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겨자대령과 디종5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겨자대령과 디종5 ⓒ 이현파


강원도 철원, DMZ, 그리고 뮤직 페스티벌.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이름들이다. 그러나 지난 주말에는 그렇지 않았다. 강원도 철원에서 펼쳐진 'DMZ 피스 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때문이다.

피스트레인은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메인 프로그래머인 마틴 엘본에 의해 기획된 페스티벌이다. '음악을 통해 국가, 정치, 경제, 이념, 인종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자'는 것이 이 페스티벌의 모토다. 마틴 엘본은 'Peace Train'이라는 이름을 쓰기 위해 'Peace Train'을 부른 가수 캣 스티븐스(Cat Stevens)의 허락까지 받았다.

피스 트레인은 지난 몇 달 간 조성된 남북 화해 분위기에 발맞춰 이루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로켓맨', '핵단추'를 운운하던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위대한 콜라보, 만화같은 순간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차승우와 글렌 매트록(Glen Matlock)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차승우와 글렌 매트록(Glen Matlock) ⓒ 본인 촬영


지난 23일, 차를 타고 한탄강을 따라 철원 고석정에 도착했다. 행사장에 곳곳에 존 레논의 노래 'Give Peace A Chance'가 새겨져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음악은 생기를 잃지 않았다. 촉박한 준비 시간 때문인지 저명한 해외 뮤지션들이 많이 섭외되지는 않았으나 한국 록씬에서 주목받는 밴드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부산의 인디 록 밴드 세이수미가 피스 스테이지의 문을 열었다. 1960년대 서프록과 1990년대 인디록의 멋을 고스란히 담은 시원한 기타 리프가 들렸다. 이들의 연주를 듣고 있으니, 잠을 이루지 못 해 생긴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엘튼 존(Elton John)이 이들에게 괜히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 것이 아니었다.

백현진과 방준석의 프로젝트 그룹인 방백의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전위적인 색깔에 당황하는 관객들도 많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백현진의 독특한 카리스마에 매료되는 듯했다. 새소년 역시 꽉 찬 라이브로 자신들이 차세대 록스타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파도'의 기타 솔로를 연주하는 황소윤의 모습은 베테랑 밴드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밴드 '겨자대령과 디종 5(Colonel Mustard & The Dijon 5)'도 잊히지 않을 순간을 만들었다. 이들이 스스로를 '평화, 사랑, 그리고 음악을 통한 화합을 추구하는 창의적 공동체 옐로 무브먼트의 기수'라고 소개하고 있으니, 페스티벌의 취지와 정확히 부합한다.

멤버 중 한 명은 무지개색 깃발을 들고 무대 밑으로 내려가 관객들과 함께 뒤엉켰다. 이들은 태극기와 인공기를 옷에 나란히 붙인 채 'War Is Over'(전쟁은 끝났다)를 외치기도 했다. 글래스톤베리와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공연하는 등, 주가를 한껏 높인  잠비나이 역시 자신들의 색깔을 부지런히 과시했다. 해금과 거문고 소리를 파괴적인 디스토션과 공존시킬 수 있는 밴드는 분명 몇 되지 않는다.

가장 많은 음악 팬들을 기다리게 만든 순간은 섹스 피스톨즈의 원년 멤버인 글렌 매트록(Glen Matlock)과 크라잉넛, 차차(차승우)의 컬래버레이션이었을 것이다. 컬래버레이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Pretty Vacant', 'Anarchy In The UK' 등 섹스 피스톨즈의 대표적인 곡들이 연주된 순간, 그리고 '말 달리자'의 합주였다.

펑크록의 전설과 '조선 펑크'의 선두주자들이 함께 꾸미는 이 무대는 아티스트들에게나, 한국의 록팬들에게나 귀한 경험이었다. 크라잉넛의 한경록은 이 공연을 '만화같은 순간'이라고 말했다(심지어 글렌 매트록은 이 공연의 취지에 공감하여, 섭외료를 받지 않고 공연에 임했다는 후문이다).

작지만 강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페이스북


피스트레인에서 장점으로 뽑을만한 것은 여러 가지 있다. 사운드가 좋은 편이라 음악을 즐기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행사장 전체가 청결하고 쾌적하게 관리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이 페스티벌이 다른 뮤직 페스티벌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바로 지역색이 잘 드러났다는 점이다. 스테이크 덮밥이나 맥주 등, 여타 페스티벌에서 볼 수 있는 푸드트럭들은 물론, 메밀 전병 등 지역 주민들이 파는 향토 음식도 만날 수 있어 정겨웠다.

"음악 들으면서 전병이랑 막걸리 먹으면 좋지!"(아주머니 말씀)

페스티벌장 바로 옆에 있는 놀이공원 '고석정 랜드'는 이 페스티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 몫했다. 마치 록밴드들이 바이킹을 위한 배경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고 있는 듯했다. 올해는 무료로 운영되었으나, 설령 티켓 값이 있었더라도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잔뜩 어질러진 펑크록에 맞춰 춤을 추는 지역 어른들, 그리고 야광봉을 흔들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이렇게 '힙한' 광경이라니!).

피스트레인은 규모는 작지만 매력이 가득한, 강한 페스티벌이었다.  뮤직 페스티벌로서도, 그리고 문화적 혜택과 동떨어진 지역의 축제로서도 훌륭하게 기능했다. 먼 길을 움직여야 했으나, 기분좋게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철원' 하면 많은 사람들은 군부대를 떠올렸을 것이다. 분단과 대결이 남긴 흔적으로 점철된 지역, 그러나 이 곳에 기타와 드럼 소리가 채워졌다. 내년에도 이 곳에서 평화와 자유,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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