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처음에는 부족하고 서툴지만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하게 마련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성공조차도 단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영화계에서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했다. 계속해서 비범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거장들의 첫 영화는 그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을까? 그래서 현재 생존해있는 70세가 넘은 거장들의 첫 영화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들은 과연 떡잎부터 달랐을까?" - 기자 말

*주의!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유니버설 텔레비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데뷔작 <듀얼>은 정체불명의 트럭에 쫓기는 운전자의 불안과 공포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트럭 장면이 러닝 타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영화는 악당의 얼굴과 그가 주인공을 집요하게 쫓는 이유를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달리 플롯이랄 게 없는 이야기에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기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쫓는 자가 있고 쫓기는 자가 있는데 그 이유는 알 수가 없고 가슴은 졸이니 관객으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운전석에 앉은 데이비드 만(데니스 웨버)의 시점 샷에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도심을 지나 한가로이 외곽 도로를 가르는 그의 빨간 승용차에서는 라디오 사회자와 청취자간의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그들의 말에 추임새를 넣어가며 양 손으로 핸들을 잡은 데이비드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경직되어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서 내리 쬐는 강렬한 햇빛은 경쾌함 대신, 광활한 도로의 스케일과 함께 뭔지 모를 불안감을 심어준다.

거대한 트럭이 매연을 뿜어내며 느린 속도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자 데이비드는 트럭을 추월해서 지나간다. 세차를 한 적은 있을까 의심이 들 만큼 더러운 트럭은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고 불길하기까지 하다.

갑자기 속력을 높여 데이비드를 추월한 트럭은 그를 골탕이라도 먹이려는 듯 다시 속력을 늦춰 데이비드의 앞을 가로막는다. 처음에는 단지 조금 고약한 트럭 운전수인가보다 했던 데이비드는 시간이 갈수록 목숨에 위협을 느끼고 트럭 운전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의 노력은 번번이 헛수고로 돌아간다.

여행길에 오른 한 가장 앞에 나타난 트럭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유니버설 텔레비젼


데이비드는 평범한 백인 중산층 가정의 가장으로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여행길에 올랐으며, 소심하고 조금 신경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과 크게 구분할 수 있는 특이점이 없을 만큼 그는 평범하며 그가 트럭 운전수의 위협에 대처하는 방식 또한 특별할 게 없다.

트럭 운전수는 누구이며 왜 데이비드의 목숨을 위협하면서까지 괴롭히는 것일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데이비드의 불안과 공포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극대화된다. 처음에는 좀 별난 사람이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인가 궁금해 하면서도 괜히 더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웬만하면 조용조용 넘어가자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트럭 운전수의 위협은 단지 데이비드를 겁주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를 진짜로 죽일 수도 있다는 공포까지 그 강도를 높여간다.

'내가 몇 번 추월했다고 열 받았나?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하잖아. 미친 사람이면 어떡하지?' 데이비드는 트럭 운전수에 대한 나름의 추리를 하지만 이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아내를 모욕한 남자에게 주먹질은 고사하고 따끔한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남편이고, 그 일 때문에 아내와 싸운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전화로 사과하는 소심한 남자다. 트럭 운전수의 도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그의 행동은 골치 아픈 일에는 말려들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당연한 일일 것이다.

거래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지만 관객은 데이비드의 목적지가 어디까지 인지 모른다. 한가롭다 못해 지루해보이기까지 한 길은 그의 인생과 다를 바 없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의 연속에서 데이비드는 차를 돌릴 수도 없고 옆길로 빠져 나갈 수도 없다. 소심한 중년 남자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불안은 정체불명의 트럭에 의해 발현되고, 자신의 불안을 마주한 남자의 극복 방법은 점점 과감해진다. 피할 수 없는 위협은 그의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결국 데이비드는 도움 없이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위협을 제거한다.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던 트럭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고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감정을 토해내는 데이비드의 모습에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날의 섬뜩한 경험이 과연 그를 바꾸었을까? 집으로 돌아간 그는 아내를 모욕한 남자를 혼쭐내 주었을까?' 이 모든 것이 끝이 나고, 관객은 소심한 남자의 변화가 궁금해진다.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 결과물 만들어낸 스필버그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유니버설 텔레비젼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영화는 서로에게 완벽한 이방인인 이들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오직 쫓기는 자의 불안과 공포에 집중해 긴장감을 자아낸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따지고 인물들의 풍성한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이 영화에 그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에 불쑥 나타나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찰나의 긴장에 대한 90분짜리 실험극이라고 생각하면 이 영화의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저예산 TV용 영화로 제작된 <듀얼>을 통해 젊은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최소한의 것을 가지고 최대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듀얼>은 처음에 tv영화로 제작되었으나 그 결과가 좋아 후에 극장용으로 재편집 되어 극장에 개봉한다). 제한된 조건 안에서 그가 시도한 다양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인물의 배치는 극단적이지 않고 영상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신인 감독이 가질 수 있는 도전과 패기는 물론이고 프로 감독의 안정된 연출력도 엿보인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이 그러하듯 스필버그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일치하는 행운아다. 십대시절부터 8mm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만들었을 만큼 그는 영화를 좋아했고, 다른 사람들이 진로를 고민할 시기에 그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TV영화감독 계약을 했다. 25살에 <듀얼>을 완성하고, 1974년 28살에 <슈가랜드 특급>으로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으며(그는 원안에 참여했고, 각본은 할 바우드와 매튜 로빈스가 썼다) 1975년 <죠스>의 엄청난 성공으로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대중들로 하여금 '할리우드 감독' 하면 바로 그의 이름을 떠올리게 할 만큼 승승장구하며, 이제는 거장을 넘어서서 영화계의 거물이 되었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유니버설 텔레비젼


1980~1990년대 그의 작품들은 그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전에 본 적 없는 전혀 새로운 볼거리와 재미, 감동 모두를 충족시키는 명작들이다. 그는 1993년 <쉰들러 리스트>와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아카데미 영화제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기도 했다.

이 시절 그의 활약이 비현실적일 만큼 대단해서인지 2000년대 들어 감독으로서 그의 활약이 주춤 하다고들 하지만 2000년 이후 그의 연출작들을 살펴보면 스필버그는 역시 스필버그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오직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 그것에 대한 고민을 그가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는 것을 그의 작품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 추신. 지난 3월 개봉한 <레디 플레이어 원>이 6000억 원의 흥행수익을 내면서, 스티븐 스필버그는 지금껏 연출한 영화들의 총 수익이 11조를 넘긴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2018년 현재, 2편의 영화가 프리-프로덕션 단계에 있으며, <인디애나 존스>의 새로운 에피소드 제작이 결정되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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