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 페널티킥 실축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가 16일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러시아월드컵 D조 아이슬란드와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 메시, 페널티킥 실축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가 16일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러시아월드컵 D조 아이슬란드와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Don't cry for me Argentina.(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하여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영부인이었던 에바 페론(1919~ 1952)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에비타>의 대표곡으로 유명한 노래다. 듣는 이들을 위로하는 듯 애잔한 가사와 멜로디로 인하여 뮤지컬이나 아르헨티나에 대하여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테마이기도 하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바라보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현재 심경은 'Don'cry for me(ssi) Argentina',로 요약할 수 있을듯하다. 하지만 울상을 짓고 있는 아르헨티나를 바라보는 세계 축구팬들의 시각은 오히려 싸늘하다. 동정의 여지가 없는 졸전의 연속에다가 경기장 안팎에서 온갖 구설수와 추태까지 겹치며 아르헨티나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월드컵이 되어가고 있다. 아르헨티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는 위로보다도 '울어줄 필요도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하다.

아르헨티나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유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됐다. 남미예선에서 다소 부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난 2014 브라질 대회 준우승 팀인데다 리오넬 메시라는 세계 최고의 선수도 건재했다. 세르히오 아게로, 곤살로 이과인, 니콜라스 오타멘디 등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정상급 선수들이 넘쳐난다. 조 편성도 월드컵 첫 출전국인 아이슬란드, 월드컵 무대에서 한 번도 져본 일이 없는 나이지리아, 크로아티아와 만나서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옥의 조가 된 무난한 조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아이슬란드와의 첫 경기부터 메시가 PK를 실축하는 부진 끝에 1-1로 무승부를 기록하며 주춤하더니 크로아티아와의 2차전에서는 충격적인 0-3 완패를 당했다. 이제는 마지막 남은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더라도 자력으로 16강행을 장담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다.

아르헨티나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은 무려 16년 전인 2002년 한일월드컵 때였다. 당시는 잉글랜드, 나이지리아, 스웨덴 등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강팀들과 함께 '죽음의 조'에 배정되었고 잉글랜드 전에서 석연찮은 PK를 헌납하며 패배하는 등 불운도 따랐다. 하지만 지금의 아르헨티나는 그때와 비교해도 훨씬 좋은 멤버와 조 편성임에도 연달아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망신을 당했다.

한일월드컵 당시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이후 간판 공격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흘린 뜨거운 눈물은 많은 세계 축구팬들에게 동정을 받았다. 그런데 그때와 달리 지금의 아르헨티나 대표팀에게는 이런 동정어린 시각도 찾아볼 수 없다.

아르헨티나는 크로아티아와의 2차전에서 경기가 풀리지 않자 선수들이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며 거친 플레이를 남발하여 빈축을 샀다. 특히 최악의 장면은 0-2로 끌려가던 후반 39분 발생했다. 공을 경합하던 크로아티아의 이반 라키티치가 반칙을 얻어 그라운드에 잠시 쓰러졌는데 아르헨티나 수비수 오타멘디가 넘어진 라키티치의 뒤통수를 걷어차는 비매너 행동을 저질렀다. 다분히 고의성이 의심되는 장면이었다. 이에 격분한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달려들어 양 팀 선수들의 집단 충돌로 이어질 뻔 했다. 오타멘디는 경고를 받았지만 사실상 바로 퇴장을 줘도 할 말이 없는 행동이었다.

그라운드 밖에서는 아르헨티나의 팬들도 비매너도 가세했다. 당시 다수의 아르헨티나 팬이 크로아티아 팬을 집단으로 폭행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온라인을 통하여 공개되어 큰 파문을 일으켰다. 현장에 있던 팬들이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이 영상에는 수십 초에 걸쳐 폭행이 진행되었고 이에 가담한 아르헨티나 팬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유유히 관중석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담기며 큰 충격을 안겼다. 이 모습을 지켜본 세계의 축구팬들은 축구도 지고 매너도 졌다면서 아르헨티나를 향하여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전설' 디에고 마라도나도 이번 월드컵에서 구설수에 올랐다. 아르헨티나를 응원하기 위하여 경기장을 찾은 마라도나는 현장에서 자신에게 환호하는 아시아인들을 보고 인종차별적 포즈를 취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에 휩싸였다. 또한 흡연이 금지된 경기장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인종차별에 대한 의도가 없었고 흡연은 실수였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차가웠다. 마라도나는 조국 아르헨티나가 크로아티아에 대패하는 경기를 지켜보며 눈물까지 흘렸지만 팬들은 '업보'라며 냉랭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슈퍼스타의 침묵

아르헨티나가 자랑하는 슈퍼스타 메시도 비판의 후폭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메시는 이번 월드컵 2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했으나 아직 무득점에 그치고 있다. 4년 전 브라질대회까지 포함하면 벌써 본선 6경기 연속 무득점이다. 라이벌 호날두(포르투갈)가 벌써 4골을 넣으며 득점선두에 올라있고 자국의 16강 진출까지 눈앞에 바라보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설상가상 벌써부터 메시가 이번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팀을 은퇴할 수 있다는 소문까지 나오고 있다. 메시는 2006년 독일월드컵을 시작으로 4회 연속 본선무대를 밟고 있으나 아직 정상에 올라보지 못했다. 클럽무대에서 수많은 우승트로피를 거머쥔 메시지만 국가대항전에서는 A매치 포함되지 않는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제외하면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2014 브라질 대회와 2015-16 코파아메리카에서 3년 연속 준우승에 그치자 심리적인 부담감으로 한때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메시가 받는 압박감에는 아르헨티나 팬들의 극성스러운 반응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헨티나는 우승후보라는 평가에 맞지 않게 메시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메시의 활약에 의하여 아르헨티나의 승패가 좌우되는 빈도가 워낙 높다보니 매 경기 결과에 따라 메시에 대한 여론의 반응도 요동친다. 2년 전 메시가 은퇴 선언을 했을 때 간곡하게 대표팀 복귀를 요구하던 아르헨티나 팬들은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탈락위기에 놓이자 다시 메시를 부진의 주범으로 거론하며 비난하고 있다.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메시가 정말로 국가대표팀 은퇴를 당장 선언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는 상황이다. 메시가 은퇴할 경우, 그와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다른 선수들도 대거 동반 은퇴할 가능성이 유력하다는 평가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메시와 친구들'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선수 구성이 철저하게 메시 위주로 이루어져있다.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아르헨티나가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끝내 탈락하고 메시마저 은퇴한다면 엄청난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극적인 반전이 없는 이상 성적도, 매너도, 미래도 모두 놓치고 있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은 아르헨티나 축구 사상 최악의 월드컵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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