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죽음의 조 1위로 16강에 올라설 수 있었던 천금 같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정말 잘 싸웠지만, 결국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란이 26일 오전 3시(아래 한국시간) 러시아 사란스크에 위치한 사란스크 모르도비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FIFA(국제축구연맹) 러시아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B조 3차전 포르투갈과 맞대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란은 앞선 1, 2차전과 마찬가지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였지만, 골 결정력 부족에 아쉬움을 삼켰다.

이란은 1승 1패를 기록 중이었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1승 1무였다. 스페인은 최종전에서 2연패로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모로코와 만났다. 모로코가 큰 점수 차로 스페인을 잡아주지 않는 이상, 이란은 포르투갈을 무조건 잡아야 했다.

 26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B조 3차전 포르투갈과 이란의 경기.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란의 오미드 에브라히미와 공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26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B조 3차전 포르투갈과 이란의 경기.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란의 오미드 에브라히미와 공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란은 늪에서 나와 창을 꺼내 들었다. 올 시즌 네덜란드 리그 득점왕 알리레자 자한바크슈와 사르다르 아즈문의 빠른 발을 활용해 포르투갈의 뒷공간을 공략했다. 극단적인 수비 전략을 편 앞선 1, 2차전과 달랐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날카로운 슈팅으로 골문을 위협하면, 바히드 아미리의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응수했다.

수비의 강점도 여전했다. 지켜보는 이까지 목이 타게 만드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빠른 공수 전환과 압박, 협력을 통해 안정감을 유지했다. 경기 초반, 알리레자 베이란반드 골키퍼와 수비진의 실책이 가슴 철렁한 순간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실점은 없었다. 포르투갈이 역습 속도를 살리기 위해 선발로 내세운 아드리안 실바가 부진한 것도 이란 수비에는 힘이 됐다.

그러나 균형을 깬 것은 이란이 아닌 포르투갈이었다. 전반 44분, 깜짝 선발 출전한 '호날두의 스승' 히카르도 콰레스마가 마법 같은 득점을 터뜨렸다. 측면에서 실바와 2대1 패스를 주고받은 뒤 중앙으로 파고들었고, 전매특허인 오른발 아웃프런트 킥으로 골망을 갈랐다. 손흥민이 멕시코전에서 터뜨린 환상적인 득점과 매우 흡사한 골이었다.

아 이걸 놓치다니... 결정력에 눈물 흘린 이란

예상 못한 선제 실점으로 마음 급해진 이란에 치명적인 위기가 들이닥쳤다. 후반 5분, 이란 수비에 꽁꽁 묶였던 호날두가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사실상 경기가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호날두는 3경기 연속골에 대한 기대와 함께 성큼성큼 페널티킥을 준비했고, 자신 있게 슈팅을 시도했다.

반전의 서막이었다. 베이란반드 골키퍼가 호날두의 페널티킥을 막았다. 희망을 지킨 이란은 공세에 나섰다. 자한바크슈의 날카로운 크로스와 아즈문의 슈팅이 포르투갈 골문을 위협했고, 메흐디 타레미의 빠른 침투가 동점골을 기대케 했다. 후반 24분에는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던 자한바크슈를 빼고, 스웨덴 출신 공격수 사만 고도스를 투입했다.

스피드를 앞세운 측면 공격은 지속해서 효과를 봤지만, 크로스와 문전 슈팅의 정확도가 너무나도 아쉬웠다. 계속 두드리는데 성과가 없는 상황이 후반 44분까지 이어졌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문구가 떠오르던 찰나, 행운이 찾아들었다. VAR(비디오 판독 시스템) 확인 끝에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카림 안사리파드가 득점으로 연결하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VAR로 허비한 시간이 많았던 탓에 추가 시간이 6분이나 주어졌다. 페널티킥을 처리하며 이마저도 2분 가까이가 흘렀다. 추가 시간의 추가 시간까지 계산하면 5분 정도 남은 상태였다. 이란은 강하게 몰아쳤다. 스페인과 모로코가 2-2 무승부였던 만큼, 한 골만 더 추가하면 죽음의 조 1위로 16강에 올라설 수 있었다.

천금 같은 기회가 왔다. 중거리 슈팅한 볼이 수비 맞고 흘렀고, 타레미가 페널티킥 위치보다 훨씬 가까운 지점에서 루이 파트리시오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섰다. '기적이 쓰이는구나' 싶은 찰나, 타레미의 발을 떠난 슈팅은 골망이 아닌 옆 그물을 때렸다. 평생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기회가 악몽이 된 순간이었다.

잘 싸우고도 조별리그 탈락... 2% 부족했던 이란

경기는 1-1 무승부로 마무리됐다. 스페인과 모로코가 2-2 무승부로 경기를 마치면서, 이란은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됐다. 그러나 정말 잘 싸웠다. 가장 어려운 조에서 승점을 무려 4점이나 획득했다. 패한 스페인전에서도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세계 축구팬들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우승 후보라 불리는 팀도 고전하게 만드는 수비력은 본선에 참가한 32개국 중 가장 뛰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큰 특징은 '인내'였다. 끝까지 기다렸다. 10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수비 블록을 형성하고, 그 안에 들어올 때까지 절대 달려 나가지 않았다. 상대가 수비 블록에 진입했을 때부터 공을 빼앗기 위해 나섰다.

이란은 최후방 수비수와 최전방 공격수가 3초 이내 자리를 바꿀 수 있을 만큼 간격이 좁았다. 수비 블록 안에서만큼은 10명의 선수가 엄청난 활동량을 보였다. 디에고 코스타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이스코, 다비드 실바, 호날두 등 세계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이들도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란이 90분 내내 수비 조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강인한 체력이 큰 몫을 했다. 활동 범위로 보면 넓지 않지만, 좁은 지역에서 뛰고 또 뛰었다. 쉼 없이 압박하고, 공간을 메웠다. 볼을 빼앗았을 때는 빠르게 공격으로 나가 상대 골문을 위협했다. 실제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란의 빠른 역습에 여러 차례 고전했다.

타고난 힘을 앞세워 건장한 신체조건을 자랑하는 아프리카, 유럽 선수들과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체력이 빠질법한 시간대에도 쉽게 물러서는 모습은 없었다. '체력'이란 기본적인 능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마력의 늪 축구가 가능했다.

다만,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한 방이 아쉬웠다. 아즈문과 자한바크슈 등 재능 있는 선수들은 존재했지만, 빛을 발하지 못했다. 빠른 발을 앞세운 측면만 돋보였을 뿐, 크로스와 패스, 결정력 등 섬세한 부분에 있어 부족한 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상대로 정말 잘 싸웠음에도 기회를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하면서, 조별리그 탈락의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고개 숙일 필요는 없다. 이란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매우 인상적인 축구를 보여줬다. 수비적인 축구가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공격 능력도 가진 팀이란 것을 보여줬다. 아쉽게도 러시아에서의 도전은 끝났지만, 2022 카타르 월드컵을 기대하게 만든 이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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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VS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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