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대전' 기간중 6월 28일 개최된 '토크 콘서트'의 13번째 손님으로 고인범 배우가 초대 되었다. 그는 "내게 연극이란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재미난 일"이라며 자신이 경험한 재미난 일화 등을 곁들여 토크 콘서트를 시종일관 유쾌하고 활기차게 이끌어 갔다. 사회는 대전지역 연극배우 최승완씨가 진행하였다.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대전' 기간중 6월 28일 개최된 '토크 콘서트'의 13번째 손님으로 고인범 배우가 초대 되었다. 그는 "내게 연극이란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재미난 일"이라며 자신이 경험한 재미난 일화 등을 곁들여 토크 콘서트를 시종일관 유쾌하고 활기차게 이끌어 갔다. 사회는 대전지역 연극배우 최승완씨가 진행하였다.ⓒ 조우성


대전에서 개최되었던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대전'(6월 15일~7월 2일)의 중점행사로 실시되었던 토크 콘서트의 13번째(총 16회) 손님으로 '맛깔 나는 경상도 사투리', '화통한 웃음'으로 유명한 고인범 배우가 지난 6월 28일 초대되었다. 사회는 대전지역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최승완씨가 맡아 진행했다.

배우 고인범은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경상도 머슴아'다. 그는 대학교에서 매직으로 쓴 '극예술연구회' 동아리 모집 포스터를 보고 "그냥 이거다 싶어" 연극동아리에 들어갔다. 그가 대학 졸업 후 연극을 직업으로 삼는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자슥아, 안된다"며 반대했다. 일주일 동안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온 아버지가 하루는 그 앞에 흑백사진 하나를 내 보였다.

"보니, 아버지가 젊을 때 고깔 쓰고 풍물 치던 모습의 흑백사진이에요. 아버지께서 '사실 나도 예술을 했었는데, 니도 마 자슥아... 아이고, 해라 해라. 자슥아!' 그러시면서 포기하시데요."

 그는 "지식백과에 보면 저 출연횟수 어마어마합니다. 한 8-90편 됩니다."며 "칼에 찔려 죽고, 맞아 죽고, 약물 먹고 죽고, 바늘에 찔려 죽고, 술 먹고 미끄러져 돌에 받쳐 뒈지고. 횟수가 엄청납니다. 80편 이런 거는 최수종 이런 사람은 생각지도 못하는 숫자요. 참말로."라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는 "지식백과에 보면 저 출연횟수 어마어마합니다. 한 8-90편 됩니다."며 "칼에 찔려 죽고, 맞아 죽고, 약물 먹고 죽고, 바늘에 찔려 죽고, 술 먹고 미끄러져 돌에 받쳐 뒈지고. 횟수가 엄청납니다. 80편 이런 거는 최수종 이런 사람은 생각지도 못하는 숫자요. 참말로."라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조우성


3년 전 연극 보았던 김운경 작가, 드라마 <황금사과> 형사로 픽업 

그는 1979년 연기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연극을 한 지 40년째다. 그는 2013년 부산연극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연극제에 회장이 연기자로 출연하면 심사위원들의 입장이 곤란해 질까봐 3~4년 정도 일부러 무대활동을 쉬기도 했다. 그는 늦은 나이에 연극영화과에 편입해 2002년 4학년때 3학년 후배들의 졸업작품인 <변소>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때 김운경 작가가 그 연극을 보았다.

"3년 후에 김운경 작가가 부산에 내려와 저를 불러요. '내가 3년 전에 네 연극을 보니 힘과 카리스마도 있고, 뭔가 하나 할 것 같아 내가 기억을 해두었다. 드라마 <황금사과>에서 너를 형사로 생각하고 썼다' 이렇게 말하는데, 진짜 가슴이 뭉클했어요."

드라마 <황금사과> 무대가 밀양, 청송, 안동 등 경상도 지역이라 그의 사투리 연기는 빛을 발했다. 드라마가 끝난 후 그는 "연기를 겁나 잘했으니까 PD들한테 전화가 막 오겠지. 난 이제 탄탄대로야"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헌데, 전화가 한통도 안 와요. 냉정하데요. 연기를 잘했거든요. '뭐 전화번호가 잘못된 거 아닌가 해서 제가 마누라한테 전화 좀 걸어봐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대충 다 잊어 먹을 때쯤에 전화가 한통 왔습니다. 그게 <대조영>이라는 드라마였습니다."

128회 분량의 사극드라마 <대조영>.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겨우 5회분에서 너무 일찍 죽음을 맞이한다. 

"야, 정말... 촬영장에 가면 정말 괴로운 게 이겁니다. 최수종, 이덕화 등 하늘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야, 다음에 어떻게 될까? 내가 10회에 중국을 가나? 당나라를 가나? 한 30회에 어찌되나, 60회에 어찌되나' 이런 이야기를 나눠요. 저는 5회에 뒈지는데... 흐흐.

