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토피아> 포스터.

영화 <주토피아>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월트 디즈니가 살아있을 때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황금기를 보냈지만 1966년 중반 그의 사후 오랫동안 부침을 겪는다. 1990년대 들어서야 디즈니는 부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디즈니 역사상 최고의 르네상스를 구축한다. 당시 나온 모든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지금까지 고전 명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디즈니는 2006년 픽사와 합병하고 애니메이터 감독 존 라세터가 돌아와 스튜디오를 진두지휘하면서 또 한 번 르네상스를 열었다. 영화 <주토피아>(2016)는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다. 최소한 디즈니의 두 번째 암흑기와 제2의 르네상스 시대를 통틀어 최고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주토피아>는 현 시대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스로에게 던지는 우화다. 애니메이션으로서의 기술적 측면과 스토리, 캐릭터는 물론 수준 높은 주제의식까지 두루 완벽해 보인다.

'멍청하고 약해 빠진 토끼'에게 주어진 임무

 <주토피아>의 한 장면.

<주토피아>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토끼 주디 홉스는 부모님은 물론 주변 동물들의 반대와 멸시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토끼 경찰을 꿈꾼다. 그는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향으로부터 340km 떨어진 곳에 있는 위대한 도시 '주토피아'로 향한다. 그곳은 동물들의 이상향으로 '누구나 뭐든지 될 수 있다'는 도시다. 주디는 우여곡절 끝에 주토피아 경찰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최전선 제1구역에 배치된다.

주디에게 떨어진 임무는 고작 주차 단속. 경찰 학교 수석이지만 다른 동물들은 그를 약한 '토끼'라고만 생각했다. 그럼에도 주디는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며 열심히 주차 딱지를 끊는다. 어느 날 수달 오터톤 부인이 남편 실종 건으로 찾아온다.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질 사람이 아닌데, 실종된 지 열흘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주디는 수달 부인을 돕겠다고 선뜻 나선다. 서장은 그에게 48시간 동안 찾을 것을 명령하고 그렇지 못할 시 주디에게 경찰복을 벗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주디는 곧 단서를 찾아내는데, 하필 그 단서의 시작점은 일전에 안면 있는 사기꾼 여우 닉 와일드였다. 주디는 닉에게 당한 뒤통수 치기를 이용해 꼬드겨 수사를 진행한다.

더할 나위 없는 장르물

 <주토피아>의 한 장면.

<주토피아>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주토피아>는 그 자체로 해석의 여지가 필요 없이 훌륭한 장르물이다. 초짜 경찰이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분수에 맞지 않는 사건을 맡아 아무런 지원 없이 홀로 나선다. 게다가 파트너가 경찰이 아닌 범죄자라는 점 역시 콤비 범죄물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콘셉트다. 그걸 애니메이션으로 위화감 없이 그려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퀘스트를 완료하듯 하나 하나 실마리를 풀어내는 진행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영화적 재미라는 한 마리 토끼를 이쯤에서 완전히 손에 쥔 격이라 하겠다. 여기에 주인공들이 사람 아닌 동물이라는 게 화룡정점이다. 애니메이션으로서, 장르물로서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캐릭터성을 동물보다 더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특히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에서 가장 약하지만 가장 귀여운 토끼가 동물들의 낙원인 주토피아를 지키는 경찰이 된다는 설정은 교훈이나 감동을 차치하고서라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주인공의 성장과 그 과정에서 벌어질 좌충우돌이 기대되는 것이다.

토끼와 콤비를 이루는 동물은 여우다. 여우는 동화 속에서 주로 미움을 받는 동물이다. 영화에서 토끼가 의외의 캐릭터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여우는 편견 그대로의 직업(?)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주토피아>가 주는 영화적 해석은 바로 그들, 토끼와 여우에게서 비롯된다.

차별과 편견에 대한 우화

 <주토피아>의 한 장면.

<주토피아>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주토피아>는 영화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재미를 전한다. 캐릭터와 배경과 대사 모두 인간 세계에 대입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뭘까. 편견과 차별에 관한 이야기, '멍청하고 약한' 토끼와 '비열하고 믿을 수 없는' 여우. 그들은 주변의 시선 때문에 세상을 지키거나 더 좋은 일을 할 수 없었다.

차별 이전에 편견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도 '약자'라고 분류되면, 스스로가 아닌 타의에 의해 한계가 정해진다. 오랜 시간 고착된 편견은 명백한 차별로 나아간다. 돌이키기 쉽지 않다.

영화는 여기에서도 한 발 더 나아가,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뿐만 아니라 '강자에 대한 역차별'까지 다뤘다. 여우를 주요 캐릭터로 내세운 것에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주토피아에서 여우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우는 강자에 속한다. 그래서 여우는 '비열하고 믿을 수 없다'는 편견을 이겨내지만, '강자(육식동물)는 무조건 난폭하니 격리해야 한다'는 차별을 이겨낼 순 없었다. 영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차원적인 편견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차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충격을 줄 수 있는 교훈이었다. 차별과 편견의 주체가 강자가 아닌 약자가 될 수 있다니. 영화 속에서 대표적 약자인 양을 위시한 '많은 약자들'이 '몇몇' 강자를 궁지로 모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영화의 반전에 해당하는 이 부분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다.

개봉 당시에도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으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주토피아>는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는 편견 또한 가볍게 부숴버린다. 애니메이션이 어른들을 위한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세상엔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혹은 외면했던 차별과 편견이 부지기수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명백하다 못해 완벽한 우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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