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리셀리셀리느

셀리셀리셀리느ⓒ 강선영


지난 5월, 기타의 명가 '깁슨(Gibson)'이 파산 신청을 했다. 펜더(Fender)와 더불어 일렉트릭 기타 시장을 양분하는 유명 기타 브랜드였지만, 특유의 고가 정책을 유지하는 한편 음악 시장에서의 록 음악의 침체 현상으로 인하여 이중고를 겪었고 끝내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 이러한 깁슨의 행보는 고등학생 시절이던 2003년 무렵부터 홍대 앞 라이브클럽을 드나들며 공연을 보고 다녔고, 아직까지도 홍대 앞 '인디 뮤지션'의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애정을 갖고 다니던 오래된 라이브 클럽들, 오랜 시간 활동해 온 인디 뮤지션들, 모두가 한 번씩 뒤를 돌아볼 때마다 하나 둘씩 자꾸만 사라져간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라는 나의 물음에 "유행이 지난 것일 뿐"이라고 냉소적으로 대답하던 동료의 한 마디를 자주 생각한다. 그 말이 정답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도 '홍대 앞' 혹은 다른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의 인디 뮤지션들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심지어, 전기로 작동하는 일렉트릭 기타도 아니고 오롯이 나무의 소리를 담고 있는 어쿠스틱 기타를 선택한 이 시대의 '21세기 포크 싱어송라이터'들에 대한 스스로의 각별한 관심을 담아 그들의 삶의 다양한 여러 면모들을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 주목해보고자 한다.

그 첫순서로, 홍대 앞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 온 싱어송라이터 '셀린셀리셀리느'를 소개한다.

21세기 포크 싱어송라이터-셀린셀리셀리느

- '셀린셀리셀리느' 라는 이름이 독특한데, 어떤 뜻인지 설명 한번 부탁드릴게요.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밴드로 했는데, 그때는 희한한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하는 음악도 자극적인 음악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더 실링 오브 실리 셀드 피플(The Ceiling of Silly Celled People)'이라는 영어구절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게 '멍청하게 자기 자신을 가둔 사람들이 바라보는 천장'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그 문장을 이어서 발음하다보니 '셀린셀리셀리느'라는 이름이 나왔고, 그 때 같이 하던 밴드 멤버들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았는데 밀어붙였죠. 제가 리더였으니까.(웃음)"

- 활동을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어떤 음악을 하고 있는지, 간략하게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셀린셀리셀리느라는 이름으로는 2003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어요. 다음 카페가 있어서 그 공간에 기록이 있는데, 대학교 들어가고 바로 다음해부터 시작했으니까."

- 그 때는 밴드로 활동한 건가요?
"그렇죠. 처음에는 3인조 밴드였고, 기타와 보컬을 제가 하고 베이스와 드럼 멤버가 있었는데, 그 때는 저는 자기주장이 무척 강한 사람이었고, 밴드 멤버가 계속 바뀌었어요. 두 번, 세 번 정도. 그 때는 약간 라디오헤드와 뮤즈가 섞였는데 한국적인 색깔이 좀 있는 그런 밴드였고, 밴드 멤버들이 탈퇴하면서 일렉트로니카로 장르를 바꾸고 트럼펫 주자를 영입해서 활동하기도 했는데, 최종적으로는 저만 남아서 혼자서 기타를 치며 1, 2집을 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계획 중인 3집은 다시 일렉트로니카로 돌아가서 일렉트로니카에 기반을 둔 어쿠스틱 음악을 해보려고 합니다."

- 우연히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면 본인이 노래 부르신 횟수가 통산 300번을 맞이하게 된다고 들었어요. 그걸 다 체크를 한 건가요?
"다음 카페가 있어요. 그 카페에 매번 공연을 할 때마다 기록을 남겨놓죠. 기록을 워낙 중요하게 여겨서 활동 처음부터 만들어놓았어요. 예전에는 공연이 끝나고 나면 주관적인 공연 후기도 다 남겨놨었어요. 많이 안 볼 거라고 생각하고 적었는데, 다 봐서 크게 싸움난 적도 있고 그 뒤로는 되도록 좋은 말만 (쓰고 있어요). (웃음)"

- 오늘 말고 정식으로 하는 300회 공연은 언제가 될까요?
"제가 기획하는 공연 중에 '빵 안에 작은 바다'라는 공연이 있는데, 공연으로 치면 그게 300회째가 될 것 같아요. 어차피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그냥 하려고요. 200회, 100회 챙긴 것도 아니고."

- 그러면 혹시 본인의 첫 번째 공연은 기억하나요?
"기억해요. 처음에 부산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부산의 '스테레오포닉'이라는 공연장에서 밴드로 첫 번째 공연을 했고, 그 때 같이 했던 팀이 '리트머스'라는 팀이었는데 그 보컬이었던 사람이 제가 보컬로서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 죽었어요.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였어요. 젊은데 (안타깝죠). '홍양'이라고 불렀던 친군데, 이 인터뷰를 빌어서 한 번 더 기억하고 갑니다. 되게 좋아했었어요. 인간적으로, 음악적으로."

