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비디오 판독 제도(Video Assistant Referee·VAR)다. VAR은 골라인 판독, PK 판정 등 인간의 눈으로 일일이 따라가기 힘들거나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을 첨단 기술의 힘을 빌려 보완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렇기에 그간 빈번하게 발생하던 오심 논란을 줄이고 공정한 경기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막상 VAR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새로운 논란도 덩달아 이어지는 모양새다. 물론 예전 같았다면 주심이 놓치고 지나쳤을 장면을 잡아내거나 VAR로 결정적인 순간의 판정이 뒤집히는 등 적지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VAR로도 여전히 잘못된 판정이 나오거나 혹은 특정 팀만 편파적으로 이득을 보는 듯한 상황이 잇달아 발생해 오히려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한국 대표팀, 불리하다고 느낄만 했던 VAR 판독...

손흥민, '스웨덴 수비 비켜!' 18일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대한민국 대 스웨덴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볼다툼을 하고 있다. 2018.6.18

▲ 손흥민, '스웨덴 수비 비켜!' 18일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대한민국 대 스웨덴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볼다툼을 하고 있다. 2018.6.18 ⓒ 연합뉴스


월드컵 조별리그가 아직 중반도 넘지 않았는데 벌써 'VAR의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모양새다. 공교롭게도 여기에는 바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도 포함되어 있다. 지난 18일(한국 시각) 열린 한국과 스웨덴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지은 패널티킥 판정 때문이다.

후반 18분 한국 패널티 박스 내에서 볼을 놓고 양 팀 선수들이 경합을 펼치던 상황에서 한국 김민우의 태클에 걸려 스웨덴 크라에손이 넘어졌다. 처음에는 경기가 그대로 진행됐고 한국이 공격으로 전환하는 도중 갑자기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키며 VAR 판독을 실시했다. 이후 한국 팀의 반칙이 선언됐고 스웨덴에게 페널티킥이 주어졌다.

문제는 VAR 판독의 타이밍이었다. 김민우의 태클 자체는 PK를 내줘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심판은 바로 판정을 내리지 않고 한국팀이 역습으로 한창 공격을 전개해나가고 있던 와중에야 한박자 늦게 경기를 중단시켰다. 공격 기회를 놓치고 페널티킥까지 내준 한국으로서는 이중으로 손해를 본 셈이다. 다수의 외신이나 해외 전문가들도 심판의 경기운영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물론 당시 한국이 스웨덴에 진 이유가 VAR 때문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지적이다. 다만 이날 한국 팀이 전반적으로 스웨덴에 비해 판정 면에서 손해를 본 측면이 컸다고 보는 축구 팬들이 많은 것만은 사실이다. 당시 주심을 맡은 엘살바도르 출신의 호엘 아길라르 심판은 한국 선수들의 몸 싸움이나 파울에는 경고를 주는 등 엄격한 판정을 내리면서도 우리 선수들이 넘어져 다리를 밟히거나 스웨덴 문전에서 핸드볼이 의심스러운 장면에는 경고를 주지도 않았고 VAR 판독도 하지 않았다. 이날 승부의 운명을 가른 페널티킥 VAR 판독 역시 같은 연장선상에 있었던 장면이다. 페널티킥이나 VAR 판독 자체가 오심은 아니었지만 심판의 경기운영이 편파적이라고 느낄 만한 소지는 다분했다.

VAR의 한계도 결국 여기에 있다. VAR 판독을 시행할지 하지 않을지, 경기를 중단시킬지 그대로 진행할지는 오로지 주심의 재량에 달려있다. 경기 중 선수나 감독, VAR 전담 심판들이 VAR 판독을 주심에게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개입이 불가능하다. 건의를 받아들이는 것도 어디까지나 주심의 재량이다. 한국-스웨덴전처럼 VAR이 특정팀에 유리한 판정만 반드시 잡아내고, 반대의 경우에는 그냥 넘어간다면 오히려 VAR 제도의 본질을 왜곡할 수도 있다. 특히 VAR로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PK 판정이다. 바로 이번 대회에서 유난히 PK가 자주 쏟아지고 있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VAR 영향력 커질수록, 공정성도 고려해야

 이란 오미드 에브라히미(왼쪽)와 스페인의 로드리고(오른쪽)이 21일 러시아 카잔에서 진행된 B조 조별리그 경기에서 공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몸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란 오미드 에브라히미(왼쪽)와 스페인의 로드리고(오른쪽)이 21일 러시아 카잔에서 진행된 B조 조별리그 경기에서 공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몸 싸움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EPA


또한 이번 월드컵에서 VAR이 논란이 되었던 경우를 살펴보면, FIFA 랭킹에서 앞선 강팀들이 주로 이익을 보고 상대적으로 약팀-비주류 팀들은 손해를 본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의아하다. 그리고 대부분이 PK를 비롯한 득점 상황과 관련된 판정이었다. 첫 VAR 판독이 나왔던 프랑스-호주(C조) 경기에서 후반 8분 주심은 앞서 놓쳤던 페널티킥 상황을 VAR로 판독해 판정을 뒤집었다. 이는 고전하던 프랑스가 승기를 잡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1일 포르투갈과 모로코의 B조 경기는 이번 대회에서 VAR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최악의 사례로 남을 만하다. 모로코가 0-1로 뒤진 후반 34분경 포르투갈 문전에서 페페의 핸드볼 파울성 플레이가 있었지만 페널티킥 선언되지 않았다. 이외에도 몇몇 PK 판정을 해야 할 법한 상황이 있었지만 주심은 VAR 판독을 외면했다. 모로코는 이날 잘 싸우고도 패배로 결국 16강행이 좌절됐기에 더욱 억울할 만했다.

스페인과 이란의 B조 경기에서도 VAR로 희비가 엇갈렸다. 이란이 0-1로 끌려가던 후반 17분 프리킥 혼전 상황에서 이란의 에자톨라히가 골을 넣는 데 성공했으나 VAR 판독 끝에 오프사이드 판정이 내려지며 골이 무효처리됐다. 이란은 우승 후보로 불리는 스페인을 경기내내 거세게 몰아붙이며 선전했다. 만약 VAR이 아니었다면 스페인은 이란의 '늪축구'에 빠져 상당히 어려운 상황까지 몰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브라질-스위스(1-1), 아르헨티나-아이슬란드(1-1), 잉글랜드-튀니지(2-1)의 경기처럼 강팀들도 경기 후 VAR 활용 여부를 놓고 FIFA에 불만을 제기한 경우도 있었다. 페루와 덴마크(0-1)처럼 VAR도 페널티킥을 얻고도 스스로 기회를 놓친 사례도 있다. VAR 제도가 과연 강팀들만 편파적으로 이득을 보고 있는가하는 의구심은 좀더 지켜봐야 할 부분이지만 주심의 주관적 판단에 의하여 오·남용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짚고넘어가야할 문제다.

현대스포츠에서 첨단 기술의 도입은 시대적 흐름이고 VAR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몇몇 아쉬운 장면이 나왔다고 해서 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계와 기술이 나온다고 해도 그 가치는 결국 사람이 어떻게 운용하기 나름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앞으로 월드컵에서 VAR이 승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공정한 운용의 묘에 대하여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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