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말

 김동률 앨범 <그럴 수밖에> 표지

김동률 앨범 <그럴 수밖에> 표지 ⓒ 김동률 페이스북


운명적인 사랑이 정말 있을까? 수많은 노랫말들은 운명적인 만남, 사랑, 그리고 이별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이 노래들을 들으며 이런 사랑을 꿈꿔보기도 하고, 이별마저 아름답다며 눈물짓는다. 둘이 동시에 첫 눈에 반해 썸을 타는 일도 없이 자연스레 사랑을 시작하고 처음부터 알았던 듯 깊이 빠져드는 사랑. 심리학적으로도 이런 운명적인 사랑이 정말 가능한 걸까?

지난 봄 발표된 김동률의 신곡 '그럴 수밖에(작사 김동률, 작곡 김동률)'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를 통해 심리학적으로 운명적인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살펴본다.

그 날의 두 사람

노래는 운명의 상대를 만난 그 날의 상황을 설명하며 시작한다. 일상적인 어느 날. 노래 속 화자는 '나는 잠이 덜 깨서 평소에 타던 버스를 놓치고 터벅터벅 길을 걷다가 왜 배는 고프고' 이런 상황이다. 버스를 타고 출근했어야 했는데 오늘 버스를 놓쳤다. 아마도 평소라면, 더 급하게 서둘러 일터에 나갔을 게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날은 서두르지 않고 '터벅터벅' 걷는다. 약간은 나사가 풀린 느슨한 마음인 것이다.

이어 '에라 난 몰라 오늘은 그냥 일이고 뭐고 모두 귀찮다'고 푸념한다. 배도 고픈데 마음까지 어딘지 허전하다. '그날따라 맘이 허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멍 때리고 있는 그런 상황이다. 유독 나 자신을 풀어주고 싶은 기분의 날이다.

상대방에게도 이 날은 평범하면서도 어딘지 조금 다른 날이었다. '모처럼 외출'을 해 친구와 좋은 시간을 가지려고 했건만 '친구가 급히 자릴 떠났고' 홀로 남겨졌다. 평소라면 친구와의 만남이 충분치 못했던 점이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날은 어쩐 일인지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날씨와 갑작스레 생긴 시간은 자유를 선사한다. 때문에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 가는대로 '그 날따라 날이 좋아서 생각없이' 걸으면서 여유를 만끽한다.

그럴듯한 시작

'지나가는 사람들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람과 '생각 없이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본' 또 다른 사람. 둘은 이렇게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본다. 과연 심리학적으로 이런 상황이 가능할까? 정신분석에서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느꼈던 마치 한 몸인 것과 같은 친밀감 혹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결할 당시 아버지에게 느꼈던 감정이 성인기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이 때 크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무의식이다. 무의식 깊이 간직된 부모에 대한 감정은 성인기에 만난 연인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투사된다.

이는 자신이 바라던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 갈구했으나 충족되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욕구일 수도 있다.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을 투사하는 경우 자신이 꿈꿔왔던 부모의 모습과 유사한 사람에게 끌린다.

반면, 어린 시절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투사하는 경우 실제 자신의 부모 모습을 연상시키는 사람에게 끌리거나, 돌봐주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과 유사한 상대에게 유독 마음이 간다. 자신의 부모와 닮은 상대방을 통해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나와 유사한 상처가 있는 상대방을 돌봄으로써 자신을 돌보고자 하는 무의식이 발동되는 것이다.

사랑이 무의식적 욕구의 투사라는 정신분석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때 이 노래 속 커플이 사랑에 빠진 것은 노래처럼 '그럴 수밖에'없는 '그럴듯한 시작'임이 맞다. 노래 전반부에 설명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둘은 다른 때와는 달리 자기 자신을 느슨하게 대하고 있다. 아마도 이들은 이 날 스스로를  통제했던 의식을 조금은 내려놓고 무의식에 몸을 맡긴 채 길을 걷고 있었을 테다. 그리고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어떤 욕구가 서로에게 투사되었을 것이다.