- 가장 최근에 한 공연은 어떤 건가요?
"오랜 만에 섭외가 들어와서 '살롱 노마드'에서 했어요. 사장님이랑도 오랜만에 술을 마시고, 제가 만든 맥주 가져가서 사람들과 나눠 마시고, '키라라'라는 일렉트로니카 하는 친구 음악에 춤추고, 그러고 나서 그 위에 술집에서 아는 형, 누나들 만나서 같이 술 마시고, 그 날이 되게 재밌고 좋은 기억이었어요."

- 지금까지 한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기본적으로 즐거웠던 공연은 아닌데, 부산을 떠나서 서울에서 활동을 하다가 부산에 한 번 내려가서 공연을 했는데 아무도 안 왔던 날이 있어요. 그 때 그 심정이 기억에 남아요. 그 때 처음으로 부모님을 내 공연장에 초대하려고 했는데, 오지 말라고 말씀 드렸어요. 그 때가 뭐 축구를 하던 기간이어서,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같이 공연한 팀들이랑 술 마시고 겨우 친구 한 명을 불러서 공연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날 그 순간이 다 기억이 나요. 초조해하면서 화장실에 다녀오고, 부산의 '인터플레이'라는 공연장이었는데, 누구 왔나 왔다 갔다 하고. 그게 제일 기억에 남네요."

- 슬퍼서?
"그냥, 충격적(이었죠). (웃음) 그 뒤로도 관객이 안 온 공연들이 있긴 했는데, 그냥 그랬어요."

- 좋았던 공연을 한번 떠올려볼까요?
"좋았던 공연은 예전에 '살롱 바다비'에서 '책장을 넘기는 노래'라는 공연을 기획 했을 때. 공연을 하면서 그렇게 설렘이 없는데, 그 공연은 하면서 막 내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게 엄청 느껴졌어요. 연극이랑 섞어서 연기도 하고 그래야하는 공연이어서, 관객 수와 상관없이 끝내고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그 찰나에 마치, 연극을 끝내고 커튼콜을 받는 연기자와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아주 기분이 좋았어요. 뭐, 공연장에 사람이 많이 오고 그런 거보다는 제가 그린 그림이 확 펼쳐져서."

 셀린셀리셀리느 1집 <검은 아이> 커버 이미지

셀린셀리셀리느 1집 <검은 아이> 커버 이미지ⓒ 셀린셀리셀리느


- 정규 1집 <검은 아이>를 2013년에 발매했고, 정규 2집 <꿈, 막다른 바다, 바람을 기다리다>를 2016년에 발매했어요. 지금까지 발표하신 1, 2집 앨범들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어요.
"1집은 활동 10년간 쌓인 노래들을 군대에 들어가기 한 달 전에 '뭐라도 남기고 가야겠다' 싶어가지고 프로듀서를 섭외해가지고 바로 녹음을 했는데, 그전까지 10년간 활동을 하며 나온 곡들이 워낙 많아가지고 그 중에서 베스트인 노래들만 꼽아서, 다른 악기 필요 없고 기타와 목소리로만 할 수 있는 곡들로 한 달 만에 다 만들었어요. 레코딩은 일주일 만에 끝냈고, 엔지니어도 원래 알고 있던 사이여서, 진짜 일사천리로 한 달 만에 나왔어요. 신기하게 나왔었죠. 그 때 생각하면, 운명같이 나왔어요.

디자인도 저를 정말 오래 알고 있던 분께 맡겨서, 진짜 바로 나왔어요. 그림을 새로 그렸는데도, 이미지가 있으니까, 한 달 만에 다 잘됐어요. 마스터링을 다 하고, 프로듀서와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하는데 그 때가 겨울이어서 밖에 첫 눈이 내려서, 둘이서 울었죠.(웃음)"

- 남자 둘이?
"우리 울었다는 얘기 하지 말자고 맨날 그러는데, 내가 맨날 얘기하고 다녀요.(웃음)"

- 첫 번째 앨범을 그렇게 만드시고, 입대하셨나요?
"그 때는 그냥, 아쉬울 게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앨범내고 활동을 시작하는데, 저는 앨범을 내고 첫 쇼케이스를 하고 군대를 들어갔어요. 훈련소 들어가서 3주 동안 소식이 아예 단절이 되니까, 반응을 몰랐어요. 반응을 사실 기대하지도 않았고. 훈련소를 나오면서 핸드폰을 찾아서 처음 들었던 앨범이 제 앨범이었는데, 그 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그러고 핸드폰을 확인해봤는데 TBS 라디오에서 섭외가 들어왔고, 네이버에서도 이 주의 앨범에 선정되어있고 그래서, 그 때 너무너무 신기했어요. 군대 동기랑 맥주 마시면서 자랑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혼자서 길을 걸어가다가
혼자서 절룩이는 세발 고양이를 만나고
우리는 함께 길을 걸어가다가
혼자서 춤을 추는 외팔소녀를 만나고
우리는 함께 길을 걸어가다가
깊고, 끝도 없는 강을 만나고
"이젠 어떡해야 해"
나는 물었고, 우리는 생각에 잠겼네.

