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토론 프로그램이 인기였다. 밤 늦은 시간, 한 시간이 넘게 토론이 진행되는 데도 시청자들은 지켜보고 다음 날 토론 주제를 두고 회사나 학교에서 자기들만의 토론을 이어가곤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방송 후 큰 화제가 되는 토론 프로그램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이런 가운데 KBS는 <엄경철의 심야 토론>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최근 2회가 방송된 상황에서 방송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KBS 사옥에서 진행자인 엄경철 KBS 기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엄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토요일 황금시간대 방송, '공론장' 역할하려는 KBS의 포석"

 엄경철 KBS 기자

엄경철 KBS 기자ⓒ 이영광


- 오랜만에 방송 진행하잖아요. 물론 인터넷으로 파업할 때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그거와는 다르고요. 소감이 어떠세요?
"처음에 방송을 해야 된다고 했을 때 약간 조금 난감했어요. 지난 10년 동안 파업도 하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KBS를 바꿔보겠다거나, 언론이 다시 서야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왔어요. 그러다가 이제 '그런 기회를 줄 테니 해보라'라는 거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겁이 많이 났어요. 비판자로서 이야기를 할 때와는 달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과거에 했던 이야기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어서 겁이 많이 났고 걱정·우려도 많이 됐고요. 방송 자체의 기능적이고 테크니컬한 문제보다는 어떤 방송 내용을 가지고 잘 할 수 있을까란 측면에서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 미디어 환경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예전에는 그냥 일방적으로 하는 거면 요즘엔 거의 쌍방향인데 이런 흐름은 어떻게 보세요.
"제가 앵커를 했을 때가 2006년쯤이었는데, 그때와는 미디어 환경이 굉장히 변해서 훨씬 더 개방적이고 솔직하고 과감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겼잖아요. 환경은 바뀌었지만, 토론 프로그램은 형식이 새롭진 않거든요. 과거의 형식을 가지고 새로운 주제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과거 정통 형식으로 어떻게 차별화를 할 수 있을까가 큰 고민이고 책임이라고 봐요. 워낙 다양한 프로그램들, 팟캐스트들도 많고 그래서 거의 무차별 경쟁에 놓여있다고 봐요."

- KBS 토론 프로그램이 원래 토요일에 방송되다가 일요일 아침으로 갔다가 다시 토요일 밤으로 온 거잖아요. 일요일 아침과 토요일 밤의 방송시간대 차이는 뭡니까?
"사실 토요일 밤 10시 30분에 묵직한 토론 프로그램을 편성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KBS 내부에 토론 프로그램을 다시 살려보자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지요. 토요일 밤은 일요일 아침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집중도가 높고 관심도 많고, 시청률도 높아요. 토요일 밤 황금 시간대에 토론 프로그램을 배치하는 건 KBS가 '공론의 장' 역할을 하기 위해 제대로 가보자는 포석이 깔려있습니다."

- MBC나 JTBC에도 토론 있잖아요. 토론 프로그램에서 차별화하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차별화가 필요할 것 같아요.
"MBC, JTBC도 토론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서 차별화해야 하는데, 글쎄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다르기 위해서 달라질 필요가 있을까요. 그것보다는 '정통 토론 프로그램으로서 진지한 질문을 사회적으로 해보자, 용기 있게 해보고 내용으로 승부해보자'는 생각을 더 많이 갖습니다.

토론 프로그램을 아무리 차별화한들 예능이 아닌 이상 정통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요. 주제 선정이라든가 내용에서 가급적 성역 없이 용기 있게 모든 것을 다 꺼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해요. 또 가급적 더 깊게 더 들어가 보고, 다른 측면은 없는지 다각도로 조명해보고요. 그렇게 정통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굳이 차별화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고 저는 봅니다."

'길게 하는 토론'은 불필요? "KBS만이라도 진지하고 깊게 가야"

 <엄경철의 심야토론>

<엄경철의 심야토론>ⓒ 엄경철 제공


- 처음 마이크 앞에 섰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과거에 뉴스 진행할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긴장도가 높습니다. 70분 동안 진행하면서 패널 이야기 듣고 판단하고 끌어가야 하는 거잖아요, 뉴스는 정해진 큐시트에 따라서 매끄럽게 진행만 하면 되는데 토론 프로그램은 중간에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패널들이 어떤 발언을 할지 정확히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뉴스와는 비교가 안 되게 긴장도가 높아요. 반면 의외성이 있어 그런 게 주는 반전이 있기도 하죠.

첫날 진행하는데 사실 어떻게 진행했는지 생각이 안 들 정도 머리가 하얘졌었어요. 적응이 안 되고 이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순간순간 판단해야 하는데, 가끔씩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긴장되고 떨렸어요."

