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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에 눈이 확 맑아진다. 살맛나는 사진 속 조형 공간이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본다. 다섯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여는 내 단층 주택은 빌라들에 둘러싸여 있다. 더 멀리 대로변을 훑어봐도 사진 속 공간처럼 시각적 숨구멍을 틔우는 건물이란 없다. <AT THE MUSEUM>은 삶터의 부가가치를 높인 철학적 건축물 열 곳을 소개한다. 일명 <미술관 읽기>다.

AT THE MUSEUM - 미술관 읽기 : 건축과 예술, 두 절대적 세계가 만나 이룬 인문학 기행
 AT THE MUSEUM - 미술관 읽기 : 건축과 예술, 두 절대적 세계가 만나 이룬 인문학 기행
ⓒ HEREN(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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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철학적이란 세상에 대해 유기적 통합을 꾀하는 일체의 움직임이다. 그러니 철학적 건물은 세상의 다리가 되는 인공물이다. 나(굴러온 돌)의 세계와 너(박힌 돌)의 세계를 잇는 조형 언어인 셈이다. <AT THE MUSEUM>의 조형 언어 열 곳(전시 공간 아홉 곳과 수도원 한 곳)이 다 신축은 아니다. 세 곳은 리노베이션이다. 신축이든 리노베이션이든 그 건물들은 어우러짐의 살맛을 빚으며 지역의 중심으로 우뚝하다.

이태리 밀라노에 위치한 폰타치오네 프라다(Fontazione Prada)는 쇠락한 공단에 방치된 공장의 변신이다. "주어진 공간에 대한 바른 해석"으로 수리하고 확장한 공간이다. 새로움과 오래됨, 수평과 수직, 넓은 것과 좁은 것, 투명한 것과 가시적인 것 등이 조화된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어떤 현상이다." 사양 산업으로 죽어가던 지역을 명소로 탈바꿈시킨 건축 예술을 한국GM이 떠난 군산공장에서도 보고프다.

독일 베를린의 함부르크 반호프 뮤지엄은 과거 기차역 건물의 거대함을 살려 개인이 소장하기 어려운 아주 크거나 끔찍한 양질의 미술 컬렉션을 전시한다. 긴장, 공포, 고통 등을 환기시키는 역사적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오래된 미래'를 점치게 한다. 그래서 정식 명칭이 '현재를 위한 뮤지엄'이다. 이 땅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건'과는 결이 다른 역사의식 제고다. 백남준의 컬렉션도 이곳에 있다.

AT THE MUSEUM - 미술관 읽기 : 건축과 예술, 두 절대적 세계가 만나 이룬 인문학 기행 속 일부
 AT THE MUSEUM - 미술관 읽기 : 건축과 예술, 두 절대적 세계가 만나 이룬 인문학 기행 속 일부
ⓒ HEREN(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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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볼로냐 미술관은 화가 조르지오 모란디가 태어나 죽은 집에 연 모란디 뮤지엄이다. 모란디는 평생 동안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동일한 대상을 아주 작은 그림으로 재현했다. 그 연속적이고도 지난한 수련 과정에서 있을 법한 외로움과 사투의 헌신적 삶을 추모하는 기념비적 장소인 셈이다. 관람객은 모란디가 작업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그의 작품을 보며 "그가 포착한 사물들과 풍경과 연관된 더 깊은 차원의 세계"를 추체험하도록 초대받은 셈이다. 본다는 게 뭔지를 헤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지역 경관에 적극적으로 기여한 조형 언어도 있다. 스위스 베른에 있는 '파울 클레 센터'다. 1977년 유족이 기증한 클레의 작품에다 세계 각지로 흩어진 작품을 수집해 4000여 점을 소장한 뮤지엄이다.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클레 예술세계의 복잡성과 다양함을 알리면서도 사방의 장애 요소들, 즉 고속도로와 공동묘지와 농장지대를 품는 세 개의 언덕을 빚어 주변 환경과 하나 되는 굴곡의 미학을 선보인다.

인간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건드리는 건축 공간도 있다. 그냥 들어섰는데도 절로 집중하게 되는 스위스 어린이 교통 박물관이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탁 트인 전망 가운데에 있게 한 프랑스 리옹의 생 마리 드 라투레트 수도원 필로티도 "아무것도 숨길 것 없는 세상에서 그 무엇도 말할 필요 없다는 주장"을 침묵과 함께 널리 퍼뜨린다. 내 집 주변 빌라들의 필로티와 격이 다른, 자연과 인공물의 역설적 만남이다.

철학적 조형 언어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연계되어 있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그걸 마주하는 경험은 일상에 허덕이다 잊거나 잃은 인간적 삶을 돌아보게 한다. 단 한 번의 자극으로 내 일상이 갑자기 변하진 않을지라도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며 지냄은 그 무엇을 향한 시작이 될 수 있다. <AT THE MUSEUM>이 휴식을 넘어 영혼 정화까지 넘보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AT THE MUSEUM'(제이티비씨플러스 엠앤비, 2018.)



At the Museum 미술관 읽기 - 건축과 예술, 두 절대적 세계가 만나 이룬 인문학 기행

유병서 지음, 안드레아스 메이슈너 사진, JTBCPLUS(제이티비씨플러스)(2018)


태그:#AT THE MUSEUM, #미술관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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