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 박사가 박정희 정권 핵개발 프로젝트, 일명 무궁화 프로젝트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김철 박사가 박정희 정권 핵개발 프로젝트, 일명 무궁화 프로젝트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 JTBC


박정희 정권의 핵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그동안 설왕설래 말은 많았지만, 공개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었다. 특히 김진명 작가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이 널리 읽히면서 사실과 픽션이 혼재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던 중 원로 과학자들의 증언을 통해 박정희 정권 핵 개발 프로젝트의 일단이 밝혀졌다. 그들은 막후에서 이뤄진 한미 간의 핵 비사를 전하며 "과거엔 남한의 '핵무장'이 이슈인 적도 있었다"고 했다. 
 
21일 방송된 JTBC 시사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비사, 한반도 핵 삼국지' 편에선 남북의 핵무기 개발과정과 미국의 간섭 등 지난 40년간 한반도에서 전개된 핵 관련 비사를 다뤘다. 이날 출연한 김철 전 원자력연구소 실장은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주인공 이용후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 이휘소 박사에 대해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인물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아무도 몰랐던 핵 개발 연구소, 대전기계창

 김철 박사가 공개한 설계도.

김철 박사가 공개한 설계도. ⓒ JTBC


이휘소 박사는 42세에 의문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 생애와 행적이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김철 박사는 이어 "실제 그의 이름은 벤자민 리이고, 전공도 원자핵물리학과 상관없다"며 "벤자민 리는 박 정권에 되레 비판적이었다"고 덧붙였다.

김철 박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물리학 교수로 근무하던 그를 한국의 원자력연구소가 스카우트해 데려왔다. 벤자민 리는 연구소 내 공정연구실에서 일했다. 어느 날 그가 서류를 보는데 해당 서류가 핵 개발 프로젝트를 지정하고 있었다. 1980년대 초반이 되면 핵무기를 만들 준비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 서류의 내용이었다.

김철 박사는 제작진에게 핵시설의 도면 일부를 공개했다. 1970년대 유신 시절 작성된 빛바랜 설계도였다. 김철 박사는 "이 정도 시설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핵폭탄 수십 개를 저장한다"고 주장했다.

이경서 전 국방과학연구소(ADD) 박사는 그동안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을 부인해왔다. 그런 그가 이날 방송에선 40여 년 전 핵개발에 얽힌 비사를 털어놨다. 이경서 박사는 '대전기계창'이라고 불린 대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비밀 기관에서 일했다. 그와 동료들은 이곳에서 각종 무기 개발에 몰두했다고 한다.

이경서 박사는 "대전기계창에서 일할 때 언덕 너머에 나도 못 가는 금지구역이 있었다"면서 "거기서 핵기폭장치를 개발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기폭장치를, 원자력연구소에선 핵원료를 위장으로 개발하라는 극비 지시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경서 박사에 따르면 그는 이러한 핵개발 사실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고 나서 알았다고. 이후 전두환 당시 장군에게 가서 핵 개발을 보고한 것도 본인이었다. 박 대통령이 생전에 대전기계창을 예방했을 당시 박사들이 브리핑을 했다. 박 대통령이 갑자기 브리핑을 끊고 "전쟁을 하지 않고도 이기는 것을 개발하라"고 주문했다. 핵 개발을 암시했던 것이다.

제작진은 김광모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비서관도 찾았다. 김 전 비서관은 "1972년 9월에 박정희 대통령이 핵개발을 검토해서 보고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유신 선포 한 달 전이었다. 박정희는 왜 핵개발을 지시했을까.

박정희와 미국의 핵 개발 신경전

 김광모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비서관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김광모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비서관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 JTBC


박정희는 젊을 때 남로당 활동을 한 경력으로 인해 미국으로부터 끊임없이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을 받았고, 남한 체제를 공산주의로 전환할지 모른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또 그는 유신을 선포하며 장기집권을 꾀했다. 제작진은 그 역시 북한처럼 독재 유지와 안전보장을 원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김철 박사는 "우리 때 대포냐 빵이냐 그랬다. 그때 많이 유행했던 말"이라며 "미국이 이걸 (핵개발) 언제 알았냐. 들통이 났다"고 설명했다. 당시는 핵확산 금지조약(NPT)이 탄생한 직후였으며 세계 곳곳에서 핵실험이 자행되던 혼란기였다. 당시 주한미국대사관-국무부-백악관 사이에 주고받은 기밀문서를 통해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미 대사관은 본국 국무부로 보내는 문서에서 "최근 한국의 핵개발은 잠재력 분석 작업 중이다"라고 알렸다. 김철 박사에 따르면 CIA 요원이 수시로 불시에 연구소에 와서 감시하거나 캐묻고 다녔다.

