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방송된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판결의 온도> '故 신해철 의료사고' 편의 한 장면.

6월 22일 방송된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판결의 온도> '故 신해철 의료사고' 편의 한 장면. ⓒ MBC


지난 3월 파일럿으로 방송되었던 MBC 교양 프로그램 <판결의 온도>가 지난 6월 22일 정규 편성되어 첫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인 서장훈과 송은이가 진행하는 <판결의 온도>는 사법부의 정식 재판을 통해 나온 판결 중 주권자가 봤을 때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이슈들을 선정하여 그 배경과 법리를 논쟁하는 프로그램이다.

보통 파일럿 후 정규 편성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으나 <판결의 온도>는 3개월이나 걸렸다. 첫 방송 마친 소회가 궁금해 <판결의 온도> CP인 김신완 PD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첫 방을 의료사고로 한 이유

- 지난 22일 <판결의 온도>가 정규편성 후 첫 방송을 했잖아요. 파일럿 후 3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는데 소회가 어떤가요.
"방송을 보신 분들이 프로그램 취지에 많이 공감해주셔서 고마웠어요. 교양 프로그램은 의미 부여라는 게 중요한데 시청자들이 그 점을 높이 평가해주시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 보통 파일럿 후 정규 편성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가요? 아니면 이번이 특이한 건가요?
"이번이 특이한 경우입니다. 보통 파일럿 후 정규편성까지 이보다 짧게 걸립니다. 개편과 개편 사이 파일럿을 하고 이를 개편에 반영하는 거죠. 그런데 이번엔 파업이 끝나고 개편을 바로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개편할 때쯤 파일럿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다음 개편에 맞춰서 정규 편성이 되어 시점이 늦어졌어요. 당시 함께 만들었던 팀 모두 오래 기다려야 했죠."

- 첫 회로 의료사고를 주제로 했어요. 이유가 있었나요?
"가장 힘든 아이템이죠. 매주 방송하기엔 부담스럽지만 먼저 오랫동안 준비해서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첫 번째로 하자는 생각에 '고 신해철 의료사고'를 다뤘어요. 의료사고는 전문 분야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의료 문제는 중요한 이슈라 긴 시간 동안 공을 많이 들여 준비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연예인 패널보다는 전문가 패널, 즉 의사이자 변호사인 분들을 적극적으로 모셔서 얘기를 풍성하게 듣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미는 조금 떨어졌다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2회부터는 치열한 공방과 재미 포인트를 더 찾아서 교양과 예능의 밸런스를 맞출 생각입니다."

 6월 22일 방송된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판결의 온도> '故 신해철 의료사고' 편의 한 장면.

6월 22일 방송된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판결의 온도> '故 신해철 의료사고' 편의 한 장면. ⓒ MBC


- 첫 회 시청률이 조금 낮아서 아쉬울 거 같은데.
"한눈에 이목을 사로잡는 자극적인 프로그램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은 예상했어요. 워낙 이 시간대 시청률이 안 나와요. 첫 회는 전작인 <랭킹쇼> 평균 시청률 정도 나왔습니다. 초반 시청률은 낮아도 프로그램이 알려지고 회별로 진정성과 재미를 계속 보여주다 보면 시청률이 조금씩 올라갈 거라고 나름 기대하고 있어요."

- 파일럿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뭐라고 보셨어요?
"성비 불균형이 가장 큰 문제였죠. 프로그램의 내용적 측면보다도 패널 구성의 측면에서 저희가 실수했다고 봐요. 저희로서는 사법부의 문제를 꺼내면 사법부가 어떻게 반응할지, 시청자가 어떻게 느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최적화된 출연진을 꾸리기 위해 패널 구성을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다 최종적으로 여성 패널이 없는 진용이 짜이게 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여성 패널이 없는 부분을 감수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하지만 그때 성비 불균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고 뼈아프게 반성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최대한 여성 패널을 많이 모시는 쪽으로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 <판결의 온도>는 어떻게 기획된 프로그램인가요?
"기획은 2년 전에 했어요. 그런데 당시 MBC 사정이 그런 걸 방송하기 어려웠어요. 파업 기간과 파업 복귀 이후 새로운 사장이 오기 전 공백 상태에서도 기획안을 조금씩 고치고 다듬었어요. 꼭 모시고 싶은 출연자들도 접촉을 해서 출연 승낙 확답을 받아 기획안에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MBC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신규 프로그램 수급도 만만치 않았던 타이밍에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었던 덕에 바로 런칭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때이다 보니 기획안을 보고 의사결정권자들이 확신을 빨리 보여주었어요. 콘셉트가 선명하니 고민을 많이 하기보다 빨리 제작에 들어가자는 반응이었죠. 덕분에 교양물 중에서 가장 먼저 방송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신완 MBC PD

김신완 MBC PD ⓒ 이영광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도 다룰 수는 있지만..."

