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명실상부한 대세 래퍼가 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새 앨범 < DAMN >을 발매했을 때 이런 댓글을 본 적이 있었다.

"또 '김치 래퍼'들 켄드릭 형님 따라하느라 바쁘겠구만."

'김치 래퍼'란 한국 래퍼들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켄드릭의 음악이 좋으면 좋다는 얘기만 하면 될 것을, 굳이 국내의 아티스트를 비하해야 켄드릭을 추켜세울 수 있는건가. 의아했다. 실제로 힙합이 미국 본토에서 생겨난 뒤로 국내의 힙합 팬들은 상당히 자주 미국을 기준으로 해서 국내 래퍼들을 평가하곤 했다. 국가도 인종도 가치관도 서로 다른 기반에 놓여있는데 왜 굳이 '본토'라는 기준을 설정해놓고 열등감을 느끼는 걸까?

팬들의 이런 정서가 아티스트들에게 아예 영향을 안 줄 수는 없다. 힙합 팬 중 한 명으로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분위기가 굉장히 불편하다. 국가와 인종, 사회적 맥락을 소거하고 힙합을 소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서구권 미디어가 동양인 묘사하는 법, 아시안 래퍼가 겪는 차별

 덤파운데드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재교포 출신의 래퍼다. 이런 그의 정체성은 그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차지한다.

덤파운데드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재교포 출신의 래퍼다. 이런 그의 정체성은 그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차지한다. ⓒ 넷플릭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베드 랩>(Bad Rap, 2016)은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4명의 래퍼들을 조명한 작품이다. 다큐는 첫 아시안 래퍼로 '조너선 박'(Jonathan Park)을 이야기한다. 조너선 박은 '덤파운데드'(Dumpfounded)'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재미교포 래퍼다. 한국에서는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앨범에 참여하면서 한국 리스너들에게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이후에 어눌하지만 메시지는 분명한 한국말 랩을 통해 어필을 하고 있다.

"제가 공연을 할 때마다 동양인들은 그래요. '와, 저 자식은 제멋대로 다 내뱉네' 저 같은 동양인은 처음 본 것처럼 말이에요."

또 다른 아시안 래퍼인 아콰피나(Awkwafina)는 조너선 박, 혹은 덤파운데드에 대해 "덤파운데드가 잘 나가기 때문에... (그는) 우리(동양인 래퍼)가 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

다큐 속에서 덤파운데드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방송 진행자가 "한인타운에서 온 동양인 래퍼입니다!"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 '굳이 내가 동양인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양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정체성 아닌가. 그래서 덤파운데드는 재미교포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곡을 통해 자주 표출하곤 한다. 이렇듯 '정체성에 관한 아이러니를 당사자가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 <베드 랩>의 내용 대부분이라고 봐도 좋다.

덤파운데드와 다양한 힙합계 종사자들이 이야기하는 아시안 래퍼들에 대한 차별은 결국 '힙합 이전에 서구권 미디어가 아시안을 어떻게 묘사하느냐'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이제는 미국인이 아시안을 표현한답시고 손가락으로 눈을 양옆으로 찢으면 논란이 되겠지만 1980~1990년대 미디어는 아시아인을 우스꽝스럽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사람으로 자주 그려놨다. 그것이 '힙합하는 동양인'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래퍼 트래픽(Traphik)은 말한다.

"동양인 래퍼가 총질이나 갱 생활에 대해 랩 할 수 없어요. 아무리 진짜라고 해도요.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고 해도 (회사와) 계약을 하면 그런 랩을 못 해요. 사람들은 그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사람들이 믿질 않는다니까요."

'아시안 여성 래퍼', <오션스8>의 아콰피나가 말하는 현실

 아콰피나는 동양인이면서 여성이다. 이렇게 이중적으로 차별받는 곳에서 그녀는 랩을 하고자 노력한다.

아콰피나는 동양인이면서 여성이다. 이렇게 이중적으로 차별받는 곳에서 그녀는 랩을 하고자 노력한다. ⓒ 넷플릭스


위에서 언급했던 아콰피나는 중국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이민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심지어 여성이기까지 하다. 그저 래퍼일 뿐인데 세상은 차별과 편견의 프레임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아콰피나는 이에 맞서기 위해 2012년부터 유튜브를 통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대중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영화 <오션스8>에 출연하기도 했다.

다큐에서 '동양인 남자래퍼보다 동양인 여자래퍼를 마케팅하기 더 쉽다'는 말을 덤파운데드가 하는데, 아콰피나가 부연하는 '더 쉽다'의 의미는 이렇다. '성상품화하기에 쉽다', 특히 '가슴이 엄청나게 크고 잘 꾸민 얼굴에다가 긴 머리를 가진, 예쁘게 꾸민 여자'라면. 하지만 '키가 작고 섹시하지도 않은 여자'는 마케팅 포인트가 애매하다. 오히려 성적인 부분보다 '동양인 치고 랩을 잘 한다'라는 평가가 마케팅의 요소가 되어버린다.

예쁘지도 키가 크지도 않은 '덕분에' 그녀는 음악으로 승부를 볼 수 있었다. 이런 '웃픈' 상황은 국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3대 여성래퍼는 윤미래, 조단 엄마, 타샤'(모두 윤미래를 칭하는 다른 표현들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여성 래퍼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다. 그런데 어렵사리 여성 래퍼가 조명을 받으면 외모가 출중할 경우 외모가 출중하다는 사실이 강조되는 반면에 그렇지 못하면 랩 실력이 '남자들만큼'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콰피나는 여기에 인종적인 맥락까지 덧붙여서 평가받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받아치면 돼"

 렉스티지는 자신이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눈치봐야 할 상황을 타개하고자 개성있는 뮤직비디오를 찍고자 했다.

렉스티지는 자신이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눈치봐야 할 상황을 타개하고자 개성있는 뮤직비디오를 찍고자 했다. ⓒ 넷플릭스


다큐는 다른 두 명의 아시안 래퍼들도 조명한다. 리릭스(Lyricks)는 뉴욕 출신의 한국계 래퍼로, 'Year of the ox'라는 예명으로 국내 래퍼들과 협업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렉스티지(Rekstizzy) 역시 차별과 편견에 못마땅해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실력파 래퍼다.

렉스티지가 실험적인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려고 콘티를 짜려는 장면에서 '아시안 래퍼'라는 정체성이 문제시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 나온다. 흑인 여성의 엉덩이에 온갖 소스를 뿌려대는 설정인데, '이런 괴상망측하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는 콘셉트는 관심은 못받은 채 욕만 먹고 끝날 수 있다'는 매니저의 지적에 렉스티지가 한 답변이 인상적이다.

"사람들이 뭐라 하든 신경 안 쓸 때도 됐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받아치면 되는 거라고. 그게 뭐든, 알겠어? 내가 래퍼인 것도 못마땅한 사람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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