나의 한 팔을 소녀에게 주고
소녀는 강을 헤엄쳐 나를 멀리멀리 나를 떠나가네.
나머지 한쪽 팔을 세발 고양이에게 주었더니,
고양인 비웃으며 나를 할퀴고 떠나가네
'안녕 내 사랑들아'
인사하고 싶지만, 흔들어줄 손이 없네."

셀린셀리셀리느 - '외팔소녀' 중에서

- 10년 걸렸던 1집에 비해서 2집은 3년 만에 나왔어요.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러니까 왜 2집을 그렇게 빨리 냈는지 모르겠는데, 1집을 내고 남은 곡들이 이미 많이 있었어요. 당시 일과 음악을 병행해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1집 때처럼 레코딩에 한 번에 몰아서 쓸 에너지가 없어서 일을 하면서 하루에 한 곡 녹음하고, 또 한 달 있다가 한 곡 녹음하고, 그렇게 레코딩을 일상처럼 하게 됐어요. 그래서 레코딩 자체는 1년 정도 걸렸죠. 그래서 1집에 못 넣었던 곡이 절반이 되고, 그동안에 새로 내 삶에 들어온 곡이 절반이 됐죠. 그래서 재미있는 앨범이 됐어요. 1집의 느낌과 새로운 느낌이 혼재되어있어요.

그리고 사운드 적으로도 1집보다는 많이 열렸어요. 1집 작업할 때는 묘한 자존심이 있어가지고, 기타줄을 안 갈았어요. 기타줄이 한 3년 된 거였는데, 나는 그 소리가 좋다고, 1집에는 기타줄이 안 갈린 소리를 담았고, 2집 앨범을 할 때는 매번 기타줄을 바꿨어요."

- 태도가 무척 달랐다는 느낌이네요.
"네, 태도가 무척 달랐어요. 1집을 할 때는 내 거를 무조건 다 넣겠다는 생각이었고, 2집 때는 변화한 모습과 앨범이 앨범답게 나오는 거에 관해 조금 더 여유가 생겼어요. 그래도 결국에는 다른 악기를 넣지는 않았어요. 기타와 보컬 외에는"

- 뮤지션이라면 보통 다양한 편곡에 욕심을 낼 법도 한데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심플하게 1, 2집을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1집은 일단 편곡에 공들일 여유가 없었어요. 라이브를 10년간 해오면서 기타 하나로만 살릴 수 있는 노래들만 넣었죠. 2집을 하면서는 다른 요소들을 넣으려고 했는데, 결국에는 그럴 필요가 없는 노래들만 모았습니다."

- 무언가 '포크'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욕심이 있었나요?
"아뇨, 뭔가 포크라고 하면 오히려 좀 더 푸근한 악기들을 넣을 생각이 있는데 1집 때는 무언가 본질적인 것과 내가 해온 것들의 원석 그대로를 넣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2집 때는 좀 더 여유가 있긴 했지만, 다른 악기가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작곡을 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 후반 편곡을 더해서 넣을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 곡들만 모아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2집의 첫 번째 노래에는 보컬 더블링이 들어갔어요. 그리고 사운드 적으로도 좀 더 잘 들리게끔 기타줄도 갈고, 엔지니어랑도 상의해서 좀 더 밝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앨범의 색감 자체도 달라졌죠."

 셀린셀리셀리느 2집 <꿈. 막다른 바다, 바다를 기다리다> 커버 이미지

셀린셀리셀리느 2집 <꿈. 막다른 바다, 바다를 기다리다> 커버 이미지ⓒ 셀린셀리셀리느


- '꿈, 막다른 바다, 바람을 기다리다'라는 2집의 동명 타이틀곡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그렇죠. 타이틀이 중요하니까. 그 곡의 느낌으로 디자이너 분한테도 부탁을 했었고, 그 분도 새로 유화로 그림을 다 그리셨죠. 사실, 이것도 선택하는 과정에서 추천해주신 그림이 몇 개 됐었는데, 그건 다 싫다고 하고, 방 안에 걸려있던 원래 엔트리에 들어가지 못했던 그림을 제가 골랐어요. 디자이너분도 워낙 저랑 잘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크게 저항은 없었고요. (웃음) 앨범이 워낙 예쁘게 나와서, 나중에 다른 데서 앨범을 몇 장 보내줬으면 하는 요청도 있었어요. 종이 자체도 국내에 처음 들여온 재질이었는데, 유화 같은 느낌을 주려고 직접 가서 다 고르고."


- 예전에 밴드를 활동했지만, 최근 셀린 공연을 보면 일렉 기타 이펙터라거나 미디로 드럼 비트를 틀어놓는 등 사운드 면에서 예전보다 풍성하게 하려는 시도들이 많이 느껴져요. 다음에 나올 정규 3집 앨범에서 그런 식의 변화가 반영이 될까요?
"그러니까, 3집은 좀 '괴작'을 만들고 싶어요. 1,2집 때 내가 들려주고 싶었던 것들은 대략 다 들려드렸다고 생각해서. 물론 내가 괴작이라고 한다고, 괴작이 되는 건 아니지만, 뭔가 3집은 포크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괴상한 걸 해보고 싶어요."