- 파일럿과 정규방송의 진행자나 코너 등 차이가 있는 것 같던데.
"프로그램의 큰 틀을 많이 바꾼 건 아니고요. 조금 더 완성도를 높이는 쪽으로 고민을 했습니다. 우선 성비를 고려해 MC, 패널을 구성했습니다. 시청자들이 실제 이 사안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프로그램 내에서 설명하기 위해 제작진 자체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고요. 출연자의 입장이 조금 더 명확히 드러나면 좋겠다는 뜻에서 맨 끝 사심판결 때 반기를 드는 장치도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구성적인 측면보다도 내용 면에서 좋은 아이템 8개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판결문을 찾아 읽는 데 시간을 많이 들여 방송 잘 내보자는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 파일럿 때 없었는데 정규에서 생긴 게 사건 재판 재연이에요. 그게 있으니 이해하기 쉽던데.
"재연 형식이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사건 자체를 잘 설명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해야 겠다고 생각해 새로 추가한 것입니다. 시청자들이 사건 전반에 대해 일차적으로 간략하게나마 이해하는 사전 작업인 셈이죠. 어떤 때는 저희가 애니메이션으로 사건을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심리 재연'은 아나운서들이 참여했어요. 판사 역할을 했던 김상호 아나운서는 너무 판사 같아서 최적의 섭외였다는 얘기를 사내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오승훈 아나운서와 박연경 아나운서도 발음이나 표정이 검사, 변호사 역할을 하는 데 잘 어울려서 직업 검사, 변호사들처럼 보였어요. 나름 반응이 좋았고 사내에서도 재밌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 판결문 읽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사실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과제는 어려운 법리와 판결을 쉽게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매번 어려워요. 복잡한 법리와 용어들이 끊임없이 나오다 보니 늘 공부하는 마음으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출연자를 섭외할 때도 어려운 법률 용어를 엄밀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분들을 열심히 찾아 모시고 있어요."

- 어찌 보면 <판결의 온도>는 판결에 대한 찬반 토론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1회는 찬반이 뚜렷하지 않아 아쉽던데.
"이 프로그램에서 특정한 사안을 놓고 찬반으로 나뉘어 싸우는 모습에서 흡인력을 찾으려고 하진 않습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이 재미를 위해 편을 나눠 싸우는 건 안 맞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출연진 6명 섭외 시에도 찬반을 명확히 나누는 대결 구도보다는 사회 구성원들이 가진 다양한 생각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합니다.

저희는 인위적으로 양분시킨 갈등 대신 풍부함으로 승부를 보려고 합니다. 출연자들이 왼쪽 오른쪽으로 나뉘어 앉아 있기는 하지만 사실 찬반을 명확히 나눠서 앉은 건 아니에요. 어쩌다 의견이 충돌해 사람과 사람끼리 싸우긴 해도 전선은 계속 바뀌어요. 사법부 판결이 맞느냐 틀리냐를 가지고 싸운다기보다는 이 사안에 대해 어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고민의 방향이나 변화의 방향이 다 다를 수 있거든요."

-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했다는 의혹이 있잖아요. 혹시 아이템으로 다룰 생각이 있으신가요?
"그거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걸 아이템으로 할 수는 있지만, 꼭 그런 아이템을 해야만 이 프로그램이 의미를 찾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많은 판결 중 하나로 생각합니다. 리스트에 없는 판결 중에도 다룰 만한 아이템은 많거든요. 여러 루트를 통해 다양한 아이템을 찾고 있어요. 저는 모든 판결 속에 사법부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보수성, 그리고 시대 요구들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다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 '판결의 경계'라는 코너를 신설했잖아요. 어떤 코너인가요?
"'판결의 경계'는 '시간을 달리는 법'을 없애고 시작한 코너입니다. 사회적으로 이슈도 되고 쟁점이 많은 아이템도 있지만 하나의 쟁점으로 작은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아이템도 많은데 그것을 버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아이템을 소개하고 같이 얘기해볼 시간이 없을까 해서 작은 판결 중 얘기할 수 있는 걸 골랐습니다.

이걸 조금 재밌게 전달하려고 생각하다 보니, 모든 판결은 어디까지가 무죄고 어디까지가 유죄인지 가르는 것이 법리적으로 고민하는 지점 같았어요. 우리도 항상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고민하잖아요. 그 경계를 통해 작은 이슈에 대해 우리가 사회적 합의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이걸 만들게 됐고요. 나름 소프트해서 첫 회 반응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 코너는 고정인가요. 바뀔 수 있나요?
"일단 이 코너를 바꾸지 않고 8주 동안 가져갈 생각인데요, 혹시 특집성으로 다른 코너 한두 개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기본 포맷으로 가져갈 생각이에요."

- 8주 의미는 뭐죠?
"시즌제예요. 한 시즌을 8주로 한 건 방송사 내부 편성 상황도 있지만, 판결문을 구해서 안정적으로 방송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무조건 억지로 방송해야 하는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방송을 끊어서 준비하고 재정비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래서 시즌제로 가게 됐죠. 또 한편으로는 8개의 방송을 한 다음에 시즌 2는 그다음 고민할 문제예요."

- 시청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하나요?
"<판결의 온도>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법원에 사법권을 준 건 국민이고, 국민이 법원의 판단을 평가하는 건 그 권위를 흔드는 불온한 행위가 아니라 사법부를 건강하게 만드는 과정이자 민주적으로 필요한 논의라는 겁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 사회적 합의를 해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재밌고 진지한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 한마디 부탁드려요.
"가장 편한 시간인 금요일 밤, 주중 일과를 마치고 쉬고 싶을 때 어려운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월화수목은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다가도 금, 토, 일은 놀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요. 한편으로는 진지한 게 전혀 없는 시간대이다 보니 사회 문제에 관심 많은 시청자가 선택할 프로그램이 없는 것도 같아요. 허전함을 느끼시는 분들이 이 프로그램을 봐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김신완 판결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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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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