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미인> 막이 오르기 전 무대 모습. 1930년대 극장을 본딴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뮤지컬 <미인> 막이 오르기 전 무대 모습. 1930년대 극장을 본딴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조해람


한국 대중음악사의 가장 빛나는 이름, 신중현! 그의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 <미인>이 지난 15일 개막했다. '미인', '커피 한 잔', '아름다운 강산' 등 한국인의 영혼에 각인된 굵직한 명곡들에 스토리텔링을 입혔다니, 팬으로서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었다. 화려한 뮤지컬로 재탄생한 전설을 만나보기 위해 지난 6월 29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을 찾았다.

일찌감치 모여든 관객들의 얼굴엔 설렘과 흥분이 가득했다. 모두가 신중현의 음악에 울고 웃던 각자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관객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나이 지긋한 노부부부터 추억으로 삼삼오오 묶인 중년 관객들, 엄마 손을 잡고 전설을 만나러 온 어린아이까지 모두가 신중현의 이름 아래 모였다.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신중현의 음악, 그 영원한 울림을 증명하는 풍경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고 이내 막이 올랐다.

꺾이지 않는 것들의 이야기


 뮤지컬 <미인>의 스틸 컷. 강호(정원영 분)와 후랏빠 시스터즈(백예은, 박시인 분)

뮤지컬 <미인>의 스틸 컷. 강호(정원영 분)와 후랏빠 시스터즈(백예은, 박시인 분)ⓒ 홍컴퍼니


뮤지컬 <미인>은 일제 강점기의 철없는 변사 '강호'의 성장담을 그린다. 스타 변사 강호의 삶은 단순하다. 재미나게 영화를 해설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즐길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모의 여성 시인 '병연'에게 한눈에 반하면서 강호의 인생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병연은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형 '강산'과 동네에서 유명한 주먹 '두치' 등과 함께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몰랐던 강호의 의도치 않은 실수로 모두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형이 감옥에 갇히고, 사랑하는 병연이 도망자 신세가 되자 강호는 좌절한다. 그렇게 강호는 시대에 눈을 뜨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 영화와 음악을 통해 강호는 저항의 불씨를 당긴다. 장난꾸러기 강호가 역사의 비극을 깨닫고 민족을 위한 예술가로 성장하면서 극은 절정으로 나아간다.

일제로부터 끈질긴 탄압을 받는 강호의 모습에서 신중현의 음악 인생이 겹쳐 보였다. 독재정권을 찬양하는 곡을 만들라는 요구를 거절한 탓에 신중현은 커리어의 절정기를 '금지'로 점철해야 했다. 사회 비판이라 보기는 어려운 노래들이었지만 정권은 '향락', '퇴폐' 등의 이유를 들어 그의 음악을 금지했다. 급기야 악명 높은 '대마초 파동'에 엮여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음악활동 전체를 금지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의 명곡들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전해지며 살아남았다. 밟으면 밟을수록 끈질겨지는 풀처럼 신중현의 음악은 압제를 견뎠고 끝끝내 승리했다. 억압의 시대를 살아간 모든 이들의 심장 속에서 그의 음악은 뛰었던 것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멋진 상상력과 아름다운 음악으로 <미인>은 강호의 삶 속에 예술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녹여낸다.

"아, 이 노래!" 귀가 즐거운 뮤지컬

 뮤지컬 <미인>의 스틸 컷.

뮤지컬 <미인>의 스틸 컷.ⓒ 홍컴퍼니


재미와 감동을 모두 잡는 탄탄한 스토리, 그 울림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은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신중현의 명곡들이다. 흔히 '주크박스 뮤지컬'의 단점으로 '스토리와 곡의 부조화'를 지적한다. 음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한계다. 그러나 뮤지컬 <미인>의 절묘한 선곡은 그런 우려를 시원하게 걷어낸다. 이야기의 흐름과 인물의 감정에 딱 들어맞는 노래를 딱 들어맞는 지점에 배치한 감각이 일품이다.

특히 신중현의 명곡들을 극의 맥락에 맞게 다양한 개성으로 변주한 음악감독 김성수의 편곡이 훌륭했다. 현대적인 터치를 거친 대표곡 '미인'의 흥겨움은 청중의 뜨거운 박수를 얻었다. '커피 한 잔'이나 '님아' 등이 1930년대라는 배경에 어울리는 빅밴드 스윙 풍으로 되살아났고, '봄비'는 비장한 오케스트라를 만나 한층 애절해졌다. '꽃잎', '빗 속의 여인', '늦기 전에' 등의 명곡들 또한 적절한 편곡으로 극중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아름다운 강산'은 가슴 뜨거운 합창으로 클라이맥스를 책임졌다.

원곡과 전혀 색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곡들도 있었다. 유머 넘치던 '꽁초'는 서스펜스의 옷을 입었고,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은 몽환적인 분위기로 다시 태어났다. 심지어 '떠도는 사나이'는 섹스 피스톨즈의 오마쥬가 들어간 화끈한 펑크 록이 되기도 했다. 장르의 벽을 넘나들었던 거장 신중현처럼, 뮤지컬 <미인>의 음악도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으며 관객에게 듣는 즐거움을 선물했다.

신중현, 대한민국의 사운드트랙

 뮤지컬 <미인>의 스틸 컷.

