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대한민국 연극제-대전' 릴레이 콘서트 5번째 초대손님으로 온 배우 윤문식은 '내게 연극이란, 해학과 풍자의 예술'이라는 주제답게 걸쭉하고 유머넘치는 화술로 방청객들에게 시종일관 웃음과 재미를 선사했다.

20일 '대한민국 연극제-대전' 릴레이 콘서트 5번째 초대손님으로 온 배우 윤문식은 '내게 연극이란, 해학과 풍자의 예술'이라는 주제답게 걸쭉하고 유머넘치는 화술로 방청객들에게 시종일관 웃음과 재미를 선사했다. ⓒ 조우성


잘 생긴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못난이 삼형제'가 연극계 지켰다

마당놀이의 귀재, 해학과 풍자의 대가 윤문식 배우는 충청도 서산에서 태어났다. 1961년에 연극을 시작해, 1964년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1968년도에 '극단 가교'를 창단해 10년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을 하였다. 그가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1985년 'MBC 마당놀이'를 하면서부터다. 푸근하고, 해학적이며, 서민적인 연기가 일품이었다. 온라인 백과사전에는 그를 '인간문화재에 준하는 인물'이라고 적고 있다.

그는 어머님이 "니가 배우가 된다면 동네 개가 웃어서, 안 된다"며 연극영화과 진학을 반대했다. 그는 결국 가출을 했다. 대학을 갈려고 동부촌 미군부대에 취직해서 1년 정도 돈을 모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예비소집일에 가 보니 진짜로 선남선녀들은 다 모였데요. '우리 어머님 말씀이 맞구나. 내가 여기 간다는 게 진짜 헛꿈이었구나.' 그런 생각으로 다른 대학에 원서를 접수하려고 돌아서는데, 중간쯤에 보니 나랑 비슷한 촌놈 둘이 보여요. '저런 못생긴 촌놈들도 있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 있느냐'는 생각이 들어 원서를 냈어요. 묘하게도 그 촌스럽던 아이들 셋이 다 합격을 했어요.

그 촌놈 둘이 누구냐면 오늘날의 최주봉, 박인환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때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60여 명이 들어갔는데, 졸업하고 지금까지 무대에 남아 있는 사람은 '못난이 삼형제'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다 어디로 갔는지. 옛날 어르신들이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키는 법이다'라고 그랬는데, 이게 딱 맞아요."

 윤문식 배우가 마당극 전문극단인 ‘우금치’에서 배우생활을 하고 있는 사회자 성장순씨와 즉석에서 마당극 공연을 펼쳐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윤문식 배우가 마당극 전문극단인 ‘우금치’에서 배우생활을 하고 있는 사회자 성장순씨와 즉석에서 마당극 공연을 펼쳐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 조우성


그는 연극을 '자신을 살게 해 준 웬수', 관객을 '이기기 위한 적군'으로 정의했다. 그는 "그 원수랑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느라 지금까지 버티면서 살아 왔다"고 말했다.

"제 원수가 바로 연극이에요. 저를 지금까지 살게 해 준 원수죠. 원수랑 부딪히면 어떻게 되죠. 죽을 힘을 다 내야죠. 그래서 제가 연극을 '원수'라고 그럽니다. 관객은 저의 적이죠. 적이 있기 때문에 나도 무장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적군이 쳐들어올 때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요. 적을 이기려면 정말 열심히 해야죠. '이게 끝이구나. 여기가 마지막 선이다'라고 항상 오기를 가지고 덤볐기 때문에 지금까지 왔을 겁니다. 사실 저나 최주봉, 박인환 같은 얼굴은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총각 때 사위로 삼을 사람 하나도 없어요."

'폐암 3기' 진단 받자, "이왕 죽을 거면 공연은 하고 죽자"

그러던 어느날, 지난해 6~7월쯤 그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순천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습니까' 물었더니 '1년 정도 살 수 있다'고 그래요. 당시 8월에 제천에서 공연이 예약되어 있었어요. 그 때 '아, 그럼 8월에 약속된 연극은 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수술, 항암치료 이런 거 안 하겠다고 말했어요.