- 질문도 짜인 것만 할 순 없잖아요. 그때그때 답변에 따라 질문해야 하니까 어려울 듯해요.
"토론 발언자들이 어떤 말을 어떻게 끌고 갈지 모르잖아요. 의외성이 속출해요. 그럴 때 대응해야 하는데, 중요한 건 그 의외성을 우리 의도와 다르다고 잘라버리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거 같고요. 의외성 잘 살려서 프로그램을 풍부하게 만들어야죠. 가급적 패널들 의견을 잘 경청하고 제가 예상하지 못한 의미나 주목할 부분이 있는지 판단해서 토론 주제로 끌어들이는 작업이 필요하죠. 의외성이 중요합니다. 예상된 답변은 시청자 입장에서도 지루할 수 있거든요. 예상하지 않았던 어떤 부분을 꼬집어줄 때,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의미 있고 재미도 있고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중립을 지켜야 하잖아요. 그게 참 어려울 거 같아요. 생각이 있는데 그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방송 해야잖아요.
"어떤 사안에 대한 의견이나 가치관이 명확히 있죠. 그런데 토론 진행자가 자기 의견을 밝히는 자리가 아니고, 어떤 쟁점에 대해 찬성 반대 모두 듣는 자리여서 어렵죠. 그럼에도 토론 진행자는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아무리 우리 시대에 찬반 논란이 격렬하다고 하더라도 지켜야 될 선이 있다고 보거든요. 가령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 우리 사회가 공감하고 동의하는 어떤 지점에 대해선 명확하게 발언해야죠. 자유, 민주, 인권, 평화, 시장경제 등 다양한 가치들에 위배되는 발언은 과감하게 지적해야죠.

단순한 진행자가 아니라 그땐 선수로서도 이야기해야죠. 그 이외의 관점의 차이라든가 가치관의 차이·세대의 차이·계층의 차이로 인한 쟁점 부분은 마이크를 공평하게 드리고, 우리 시대가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지 보여줘야겠죠. 토론이라는 게 민주사회에서 공론의 장, 합리적 의견형성의 장이잖아요."

- 프로그램 처음에 인사할 때 패널 소개하고 옮기잖아요. 이유가 있어요?
"일단 심야 토론을 2년 만에 복원하는데, 어찌 됐건 형식에 있어서 작은 변화라도 주자는 거예요. 프로그램 도입 부분에 동적인 느낌을 주자는 게 제작진 생각이었어요. 토론 프로그램은 50~60대 중년 남성이 보는 스테레오 타입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한데, 바꿔서 조금 가볍고 자유로운 젊은 톤으로 가자는 공감대가 있었죠. 프로그램 앞부분에 서서 한마디 하고 입장하는 도입부는 일종의 장치죠."

- '길게 하는 토론 프로그램이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보세요?
"아픈 지적이죠. 시대 변화에 따라 호흡이 길고 지루한 토론 프로그램은 안 먹히고 짧게 예능성 가미한 프로그램이 잘 유통되고 받아들여진다는 추세에 동의해요. 그렇지만 한 문제를 진지하게 길게 하는 토론 프로그램이 불필요하다고 보진 않아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봐요. 다들 다르게 가더라도 KBS만이라도 진지하고 깊게, 정통 방식으로 가는 게 오히려 유의미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프로그램에 이름이 들어갔잖아요. 기존 < KBS 심야 토론 >에서 <엄경철의 심야 토론>으로 바뀌면서 본인 이름이 들어갔는데 부담스럽진 않았어요?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처음에 제작진에게 '나보고 어떡하라고 이름을 붙이느냐'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제작진에서 '이름 붙여 세게 가보자'고 했대요. 제가 결정하지 않아 뭐라 말할 수 없는데, 이름이 들어간 이상 '잘못하면 전 망하겠구나'란 생각에 눈앞이 캄캄합니다."

"찬성 많다고 큰 스피커 주면 소수의견 위축돼, 공평하게 발언할 수 있어야"

 엄경철 KBS 기자

엄경철 KBS 기자ⓒ 이영광


- 첫 방송 주제가 북미회담이었잖아요. 주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처음 방송 주제가 '북미 정상회담 성과 논란'이었는데요. 어떤 주제를 선정할까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그주에 지방선거와 북미회담이 있었는데, '지방선거가 훨씬 재밌고 얘깃거리가 많다'는 의견을 저도 제시했는데, 결국 '북미회담이 워낙 크고 무겁고 세계적 이슈이니 정공법으로 가자'고 한 거죠.