사극은 시청자들 관심을 모으기 위해서 초기에 전쟁신을 미리 많이 찍어 놔요. 온 천지가 전쟁입니다. 5회에 뒈지는 놈이 그 전쟁통에서 3개월을 보냈는데, 제가 출연료보다 야외수당이 더 많았다니까요. 저녁 되면 시작하는 첫대사가 '돌격하라~ 후퇴하지 마라~ 물러나지 마라~' 새벽 4~5시 되면 '후퇴하라~' 이러고 있어요."

 그는 “석유가 많이 나오는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문화라는게 있어야만 선진국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며 “문화가 있는 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나라입니다. 문화예술은 우리가 지켜야 하고, 관객들이 지켜줘야 하는 의무라고 생각합니다.”고 ‘연극 사랑’을 부탁했다.

그는 “석유가 많이 나오는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문화라는게 있어야만 선진국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며 “문화가 있는 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나라입니다. 문화예술은 우리가 지켜야 하고, 관객들이 지켜줘야 하는 의무라고 생각합니다.”고 ‘연극 사랑’을 부탁했다.ⓒ 조우성


중국의 4성은 "만리장성, 자금성... 아, 2개가 뭘까...?"

그는 2008년에 상영된 KBS 사극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유창한 중국어로 명나라 사신 '황엄' 역을 연기하여 방청객들과 제작진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PD가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그 역할을 부탁했는데, 그 분이 '중국어로는 못한다'며 '그냥 한국말로 하자'고 했데요. PD가 '그건 안된다'며 저에게 연락을 한 거예요. PD가 저를 보자마자 '중국에 4성(중국어의 4성)이 있는 거 아시죠' 물어요. 그래서 자신있게 '만리장성, 자금성, 아... 2개가 뭐지?' 그러고 있는데, PD가 볼펜을 던져버려요. 그러면서 '진짜 너무 하십니다' 그래요.

이 PD가 우리가 잘 아는 드라마 <미생>의 연출자인데, 보통 고집이 아닙니다. 부산 내려가야 하는데, 집에 안 보내줍니다. '기차 시간 몇 시입니까' 물어보지도 않아요. 10시 반이면 기차 시간 떨어지는데, 11시까지 잡아놓아요."

그는 하루에 16시간씩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신경성 위장염으로 살이 7~8kg이나 빠지기도 했다.

"드라마 <황금사과> 끝나고는 전화가 안오더니, 이때는 전화가 오데요. 그 뒤에 중국어 하는 역을 5~6번 했어요. 배우 추자현씨가 중국에서 드라마 할 적에 중국어를 다 외웠다고 하잖아요. 그 정도까지는 못해도 저도 중국어를 아예 외웠어요. 4성조 때문에 중국어가 참 어려웠어요."

 그는 부산연극협회 회장(2013)을 역임하였고, 현재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과 ‘부산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예산이 120~130억 정도 되는 행사인데, 국제연극제는 7억 정도의 예산으로 국제연극제를 집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연극협회 회장(2013)을 역임하였고, 현재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과 ‘부산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예산이 120~130억 정도 되는 행사인데, 국제연극제는 7억 정도의 예산으로 국제연극제를 집행한다”고 말했다.ⓒ 조우성


연극과 영화는 동료들과 함께 시작을 하고 함께 마쳤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렇지가 않았다. 

"영화 촬영장에 가면 밥차를 불러 식사를 같이 해요. 마칠 때도 같이 마치고. 드라마는 그렇지 않아요. 제가 처음 드라마 <황금사과>를 촬영할 적에 아침 11시에 제 촬영을 마치고는 오후 3시까지 기다렸어요. 사람들이 저보고 '왜 집에 안가냐'고 그래요. '마치면 가야죠' 말했더니 '아직 안 마쳤는가요' 물어요. '아니, 제 꺼는 마쳤는데, 다른 사람들이 마쳐야 되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했더니 '에이, 다들 집에 갔어요' 그래요." 

그는 고 김주혁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투혼>에서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연기했다. '투혼'에서 심판의 잘못된 판정에 항의를 하는 표시로 배치기를 하다 벤치로 돌아가면서 투수에게 '엄지 척!'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심판과 배치기 하고 싸울 때, 감독이 '그냥 갈랍니까' 묻데요. '그냥 안 가면 어쩌라구. 이쪽 문으로 나갈까, 아님 저쪽 문으로 나갈까' 그러니까 '가면서 뒤돌아 서서 투수에게 엄지 척! 하고 가시죠' 그래요. 감독말대로 가다가 뒤돌아 서서 '엄지 척!'을 했는데, '와, 그거 좋다'카데요."

"집사람 모유도 안나와, 분유마저 살 돈 없어 눈물 짓기도"

성격이 쾌활하고 씩씩한 그였지만 사는 게 힘들어 눈물 지을 때도 있었다.