- 뭔가 좀 더 실험적인 사운드를 시도해보고 싶은 건가요?
"나는 실험적으로 하고 싶은데,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게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는 전혀 실험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 딴에는 포크 싱어로서의 괴작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전체 사운드로 따지면, 굉장히 안정된 사운드겠죠. 사실 요즘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엄청 발달되어 있어서, 낯 뜨겁긴 한데 내 머릿속에 있는 그런 것들을 좀 표현하고 싶어서, 도전하는 거죠."

- 3집 앨범은 진행 중인가요?
"계속 진행 중이죠. 요즘 공연은 죄다 그런 곡들만 하고 있어요. 앨범은 아직 언제 착수할지는 모르겠어요. 어느 정도 만족이 되면, 곡이 나오면."

 셀린셀리셀리느

셀린셀리셀리느ⓒ 강선영


- 조금 더 본격적으로 공연 기획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2014년부터 셀린님의 음악활동에서 공연의 기획자로 활동하는 부분이 비중이 커졌어요. 2014년에 지금은 사라진 '살롱 바다비'라는 공간에서 '책장을 넘기는 노래'라는 타이틀로 매달 한 사람의 작가 혹은 한 권의 책을 테마로 잡고, 공연과 음원을 함께 진행한 기획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기획에 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어요.
"그전에도 소박하게 몇 개가 있었는데, 사실은 처음 기획에 들어갔던 게 내가 기획을 하지 않으면 공연을 설 자리가 없었어요. 남이 기획을 해서 나를 불러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공간 사장님과 마음이 잘 맞아서 내가 기획을 하게 됐고, 하다 보니 정기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열망이 생겨서 '책장을 넘기는 노래'를 시작하게 됐죠."



- 이 기획은 1년 정도 유지됐는데, 처음부터 장기 기획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마지막 공연을 하고나서 '바다비'라는 공간 자체가 문을 닫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어요. 더 진행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 공연과 관련된 디지털 음원도 1회 때는 안 나오다가 4회부터 나오게 됐었죠? 
"처음에는 그렇게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었고, 비슷한 성향의 뮤지션을 만나서 같이 컬래버레이션 라이브를 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공연을 엮어내자고 시작하게 됐는데, 둘이서 어차피 작업하는 거 음원을 만들어내서 발표하면 좋으니까, 음원도 발표하고, 또 어떻게 하다보니 책에 극적인 요소가 있으니까 그걸 또 연극처럼 풀어보자고 해서 극단도 끌어들여가지고 극단이랑 극도 만들고.

일 벌이는 걸 그 당시에는 되게 좋아했었어요. 그 당시에는 여유가 좀 많아서, 좋은 걸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컸어요. 패배주의에 절어있는 인디 신의 기획들이 싫었어요. 화이팅도 없고, 공연 한다 오려면 와라. 그런 것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뭔가 하는 걸 해보고 싶었어요. 패기가 넘쳤죠, 그 때는."

- 패기만큼 반응이 있었나요? 
"반응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음원들은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아직도 들으면 기분이 되게 좋고. 스스로와 같이 했던 사람들은 굉장히 뿌듯함을 많이 느꼈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어떤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그렇게 관객들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적지 않은 관객들이 왔다갔고, 적지 않은 리스너들이 음원을 들었고,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공연은 반의 성공, 반의 실패라고 생각해요. 어쨌건 했다는 데서 의미를 크게 느끼고 있어요. 그 때 고생했던 스태프들도 느낀 게 많았을 거고. 개인적으로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 셀린님은 저와 함께 '피드 마이 프랑켄슈타인(Feed My Frankenstein)'이라는 예술집단에 소속되어 있는데, '책장을 넘기는 노래'를 기획하던 2013-2014년 당시에 '피드 마이 피나(Feed My Pina)'라고 음악과 춤을 함께 하는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었죠. 인디 음악 신에서는 흔치 않은 시도이기도 해서 그 기획에 관해서도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그때는 일 벌이는 걸 참 좋아했었죠. (웃음) 그래서 그 때 (피드 마이 피나) 사람들이랑 엮어서 '책장을 넘기는 노래'도 같이 진행했고. 음악쪽으로만 계속 하다가 잘 풀리지 않던 에너지를 그쪽으로 쏟아부었던 것 같아요."

- 춤을 인디 음악과 같이 한다는 생각은 처음에 어떻게 생각하게 된 건가요?

"그런 것에 대한 열망이 있었는데, 제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 중에 춤 쪽으로 연관이 있는 분이 한 분 있었어요. 그래서 그 분 소개를 통해서 사람들을 알게 됐고, 그 사람들을 모아가지고 음악하는 팀이 있는데 같이 해보자고 회의를 하게 돼서 좋은 걸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피드 마이 피나' 를 하게 됐고, 그 때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아직까지도 잘 이어지고 있어요. 순수한 사람들이고. 작은 데서 출발했어요, 전부 다. 아는 사람 한 명으로 인해서."



