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영화 속 장면

▲ 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영화 속 장면ⓒ 코리아스크린


122분짜리 예고편.

나에게 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를 한 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겠다. 영화 제작/배급사에서 분류한 이 영화의 장르는 범죄 스릴러. 적절한 분류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게 극영화라고 하기엔 (물론 훌륭한 전편에 비해서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너무 엉성하다. 가장 적확한 내 분류는 예고편. 만일 예고편이라고 한다면, 그 길이로는 가히 '스릴러'라고 불러도 좋겠다.

무엇이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 몰입케 하냐고 묻는다면 너무 많은 답이 나오겠지만, 적어도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일반적인 극영화의 문맥을 파괴하는 메타적인 영화를 지향한다면 스토리텔링의 배제나 일그러진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거의 대부분의 영화에서 스토리텔링의 힘은 영화의 거의 전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막강하다.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는 스토리텔링에서 취약점을 드러냈다. 장르 특성상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가 표방한 것과 같은 범죄물과 스릴러물에서 스토리텔링은 더욱 중요해진다. 굳이 나누자면 이론상 범죄물에 스토리가, 스릴러물에 텔링이 더 중점이 주어진다고 편의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스토리와 텔링은 당연히 같이 가고, 같이 가야 한다.

촘촘한 짜임새와 묵직한 울림이 있는 스토리. 농담과 강약이 적절하게 배합된 텔링. 두 가지가 말 그대로 유기적으로 합쳐졌을 때 좋은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진다. 스토리텔링에 관한 이러한 대충의 정의에 동의하는 관객이라면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를 보고 이 영화가 스토리텔링에서 실패했다는 나의 진단에 동의하리라. 앞서 언급한 대로 이게 예고편이라면 반대로 매우 성공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다. 물론 길이는 빼고.

영화에서든 칼럼(소설이라도)에서든 스토리는 '대체로' 하나여야 하고, 판타지가 아니라면 설령 판타지라 하여도 '최종적으로' 관객이나 독자와 논리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픽션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특히 배경과 맥락의 공유가 매우 중요한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같은 범죄 스릴러물은 아인슈타인이 아니라 뉴턴적인 세계를 보여줘야 한다. 종국에 사과는 나무에서 떨어져야 하며, 예상할 수 있듯이 중력에 의거해 땅으로 떨어져야 한다.

온데간데없어진, 주인공 두 사람의 매력

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극중 조슈 브롤린(왼쪽)과 베니치오 델 토로

▲ 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극중 조슈 브롤린(왼쪽)과 베니치오 델 토로ⓒ 코리아스크린


이 영화는 자살폭탄 테러로 시작한다. 9r·11 이후 미국 사회에 자리 잡은 시대의 상흔을 영화로 활용한 사례는 많다. 기독교의 미국과 이슬람교의 중동 사이의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대립은 양쪽에서 각각 이따금씩 폭력으로 파열하곤 하는 국제정치의 지속적 현상이다.

전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무대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로 이어지는데 멕시코 후아레즈를 중심으로 한 전편의 장소성은 속편에서 덜 부각된다. 전편이 제목 자체에서 아예 '도시'를 특정한 반면 이번 영화에서는 '솔다도(군인)'라는 비(非)장소성을 내세웠기 때문에 덜 부각된 장소성이 흠결은 아니다.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는 국제정치의 현상과 국제범죄의 현상을 하나로 통합한다. 문제는 두 개의 현상이 따로 논다는 점이다. 압도적인 전편을 극복하기 위해 속편에서 범위를 확장했지만 확장의 욕심만이 앞서다 보니 촘촘한 연결이 끊어지면서 영화는 산만해지고 주인공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영화에서 스토리텔링은 불가불 캐릭터의 창조와 결부된다. 창조된 캐릭터는 납득할 만한 전형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해야 한다. 감독은 어떻게 하면 관객이 동감하고 매력을 느끼는 인물을 스크린 위에다 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베니치오 델 토로가 연기한 알레한드로라는 인물은 그러한 고민이 성공한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말하자면, 드니 빌뇌브 감독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빨간 사과가 나무에서 땅으로 낙하하는 모습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중심 인물인 알레한드로, FBI 요원 케이트 메이서(에밀리 블런트), CIA 요원 맷 그레이버(조슈 브롤린)가 유기적인 삼각형을 만들면서 각자의 판이한 세계관과 욕망을 아무런 이물감 없이 스크린에 담아낸다. 갈등과 불일치가 조화롭게 표현된다.