사실 토론 주제 선정이 가장 힘듭니다. 지난주엔 제주의 예멘 난민 문제를 가지고 했는데 반응이 예상외로 뜨거웠습니다. 생각보다 시청률도 잘 나오고 문자가 그 전 주보다 서너 배 이상 들어오고. 의외죠. 거기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어떤 주제에 시청자들이 목말라하는지 잘 찾아내는 작업이 중요하죠. 항상 무겁고 큰 이슈만 다룬다고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죠. 사실 예멘 난민 이슈는 현재로선 지엽적이거든요. 그런데도 찬반이 엄청나게 뜨거워요. 그런 지점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서 심야 토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야 된다고 생각해요."

- 북미회담 토론회 때 관련 분야 전문가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유가 있나요?
"토론 프로그램의 한계이고 고민인데, 시청자들이 봐주는 프로그램을 해야 하잖아요. 어찌 됐건 일반인에 알려진 인물을 부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시청자 수가 너무 달라요. 봐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름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으로 섭외하게 되죠. 전문가 의원들이 있는데 생각보다 섭외가 안 되기도 하고 다른 일정 등이 있어서요. 패널 섭외가 쉽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지나치게 전문가를 고집하면 너무 전문적이고 디테일하게 토론이 진행된다는 거예요. 전문가주의로 흘러버리게 돼요. 일반인 고민 수준을 뛰어넘는 것을 말하게 돼 괴리감도 있어요, 전문성과 흥행성, 주목성을 잘 섞어 조화시켜야 하는 거 같아요."

- 토론 준비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은 어딘가요?
"기본적으로 월화수목금토일 하루 종일 시사 보고 신문 보고 인터넷 보고 책 보고 고민하는 게 일과가 됐습니다. 준비는 어떤 방식으로 하지 않고 고민할 주제가 나오면 자료 찾고 책도 보고 주변 분들에게도 물어보고, 어떻게 보고 고민해야 하는지 상담도 하고 그렇게 준비합니다."

- 토론 프로그램에서 시간 배분이 중요하잖아요. 시간을 오버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세요?
"보통 시간을 대부분 오버합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서 마이크를 주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느낀 건, 토론 패널들은 질문에 답하는 게 아니고 본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해요. 그래서 이제 취하는 방식은 제가 중간에 개입해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짧게 해주세요', '정리해주세요'라고요. 근데 길어 지는 게 의미가 있는 발언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냥 둡니다."

- 방송시간이 토요일 오후 10시 30분이잖아요. 주말에 남들 다 쉬는 시간인데 그 시간에 일하는 거잖아요.
"주말, 망했습니다. 처음 심야 토론 섭외가 들어왔을 때는 편성 시간대가 확정되지 않았어요. 어느 날에 할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몇 사람이 모여서 논의하면서 '방송 시간 결정 안 났다'길래 '주말엔 가지 말자'고 했어요. 너무 가혹하니 평일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관련 본부장도 알겠다며 가급적 주중에 하겠다고 했는데, 제일 피하고 싶은 시간대에 편성돼버렸어요.

어떤 느낌이냐면요. '월화수목금금금' 느낌이죠. 토요일에 방송이 끝나면 밤 12시쯤입니다. 제작진하고 방송 끝나고 간단하게 맥주라도 한잔하고 집에 가면 새벽 2, 3시입니다. 그다음 날 일요일에 쉬어도 쉬는 느낌이 안 들어서, 머리가 아픕니다. 체력 관리를 잘해야 된다 싶기도 하고요."

- 방송 마무리 부분에 문자 소개하잖아요. 근데 반반씩 소개하더라고요. 문자가 온 비율이 5대5 올 때도 있겠지만 어떨 때는 6대4로 올 때 있을 거란 말이죠. 근데 소개는 5대5로 하면 시청자들은 '실제 여론이 5대 5인가 보다'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정확한 지적입니다. 실제 찬반 여론 지형이 정확하게 5대5는 아니거든요. 근데 문자를 소개할 때 가급적 5대5로 하죠. 이게 당장은 왜곡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예멘 난민 수용은 여론을 보면 반대가 조금 많습니다. 근데 반대가 많다고 반대에게 스피커를 60을 주고 찬성에 40을 주는 게 공평한 거냐 생각하면, 여론은 또 바뀔 수 있거든요.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론으로 재판을 하는 게 아니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될 부분이기 때문에, 찬성 많다고 반대 많다고 더 큰 스피커를 주면 소수 의견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납니다. 소수도 정의로울 수 있고 옳을 수 있잖아요. 옳고 그름의 길을 찾는 데 있어서는 다수건 소수건 가급적 발언은 공평하게 하고 판단은 자유에 맡기는 거죠. 고민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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