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앞세운 유로 2016 우승국 포르투갈에 이어 '티키타카' 스페인도 집으로 간다. 

스페인이 1일 오후 11시(아래 한국시각)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FIFA(국제축구연맹) 러시아 월드컵 16강전 러시아와 맞대결에서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스페인은 연장전에서도 득점을 터뜨리지 못했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3-4로 무릎을 꿇었다.  

 2018년 7월 1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월드컵 16강 스페인과 러시아의 경기. 러시아의 표도르 스몰로프(오른쪽)가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꺾은 후 팀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2018년 7월 1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월드컵 16강 스페인과 러시아의 경기. 러시아의 표도르 스몰로프(오른쪽)가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꺾은 후 팀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스페인은 전반 11분 다비드 실바의 프리킥 크로스가 세르게이 이그나셰비치의 자책골로 이어지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극단적인 수비 전략을 들고나온 러시아에 고전하며 추가골을 넣지 못했고, 전반 41분 장신 스트라이커 아르템 주바에 페널티킥 동점골을 허용했다.

스페인은 좌우로 볼을 주고받기만 할 뿐, 과감한 전진 패스를 시도하지 못했다. 러시아 수비의 균열을 불러올 드리블도 없었다. 전방에 포진한 디에고 코스타는 완전히 고립됐고, 이스코와 실바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세르히오 라모스에 기대했던 세트피스 헤더도 러시아 수비에 막혀 자취를 감췄다.

러시아의 작전 성공이었다. 러시아는 작정하고 물러섰다. 스페인이 실수를 범할 때가 아니면 절대 공격에 나서지 않았다. '한 번쯤은 과감하게 올라설 법한데' 싶을 때도 참았다. 스페인이 오랜 시간 볼을 소유하더라도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낼 수 있다면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적중했다. 러시아는 연장전 포함 120분간 추가 실점을 내주지 않는 데 성공했고, 승부차기에 돌입해 승리를 따냈다. 이고르 아킨페프 골키퍼가 스페인의 세 번째 키커 코케와 마지막 키커 이아고 아스파스의 슈팅을 막아내면서 경기를 끝냈다. 애초부터 승부차기를 염두에 두고 경기에 임했다는 것이 120분이 넘는 혈투에서 드러났다.

새롭게 시작해야 할 스페인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 조별리그를 뚫지 못했다. 멕시코에 이어 FIFA 랭킹 57위 대한민국에도 발목이 잡혔다. 메시의 아르헨티나는 가까스로 조별리그 통과에는 성공했지만, 19세 소년 킬리안 음바페를 앞세운 우승 후보 프랑스에 16강전에서 무너졌다. 호날두의 포르투갈은 죽음의 조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루이스 수아레스와 에디손 카바니를 앞세운 우루과이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패스 축구 '티키타카'를 내세워 2000년대 중반부터 세계 축구를 호령한 스페인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대회 조별리그 탈락의 아쉬움을 털기 위해 명예회복을 다짐했지만, 결과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조별리그부터 불안했다. 코스타의 행운의 골이 가져다준 이란전을 제외하면, 승리는 없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은 '티키타카' 시대의 끝을 알렸다. 상대는 스페인이 어떤 축구를 할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안다. 마음대로 볼을 소유하고 돌릴 수 있게 놔둔다. 단, 페널티박스 부근을 촘촘하게 메워 공간을 내주지 않는다. 수비 블록에 들어오면 강하게 압박하고, 협력하면서 상대의 화력을 약화한다.

스페인은 똑같은 전략을 들고나온 이란, 러시아와 맞대결에서 하나같이 고전했다. 횡패스와 백패스만을 주야장천 시도할 뿐, 전진 패스는 너무 적었다. 과거 사비 에르난데스나 전성기 시절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그랬던 것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패스는 없었다. 페르난도 토레스나 다비드 비야처럼 밀집된 수비를 파헤치고 득점을 뽑아내는 골게터도 보이지 않았다. 상대 수비의 균열을 불러올 수 있는 '크랙'도 마찬가지였다.

일찍이 변화가 필요했다. 스페인은 유로 2008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까지 전대미문의 3연속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황금기를 보냈다. 그러나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네덜란드에 1-5로 대패했고, 2차전 칠레와 맞대결에서 0-2로 완패했다. 2경기 만에 디펜딩 챔피언은 조별리그 탈락을 확정 지었다.

스페인 다비드 실바 스페인 다비드 실바가 15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피시트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B조 1차전 포르투갈과 경기에서 드리블하고 있다.

▲ 스페인 다비드 실바 스페인 다비드 실바가 지난 6월 15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피시트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B조 1차전 포르투갈과 경기에서 드리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로 2016에서도 이전의 스페인은 없었다. 체코와 터키, 크로아티아와 한 조에 속한 조별리그에서 2위를 차지하며 16강에는 올랐지만, 이탈리아에 0-2로 패하며 짐을 쌌다. 4년 전 대회에서 두 차례(조별리그·결승전) 맞붙어 완승했던 상대에 패했다. 스페인의 티키타카는 더 이상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스페인은 명예회복을 다짐하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 도전했다. 유럽 예선에서 다시 만난 이탈리아, 알바니아 등과 한 조에 속해 9승 1무(36득점·3실점)를 기록하며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훌렌 로페테기 감독이 재능 넘치는 젊은 선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신바람을 냈다.

그런데 월드컵 개막 직전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다. 스페인축구협회는 월드컵 개막을 이틀 앞두고 로페테기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로페테기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와 접촉했고, 레알이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둔 시점에 그의 선임을 발표한 것이 화를 불렀다. '전설' 페르난도 이에로를 부랴부랴 감독으로 선임하며 급한 불을 껐지만, 혼란을 감출 수는 없었다.

포르투갈과 이란, 모로코와 속한 죽음의 조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승리는 한 차례뿐이었다. 지휘자를 잃은 탓인지 예선에서 보인 강렬함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16강전에서 개최국 러시아에 발목이 잡혔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패스 마스터' 이니에스타가 대표팀 유니폼을 벗는다. 오랜 시간 대표팀 후방을 책임진 라모스와 헤라르드 피케도 다음 월드컵이면 30대 중반이다. 현실적으로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다. 세르히오 부스케츠와 실바도 마찬가지다.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역전골 환호하는 스페인 나초 스페인 페르난데스 나초(오른쪽)가 15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피시트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B조 1차전 포르투갈과 경기에서 3-2로 앞서는 역전골을 터뜨린 뒤 이니에스타와 환호하고 있다.

▲ 역전골 환호하는 스페인 나초 스페인 페르난데스 나초(오른쪽)가 지난 6월 15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피시트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B조 1차전 포르투갈과 경기에서 3-2로 앞서는 역전골을 터뜨린 뒤 이니에스타와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시 출발해야 한다. 단순히 점유율만 가져가는 축구로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어렵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이들을 대신할 젊은 재능을 발굴하고, 특유의 색깔을 도드라지게 만들어줄 요소가 필요하다. 속도와 결정력을 겸비한 스트라이커를 비롯해 창의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새로운 패스 마스터, 끊임없이 수비를 흔들 수 있는 '에이스'를 찾아야 한다.

3연속 메이저대회 우승에 이어 3연속 고배를 마신 스페인. 몰락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팀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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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VS러시아 스페인 티키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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