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말

바쁜 일상 속에서 숨 가쁘게 지내다 모처럼 만난 한가한 주말. 오랜만에 방 청소라도 해볼 생각으로 구석구석을 살피다 우연히 어릴 적 일기장이나 앨범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오래된 사진첩과 일기 속 철없던 어린 시절을 만나다보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동시에 지금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진짜 나인지 궁금해지곤 한다.

2017년 봄 발표한 김나영의 '어른이 된다는 게(작사 한밤, 김나영 작곡 한밤)'와 지난 5월 발표된 볼빨간 사춘기의 새 앨범 < Red Diary Page2 >의 수록곡 'Clip(작사 우지윤, 작곡 우지윤)'은 변해가는 나를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정서를 담고 있다. 그런데 삶을 바라보는  두 곡의 시각은 사뭇 대조적이다. 'Clip'과 '어른이 된다는 게'를 통해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살펴본다.

변해버린 나를 발견하다

볼빨간사춘기 볼빨간사춘기(안지영, 우지윤)가 8개월 만에 새 앨범 < Red Diary Page.2 >로 컴백했다. 이를 기념해 이들의 쇼케이스가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렸다.

▲ 볼빨간사춘기 볼빨간사춘기(안지영, 우지윤)가 8개월 만에 새 앨범 < Red Diary Page.2 >로 컴백했다. 이를 기념해 이들의 쇼케이스가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렸다. ⓒ 쇼파르뮤직


두 곡 모두 시간의 흐름 속에 달라진 나를 발견하며 노래를 시작한다. 먼저 김나영은 '받아쓰길 잘하는 게 더 이상 자랑이 아니게 되고, 키는 한 참 더 자랐는데 자랑할 일은 사라지네'라고 노래한다.

정말 그렇다. 아이들은 받아쓰기 100점 맞은 걸 큰 소리로 자랑하고, 키 재기 자의 눈금이 한 칸 올라갈 때마다 무척이나 뿌듯해한다. 우연히 받은 사탕 하나, 초콜릿 하나를 보물처럼 간직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은 이런 자잘한 일들이 더이상 기쁘지 않다. 김나영은 어른이 되어 느끼지 못하는 작은 행복을 아쉬워하며 쓸쓸한 마음을 노래한다.

반면 볼빨간 사춘기는 살아가면서 변화해가는 모습들을 좀 더 일반적인 것으로 다룬다. '사람들은 살면서 취향이 바뀐대. 예를 들면 향수, 집에 들이는 가구를 볼 때도 말하는 투도 그렇지'라고 말이다. 좋아하는 것들, 말투 등이 달라지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노래하는 볼빨간 사춘기에게 어린 시절의 나와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다른 것은 자연스런 변화다. 때문에 볼빨간 사춘기는 지나간 모습을 슬퍼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가볍게 'Clip' 하며  기억해둘 뿐이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전능감

변해가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는 시선에도 반영된다. 김나영은 어른이 되어 잃어버린 것에 대해 노래한다. '차를 타고 달릴 때면 날 따라오던 별들도 이젠 빛나질 않고 키는 한참 자랐는데 왜 하늘은 점점 높게만 느껴지는지'는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전능감의 상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

대상관계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신생아는 엄마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전능감을 만끽한다. 아기가 배가 고프면 엄마는 마법같이 나타나 젖을 주고 아기가 필요한 것들을 해결해 준다. 엄마와 내가 분리된 존재임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아기들은 이런 욕구들이 내가 원하면 저절로 충족된다고 믿는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기들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확장된 자아를 갖게 된다. 하지만, 자라면서 엄마와 내가 분리되어 있으며, 나의 모든 욕구가 충족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차차 깨닫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상에서 자잘한 좌절들을 경험하면서 현실적인 자아를 만들어 가고 어른이 되어 간다. 

때문에 김나영의 노래처럼 어린 시절에는 별들도 나를 중심으로 따라오는 것 같고, 하늘에도 닿을 수 있을 것처럼 느낀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기중심적인 확장된 자아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자라면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면, 별들이 나를 따라오고 있는 것이 아님을, 하늘은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할 때 사람들은 종종 나의 존재가 보잘것없고 연약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모두들 날 보고 다 컸다 하는데 왜 나는 자꾸 작아져만 가는지'라는 소절은 이런 과정을 담고 있다.

얻게 된 감정조절 능력 그리고 넓은 시야

 가수 김나영

가수 김나영 ⓒ 네버랜드엔터테인먼트


한편, 볼빨간 사춘기는 어른이 된 후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을 이야기한다. '어렸을 때는 무서웠고, 커버린 지금은 괜찮은 척을 하고 있는 어린 아이' '입가를 쓰다듬을 수도 있게 됐어' 라는 구절은 어른이 되어 나 자신을 보다 잘 조절할 수 있게 되었음을 상징하는 표현들이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 무섭거나 슬프고 화가 날 때 그 감정의 이름을 알지 못한 아이들은 울고 떼쓰는 것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언어를 획득해가면서 또 보호자가 붙여주는 명칭을 통해 감정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아이들은 점차 감정을 언어로 인식하고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울지 않고 '무섭다' 혹은 '슬프다'고 말하면서 무서운 감정과 슬픈 감정이 다르다는 걸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말로 감정을 표현했을 때 위로받고 공감 받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타당화하면서 동시에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게 된다.

