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킬링 디어> 스틸 사진

영화 <킬링 디어> 스틸 사진 ⓒ 오드(AUD)


"제 가족을 죽였으니 선생님 가족도 죽여야 균형이 맞겠죠? 누굴 죽일지는 직접 결정하시는데 안 죽이면 전부 앓다가 죽어요. 밥과 킴도 죽고 선생님 부인까지 전부 앓다가 죽어요.

하나, 사지마비. 둘, 거식증. 셋, 눈에서 출혈. 넷, 사망.

하나, 둘, 셋, 넷.
선생님은 안 죽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혹시 질문 있으세요?"


외과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 아들 밥과 딸 킴, 완벽한 아내(니콜 키드먼)를 두고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생활을 영위하는듯 보이는 스티븐(콜린 파렐). 그에게 어느 날부터 죽은 환자의 아들 마틴(베리 케오건)이 접근해온다.

스티븐은 자신처럼 심장 외과 전문의가 되고 싶다는 마틴을 가까이 두고 자신의 집에도 초대하는 등 관심을 보인다. 마틴 역시 스티븐 가족들의 취향을 파악해 선물을 하나씩 따로 준비할 정도로 사려 깊은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킬링 디어> 스틸 사진

영화 <킬링 디어> 스틸 사진 ⓒ 오드(AUD)


하지만 이내 스티븐은 시도 때도 없이 그를 찾아오는 마틴에게서 점차 귀찮음을 동반한 묘한 감정을 느끼고 의도적으로 멀어지려 한다. 스티븐의 의도를 눈치채고 "10분이면 된다"면서 짧은 만남을 청하는 마틴. 그는 "제 가족을 죽였으니 선생님 가족도 죽여야 균형이 맞겠죠?"라는 말과 함께 스티븐 가족의 불행을 예고한다.

차츰 사지가 마비되는 아들과 딸을 보면서 스티븐은 의사답게 여러 유능한 의사들과 함께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 자식들을 치료하고자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깨닫는다.

그 사이에 두 사람의 증세는 더 나빠져 거식증에 이르고 먹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만다. 일이 이렇게 되니, "과학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마틴의 말을 점차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스티븐은 과연 가족 중에 누굴 선택할까. 아니면 마틴의 저주에서 벗어나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스티븐을 제외한 세 가족들은 이들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스티븐에게 처절하게 복종한다. 한편, 이들은 생존 경쟁에 내몰려 '경쟁자'가 돼버린 다른 가족들에게는 한없이 잔인하게 굴기 시작한다.

 영화 <킬링 디어> 스틸 사진

영화 <킬링 디어> 스틸 사진 ⓒ 오드(AUD)


박찬욱이 차기작을 기다린 감독

제70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면서 국내외 영화 팬들의 관심을 모았던 <킬링 디어>(원제: The KILLING of a SACRED DEER)가 오는 12일 개봉을 확정 짓고 한국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그리스 출신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45일 동안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해버리는 '커플 메이킹 호텔' 속 인간 군상을 다룬 전작 <더 랍스터>(2015)처럼 이번에도 초현실적인 세계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설정을 촘촘하게 깔아두고 마치 장기판의 말처럼 그 설정 속에 인간들을 던져두어 서로 움직이게 만든다.

신작 <킬링 디어>를 통해 란티모스 감독은 "무엇이 옳은지 틀린지 그 정의에 대한 판결은 누가 할 수 있는지, 거대한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극단적 상황에 처한 인간의 본능을 보고 싶었다"고 말을 남겼다. 그의 말 그대로다. 일생일대의 극단적인 사건을 마주하게 된 스티븐의 가족들은 동물과 같은 본능을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는 스티븐과 스티븐 가족들의 불안하고 불쾌한 심리를 드러내는 장치로 극단적인 줌인과 찢어질 듯한 현악기 연주가 빈번하게 쓰인다. 여기에 란티모스 감독의 영상미가 더해져 <킬링 디어>의 '차분한' 괴기스러움이 완성된다.

특히 음악은 <킬링 디어>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보통의 '영화 음악' 역할 그 이상을 해낸다. 처한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차분한 등장 인물과 정적인 장소들의 내면 심리를 음악이 대신 말해준다. 다만 현악기의 째질듯한 소리 탓에 음악이 영상보다 한 발 더 나간다고 생각하는 관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킬링 디어> 스틸 사진

영화 <킬링 디어> 스틸 사진 ⓒ 오드(AUD)


하지만 또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극한의 상황 속에서 누구보다 차분한 얼굴로 자신의 동생을 향해 "네가 죽으면 네 MP3를 사용하게 해줘"라는 누나를, "한 명을 죽이고 하나 더 낳자"고 달콤하게 제안하는 아내를. 관객들은 이들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처지를 대입해보게 된다. (혹은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일처럼 관조해버려 영화가 싱거워질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킬링 디어>의 원제 'The KILLING of a SACRED DEER'(신성한 사슴 죽이기)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스 의 희곡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중 재물로 희생당한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모티프로 가져왔다고 한다. 이 신화는 아가멤논이 신의 저주를 풀고자 딸 이피게네이아를 재물로 바치는데, 딸이 죽은 줄 알았던 순간 피를 흘리는 사슴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다.

외과 의사로서 자신이 실수했을 가능성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스티븐에게 죽은 환자의 아들인 마틴이 복수를 한다. 하지만 당사자인 스티븐은 끝까지 죽지 않을 것이며, 스티븐에 대한 단죄 역시 스티븐 스스로가 해야 한다는 설정은 이 가족들을 극단의 극단으로 몰아간다. 그 사이에서 '잘못이 없는' 신성한(sacred) 사슴이 희생될 상황에 처한다.

 영화 <킬링 디어> 스틸 사진

영화 <킬링 디어> 스틸 사진 ⓒ 오드(AUD)


마틴이 저주하듯 말한 사지마비와 거식증, 안구 출혈은 인간(현대 의학)으로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초현실적인 것, 즉 '신의 몫'일지도 모른다는 찜찜함은 영화의 다소 명확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영화관 밖까지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한다.

박찬욱 감독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차기작을 기다리게 만드는 감독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요르고스 란티모스라고 답하겠다"는 말로 란티모스 감독과 그의 신작 <킬링 디어>를 향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별점: ★★★☆(3.5)
한 줄 평: 과제 혹은 본보기로 남은 신화의 현대화


영화 <킬링 디어> 관련 정보
원제: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주연: 니콜 키드먼, 콜린 파렐, 베리 케오건
수입/배급: 오드(AUD)
러닝타임: 121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18년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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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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