"아이가 한두 살 때 출연료 15만 원을 받으면 제가 10만 원으로 아이 분유를 사놔요. 집사람이 먹는 게 제대로 없으니까, 모유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한편 출연료를 받으면 미리 분유를 사두었습니다. 말 못하는 아기는 먹여야 하니까. 이게 다 떨어졌는데, 들어오는 수입이 없으니까 정말 환장하겠데요. 친구들 보면 처자식에게 잘 하는데, 저는 아기 분유통 이거 구입을 못해서 출연료 언제 줄까 걱정하고 있으니... 제 가슴이 찢어지더라구요."

벽돌을 날라 소극장을 지었더니, 모함을 당해 빼앗기는 일도 당했다.

"누가 소극장을 지어준다고 해서 제가 벽돌 3000장을 나르고, 일주일 내내 시멘트를 섞어서 40평짜리 소극장을 제가 만들었어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어요. 그렇게 만들어 놨는데, 한 1년 지나 극장이 잘 되니까 저를 모함해서 극장을 뺏어갔어요." 

그는 어느 '소극장'의 극장장으로 취직 해 월급 60만 원을 받았다. 좀 안정된 생활을 하는가 싶더니 5년 후 해임통보를 받게 된다.

"매달 수입이 생겨 좋았었는데... 이걸 집사람에게 말을 못하겠어요. 광안리 바닷가에서 공중전화로 '여보, 광안리 바닷가로 좀 나와라'고 하니 '뭘 나오라고 해쌌노. 집에 들어온나' 그래요. '아이다. 오늘 한번 나와 봐라'고 해서 둘이 맥주 한잔 하면서 솔직히 털어 놓았죠. 마누라가 '여보, 괜찮다. 우리집은 평생 IMF였는데, 또 어떻게 살아가겠지...' 이러는 거예요. 감동이었죠. 맥주 500cc 바로 원샷 했잖아요."

 그는 토크 콘서트가 끝난 후 방청객들과 사진 찍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멀리 충남 서산에서 자신이 나오는 행사를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 온 '극단 서산'의 정수정 대표, 단원 정시연씨와 함께 사진을 촬영하였다.

그는 토크 콘서트가 끝난 후 방청객들과 사진 찍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멀리 충남 서산에서 자신이 나오는 행사를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 온 '극단 서산'의 정수정 대표, 단원 정시연씨와 함께 사진을 촬영하였다.ⓒ 조우성


"나에게 연극은 재미다, 지역을 떠나지 마라"

그는 1992년 전국연극제 부산예심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2012년 제30회 부산연극제에서 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는 부산을 떠나지 않고 지역 연극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전에 부산연극제에서 신인상 받으면 100만 원 정도 줬어요. 그러면 이 100만 원이 서울로 가는 차비에요. 다음날 서울로 다 떠나요. 연기는 계속 할수록 느는데, 서울에 올라간 사람들을 보면 아르바이트 한다고, 돈 번다고 무대에 서보지도 못하고. 그러면 오디션에서 다 떨어지거든요. 저는 무대에 계속 서는 게 오디션을 위한 준비이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차고 나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서 후배들에게 서울로 가지 말라고 이야기 합니다.

부산에는 소극장도 있고, 연극할 곳도 많으니까 여기서 그냥 해라. 네가 생각만 있으면 인터넷으로 어디든 오디션을 신청할 수 있고, KTX로 2시간 반이면 서울 올라갈 수 있다고. 저는 나이 40이 넘어서도 20살짜리 아이들이랑 계단에 줄 서서 오디션 보고 그랬어요."

그는 자신과 맞는 상대 배역이 없어, 주인공을 해보고 싶어 2인극, 1인극 연극을 만들기도 했다.

"제 키가 180이거든요. 무대에 서면 제가 어마하게 커 보입니다. 너무 크니까 제가 주인공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왜? 나한테 맞는 여자가 없어요. 맨날 소리 지르는 이런 역만 주니까 성질이 나서 주인공을 해야겠다고 제가 2인극을 만들었어요. 남자 둘이 나오는 거. 이것도 성이 안차요. 혼자 주인공을 하고 싶어서 모노 드라마를 했네요. 이거 제 혼자밖에 안 나와요. 무조건 제가 주인공이죠." 

그에게 연극은 무엇일까.

"연극은 저에게 재미에요. 할머니들이 신파극을 보고 울며 나오면서도 재미있다고 그러잖아요. 돈이 많아 돈쓰는 재미로 살 수도 있고, 운동이나 여행에서 재미를 찾을 수도 있겠지요. 저는 연극, 연기가 재미있습니다.

옛날에는 저희가 티켓을 팔아달라고 약국이나 가게 같은 곳에 맡기고 와요. 1000장을 20장씩 맡기면 얼마나 많은 곳에 티켓을 맡겼겠어요. 공연이 끝나고 그 티켓을 수거하려 가면 겨우 2장 정도 팔려요. 정말 눈물 나죠. 그래도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서 연기연습을 했어요. 왜냐하면 재미있거든요. 연극은 제 인생의 재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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