- 최근 격년으로 이어가고 있으신 장기 기획공연은 Sad Music Festival(이하 새뮤페)과 Feed My Halloween Festival(이하 피할페) 두 가지가 있으시잖아요? 
"이번에는 솔직히 할지 말지 모르겠어요. 힘들어서."

- 두 공연 다 '페스티벌' 형식이다보니 매번 스무팀이 넘게 하는 대형 기획 공연이라 어려움이 있으신 것 같아요. 
"이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에너지가 있었다고 생각되고, 어느 정도 책임감도 있었는데, 요즘은 내가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같이 할 팀이 솔직히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이라거나, 같이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올해는 할지 말지) 고민 중이에요."

- 약간 번 아웃 상태이신 거 같기도 하네요. 
"사람이 왔다 갔다 하니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있는데 여름 지나면서 페스티벌 시즌이 오면 또 미쳐가지고 할 수도 있겠는데, 지금으로서는 솔직히 여력이 별로 없고. 예전에는 팀들을 모았을 때 내가 한다는 생각으로 해본 적이 없어요. 각 팀들하고 친하니까 '같이 열심히 하자. 내가 조금 더 고생한다.' 는 생각으로 했는데 지금은 아예 페스티벌로 굳어져서 내가 섭외하고 내가 모든 걸 케어해야하는 상황이 돼버려서 이건 내가 원래 의도한 것과도 안 맞고,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몇 팀은 있는데 페스티벌을 꾸릴 만큼은 없는 것 같아요.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진짜. 옛날 같은 분위기가 안 나요."

- 새뮤페만 해도 2015년에 처음 시작하셨고, 그 때는 아직 '살롱 바다비'가 있었죠. 
"그 때는 막 '새뮤페' 같은 아이디어 올리면 다들 '와, 우리 같이 하자' 그런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어떠한 프로젝트도 같이 신나서 하자는 느낌이 아니고 기획자와 섭외자가 있는 느낌밖에 안 돼서 그게 속상하죠. 다들 수동적인데,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다들 힘드니까. 다들 힘들고, 자기한테 여유가 없고, 나도 없고. 그러니까, 좋은 페스티벌이라는 생각은 들어도, 자기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거나 그런 생각은 안 들겠죠.

새뮤페는 웬만하면 다른 좋은 분에게 넘겨주고 싶어요. 왜냐하면, 그거야말로 처음부터 내가 기획한 게 아니고 아이디어만 내가 냈고 다 주변에서 같이 한 거기 때문에, 내가 안 한다고 안하게 되는 건 너무 슬픈 일이고. 진짜. 좋은 기획을 하시는 분이 있으면 드렸으면 좋겠어요."



- 그 기획들은 처음부터 '페스티벌'이라는 형식으로 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그렇죠. 왜냐하면 단순한 공연은 공연일 뿐이고, 페스티벌은 즐기는 느낌이잖아요. 그러니까, 즐기는 느낌이 되는 게 좋아요. 저는. 일단 기본적으로 우리가 주입식으로 '우리는 공연을 한다.' 그러면 관객들 입장에서는 그냥 봐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뭔가 신나고 가서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 같고, 실제로 공연 기획 자체도 그런 재미를 많이 추가한 거고, 반짝반짝한 아이디어를 많이 모아서 페스티벌로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가 같이 하는 사람들이 다들 큰 페스티벌을 나가는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웃음) 그래서 우리만의 페스티벌을 하고 싶었어요."

- 좀 우울한 얘기들을 자꾸 하게 되는데, 원래도 인디 공연에 관객이 많이 없었지만 요즘은 점점 더 줄어드는 추세인 거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신 전체적으로도 활력이 더 없어지고, 저나 셀린님 같이 뮤지션이 직접 공연 기획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요. 뮤지션이 기획을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로 인해서 새로 시작하려는 뮤지션들에게 그런 점이 또 하나의 진입장벽이 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뭐, 이런 얘기를 하려면 끝도 없는 것 같아요. 근데 한발자국 뒤에서 생각하면 우리가 그냥 뮤지션이 아니고 '인디펜던트' 뮤지션이잖아요. 그러니까, 인디 뮤지션이라고 하면 그런 공연 기획에 대해서도 감당할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누가 해주는 것도 아니고, 셀프 매니지먼트를 하고 셀프 프로듀싱을 하니까, 그 모든 것을 감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인디 뮤지션으로서 음악만 할 거면 음악만 하면 되는데, 공연을 할 거라면 공연 기획을 으레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생각해요.

물론 그에 대한 피로도가 크긴 한데, 이런 어려움을 현 상태의 어려움으로 보기보다는 원래해야 되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외국에서도 자기가 공연하려고 포스터 뽑아가지고 벽보 붙이고, 그런 건 옛날부터 다 했던 일들이고. 그러니까, 우리도 생각하는 바가 있고 그렇다면 그런 기획 부분에 대해서 너무 스트레스 받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수가 하고 싶다면 소속사에 오디션을 봐서 들어가면 되는 거지만, 인디 뮤지션으로서 꿈을 꾼다면 짊어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고."