근데 제 아내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니까 '다른 병원으로 가봅시다'라고 해서 타 병원에 갔더니 거기서는 '폐암 1기'라고 그래요. 제가 의사에게 '제천에서 공연이 있으니 수술을 두 달만 연기합시다'고 해서 공연을 무사히 끝내고 수술을 했습니다. 당시 의사가 '이번에 수술하면 7개월 정도 살 수 있다'고 그랬는데, 다행히 수술이 잘 되서 어쩌면 여러분들이 지긋지긋할 때까지 살 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전연극협회에서 기념으로 영구보관하기 위해 배우 윤문식의 액자사진에 사인을 받고 있다.

대전연극협회에서 기념으로 영구보관하기 위해 배우 윤문식의 액자사진에 사인을 받고 있다. ⓒ 조우성


힘들었던 연극 생활... "후회는 없다, 꿈과 희망이 있어 좋았다"

다른 배우들도 그랬지만 국민들 대부분이 가난했던 1960~1970년대 시절, 그는 연극을 하면서 참으로 많이 배고팠다.

"연극배우들은 진짜 배가 고팠어요. 많이 굶었어요. 저는 배가 고프면 오기로 더 많이 굶었어요. 정말 오기로 견뎠어요. 선배들이 뭐라고 그러는가 하면 마치 우리들이 연극을 안 하면 이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이야기 했어요. '니들은 애국자다'라고. 그래서 마치 독립투사인양 착각 속에서 살아왔어요. 그러니 부모들이 얼마나 한심스러웠겠어요. 그렇지만 그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그 때가 제일 기분이 좋았던 때고, 욕망도, 희망도 있었을 때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힘든 극단 생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디션을 통해 멋진 스타가 되는 삶을 꿈꾼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조급하게 금방 그만두고, 빨리 다른 거 찾아 간다"며 현 연극계의 세태를 아쉬워했다.

"우리들은 '마당정신'이라고, 굶어도 같이 굶고 먹어도 같이 먹고 그랬어요. 옛날에는 '동인제 극단'이라고 '극단이 망하면 나도 망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활동을 했기 때문에 같은 극단 소속이면 식구라고 그랬어요. 가족이랑 똑같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그런 동인제 체계가 없어지고 스타 체계로 변했어요. 그러니까 잘 되는 사람은 잘 되고 못 되는 사람은 못 되고. 스타는 있지만 극단을 지키려는 배우들이 없다는 서글픈 소리가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젊은이들한테 이런 이야기하는 거 아닌데, 나 또 맞을지 모르겠네요. 흐흐."

 윤문식 배우가 마당극의 대가로 알려져 나이 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의외로 젊은이들이 그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날 질문도 대부분 젊은이들이 많이 하였고,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청년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기도 했다.

윤문식 배우가 마당극의 대가로 알려져 나이 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의외로 젊은이들이 그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날 질문도 대부분 젊은이들이 많이 하였고,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청년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기도 했다. ⓒ 조우성


대전 '우금치 극단', 마당극 명맥 이어가고 있어

그때였다. 웬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자 관객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집중되었다. 긴장감이 돌았다. 근데, 그 젊은이의 질문에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선생님, '이런 싸가지 없는 놈' 유행어 있잖아요, 그거 언제적 유행어인지 알고 싶어요."

"하하하... 영화 <투캅스>에서 감독이 '선생님, 이야기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고 해서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을 애드립으로 했죠. 근데, 다들 싸가지를 욕으로 알고 있어요. 내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소새끼를 송아지', '말새끼를 망아지'라고 그러잖아요. 그럼 '식물새끼를 싸가지'라고 부르는 거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해석해서, '이건 절대 욕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싸가지 없는 놈'을 욕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윤문식 : "근데, 젊은이가 물어보고 싶은 게 오직 그거 하나였어."
젊은이 : "음... 또 다른 유행어가 있나요."
윤문식 : "흐흐흐. 딱 젊은이를 대변해서 나온 사람 같습니다. 훌륭한 질문이었습니다." 

사회자가 연이어 "네, 다음 질문이 들어왔네요. 아, 또 젊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자, 관객들이 '으하하~' 웃으며 배꼽을 잡았다. 