그러나 전편의 주연 세 명 중 두 명(조슈 브롤린, 베니치오 델 토로)이 다시 목격되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에서 주인공 두 사람이 전편에 보여준 매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특히 전편을 관류한 알레한드로라는 인물의 확고한 존재감은 속편에 와서 증발하고 만다. 유사 좀비라는 설정은 상상력이 빈곤할 때 마주할 영화적 참사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고 에밀리 블런트를 대신해 투입된 이사벨라 모너가 이러한 상실감을 벌충할 만한 무엇인가를 해내지도 못한다.

더 무자비하고 잔인한 영화가 된 <시카리오2>

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영화 속 장면

▲ 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영화 속 장면ⓒ 코리아스크린


이 영화의 각본을 쓴 테일러 쉐리던이 전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각본을 쓴 동일인물이란 사실을 믿지 못할 정도이다. 쉐리던은 어느 인터뷰에서 "속편으로 시카리오의 명성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전편에 비해 10배는 더 무자비하고 잔인한 각본을 썼다"고 말했다. 나는 쉐리던의 발언을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없었다. 억지로 찾아내자면 피와 살점을 생생하게 표현한 '유사 좀비'의 특수효과? 결과적으로 관객에게 더 무자비하고 잔인한 영화가 됐다.

결말을 맺는 방식 또한 여러모로 아쉽다. 영화를 보게 될 사람을 위해 자세히 소개하지 않겠지만, 만일 쉐리던이 이러한 방식을 열린 결말이라고 믿는다면 앞으로 본격 극영화보다는 예고편의 각본이나 쓰는 쪽이 훨씬 나을 것이다. 열린 결말은 있는 결말이며, 결말이 없는 것을 열린 결말이라고 일컫지 않는다.

물론 영화에 꼭 결말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땐 그게 결말이다. 화장지 없는 없는 화장실로 사람을 밀어넣고 문을 닫는 행위를 열린 결말이라고 우긴다면, 그건 몰취미다. 서두에 밝힌 대로 만일 이 영화가 122분짜리 예고편이라면 훌륭한 결말을 맺었다고 확언할 수 있다.

배급사에 따르면 북미 언론 시사회 이후에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은 "'넉다운. 솔리마 감독은 '시카리오'라는 작품을 훌륭하게 계승했다. 진짜 감탄했다"고 말했다. '시카리오' 시리즈의 바통을 이어받은 스테파노 솔리마 감독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은 빌뇌브 감독의 진심이 궁금하다.

<시카리오2> 음악, 전편과 유사하지만...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를 계승한 속편임은 내용상으로도 뚜렷하다. 영화 초반부에 조슈 브롤린이 슬리퍼 비슷한 걸 신고 등장한 장면이나, 납치라는 사건을 배치한 것 등 많은 유사점이 목격된다. 음악도 그렇다.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의 음악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음악감독 고 요한 요한슨이 추천한 힐두르 구드나도티르가 맡았다. 두 사람은 영화음악에서 15년을 함께 호흡을 맞춘 파트너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에서 전편과 유사한 분위기의 음악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음악이 극적 긴장감을 시의적절하게 고조한 전편과 달리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에서 음악은 관객에게 긴장을 무대포로 강요하는 느낌을 들게 했다. 어쩌면 이러한 불편함은 음악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영화가 전편에 비해 전체적으로 고르게 무너지면서 음악이 설 자리를 놓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차피 '시카리오' 시리즈는 최소한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다음 편까지는 나올 수밖에 없기에 긴 예고편이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이번 편을 거르고 곧 바로 다음 편으로 넘어가도 큰 지장은 없지 싶다. 개인적으로는 긴 예고편을 본 만큼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보여준 역량을 다음 편에서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27일 개봉했다.

덧붙이는 글 안치용 시민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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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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