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뮤지컬계는 어디서나 젊은 배우 '기근'이다. 영화나 드라마도 마찬가지지만, 30~40대 중년 남성들이 20대, 30대 나이의 주연 역할을 꿰찬 덕분에 젊은 배우들 중 제 나이대 역할을 맡아가며 성장하는 배우를 찾기 힘들어졌다. 물론 이 상황은 좋은 배우들이 꾸준한 자기관리로 제 기량을 유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맡을 수 있는 캐릭터의 범위 자체가 좁아진 공연계의 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에도 역할에 상관 없이 조용히 무대 어딘가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김현진은 꽤나 '볼 맛 나는' 배우다. 1990년생으로 서른을 앞뒀지만, 가냘프고 어려보이기까지 하는 외모로 학생, 동생 역할을 많이 맡았다. 그의 출연작 중 저승에서도 일하는 직장인(?) 이대리 역을 맡은 <서른즈음에>가 이례적일 정도다.

그런 그를 지난 24일 뮤지컬 <피아노포르테>가 공연 중인 '문화예술전용극장CT'에서 만났다. 우선 그는 DIMF를 통해 처음으로 대구에 방문해서 기쁘다고 했다.

 뮤지컬 배우 김현진이 공연을 앞두고 극장 로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 김현진이 공연을 앞두고 극장 로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서정준


"공연하는 동안 관객분들께서 '좋은 작품들이 대구에 와서 지방 관객들이 좋은 공연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저희 역시 새로운 관객을 만나고, 페스티벌답게 평소에 뮤지컬을 자주 즐기지 않는 분들도 함께하는 축제가 된 것 같아서 더 즐겁죠. 아쉬운 건 제가 다른 공연을 즐기질 못해서 내년에는 관객으로도 놀러와보고 싶어요.(웃음)"

그는 이번 뮤지컬 <피아노포르테>에서도 예민한 천재 피아니스트인 고등학생 '하도현' 역을 맡았는데 '하도현'은 그동안 그가 가진 착하거나 쾌활한, 혹은 '외유내강'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 같으면서도 예민하고 오만한 성격을 무대 위에서 드러내 관객들에게 새로운 '김현진'을 선보인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어떤 공연이겠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큰 작품이에요. 연습하며 또 느꼈죠. 이런 그림이 나오겠다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느낌이라서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하도현'은 극 초반 여느 작품에서 볼 법한 예민한 천재 피아니스트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사실 그는 두 번의 입양과 파양을 겪으며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천재였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거짓된 포장을 뜯어내고 나면 피아노 외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자신이 누군가의 '대체품'이란 사실에 방황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사랑받고 싶어 방황하는 평범한 사춘기 소년에 가깝다.

 제11회 창작지원사업 선정작으로 공연된 뮤지컬 <피아노포르테>의 한 장면.

제11회 창작지원사업 선정작으로 공연된 뮤지컬 <피아노포르테>의 한 장면. ⓒ DIMF


뮤지컬 <피아노포르테>는 이런 '하도현'이 젊은 날의 실수와 방황을 겪은 탈북 피아니스트 '송명학'을 만나서 조금 거친 질감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래도 다행히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그 속에서 제가 힐링받는 느낌이죠. 대사나 가사가 마치 저에게 들려주는 느낌이에요."

'하도현'은 하고 싶은 일(피아노)을 하며 지내는 걸로 보여 친구의 부러움을 사지만, 그가 느끼기에 자신이 걷는 곧게 포장된 길은 사실 울퉁불퉁한 돌밭에 불과하다. 하지만, '송명학'이 건네는 질문들을 통해 사실 자신이 느낀 걸음의 불편함이 돌밭 같은 길 때문이 아니라 신발에 박힌 압정 때문이란 것을 깨닫는다.

 뮤지컬 배우 김현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 김현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서정준


<피아노포르테>는 이런 한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매우 환상적이고 과장된 톤앤매너로 표현했다. '송명학'은 탈북 피아니스트이자 한 팔을 잃은 사람이다. '하도현'은 입양아이자 친구 하나 없이 피아노만 연주하는 오만방자한 고등학생이고, 그의 엄마는 약간의 힌트만으로도 사람을 찾아내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이런 그림들이 어색하지 않다. 마치 일본 순정만화들이 극단적 설정으로 시작해 평범한 인간군상의 심리를 그려내는 것과도 비슷하다.

"독특하고 센 설정 안에서만 나올 수 있는 드라마적인 느낌이 있어요. 제가 부족해서 말로 표현이 안 되지만, 튜브를 타고 물놀이를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거친 파도 위에서 폭풍우와 싸우는 느낌이에요."

'하도현'은 김현진의 말처럼 무대에서 보여주기보다 보여지기 전의 과정을 고민했을 캐릭터다. <피아노포르테> 자체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특별한 게 아님에도 극의 재미를 이끌어내는 건 '하도현'이란 캐릭터와 그를 연기하는 김현진의 매력이다. 앞서 말했듯이 '맡을만한 캐릭터'의 전체적인 폭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한국 뮤지컬 계에선 보기드문 재미를 주는 캐릭터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피아노포르테>가 제11회 DIMF 창작뮤지컬상을 받은 작품으로 올해 공식초청작이 됐지만, 아직 장기 공연 계획이 없다는 점이다.

 뮤지컬 <피아노포르테>는 아직 장기 공연 계획이 없다.

뮤지컬 <피아노포르테>는 아직 장기 공연 계획이 없다. ⓒ 서정준


 뮤지컬 <피아노포르테>팀의 단체 사진.

뮤지컬 <피아노포르테>팀의 단체 사진. ⓒ 서정준


끝으로 김현진은 <피아노포르테>를 통해 또 한 단계 성장한 것 같다는 소감을 전하며 앞으로도 자신이 연기하지 않더라도 다른 좋은 팀이 계속해서 <피아노포르테>를 무대에 올려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요즘에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 공연하며 선배님들과 많이 이야기한 부분인데 배우로서 관객을 만나고 공연하며 어떤 부담감 같은 게 제 안에 있었나봐요. 좋은 공연을 해야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이요. 그런데 이게 페스티벌이라 그런지 제가 무대 위에서 즐기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제가 즐겨야 함께하는 동료도, 무대를 보는 관객들도 즐기는 마음을 함께 얻으실 수 있는 것 같아요. 데뷔 후 몇 편의 공연도 올렸고 서른을 앞두고 있는데(웃음) 생각의 전환이 된 것 같아요."

김현진은 <피아노포르테>가 끝나면 서울로 올라가 작년에 이어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실제 남매 같다'는 평을 들은 송영미와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다. 대구에서 만난 '하도현'이란 선물이 앞으로 그의 연기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사뭇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 함께 실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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