 이날 그의 부인(앞줄 가운데)도 행사에 함께 동행했다. 그는 토크 콘서트 도중에 "연극계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라며 충남대학교 박종성 교수(뒷줄 우측)와 열린 사이버대 강혜경 교수(앞줄 좌측) 두 사람을 소개하였다.

이날 그의 부인(앞줄 가운데)도 행사에 함께 동행했다. 그는 토크 콘서트 도중에 "연극계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라며 충남대학교 박종성 교수(뒷줄 우측)와 열린 사이버대 강혜경 교수(앞줄 좌측) 두 사람을 소개하였다. ⓒ 조우성


이런 웃음과 재미가 넘치는 분위기를 타고 마당극 전문극단인 '우금치'에서 배우생활을 하고 있는 사회자 성장순씨가 "선생님이 오늘 여기까지 오셨는데, 선생님이 갖고 있는 풍자와 해학의 진수를 여기서 한번 보여드리는 것은 어떨까요. 제가 선생님과 같이 한번 연기해 보는 것이 꿈"이라며 부탁을 했다.  

그러자 그는 "제가 이 친구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동학군들이 공주 우금치에서 많이 죽었습니다. 그 동학군의 정신을 한 번 일으켜 본다고 '우금치'라는 마당극 극단을 만들어 27년 동안 활동했어요. 저희들 미추 극단은 10년 전에 없어졌는데, 우금치는 지금까지 마당놀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금치 극단'에 관심 많이 가져 주세요"라며 성장순 배우와 함께 심청전에서 '곽씨부인이 심청이를 낳고 아들인지 딸인지 묻는 장면'을  연기했다. 

"세익스피어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 준 영국 국민이 더 훌륭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세익스피어도 훌룡하지만 그 세익스피어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 준 영국 국민이 더 훌륭하다"며 시민들에게 "연극을 사랑해 줄 것"을 당부했다.

"여러분들, 세익스피어 잘 아시죠. 훌륭한 사람이죠. 그런데 저는 셰익스피어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 준 영국 국민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나라에 천재가 나타났을 때 그걸 누가 만들어 주냐면 국민들이 만들어 주는 겁니다. 연극은 개그콘서트랑 달라요. 연극은 보고 난 후 곱씹을수록 거기서 칡뿌리처럼 우리 인생을 안내해 주는 액즙 같은 것이 나오거든요. 오죽했으면 괴테가 '극장으로 들어가는 문을 은혜의 문'이라고 했겠습니까. 여러분들, 앞으로 연극 많이 사랑해 주시고, 많이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토크 콘서트가 끝난 후 복영한 연극제집행위원장이 무대로 올라 와 성심당 빵과 소화제를 선물하자 " 그는 “내 나이쯤 되면 소화제 말고 다른 게 있을 텐데...”라는 말로 마지막까지 관객들을 웃게 만들었다.

토크 콘서트가 끝난 후 복영한 연극제집행위원장이 무대로 올라 와 성심당 빵과 소화제를 선물하자 " 그는 “내 나이쯤 되면 소화제 말고 다른 게 있을 텐데...”라는 말로 마지막까지 관객들을 웃게 만들었다. ⓒ 조우성


현 대전연극협회장이며 '대한민국 연극제'의 집행위원장인 복영한씨가 토크 콘서트가 끝난 후 무대로 올라 와 "이전에 선생님과 함께 공연 무대에 선 적이 있는데, 당시 선생님 입담에 배꼽이 빠져 대사를 힘차게 치지 못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서울 올라갈 적에 드시라고 대전의 명품인 성심당 빵과 혹 빵 드시고 속이 불편할까 해서 소화제를 선물로 준비했습니다"고 말하자,  

윤문식 : "내 나이쯤 되면 소화제 말고 다른 게 있을 텐데..."
복영한 : "아..., 네. 사모님께 챙겨드릴게요."
윤문식 : "응, 그래. 하하하."

해학과 풍자의 대가답게 배우 윤문식은 마지막까지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물했다. 경쟁과 이권이 충돌하는 살벌하고 험난한 세상이지만 정치인도, 우리도, 이런 여유와 해학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세상이 조금 더 재미있고 정답게 변화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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