 셀린셀리셀리느

셀린셀리셀리느ⓒ 강선영


- 조금 가벼운 얘기를 해보자면, 최근에 본인의 공연에서 직접 만드신 수제 맥주를 제공하시기도 하는데, 어떻게 처음 맥주를 만들기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햄버거를 좋아해서, 햄버거를 먹으러 다니다가 햄버거 가게에서 수제맥주를 함께 파니까 마셔봤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그걸 매일 마시고 싶은데, 수제 맥주가 너무 비싸서 어떻게 하지, 하다가 만들어먹으면 된대서 원가를 따져보니까 훨씬 싼 거예요. 그래서 만들어 먹기 시작했죠.

- 어디 수제맥주 관련 동호회에 가입하셨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요? 
"동호회 가입은 되어있는데 나가지는 않고. 혼자, 그냥 맨 땅에 헤딩하듯이 만들었어요."

- 처음부터 잘되셨나요? 
"처음부터 잘됐어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어요. 그건 되게 신기해요. (웃음) 한 번도 맥주를 버려본 적이 없어요. 실제로 솔직히 안 어려워요. 온도만 잘 맞춰주면, 효모가 워낙 강해서 망치기가 쉽지 않아요. 누구든 애정이 있어서 자기 맥주를 만들려고 하면, 제 모든 노하우를 가르쳐 줄 거예요."

- 맥주를 만드신게 얼마나 됐죠? 
"그것도 한 1년 정도 된 것 같아요. '빵 안에 작은 바다'를 시작하면서."

- 처음부터 공연 때 내놓으려고 생각하셨나요? 
"그런 것도 좀 생각했죠. 일단 기본적으로, 내가 잘할지 안할지를 모르니까 나만 마시려고 시작했는데 괜찮아서 공연 때 내놓게 됐죠. 처음에는 아주 쉬운 코스부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스스로 중급 정도라고 생각해요. 고급이나 마스터는 전혀 아니고, 내가 원하는 정도까지는 내가 해먹는 정도. 요리사로 따지면 쉐프 정도는 아니고 동네 맛집 아줌마 정도? 그 정도라고 생각해요."

- 맥주를 만드시는 주기적인 횟수는 얼마나 되시나요? 
"한달에 한 번 정도는 계속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만들어낸 종류가 열몇가지가 넘었거든요. 20리터씩 열개를 했으니까, 200리터 넘게 만들었죠.

제 인생은 맥주를 만들기 전과, 맥주를 만든 후와 많이 나뉘는 것 같아요, 진짜. 맥주를 만들기 전에는 더 폐쇄적이고 내성적이었는데, 맥주를 만든 후부터는 맥주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그런 것이 됐어요. 성격이 달라진 것 같아서, 되게 좋아요. 제가 아는 형도 제가 그렇게 즐거워한적이 없는 것 같다고 그랬어요.

왜냐면, 제가 음악을 만들어서 남한테 들려주는 건 사실 음악이 슬프고 그러면 남한테 나쁜 영향을 미칠 수가 있잖아요. (웃음) 유쾌하지는 않으니까. 그치만 맥주라는 건 마시면 기분 좋고, 내가 줄 수 있는 거라서 그게 너무 고마워요. 왠만큼 별 일 없는한 맥주를 계속 만들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도 집에서 맥주가 하나 익어가고 있고."

 셀린셀리셀리느

셀린셀리셀리느ⓒ 강선영


- 생각지 못한 부분인데 맥주를 만드는 것도 인생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되셨네요? 
"요리나 남한테 베풀 수 있는 걸 배우는 건 되게 좋은 일인것 같아요. 이런 걸 만들면서 즐거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 오늘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 장소인 '돈의문 싸운드 연구소'의 운영 및 기획에도 최근 합류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공간 소개와 공간의 향후 계획 등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이 공간은 돈의문 박물관 마을 전체 운영위원 중에서 아는 분이 계셔서, 이런 공간이 있는데 여러명이 모여서 주체로 들어와서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덜컥 들어오게 됐어요. 한시적인 공간이라서 계속 진행되지는 않고, 여유있는 공간이 있으니까 일단 재미난 걸 해보려고 하죠. 영화상영회도 그래서 하게 된 거고.

최종적인 계획은 '싸운드 연구소'라고 이름 붙였으니 사운드에 관련한 걸 최종 결과물로 내려고 하고 있죠. (플라스틱 컵을 손으로 눌렀다 폈다 하시면서) 이런 소리라든지, 이런 걸 재편집해서 어떤 음악적인 걸로 만들어내는 걸 기획하고, 매달 회의하고, 아직까지는 그러고 있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결정하려고 하는 중이에요."

