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오 루시!> 메인포스터 영화 <오 루시!> 메인포스터

▲ 영화 <오 루시!> 메인포스터영화 <오 루시!> 메인포스터ⓒ 엣나인필름


01.

최근 일본에서는 젊은 세대의 높은 자살률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 후생성의 발표에 따르면, 15~34세의 젊은 세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2017년을 기준으로 한해 2만 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는 선진국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일본 후생노동성 – 자살대책 백서 참조)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마음이 빈곤한 까닭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의 경제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과거에 비해 경제적인 문제가 해소되고 있는 것과 달리, 오랜 시간 위축되어 온 심리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특히, 1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다양한 이유로 사회적 고립을 겪게 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02.

표면적으로 멜로/로맨스 장르를 표방하고 있는 히라야나기 아츠코 감독의 영화 <오 루시!>는 그런 일본 사회의 심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표현해내는 작품이다. 친구도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중년 여성 세츠코(테라지마 시노부 역)가 조카의 권유로 등록한 영어 학원에서 강사 존(조쉬 하트넷 역)에게 반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단순히 사랑의 과정에 있는 남녀의 모습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 작품에 조금 더 깊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영화의 시작과 함께 철로로 뛰어드는 이름 모를 남자를 조명하는 것과 타케시(야쿠쇼 코지 역)와 함께 첫 수업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육교 뒤로 들려오는 또 하나의 자살 사건을 조명하는 것.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세츠코의 모습이 모두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까닭을 잘 이해해야 한다.

영화 <오 루시!> 스틸컷 영화 <오 루시!> 스틸컷

▲ 영화 <오 루시!> 스틸컷영화 <오 루시!> 스틸컷ⓒ 엣나인필름


03.

영화 속 세츠코는 이미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회사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유일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조카인 미카(쿠츠나 시오리 역)뿐. 하지만 조카가 연락해 오는 것도 어떤 부탁이 있을 때뿐이다. 그렇다고 혼자인 삶이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아니, 만족을 이야기하기 전에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다. 집은 쓰레기와 잡동사니들로 될 대로 쌓아 올려져 자신이 겨우 은신할 곳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가 그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몇 년 만에 찾아온 언니조차 집에 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에는 두 사람의 일그러진 관계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자신의 집이 보여주는 현재 상태가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한 부분이 큰 이유가 된다.

심리적으로 방어적인 상태가 되어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 역시 그녀가 안고 있는 문제다. 출근길에 눈 앞에서 누군가가 지하철을 향해 뛰어드는데도 동요하지 않는 모습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다.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곪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퇴직을 앞둔 동료의 송별회를 찾아가 훼방을 놓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행위에는 자신도 결국 그렇게 되고 말지 모른다는 불안감 역시 함께 작용한다. 동료들이 뒤에서는 자신을 비웃는지도 모르고 퇴직을 축하 받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불쌍하다는 느낌보다는 자신의 외로움을 투영했으리라.

04.

어쩌면 그녀가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심리를 갖게 된 것에는 그녀의 언니인 아야코(미나미 카호 역)가 큰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전 남자친구를 언니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이, 다르게 표현하면 현재의 형부가 자신의 전 남자친구라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아직까지도 큰 사건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존에게 갖고 있던 호감이 그를 가지고 말겠다는 욕심으로 변하는 모습 또한 한편에는 조카의 남자를 빼앗는 것으로 과거를 보상을 받겠다는 의중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영화 <오 루시!> 스틸컷 영화 <오 루시!> 스틸컷

▲ 영화 <오 루시!> 스틸컷영화 <오 루시!> 스틸컷ⓒ 엣나인필름


05.

조카가 소개시켜 준 학원이 일반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세츠코가 그곳에서 만난 영어 강사의 품에 안겨 전에 없던 뜨거움을 느끼는 것에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이것을 벌써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타인의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가슴이 벅차 오른다. 그리고 관객들의 판단과는 무관하게 세츠코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느낀다. 아니 느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사랑이라 느끼는 곳에 모든 것을 주려고 한다. 뻔히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조카의 갑작스런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미국까지 찾아가 존의 밀린 집세를 덜컥 내어주는 그녀. 자신을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타케시에게도 그 사건 직후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고자 한다. 그녀의 행위는 타인에게 나의 것을 나누어 주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일단 사랑이라고 생각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저 자신을 밀어 넣는 행위. 영화의 초반부에서 봤던, 낯선 청년이 지하철 선로로 뛰어드는 그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녀가 왜곡된 사랑을 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는 또 있다. 감정의 대상인 존이 어떠한지는 안중에도 없이 그를 따라 자신의 팔에 '愛'라는 문신을 새겨 넣는 행위. 모든 것이 끝난 뒤에도 마지막까지 세츠코는 그에게서 받은 탁구공을 잊지 못한다. 과연 이것을 진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06.

이 영화에서 시대와 사회의 외로움이 세츠코에게만 투영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에게서 방치된 채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외국인 강사를 따라 미국까지 도망가는 미카의 사랑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랑의 끝이 좋지 못할 것이라는 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모든 사실을 알고 존의 곁을 떠났으면서 자신이 묵는 여관의 엽서를 보내는 것과 같은 행위 역시 일종의 미련이 아닌가.

결국 미카와 세츠코는 존을 두고 서로를 한번씩 이용한 셈이다. 미국으로 도피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모를 이용한 조카도. 조카를 찾겠다는 명목으로 미국으로 향한 이모도. 서로의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한 행위에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한 – 어쩌면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이모의 배신을 이기지 못한 – 조카의 투신은 안타까운 결과를 이끌어내고 말았지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던 이들의 안타까운 결과라고 보여질 수밖에 없다. 깊은 외로움 속에서 몸부림치던 이들이 붙잡은 얕은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영화 <오 루시!> 스틸컷 영화 <오 루시!> 스틸컷

▲ 영화 <오 루시!> 스틸컷영화 <오 루시!> 스틸컷ⓒ 엣나인필름


07.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혼자다. 세츠코의 언니인 아야코는 남편이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영화 속에서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 남는 사랑은 설익은 사랑과 실패한 사랑. 왜곡된 사랑과 누군가의 아픔을 낳는 사랑뿐이다. 모든 사랑이 외로움의 근거이자, 증명이다.

물론 홀로 남는다고 해서 모두가 왜곡된 사랑에 묶여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이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전처의 죽음으로 인해 홀로 살아가는 타케시만큼은 예외이기 때문이다. 그는 타인에게 다가가는 법을 알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고, 타인의 상처를 위로할 줄 안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타인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물인 셈이다. 미카의 사랑이나, 존의 사랑, 세츠코의 사랑과는 다르다.

08.

이 영화가 단순히 로맨스 장르로 알려지는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감독의 첫 번째 연출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에는 홀로 고립된 이들에 대한 상당한 고민이 담겨있다. 그것을 표현해 내는 방법 또한 매력적이다. 표면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이끌어내면서 무게 있는 주제를 담아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며 작품을 관람해 보기를, 영화가 끝나고 나서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해 보기를 권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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