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글랜드 이즈 마인 >에서 모리세이 역을 맡은 존 로던은 영화 < 덩케르크 >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 잉글랜드 이즈 마인 >에서 모리세이 역을 맡은 존 로던은 영화 < 덩케르크 >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 싸이더스


천재는 고독하다. 범인(凡人)이 상상하지 않는 야망과 꿈에 불타며 손꼽을 수 없는 천 번 만 번의 담금질로 자신을 몰아붙인다. 노동 계급의 거친 문화가 지배하던 영국 맨체스터에서 오스카 와일드와 뉴욕 돌스, 모타운 걸그룹에  심취해 칩거하던 어린 소년 스티븐 패트릭 모리세이가 꼭 그런 사람이었다. 성난 바다처럼 휘몰아치는 맹렬한 분노와 차분한 사색을 품어가던 그는 삶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춰가는 과정에서 원치 않는 모순에 괴로워하고, 무덤덤해져 간다.

단단한 껍질 속에서 언제 올 지 모르는 때를 기다리던 모리세이는 결국 그 꿈을 이뤘다. 지금의 그는 영국 인디 문화의 상징이자 거대한 록스타다. 전자음과 낭만론으로 가득했던 1980년대, 음악계에 수수한 기타 팝을 앞세웠던 스미스(The Smith)의 프런트맨으로 세상에 모습을 알린 그는 매 무대마다 바지 뒷주머니에 몇 다발의 수선화를 꽂고 중저음의 떨리는 목소리로 세상을 홀렸다. 밴드 해산 후에는 솔로로 독립하였고 할리우드 대저택에서 패션, 음악, 문학 등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고 산다.

스미스 시절의 모리세이는 시니컬하고 거친 언어로 무기력한 청춘을 노래한 혁명가였다. 그의 음울한 노랫말은 제도 권력을 조롱하고 내일이 없던 제임스 딘의 반항을 계승했으며 모호하고 독특했다.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 광풍이 휩쓸고 간 영국 청년들의 숭배는 물론 2000년대 들어서는 중남미 젊은이들까지 그의 구절을 성경 글귀처럼 여긴다.

"옆구리에 가시가 박힌 듯 고민하는 소년의 증오 뒤편엔 
폭력적인 사랑의 갈망이 놓여있다네"
-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 中 -

 '해 저무는 나라의 계관시인'이라는 칭호의 모리세이의 유년기는 수많은 책과 음반, 글로 채워졌다.

'해 저무는 나라의 계관시인'이라는 칭호의 모리세이의 유년기는 수많은 책과 음반, 글로 채워졌다. ⓒ 싸이더스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이 독특한 건 모리세이를 다루면서 스미스의 신화와 모리세이의 성공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세상이 미처 그를 알아채지 못했던, 아니 알아채지는 것에 그리 관심이 없던 무명의 스티븐 패트릭 모리세이를 조명한다. 음악 잡지 < NME >의 독자 기고란에 날 선 문장을 기고하고, 방 가득 빼곡히 채워진 책들과 LP판에 탐독하며 일상의 모든 순간을 다듬어지지 않은 언어로 기록하는 천재의 어린 페르소나를 <덩케르크>의 배우 존 로던이 완벽히 재현해낸다.

담담한 그의 유년기는 분명 반짝이고 비범하지만 빛나기에는 세상이 만만치 않다.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취직한 세무사 일은 너무도 평범하고 지루하다. 내성적인 성격과 부족한 사회성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데 종종 걸림돌이 된다. 우연히 만난 아티스트 린더가 그를 알아봐 주기 전까지, 기타리스트 빌리가 함께 밴드를 하자고 말하기 전까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스미스의 또 다른 전설인 조니 마(Johnny Marr)가 그의 집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모리세이는 평범의 그림자에 몸을 숨겨왔다.

<잉글랜드 이즈 마인>은 모리세이의 커리어와 그의 성격을 미리 숙지하지 않은 이들에게까지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그 긴 고뇌와 몸짓을 통해 데뷔한 후 써 내려간 가사나 음악, 여러 사회적 발언에 익숙하다면 이 '천재의 차분한 용틀임'이 사랑스럽겠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면야 그저 막연한 꿈을 향해 나름 몸부림치는 괴짜의 고군분투 이상으로 다가오긴 어렵다. 탐독하며 또 좌절하는 기인(技人)의 어린 시절을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로 넓혀놓은 격이다.

"왜 나는 나의 삶에서
내가 살아도 죽어도 상관하지 않을 사람들에게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 걸까?"
- Heaven Know I'm Miserable Now 中 -

 영화 < 잉글랜드 이즈 마인 >은 밴드 더 스미스를 결성하기 이전의 모리세이를 다룬다.

영화 < 잉글랜드 이즈 마인 >은 밴드 더 스미스를 결성하기 이전의 모리세이를 다룬다. ⓒ 싸이더스


마크 길 감독의 모리세이는 연약하고 조용하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유명한' 모리세이는 음울했지만 오만했으며 거침없었고 한없이 낭만적이다가도 지독히 냉소적이다. 영화는 이런 간극을 잘 메우지 못한다. '스미스의 모리세이'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이라기엔 감독의 시선과 현실의 시선이 꽤 다르다. 미디어의 조명이 멀게만 느껴지고 숭배받지 않던 시절의 모리세이는 낯설다. 화려한 날개로 나는 나비의 번데기 시절을 보는 듯하다.

결국 요지는 훗날 영국 인디 문화의 화신의 지위에 오름과 동시에 '해 저무는 나라의 계관시인'이라는 거창한 호칭까지 얻은 그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그도 숱한 지식과 취향의 단련과 거듭되는 좌절과 사회의 벽 앞에 셀 수 없이 자신을 다잡아가면서 세상에 자기 이름으로 된 한 마디를 제대로 남길 수 있었다.

"스티븐 패트릭 모리세이, 넌 뭐가 될래?"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던 어린 모리세이. 어두운 무명 속에서도 그는 끝내 세상이 알아야 할 이름이었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현실의 굴레 속에도 묵묵히 정진해야만 했다. 모리세이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런 길을 걸었으며, 마침내 그렇게 되었다. 천재는 고독하다. 아니, 고독해야만 한다.

"이 멋진 차에서
이 멋진 남자는
조수석 시트가 이렇게 부드러운데도 
왜 인생의 복잡한 것들을 고민해야만 하나"
- This Charming Man 中 -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도헌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https://brunch.co.kr/@zenerkrepresent/208)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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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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