 셀린셀리셀리느

셀린셀리셀리느ⓒ 강선영


- 이번에 제가 주변 뮤지션 분들의 인터뷰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요즘은 대부분의 뮤지션 분들이 전업 뮤지션으로 활동하기보다는 다른 일을 하시면서 겸업을 하시는 경우가 많다보니 '다들 (음악 외적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까?' 그런 궁금증이 있어서 였는데, 첫 순서로 셀린님을 생각한 것도, 뮤지션과 의사라는 쉽지 않은 직업들을 양립하시는 점 때문에서 이기도 했는데, 일과 음악을 동시에 하는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힘들어요. (웃음) (깊은 한숨) 열정이 있던 젋은 때는 하는게 전혀 무리가 안 됐는데..

저는 음악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사가 되려고 했어요. 처음에 저는 메탈을 하고 싶었는데, 메탈은 전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메탈을 하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머리는 좋았으니까, 처음에는 의대를 가려고 생각한 건 아니었고, 생명공학쪽에도 원래 관심이 있어서 생명공학을 수시로 하나 붙여놓고, 수능을 쳤는데 점수가 꽤 괜찮게 나와서 의대를 갔죠. 그건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데 의대를 가서 보니까, 거기서 오는 기쁨이나 철학적인 부분들도 되게 커요. 원래는 음악이 내 삶의 거의 전부였고, 의사는 진짜 그냥 돈 버는 직업일 뿐이었는데 지금은 내 삶에서 거의 반반이 됐어요. 이쪽 삶도 중요해서, 포기하지 않을 거고. 돈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게 아니고 이 삶에서 얻는 의미들이 크기 때문에, 절대 놓지 않을 거고.

체력도 좋고 그럴 때는 문제가 없었어요. 저는 수능 한 달 전에도 공연했고, 인턴 레지던트 하면서 몇밤 며칠밤 새고 클럽와서 리허설 하고 한시간 자고 공연하고 막 그래었는데, 밤새 뒷풀이하고 들어가서 일하고, 지금은 그런데 여기에 결혼생활이라는 또 하나의 삶이 들어와서, 세가지를 동시에 운용하다보니까 힘든 부분이 분명 있어요. 육체적으로 현저하게 힘들어진 것도 있고, 정신적으로도 이겨내기가 힘든 게 있긴 한데, 그래도 그런 부분을 느끼면서도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아직 의지가 있어서."

- 소아과쪽으로 선택하신 건 본인 선택이셨나요? 
"제 선택이었죠. 의사 직종 중에서도 생명을 다루는 과와 생명을 다루지 않는 과로 크게 나뉘는데, 소아과는 생명을 다루는 과거든요. 피부과에서 죽지는 않지만 소아과는 내가 잘못하면 애들이 죽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소아과를 갈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정신과같이 음악적 커리어와 맞는 그런 걸 유지하고 싶었는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까, 그런 생명을 살리고 생명에 깊게 들어가는 것도 스스로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멘탈이 약해서 어른들이나 노인들이 죽어가는 걸 못보겠어요.

다른 과들은 어쩔 수 없이 쇠퇴하는 것들에 대해서 진료를 하게 되거든요. 당뇨라거나, 피부병이라고 해도 점점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것들, 노인성 질환들, 그런 건 제가 고쳐줄수 있는게 아니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거니까. 그런데, 소아과는 내가 약을 쓰고 하면 생명이 살잖아요? 신생아나 그런 애들을 내가 살리니까. 힘들지만, 그런 부분들이 크게 다가와서 선택하게 됐어요. 제 가장 큰 실수랄까..? (웃음)"

- 왜 실수세요? (웃음) 
"힘들어서. (웃음) 지금은 개업의는 아니고 봉급 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물론 지금도 위급한 케이스도 몇 건 다루고 하는데 예전처럼 입원 환자를 다루는 건 아니라서 병의 경중이 줄긴 했는데, 그래도 오늘 인터뷰하기 전까지도 아침에 나가서 일하고 온거고, 쉬긴 쉬는데 이틀 연달아 쉬는 것도 없고 해서, 저만 힘든 게 아니고 다들 힘든 게 있어요."

- 휴가는 따로 없으신가요? 
"휴가는 있어요. 휴가마저 없으면 못살것 같아서, 그건 분명하게 하는데, 휴가를 가기 전에 일이주를 연속 근무를 하고 간다던가, 메꾸는 식으로 하고 가야하긴 해요.

(일과 음악을) 병행해나간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긴 한 것 같아요. 저는 두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세마리가 돼서. (웃음) 그게 좀 힘든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도, 아직은 괜찮아요."

- 의사로 일하시는 게 직접적인 음악의 모티브로 나오시거나 할 때도 있으신가요? 
"그 스트레스가 나올 때는 있지만, 그게 모티브가 돼서 곡을 쓰거나 한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아요. 거기서는 일단 생각하는게 달라야 하니까. 의사를 하면서 비관적인 생각을 하거나, 슬픈 생각을 하는 건 안 맞기 때문에 그런쪽으로 나온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아요."

