 슬픈 이야기를 희석하며 하이틴 장르의 환기(Atmosphere)를 잘 표현하고 있다.

영화 <미드나잇 선> 스틸컷 영화 <미드나잇 선> 스틸컷

▲ 영화 <미드나잇 선> 스틸컷영화 <미드나잇 선> 스틸컷ⓒ 시네그루키다리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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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 비해 음악적 요소를 활용하는 빈도는 다소 줄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두 사람이 보여주는 사랑의 밀도는 전작과 다르지 않다. 귀엽고 순수함을 강조하던 원작과 달리 조금 더 성숙하고 진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다른 느낌을 전하고 있는 부분도 나쁘지 않다.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로맨스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가운데 때때로 설레고 또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장면들이 이어진다.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아들인 패트릭 슈왈제네거의 훈훈함을 러닝타임 내내 만나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이 단어만 조금 바꿔 서로에게 묻던 말이 있다. 그 대사를 인용해 이 작품을 아직 관람하지 못한, 이 글을 읽고 있을 관객들에게 보낸다.

우리와 함께하지 않고 그저 그런 일상을 보내도 되고, 우리와 함께 가슴 떨리는 최고의 90분을 함께 보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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