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스토리'

영화 <허스토리> 포스터. ⓒ (주)NEW


영화 <허스토리>는 6년간(1992~1998)의 관부재판(關釜裁判, 시모노세키 재판)에 토대한 영화다. 관부(關釜)란 한국 부산(釜)과 일본 시모노세키(關)를 아우른 말이다. 제소지가 시모노세키인 이유는 둘이다. 하나는 피해자들이 시모노세키를 거쳐 연행되었기에 법률적으로 불법행위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부산과 가까워 원고(피해자)의 출정이 수월해서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일본 시민단체의 서명운동 등 선진 시민의식이 한몫했다.

나는 관부재판이 낯설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첫 보상 판결이어서 당시 일본을 발칵 뒤집은 사건인데도 기억에 없다. 국내에서도 반향이 컸을 텐데 그렇다. 숭숭 뚫린 역사의식이다. 그래선지 내 시선이 문정숙(김희애 분)에게 꽂힌다. 문정숙은 관부재판의 원고단을 후원한 실존 인물 김문숙을 각색한 캐릭터다. 민규동 감독은 위안부를 향한 당시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거스르는 문정숙을 통해 활성화하는 나비의 날갯짓을 연출한다.

그러다보니 <허스토리>의 '허(Her)'에 문정숙을 넣는 게 내겐 자연스럽다. 문정숙의 존재감은 <허스토리>를 기존 위안부 관련 영화들과 차별화 된 지점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내 눈물샘을 자극한 것도 문정숙 역에 몰입한 김희애의 열연이다. 증언대에 선 위안부 피해자의 원통함을 눈물범벅으로 고스란히 전하는 김희애의 일본어 구사는 감탄스럽다. 명대사는 각본대로일망정, 실감나는 명연기는 연기자의 프로근성이 낳은 투혼의 결과다.

우리 사회 여전히 뜨거운 위안부 문제

 영화 '허스토리'

영화 '허스토리' 스틸 컷. ⓒ (주)NEW


사실 법정 증언 장면을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관람했다. 기존 영화들이 대개 그러했듯 위안부 피해자의 과거 정황을 삽입한 전개일까 싶어서다. 다행히 <허스토리>는 달랐다. 위안부 피해자인 배정길(김해숙 분)이나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서귀순(문숙 분) 등이 증언하는 순간 터뜨리는 고통스런 현존 그 자체를 조명하는 연출이었다. 법원이나 피고 측이 없다고 지적하는 물증이 바로 살아 숨 쉬는 피해자 개개인임을 역설한 것이다.

심증과 물증은 때로 사실과 진실처럼 겉돌며 사법개혁을 일깨운다. 위안부 문제는 지금 여기에서 논란 중인 사법개혁만큼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허스토리>에서 관부재판 법정의 피고 측(일본 정부)은 진실에는 아랑곳 없이 자신한테 유리한 스토리 버전을 만들어 원고 측을 제압한다. 선천성 매독에 시달리며 패륜을 저지르는 아들을 한결같이 품는 배정길의 다문 입이 그 탓에 열린다. 

<허스토리>에서 서귀순의 영정이 보인다. 1일 새벽 김복득 할머니마저 숨을 놓았다. 이제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7명이다. 지난 2월 5일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 수여한 '100만 시민이 드리는 여성인권상'을 받으며 김 할머니는 말했다.

"내가 죽기 전 일본으로부터 잘못했다는 사죄를 받는다면 소원이 없겠소. 그래도 남은 소원이 있다면, 다음 생에는 족두리 쓰고 시집가서 남들처럼 알콩달콩 살아보고 싶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나비의 힘찬 날갯짓

 영화 '허스토리'

영화 '허스토리' 스틸 컷. ⓒ (주)NEW


<허스토리>의 엔딩 크레딧은 자우림의 노래 '영원히 영원히'다. 할머니들의 소원을 전하는 나비의 줄기찬 날갯짓으로 다가온다. 비록 2003년 '관부재판 최고재판소 결정'으로 원고 패소가 확정되면서 입법을 통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사법적 근거를 상실하게 되었지만,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나비의 날갯짓, 즉 정기 수요시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제해결 측면에서 관부재판 원고들과 문정숙은 아방가르드 '나비'다. 특히 문정숙은 이혼한 여성 사장으로서 당당하게 워커홀릭을 이어간 자기결정권의 선두 주자다. 그들처럼 앞장서지는 못하지만 나도 분명 나비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나비일 뿐만 아니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지지하는 미투 운동(#MeToo)의 나비다. <허스토리>의 감동은 '영원히 영원히' 나비 됨을 마다하지 않게 한다.

상영관을 나와서도 눈가가 젖은 채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와 중년부인 둘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그녀가 독백하듯 말했다. "돈 주고 보기는 아깝네." 지금 여기에서 나비의 날갯짓을 가로막는 편견의 벽이 두터울 수 있음을 감지했다. 장차 또 다른 '영원히 영원히' 물결에 합류할 일이 없기를 바라며, 삼가 김복득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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