놀랄 수밖에

 과연 이 커플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과연 이 커플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 픽사베이


이렇게 서로를 알아본 커플은 평소와는 다른 자신의 행동에 깜짝 놀란다. 노래 속 화자는 '눈이 마주친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을 들었지'라며 의식적인 행동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또한 '내가 미쳤었는지 밥이라도 함께 먹자고 불쑥 말해버리고'라며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한다. 상대방 역시 '배불렀는데'도 그 사람의 제안에 '그러자'며 또 밥을 먹고 만다.

화자는 계속해서 '평소에 내가 아닌 듯 거침없는 친구들이 절대로 믿지 못할 내 모습'이라며 자신의 행동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첫 만남의 순간을 회상한다. 이는 이 두 사람 모두 이날 유난히 무의식에 이끌렸다는 증거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며 통제할 수 있다. 낯선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반응을 예측하고 무의식적 욕구들을 통제하며 사회적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감정이나 욕구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드는 이런 무의식이 꿈이나 실수 등을 통해 나타난다고 했는데 일상에서도 의식이 느슨해지는 상황에서 불쑥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들로 표현된다. 노래 속 커플은 지금 무의식적 욕구의 지배를 강력히 받는 상태다. 때문에 자신도 몰랐던 어쩌면 보다 솔직한 모습으로 서로를 알아보게 된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를 이어가려면

과연 이 커플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아마도 처음에는 각자의 무의식적 욕구를 투사할 수 있는 상대방에게 깊이 빠져들 것이다. 이렇게 첫 눈에 빠져드는 커플들은 처음부터 깊은 친밀감과 일치감을 느낀다. 아주 오랫동안 간직해온 자신의 욕구들을 마음 놓고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매력을 느끼는 상대방이 결핍된 욕구들을 충족시켜 줄 것이라 기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욕구는 결코 완벽하게 충족되지 않는다. 게다가 상대방이 내가 바라왔던 부모 역할을 해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첫 눈에 반한 커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사실들을 깨닫게 되고, 오히려 내가 매력을 느꼈던 그 모습에서 나의 그림자를 만나거나 어린 시절 싫어했던 부모의 모습을 발견하고 실망하게 된다. 

아마도 이 노래 속 커플 역시 언젠간 이런 시기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이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은 무의식적 욕구의 투사에서 벗어나 의식적인 노력으로 완성해가야 한다는 점이다. 서로의 욕구들을 충족시켜주는 초기의 열정적인 사랑의 단계가 지나가면 커플들은 서로의 단점을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억압해왔던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하고 더욱 힘들어 한다. 이때부턴 의식의 도움이 필요하다. 상대방은 내가 갈망했던 부모가 아님을 인식하고 파트너의 싫은 점은 어쩌면 내가 감추고픈 나의 모습임을 인정하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우리 이야기니까'라는 가사 속 '누군가'는 심리학적으로  봤을 땐 무의식이다. 즉, 운명적인 사랑은 마음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다 예외'처럼 시작된 이 사랑이 지속되려면 무의식적 욕구를 의식으로 통합시켜 가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의식적인 노력과 헌신이 더해질 때 '첨부터' 정해진 것 같은 그런 만남이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김동률 '그럴 수밖에'
그날의 나는 잠이 덜 깨서
평소에 타던 버스를 놓쳤고
터벅터벅 길을 걷다가 왜 배는 고프고

에라 난 몰라 오늘은 그냥
일이고 뭐고 모두 귀찮다
그날따라 맘이 허해서
지나가는 사람들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왜 그때 거기 서 있었는지
하필 나를 돌아봤는지

모처럼 너는 외출을 했고
친구가 급히 자릴 떠났고
그날따라 날이 좋아서
생각 없이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을 뿐이지만

그도 그럴 수밖에 사랑이라는 건
그럴듯한 시작이 있지
우린 모를 수밖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우리 이야기이니까.

그렇게 눈이 마주친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을 들었지
순간 내가 미쳤었는지
밥이라도 함께 먹자고
불쑥 말해버리고 만 것에

너도 놀랄 수밖에
그러자 했으니
심지어 넌 배불렀는데
나도 놀랄 수밖에
평소에 내가 아닌 듯 거침없는
친구들이 절대로 믿지 못할 내 모습

그도 그럴 수밖에
사랑이라는 건
그 모든 게 다 예외니까
그래 그럴 수밖에
첨부터 우린 그렇게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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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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