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68시간까지 가능했던 주당 노동시간이 최고 52시간으로 단축됐다. 노동자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은 이번 달부터 새로운 개정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게 됐다.

예전처럼 과도한 노동시간을 투입할 필요가 없게 된 오늘날의 기술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서 고용주 측에 반드시 불리하다고 할 수 없는 법 개정이지만, 노동자들이 건강에 위협적인 중노동에서 조금은 더 벗어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개정이다. 노동환경이 영화 <구로아리랑> 시대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진전이다.

지금은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로 개칭된 구로공단을 배경으로 1989년 개봉된 <구로아리랑>은 주당 90시간 노동을 강제하던 참혹한 시절을 다룬다. 배우 옥소리·이경영·신은경이 봉제공장 노동자로 출연하고 최민식이 회사 끄나풀로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노동해방을 꿈꾸며 위장 취업한 법대생 현식(이경영 분)은 공공연히 자행되는 90시간 노동의 현실을 바꾸고자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고용주 및 국가권력에 맞서 투쟁한다.

 <구로 아리랑>.

<구로 아리랑>. ⓒ (주)화천공사


주 90시간 노동 현실 다룬 <구로아리랑>

연장 근무와 철야 근무에 더해 휴일 근무까지 강제하면서도, 회사는 약속한 보너스를 한없이 미뤘다. 처음부터 보너스 지급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격분한 노동자들이 즉흥적으로 공장 마당에 몰려나와 시위를 벌일 때였다. 즉석에서 노동자 대표로 추대된 현식은 임시 연단인 트럭 짐칸에 올라타, 붕대 감은 검지를 내밀며 이렇게 외쳤다.

"이 손가락은 일주일 90시간 일하는 노동 올림픽 신기록으로 생긴 영광의 상처입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다. 1980년 개정된 근로기준법 제42조 제1항 본문에서는,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1주일에 최고 48시간까지 노동하도록 했다.

그런데 제2항에서는 제1항 본문에 대한 예외를 규정했다. 48시간 변형시간 근로제였다. 4주간을 기준으로, 노동시간이 48시간 미만인 주간이 있었다면 다른 주에 48시간을 초과할 수 있도록 했다. 주문량이 적어서 45시간 노동한 주간이 있다면, 4주간 이내의 다른 주간에 51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했다.

제2항의 경우가 생기지 않는다면, 제1항 본문에 따라 주 48시간까지의 노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예외규정이 있었다. 제1항에 단서 규정이 있었다. 노사가 합의하면 1주에 12시간 더 연장할 수 있었다. 주 60시간 노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1주일'은 일요일을 뺀 나머지 6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됐다. 당시에는 1주일에 6일 근무했다. 실제로는 1개월에 이틀만 쉬는 경우도 많았지만, 법적으로는 그랬다. 1주일에 6일 일한다는 전제 하에 노동 주무부서는 1주일을 6일로 해석했다. 그래서 주 60시간은 6일간 60시간으로 해석됐다. 이런 상태에서, 일요일에 8시간 근무에다가 연장근무까지 하게 되면 주당 노동시간이 70시간을 넘기 마련이었다.

제1항 본문과 단서를 종합하면, 주당 노동 시간은 약 70시간까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다가 아니었다. 예외규정이 더 있었다. 제3항에서는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노동청장의 인가를 얻어 제1항의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한 뒤 "다만, 사태가 급박하여 인가를 얻을 여가가 없을 경우에는 사후에 지체 없이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사태가 급박' 할 때는 사전 승인 없이 제1항을 무시하고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제3항 규정은 헌법상의 계엄령 선포 규정을 연상시킨다. 국가권력이 노동자의 입장을 얼마나 경시했으며 사용자의 이윤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드러내는 대목이다. 제1항에 더해 제3항까지 적용하면, 주당 노동시간이 70시간을 훌쩍 넘게 된다. 현식의 말처럼 90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일주일에 90시간이면 하루 12.9시간이다. 이 시간은 출근 이후의 휴식 시간을 포함하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출근해 작업 개시를 기다리는 동안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간들까지 포함하면, 하루 14시간 이상 회사에 매이게 된다.

회사에서는 설령 누워 있을지라도 긴장감이 유지되므로, 14시간 이상 회사에 얽매이게 되면 웬만한 사람은 건강을 유지하기 힘들다. 거기에 더해 퇴근도 못하고 기계 옆에 신문지 깔아놓고 쪽잠 자면서 일할 경우에는 건강 조건이 그야말로 최악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1980년 근로기준법은 6월항쟁 5개월 뒤인 1987년 11월 28일과 2년 뒤인 1989년 3월 29일 각각 개정됐다. 1987년·1989년 개정 때 없어진 것은 제42조 제2항의 48시간 변형시간 근로제이고 제1항·제3항은 그대로 유지됐다. 약간 나아지기는 했지만, 90시간 가까운 중노동의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구로공단.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의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찍은 사진.

구로공단.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의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화장실 가겠다는 여성 노동자에게 "그냥 싸!"