- 평소 곡 모티브는 어떻게 나오시나요? 
"저는 뭔가 찾진 않고 가만히 있으면 들어와요. 내가 한다고 생각안하고, 매번 인터뷰때 밝히는 건데 음악의 신이 나한테 하나하나 던져준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받기 위해서 내가 생각을 하고 몰두를 해야 오거든요. 가만히 있다보면 놓쳐요. 계속 연습하고, 생각하고 그러면 와서, 그걸 붙잡고 확장을 하는 식으로 작업을 해왔어요. 뭐에 대해서 '뭘 하자'고 생각하고 쓴 건 없어요. 왜냐면 그런게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뭘 하려고 하자고 생각하고 한 건 남들이랑 콜라보를 할 때나 영화음악을 만들거나 할 때. 근데 실제 내 음악에서 그랬던 적은 없어요."

 셀린셀리셀리느

셀린셀리셀리느ⓒ 강선영


- 아까 세 마리 토끼에 관해서도 얘기하셨는데, 결혼식 때 본인이 축가를 부르셨는데, 축가로 지금의 부인 분을 위해서 노래를 만들어서 불러주셨던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혹시 결혼생활을 통해서 이전과 음악활동 면에서 달라지신 부분들이 있을까요? 
"그건 있어요. 그런데서 곡도 많이 나왔어요. 확실히 뭐 어떤 다른 것보다, 내 인격적인 부분에서 일취월장하게 되는 큰 계기가 됐어요. 당연히 인격수양을 하려고 결혼을 한 건 아닌데, 결혼이란게 일단 전혀 다른 두 객체의 만남이기 때문에, 정말 힘든 것도 있고, 진짜. 생전 듣도보도 못한 힘든 것도 있는데, 그걸 통해서 배우는게 엄청 많고, 되게 경험으로 치면 이런 경험이 어디있을까, 싶을 정도로 진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힘들고 좌절스러울때도 분명 있어요. 근데 그게 극복이 되면 되게 해볼만한 경험이다, 싶고. 거기에 관해서 곡도 많이 나왔죠, 진짜로.

결혼 이후에 나왔던 곡들이 거의 그런 상황에 대한 노래들이 많고, 그 이후에 제 곡의 가사중에서 '우리'라거나 '너'라거나 그런 가사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죠. 그전에는 '나'라거나 '그'라는 식으로 제3자의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 그러니까, 꼭 부인분을 지칭한다기보다도 가사 안에서 관계에 대한 부분이 생긴거네요? 
"그렇죠. 그 사람을 투영해서 진짜 가까이에서 바라본 인간 객체에 대한 경험이 생긴거죠. 그게 인생에서 의미가 있죠. 몰랐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이제 알았기 때문에. (웃음)"

- '최근의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곡을 골라서 라이브 영상을 찍기로 했었는데 '유감'을 골라주셨습니다. 그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게 우리 부부생활에서 나온 곡이기도 하고 해서. 그리고, 저 스스로는 내가 처음으로 남에게 어떻게 하자, 고 권유하는 곡인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는 내가 생각한 어떤 스토리나,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 거라면 이 곡은 "우리 이렇게 하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고, 물론 우리 부부관계에서 나온 이야기이긴 하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리고 요즘 갈등이 많은 시대이고, 사람들의 생각들도 대립이 많잖아요. 정권이 넘어가기 전에도 싸움이 많았고, 요즘은 그동안 쉬쉬하던 사회갈등이 다 치고 나오는 상황인데,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한 사람의 뮤지션과 인간으로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 노래이기도 하고. 그런 노래가 사실 나한테 없었으니까, 그런 노래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곡을 하고 싶었어요."



- 최근에 본인 음악 말고 즐겨들으신다거나, 추천하고 싶으신 음악이 있으신다면? 
"요즘 음악을 많이 안 들어서.. 멜론에서 요즘 찾아듣고 좋다고 생각한 노래들은, 전부 대중가요들이에요. '크러쉬'라는 가수랑 '재휘'라는 작곡가의 'Dear Moon'이라는 노래가 너무 천재적인 메이킹이라서. 이런 고급스러운 걸 원래 좋아하는 것 같긴 하고, 옛날에 '노리플라이'를 들었을 때 충격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체로 찾아서는 잘 안들어요. 미군방송 AFKN 라디오 틀어놓고 출근하고, 그래요."

- 본인의 음악 중에서 추천하시고 싶은 노래를 3곡 꼽아주세요. 
"일단 저는 2집에 있는 '가난한 마음', 왜냐면 저는 그 노래가 참 좋거든요. 그리고, 1집의 '외팔소녀'도 '이런 노래를 내가 또 언제 써보지'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고민'이라는 노래도 아주 꾸밈없이 쓴 노래라서 애착이 가요."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공연, 음반 등)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지금처럼 그냥 쭉 가늘고 길게 공연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끔 한 달에 한번씩 날 불러줘서 공연하고, 나는 나대로 음악하고, 그러면 됐어요."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작업자.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중. 솔로 뮤지션 활동 외에도 엠비언트 포크 성향의 몽환적인 사운드의 듀오 '유레루나' 활동도 병행중이다.

  • 최신기사
  • inter:view 다른 기사

  • 옆으로 쓸어 넘길 수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