뮤지컬 <미인>의 스틸 컷.ⓒ 홍컴퍼니


좋은 뮤지컬은 이야기와 음악의 힘을 모두 갖춰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미인>은 좋은 뮤지컬의 조건을 갖춘 멋진 작품이다. 한국인의 삶에 뿌리내린 신중현의 음악과 변사 강호의 감동적인 성장서사가 뮤지컬의 무대 위에서 멋지게 손을 잡았다. 화려한 안무와 세심한 무대 연출에 눈이 즐겁고, 배우들의 훌륭한 가창력과 매력적인 편곡에 귀가 즐거웠다. 눈과 귀가 즐거우니 자연스레 마음도 빼앗겼다. '미인'의 기타 리프를 흥얼거리며 극장을 나서는 길엔 비슷한 콧노래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신중현이 미 8군 무대에서 데뷔한 뒤 어언 6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끊임없는 혁신으로 자신을 담금질하며 그 긴 세월 결코 멈추지 않은 한국 음악의 거장 신중현. 그는 오늘날 한국 대중음악의 주춧돌이고 기둥이며 대들보다. 뮤지컬 <미인>은 그런 그의 음악을 눈과 귀로 느끼는 잊지 못 할 시간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사운드트랙, 신중현의 음악을 만나보자.

같은날 서울 홍익대 대극장 대기실에서 정원영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변사 강호 역할을 맡은 배우 정원영씨와의 일문일답이다.

 뮤지컬 <미인>의 합창 장면.

뮤지컬 <미인>의 합창 장면.ⓒ 홍컴퍼니


- 뮤지컬 <미인>은 어떤 작품인가요?
"1930년대, 조선이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암울한 시대 속에서 자기 자신만 긍정적으로 살아가던 최강호가 독립운동을 하던 친형과의 어떤 사건을 통해 각성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나라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래로 무엇을 해야 하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하며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만들어가게 되는 최강호의 '성장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 배우로서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제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변사'라는 캐릭터에 어떻게 다가갈까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많은 자료를 찾아봤는데, 지금 기준으로 그 시대 변사들이 연기를 '사실처럼' 하지는 않았더라고요. 여자 목소리를 여자처럼 내지 않거나. 그래서 변사라는 직업의 의미에 집중하기로 했죠. 특히 지금의 정원영이라면 관객에게 무성영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신중현 선생님의 음악을 더 깊게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들으셨나요?
"신중현 선생님의 '봄비'를 국카스텐이나 신용재씨의 커버곡으로 접해 왔어요. 가사가 구슬픈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김추자 선생님의 '봄비'를 들었는데 춤을 추면서 부르시더라고요(웃음). 참 노래가 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인>에서도 많은 노래가 김성수 음악감독님을 통해 편곡이 되었는데, 신중현 선생님의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굉장히 자유분방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가사에 매여서 슬픈 노래를 슬프게 불러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또 '거짓말이야'처럼 스토리보다는 반복 위주의 가사가 많고, 신중현 선생님의 기타 솔로가 들어가는 것 등이 요즘 노래와 다른 매력이 있었어요."

 공연 1시간 전, 배우 정원영(강호 역)을 대기실에서 만났다.

공연 1시간 전, 배우 정원영(강호 역)을 대기실에서 만났다.ⓒ 조해람


- 가장 마음에 든 곡이 있다면?
"저는 원래부터 '봄비'를 좋아했어요. 장사익 선생님 버전까지 들어봤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누가 부르고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서 카멜레온처럼 매력이 달라지는 노래 같아요. '봄비'가 가장 좋습니다."

- 극 준비 과정에서 신중현 선생님이 찾아오신 걸로 아는데, 직접 뵌 느낌은 어땠나요?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그 작은 체구에서 나온 아우라에서 모두가 순간 침묵이 왔죠. <미인>은 음악이라는 장르가 극 장르로 이어진 작품인데, 신중현 선생님으로 인해 우리가 뮤지컬을 하게 된 점이 정말 영광이었고 또 감사했습니다. 배우라는 직업으로 예술을 하는 입장에서 신중현 선생님의 음악은 좋은 자극과 영감이 되었고, 이런 분이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선생님을 모시고 짧게 시연을 보여드렸는데, '아빠 미소'로 정말 만족하며 봐 주셔서 기뻤습니다. 아, 스테파니씨(병연 역)가 저보고 신중현 선생님과 느낌이 비슷하다고도 하셨어요(웃음)."

- <미인>을 보고 가는 관객들이 이것만큼은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있다면?
"마지막에 '아름다운 강산'을 부를 때 보시는 분들도 가슴이 뜨거워졌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강산'은 가슴에 작은 태극기를 심어주는 곡 같아요. 공연 연습 중에 집중이 흐트러질 때가 가끔 있어도, 그 노래만 부르면 다 같이 울컥해지면서 다시 집중하게 되는 그런 게 있었거든요. 그 노래가 주는 가슴 뭉클한 뜨거움, 얼마 전 독일과의 월드컵 경기에서 느낀 것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웃음). 그런 뜨거움을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뮤지컬 <미인> 관람정보]
일시: 6월 15일 ~ 7월 22일
장소: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관람시간: 화, 목, 금 8시/수요일 3시, 8시/주말 2시, 6시 (월요일 공연 없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과 채널예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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