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가장 빛난 한국 선수를 꼽으라면 역시 골키퍼 조현우와 중앙수비수 김영권을 꼽을 수 있다. 비록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대표팀의 수비라인을 책임진 두 선수는 대회 내내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세계적인 선수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활약을 펼쳤다. 한국이 월드컵 사상 최초로 피파랭킹 1위 독일을 격침시킨 '카잔의 기적'에도 두 선수의 활약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사실 월드컵 개막 전까지만 해도 두 선수를 주목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많은 전문가와 언론들은 한국의 주전 골키퍼로 대부분 A매치 출전경험이 더 많은 김승규를 예상했다. 김영권은 장현수와 함께 대표팀 수비불안의 원인으로 끊임없이 비난받는 선수였다.

하지만 두 선수는 이번 월드컵을 통하여 축구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할만큼 대단한 반전을 이뤄냈다. 출범 이후 끊임 없이 수비 불안을 지적받았던 신태용호였지만 정작 이번 대회에서 내준 실점은 3골에 불과했고 그나마 2골은 PK였다. 인플레이 상황에서 내준 것은 멕시코전 1골이 유일한데, 당시 한국은 앞선 상황에서 기성용이 멕시코 선수에게 당한 명백한 파울이 인정되지 않는 오심의 피해를 봤다. 결국 정상적인 필드플레이 과정에서 허용한 실점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중심에 김영권과 조현우의 몸을 날리는 호수비가 여러 차례 있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조현우는 이번 대회를 통하여 김병지-이운재의 뒤를 잇는 한국축구의 간판 골키퍼 계보를 이었다는 평가다. 김영권은 지난해 아시아 최종예선 당시 '팬 비하'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던 아픔을 속죄하며 '빛영권'으로 거듭났다. 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월드컵에서 희비가 엇갈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결국 실력과 열정을 증명해내면 팬들도 존중해준다는 것을 두 선수가 증명한 셈이다.

한국 축구 수비수와 골키퍼의 현실

하지만 두 선수의 활약에 묻혀져서는 안 될 부분도 있다. 김영권과 조현우는 자신의 역할을 120% 이상 해냈지만 냉정히 말하면 한국의 수비 자체가 그리 안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수비 포지션인 김영권이나 조현우가 눈에 많이 띄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대표팀의 수비가 그만큼 상대에게 아슬아슬한 실점 위기를 많이 허용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만큼 두 선수와 다른 동료 수비수들간의 실력차가 커보였다.

역시 수비수인 장현수와 김민우는 정반대로 이번 월드컵이 악몽으로 남은 선수들이다. 한국이 이번 대회 허용한 3실점 상황은 모두 이 두 선수와 관련이 되어 있었다. 이들은 부족한 대인방어 능력과 무리한 태클, 잘못된 상황판단 등 여러 가지 단점을 한꺼번에 드러내며 해설가들로부터도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다른 무대도 아니고 월드컵에서,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수비수라고 선발했던 선수들이 이런 평가를 들어야 한다는 것은 뼈아픈 부분이다.

한국축구는 지난 몇 년간 대형 수비수-골키퍼 부재라는 고질적인 약점에 시달리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이영표-김동진-차두리 등 베테랑들의 대표팀 은퇴, 한국축구의 황금세대로 꼽히는 '런던올림픽 세대'의 기량 정체 같은 악재들이 이어지며 세대교체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젊고 재능 있는 수비수들이 일찍 부와 명예에 안주하며 더 큰 무대로 도전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한다는 비판은 '중국화' 논란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 나선 한국대표팀은 2002년 이후 최초로 수비라인에 유럽파 선수가 한 명도 포함되지 못했다. 한때 유럽무대를 누비던 수많은 한국 선수들 중 1부리그에서 활약하는 수비수는 거의 사라진 상태다. 골키퍼는 아직 유럽파가 나오지 못했고 해외로 나가더라도 대부분 일본 J리그 정도가 고작이다. 현역 선수 중 그나마 유럽무대 경험을 갖춘 김진수, 홍정호, 윤석영, 박주호 같은 수비수들도 저마다 유럽에서의 경쟁에 밀려 잇달아 국내무대로 유턴했고, 러시아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대표팀에 거의 기여하지도 못했다.


러시아 월드컵 이후 '해외 이적설' 나오는 김영권과 조현우

월드컵 이외에는 국가대항전에서 세계적인 팀들을 꾸준히 상대할 기회가 부족한 한국축구로서는, 선수들 개개인이 소속팀에서 '경험의 질'을 더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자기보다 더 크고 강하며 지능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을 상대해본 경험이 부족하면, 장현수나 김민우처럼 큰 무대에서 위축되거나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이번 대회에서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한 일본만 해도 수비라인에 요시다 마야(사우스햄튼), 나카토모 유토(갈라타사라이), 사카이 히로키(마르세유) 등 유럽파가 대거 포진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일본은 꼭 빅리그나 빅클럽을 선호하지 않더라도 선수들이 한번쯤 유럽 무대에 도전하는 풍토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 있다.

한국축구 역시 수비수나 골키퍼 포지션에서도 더 많은 선수들이 유럽처럼 더 높은 수준의 리그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친 김영권은 터키 베식타스 영입설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FC서울의 전 감독으로 친숙한 지한파 세놀 귀네슈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터키의 명문팀이다.

조현우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병역 문제가 관건이다. 조현우는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와일드카드로 후보로 유력하게 부상했다. 8월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따낼 경우 병역혜택을 얻을 수 있다. 조현우는 러시아월드컵을 통하여 해외의 관심이 높아진 데다 나이도 아직 만 26세에 불과하다. 병역문제까지 해결한다면 골키퍼로서 최초로 유럽 1부리그 진출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또한 이미 어느 정도 완성형에 가까운 김영권이나 조현우 같은 성인 선수들보다 어린 선수들의 기본기 육성이 더 중요하다. 현재 유럽에서 유학 중인 유망한 수비수는 박이영(독일 장크트파울리), 서영재(독일 뒤스부르크) 등 일부에 불과하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축구는 수비수들의 기술 부족이라는 약점을 극명하게 드러냈는데 이는 어린 나이부터 제대로 된 기본기를 숙지하지 못하면 나이 들어서 고치기 어려운 대목이다. 현대축구에서는 수비수들의 발기술이 점점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중앙수비수의 빌드업과 롱패스 능력은 물론이고, 풀백은 공격과 수비를 끊임없이 넘나들어야 하며 전술적 비중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여 현재 한국축구에 세계적 기준에 부합할 정도의 '커맨더형 센터백'이나, '공격형 풀백'은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더 이상 선수 개개인의 노력이나 클럽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한국축구가 제도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전문 수비수를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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