더 나아가 점차 사회적 상황에 맞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고 때로는 마음속으로는 어린아이처럼 무섭더라도 '괜찮은 척' 하는 법도 터득하게 된다. 또한, 보호자가 자신을 위로해준 경험들을 내면화하면서 '입가를 쓰다듬으면서' 스스로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자기위로의 능력도 갖추게 된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 얻게 되는 면들에 초점을 둔 볼빨간 사춘기는 시야가 넓어진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한 곳에 빠져있던 난 전체의 풍경도 볼 줄 알아'라고 노래하면서 말이다. 한 곳만 볼 줄 아는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인 속성을 갖는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인양 믿고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다. 하지만, 점차 현실적인 자아를 갖게 되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아닌 타인의 시각으로도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김나영은 현실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천진하고 전능했던 순수한 자아의 상실로 노래했지만, 볼빨간사춘기는 반대로 넓은 시야의 획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라진 어린 시절의 나 vs. 어디든 있는 어린 시절의 나

두 노래의 이런 시각의 차이는 '진짜 나'를 자각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을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나를 잃는 것으로 여기는 김나영은 '사람들은 날 어른이라고 하는데 나 아닌 것들만 점점 늘어가'라고 노래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아무 계산 없이 웃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지금은 사라졌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때문에 김나영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알았던 나인 걸까'라며 의문을 던진다. 이렇게 내가 나로 살지 못한다는 인식 아래서 '슬퍼도 웃어야 하는' 어른으로서의 삶은 '참고 또 참으며' 살아야 하는 힘든 일상이 된다.

반면, 어른이 되어 달라진 모습을 당연하고도 긍정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볼빨간 사춘기는 '전부 잃어버린 게 아니고 어제 본 영화처럼 clip'이라고 의미심장하게 노래한다. 어제 본 영화는 이미 끝나버린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의 생생한 장면들은 점점 잊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영화를 봤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경험한 정서들 역시 기억 깊숙한 곳에 저장된다. 이 소절은 우리의 어린 시절이 실제로는 우리 내면에 깊숙이 저장되어 있음을 매우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경험한 것들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정서와 신체감각의 형태로 우리 내면에 저장된다.

때문에 볼빨간 사춘기에겐 '손톱이 따끔해 것 보다 긴장한 말썽쟁이' 같은 부끄러운 기억일지라도, '표현이 어려워 어쩌면 아팠을 말괄량이' 같은 아픈 기억이라도 '그 날의 그 일의 모든 나'는 소중한 추억이 된다. '삐뚤 빼뚤 글씨' 처럼 불안정했던 과거 역시 지금 나에게 영향을 미친 소중한 기억으로 살아있다. 내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은 'Clip'할 가치 있는 것이 된다.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 픽사베이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김나영이 노래하듯 어린 시절 마음껏 발산했던 나의 본래 모습을 숨기고, 세상에 맞추어 살아가며 '슬퍼도 웃어야'하고 '할 수 있는 말이 줄어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어른으로서의 삶은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라고 서로 위로하면서 '남은 내일'을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다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나의 과거가 모두 녹아 있다는 것이다. 볼빨간 사춘기의 노래처럼 내가 변화해 온 시간들은 '전부 잃어버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 천진했던 나, 방황했던 사춘기의 나, 청년기의 열정에 넘쳤던 나의 모든 모습들이 모두 축적되어 이뤄진 것이다. 그 때의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나영의 '사진 속 웃고 있는 아인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라는 질문에 볼빤간 사춘기는 이렇게 답한다. '그 날의 그 일의 모든 나' 속에 내가 있다고. 지나온 모든 날 속의 내가 'Clip' 되어 지금의 내가 형성된다. 나아가 오늘 살아낸 나의 모습은 미래의 내 모습에서 묻어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게 주어진 매 순간을 'Clip Little Clip' 해보면 어떨까? 이 'Little Clip'들이 이어져 결국 고유한 삶이 완성될 테니 말이다.

김나영 '어른이 된다는 게' 중에서
받아쓰길 잘하는 게
더 이상 자랑이 아니게 되고
키는 한참 더 자랐는데
자랑할 일은 사라져가네

차를 타고 달릴 때면
날 따라오던 별들도
이젠 빛나질 않고
키는 한참 자랐는데
왜 하늘은 점점
높게만 느껴지는지

사람들은 날 어른이라 하는데
나 아닌 것들만 점점 더 늘어가
모두들 날 보고 다 컸다 하는데
왜 나는 자꾸 작아져만 가는지

사진 속 웃고 있는 아인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어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슬퍼도 웃어야 하는 걸까

크면 다 알게 된단 말을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어
참고 또 참으며 하루를 사는 게
다들 말하는 어른이 된다는 걸까
(후략)


볼빨간 사춘기 'Clip' 중에서
사람들은 살면서 취향이 바뀐대
예를 들면 향수
집에 들이는 가구를 볼 때도
말하는 투도 그렇지 Clip

어렸을 때는 무서웠고
커버린 지금은
괜찮은 척을 하고 있는 어린 아이
입가를 쓰다듬을 수도 있게 됐어 Clip

한 곳에 빠져 있던 난
전체의 풍경도 볼 줄 알아
전부 잃어버린 게 아니고
어제 본 영화처럼 Clip Clip Little clip

손톱이 따끔해
것 보다 긴장한
말썽쟁이 같아
그 날의 그 일의 모든 나

Clip Little clip
삐뚤 빼뚤 글씨
Clip Little clip

(후략)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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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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