지금 상황은 <구로아리랑> 시절인 1980년대보다는 훨씬 낫다. 7월부터 시행된 개정 근로기준법에서는 휴일까지 포함해 1주일에 52시간까지만 노동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종전보다 나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심각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노동 강도가 오히려 세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달력 속의 월급날을 쳐다보는 노동자의 기분과 '사장님'의 기분이 다를 수밖에 없듯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노동시간 단축을 대하는 노동자의 태도와 사용자의 태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임금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시간 단축을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구로아리랑>에서 회사 측 끄나풀인 전임 반장(이기열 분)과 후임 반장 진석(최민식 분)이 작업 시간을 대하는 태도는 고용주들의 일반적인 태도를 잘 반영한다. 전·현직 반장들의 입에서 툭하면 나오는 말은 "일이나 열심히 해!", "일 안 하고 뭐하고 있어?", "일하면서 내 말 들어!" 등등이다. 주당 90시간이나 노동을 강제하면서도 그 90시간을 더욱 '알차게' 쓰려고 하루 종일 고민하는 사용자의 태도를 반영하는 장면들이다.

회사 입장을 대변하는 반장들은 노동자들이 잠시라도 '딴짓'을 할까봐, 야근 중에 전기가 꺼지는 순간에도 직원 단속부터 고민한다. 전기를 복구시킬 생각부터 안 하고, 직원들을 단속할 생각부터 하는 것이다. 전기가 다시 켜지면 한 순간의 쉼도 없이 작업을 즉각 재개하기 위해서다.

또 여성 노동자가 작업 중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도 금지한다. 점심시간 때 식사뿐 아니라 용변도 함께 해결하고 들어오라는 게 회사의 야만적인 지침이다. 이 지침을 어기고 노동자가 화장실에 가려 하자 반장은 "그냥 싸!"라고 고함쳤다가, 용변이 아니라 '생리' 때문임을 알고 할 수 없이 보내준다.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찍은 사진.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 그럼에도 남는 우려

물론 오늘날의 노동 환경은 그때와 다르지만, 노동시간을 대하는 고용주들의 관점까지 획기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노동자들이 작업 중에 잠시 한숨을 돌리는 것도 일부 고용주의 눈에는 '딴짓'으로 비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고용주들은 노동 강도 강화를 통해 노동시간 감축에 맞설 수도 있다. 그래서 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더 높은 스트레스나 노동 강도에 시달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노동 강도가 높다는 점은, 이에 관한 학계 논문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한양대·연세대·서울대·부산대·강원대 의과학대에 속한 학자들인 김인아·고상백·김정수·강동묵·손미아·김용규·송재철이 공동으로 수행한 '일부 조선업 노동자의 근골격계 증상과 스트레스 및 노동강도의 관련성'도 그런 논문들 중 하나다.

조선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는, 고용주가 과중한 노동시간을 강제하지 않더라도 노동자들이 얼마든지 중노동과 유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이 언급된다. 노동시간이 줄더라도 스트레스 등의 요인으로 근골격계 질환까지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바뀌거나 생산조직이 개편되거나 자동생산방식이 도입되는 등의 변화들이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논문은 말한다.

"이와 같은 변화는 노동자들의 육체적 하중에 변화를 유발하고 근골격 계통에 무리를 줄 수 있다. (중략) 특히 정신적인 노동 강도의 증가와 직무요구도의 증가가 근육에 긴장을 유발함으로써 근육의 피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 2004년에 발행된 <대한산업의학학회지> 제16권 제4호 중에서.

앞으로도 일부 고용주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노동 강도를 높임으로써 근로시간 단축을 무색케 할 수도 있다.

<구로아리랑>에서는, 노동자들이 웅성대고 집결할 움직임만 보여도 경찰 병력이 회사 정문 앞에 나타나는 장면을 여러 번 보여줬다. 국가권력이 민간기업의 3분 대기조처럼 봉사하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영화 '구로아리랑'의 한 장면

영화 '구로아리랑'의 한 장면 ⓒ 박종원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2014년 5월 노동투쟁 중에 세상을 떠난 삼성전자서비스 경남 양산센터 고 염호석 님의 시신을 노동자들한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은 구사대가 아니었다. 약 300명의 경찰 병력이었다. 노동자들이 시신을 무기로 정치투쟁을 강화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측의 염려를 덜어주고자 경찰이 사병 역할을 해준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무너진 것은 재벌체제를 뒷받침하는 보수적 정치권력이지 재벌체제 그 자체가 아니다. 껍데기인 유신체제 잔존세력은 갔지만, 그들에게 돈을 대주던 알맹이는 그대로 남아 있다.

1967년 신동엽의 시에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라는 대목이 있다. 지금의 재벌들은 신동엽이 말한 '알맹이'가 마치 자신들인 것처럼 여전히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권력이 국민과 재벌, 노동자와 재벌 사이에서 중립자 입장을 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노동시간의 단축뿐 아니라 노동 강도의 감소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노동시간뿐 아니라 노동 강도도 계량화하고 이를 법적으로 통제하는 방안을 고민할 과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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