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역량은 팀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선수들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놓여 흥분하는 등 멘탈이 흔들린다면 감독이 구상한 플랜이 꼬여 경기를 그르칠 수밖에 없다.

특히 전력이 떨어지는 팀이 강팀을 상대했을 때는 감독의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 선수들의 개인기량의 열세 속에 감독의 전술적 역량이나 심리전을 발휘한다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26일 오전 3시(이하 한국시간) 열린 포르투갈과 이란의 경기에선 감독 역량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그 주인공은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이다.

 26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B조 3차전 포르투갈과 이란의 경기.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란의 오미드 에브라히미와 공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26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B조 3차전 포르투갈과 이란의 경기.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란의 오미드 에브라히미와 공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16강 진출을 위해선 반드시 승리해야 했던 이란으로선 이전과 같이 전반전을 수비적으로 버텼다가 후반전 1골을 노려 승리를 챙기는 쪽으로 경기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전반 종료 직전 히카르두 콰레스마에게 선제 실점을 허용하면서 계획이 꼬였다.

여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후반 7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페널티박스 안에서 중앙 쪽으로 침투하다 이란의 에자톨라이에게 밀려 넘어졌다. 처음 판정은 노 파울이었으나 VAR 판독을 통해 페널티킥으로 판정이 번복됐다.

판정이 번복되자 이란 선수들은 주심에게 격렬하게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이란의 레프트백인 에산 하지사피가 경고를 받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다행히 베이란반드 골키퍼가 침착하게 호날두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완전히 무너질 뻔한 위기는 넘겼다. 하지만 이후 1분 뒤 이란의 공격수인 사르다르 아즈문이 거친 파울로 경고를 받는 등 선수들이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케이로스 감독이 등장했다. 그는 하지사피를 빼고 밀라드 모하마디를 투입했다. 이는 경고가 있는 하지사피로 포르투갈의 측면공격을 막기엔 부담이 컸다는 점과 선수교체로 인해 경기를 한 템포 죽이면서 흥분한 선수들의 멘탈을 다잡기 위한 교체로 해석할 수 있다.

이후 이란 선수들이 흥분을 가라앉히는 모습을 보이며 골을 넣기 위한 공격적인 움직임이 돋보였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노련한 페페와 폰테가 버티는 수비진을 뚫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이란은 결국 후반전 추가시간에 교체로 투입된 안사리파드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란은 스페인이 모로코와 무승부를 기록하며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케이로스 감독에 이란 축구에 남긴 유산

 16일(한국 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진행된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이란 선수들이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축구대표팀 감독을 헹가래 하고 있다. 2018.6.16.

지난 16일(한국 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진행된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이란 선수들이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축구대표팀 감독을 헹가래 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그렇지만 케이로스 감독이 보여준 역량은 박수받을 만했다. 케이로스 감독은 퇴장이나 예상치 못한 변수 속에서 교체카드를 통한 임기응변으로 그 위기를 벗어나 승리를 거두거나 무승부로 이끌어내는 등 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에 상대팀 감독이나 코칭스태프를 비롯해 이란 축구협회와 벌이는 심리전 또한 인상적이다. 한국축구팬들에겐 최강희 감독과 벌인 2013년 6월의 언쟁과 '주먹감자' 사건으로 기억되지만 이번 러시아 월드컵 모로코전에선 0-0으로 맞선 후반 중반 모로코 코칭스태프와 심리전을 펼치면서 모로코 팀 전체가 흔들리는 계기가 됐다. 그러면서 이란이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

한때는 이란 축구협회의 지원부족을 비판하며 사임하겠다는 발언을 자주 했었는데 이내 번복하고 남는 모습을 보여줬다. 어쩌면 이것은 이란대표팀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한 그의 심리전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로 케이로스 감독은 사임 선언과 번복을 반복한 끝에 지난 7년동안 이란을 아시아 축구 최강으로 만들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을 끝으로 이란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할 것으로 예상되는 케이로스 감독은 이란을 16강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난 7년간 이란 축구에 남긴 유산과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그의 역량은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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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월드컵 포르투갈 이란 케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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