주한미대사관이 "한국이 핵개발을 못하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보내자 국무부는 "더 노골적인 수단이 필요하다"고 답장을 보냈다. 김철 박사는 "한미 간에 열린 대책회의에 가니까 고리원자력 발전소 연료를 중단하고, 핵우산을 걷어가겠다면서 핵개발을 중단하라고 압박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까지 언급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핵개발을 할 수도 있다"고 되레 으름장을 놨다.

그러나 박 정권의 무궁화(핵개발) 프로젝트는 10.26의 총성과 함께 중단됐다. 미국은 남한의 비핵화를 시도했다. 전두환 정권은 군말없이 따랐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2번에 걸쳐 800여 명이 해고됐다. 이경서 박사도 이때 해고됐다. 이후 북한 영변의 핵개발시설이 미국 인공위성에 포착되면서 미국은 시선을 남한에서 북으로 돌렸다.

이날 방송 보도를 통해 그간 소문 혹은 소설로만 모호하게 존재했던 남한의 핵개발 프로젝트를 원로 과학자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핵 개발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해당 실험에 참여했던 과학자 및 기술자들은 꽤 많은 숫자가 아닐까. 북한의 경우에도 미국이 북한에 요구한 핵과학자 및 기술자, 그 가족들의 해외 이주 규모는 수천 명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우리 역시 1972년부터 1979년까지 약 7년에 걸쳐 핵 개발 실험이 있었다면 꽤 많은 관련 학자들이 증언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후속 증언이나 증거가 더 나오면 현재 한반도 정세에서 던져주는 시사점도 있을 것 같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북한의 핵 개발 과정과 지난 6.12 북미정상회담까지 폭넓게 다뤘다. 40년간의 한반도 핵역사를 한 번에 조망하면서 우리의 지난 핵개발사가 현재 북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정희가 체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핵을 갖고자 했던 것처럼, 북한 역시 같은 이유로 미국 및 국제사회와 줄다리기를 해왔다.

특히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들이미는 카터에게 박정희가 대담하게 "핵개발을 할 수도 있다"고 응수하는 것은 현재 북한의 태도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한편으론 남북 모두 권력자의 권력 유지를 위해 핵을 개발하고도 그것을 애국심, 민족주의, 안보강화 등으로 포장하는 것은 씁쓸함을 준다.

젊은 김정은의 행보, 결국 박정희의 말이 맞았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남한 인권과 주한미군 철수로 압박하는 미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개발할 수도 있다"며 배짱을 보였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남한 인권과 주한미군 철수로 압박하는 미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개발할 수도 있다"며 배짱을 보였다. ⓒ JTBC


이번 북미정상회담을 두고 이런저런 평가와 분석이 넘쳐나고 있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명기하지 못한 게 큰 실책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한편에선 오랜 적대와 불신의 역사를 끝내고 북한과 미국의 지도자가 서로 손을 맞잡은 것만 해도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대내외적으로 미국을 끊임없이 비난하는 것은 북한의 주전략이었지만 사실 오랫동안 북한 지도부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바라왔다. 조부와 아버지가 해내지 못한 일을 젊은 김정은이 해냈다. 우리의 모든 경험치와 그간의 역사를 뛰어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다음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줄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늘 북한 행보 예측에서 틀렸지만, 역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집권 7년 차에 이르는 현재까지 자신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해왔다. 트럼프 역시 경험이 부족한 사업가 출신이라는 우려를 딛고 중국이 대북제재에 참여하게 만드는 매우 어려운 일을 해냈다. 덕분에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트럼프의 넘치는 자기애와 엔터테이너 기질, 역사적 이벤트에 고무된 마음이 북한을 이번 북미회담의 승리자로 만든 것 같기도 하다.

북한으로선 전후 70년간 인정받지 못했던 정당성을 인정받았고, 체제를 연장받은 것이기에 좋은 거래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이제 경제개발과 민생 안정, 인권 향상이라는 새로운 의무를 부여받았다. 박정희는 "전쟁을 하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핵"이라고 했는데 이번 북미회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북한을 보면 그의 예언(?)이 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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