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오미드 에브라히미(왼쪽)와 스페인의 로드리고(오른쪽)이 21일 러시아 카잔에서 진행된 B조 조별리그 경기에서 공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몸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란 오미드 에브라히미(왼쪽)와 스페인의 로드리고(오른쪽)이 21일 러시아 카잔에서 진행된 B조 조별리그 경기에서 공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몸 싸움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EPA


이란이 세계 최강 스페인을 상대로 명승부를 연출했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지 않았을까. 이란이 21일 오전 3시(아래 한국시각) 러시아 카잔에 위치한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FIFA(국제축구연맹) 러시아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B조 2차전 스페인과 맞대결에서 0-1로 패했다. 이란은 스페인을 상대로 마지막까지 잘 싸웠지만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서 승점 사냥에 실패했다.

경기 시작 전에는 반신반의했다. 이란의 늪은 확실히 지난 대회보다 깊어졌다. 1차전 모로코와 맞대결이 증명한다. 그러나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디에고 코스타, 이스코, 다비드 실바, 세르히오 라모스 등 선발 명단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주눅 들게 했다. 제아무리 이란의 늪이 깊다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스페인을 상대로도 통할까 싶었다.    

통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목이 탔다. 시원한 물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늪에서 허덕이는 스페인 선수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전반전 이란이 보인 마력의 늪은 '티키타카'를 앞세운 스페인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란의 수비는 완벽했다. 자신들의 페널티박스 부근에 10명의 선수가 세 줄로 섰다. 간격은 좁게 유지하고, 그 사이로 스페인 선수들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압박은 수비 블록 안쪽에서만 진행했다. 상대가 진입하면, 한 선수가 압박하고 다른 이가 공간을 메웠다.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스페인은 당황했다. 발 빠른 루카스 바스케스가 깜짝 선발 출전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이란이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니에스타와 실바, 이스코 등이 빠르게 볼을 주고받고, 끊임없이 움직였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스페인은 모로코와 마찬가지로 자신들도 모르는 세 이란의 늪에 깊이 빠져버렸다.

이란은 영리했다. 단순히 수비 조직력만 빼어났던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의 패스가 빨라지기 시작하면 카드를 받지 않을 만큼의 반칙으로 끊었다. 경기 속도가 빨라진다 싶으면,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스로인을 느긋하게 진행했고, 상대의 신경을 고의적으로 자극하며 분위기를 자신들의 것으로 가져왔다.

전반전은 0-0으로 마무리됐다. 스페인은 45분 내내 볼을 소유하며 공격을 전개했지만 이렇다 할 슈팅 하나 시도하지 못했다. 종료 직전, 실바의 슈팅이 모르테자 프랄리간지의 발에 맞고 굴절됐지만, 이마저도 골문을 외면했다. 세계 최강 스페인이 이란의 늪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행운밖에 없는 듯했다.

이란의 반전 매력, 공격으로 몰아친 후반전

사실 전반전만 보면, 명승부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란은 수비만 했고, 스페인은 공격만 했다. 색채가 워낙 뚜렷한 두 팀의 맞대결이라 신선함은 있었지만, 치고받는 것을 기대한 팬들에겐 지루한 45분일 수 있었다.

후반전은 달랐다. 화끈한 공격 축구로 맞붙었다. 초반은 전반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란은 수비, 스페인은 공격이었다. 후반 8분, 흐름이 바뀌었다. 스페인이 선제골을 뽑았다. 이니에스타가 간결한 드리블로 이란 수비의 틈을 만들었고, 짧게 내준 패스를 코스타가 마무리했다. 행운이 따랐다. 코스타의 슈팅이 라민 레자에이안 맞고 다시 코스타를 때린 뒤 골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란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동점골을 위해 강하게 몰아치거나 경기를 일찍 포기하고 포르투갈과 최종전을 대비하는 것이었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의 선택은 공격으로의 전환이었다. 케이로스가 지휘봉을 잡은 7년간 아시아에서도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하던 팀이 '닥공'으로 나섰다.

놀라웠다. 이란이 스페인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메흐디 타레미의 헤더가 스페인의 간담을 서늘케 했고, 카림 안사리파드와 사에드 에자톨라히의 슈팅이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를 긴장시켰다. 후반 16분에는 잠시나마 환호의 순간이 있었다. 에자톨라히가 혼전 상황 속에서 득점에 성공하며 골 세레머니까지 마쳤지만, VAR(비디오 판독 시스템)에 오프사이드가 걸렸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동점골을 위해 계속 몰아쳤다. 후반 36분, 바히드 아메리가 헤라르드 피케를 완전히 제쳐내며 빠른 크로스를 올렸다. 이를 총알처럼 날아든 타레미가 헤더로 연결했다. 골문을 아주 살짝 벗어났다. 데 헤아 골키퍼 손 쓸 수 없는 빠른 공격이었던 만큼, 아쉬움이 남았다.

스페인이 수비하고, 이란이 공격하는 상황이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반전은 없었다. 스페인은 코스타의 결승골을 잘 지켜내면서 이란을 상대로 승점 3점을 챙기는 데 성공했다.

이정도 경기력이라면... 이란 16강 가능해

이란은 고개 숙일 필요가 없었다. 스페인을 상대로 공수 양면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결과는 아쉽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와 대등한 경기를 보였다. 이란이 모로코전과 스페인전에서 보인 경기력이라면, 포르투갈과 충분히 해볼만 하다. 포르투갈은 스페인보다 전력이 강하지 않다. 1승 1무를 기록 중이지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크다. 이번 대회에서 터뜨린 4골 모두 호날두의 것이었고, 승점 4점도 그가 가져온 것이나 다름없다.

편하다. 호날두의 전방 파트너로 나서는 곤살로 게데스를 비롯해 베르나르두 실바, 주앙 무티뉴, 윌리엄 카르발류 등 다른 이들의 활약은 저조하다. 한 명만 막으면 된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이란의 수비라면, 호날두를 충분히 막아설 수 있다. 4년 전 리오넬 메시를 상대했던 경험도 호날두를 막아서는 데 큰 도움이다.

공격에서도 자신감이 붙었다. 타고난 신체조건을 활용한 세트피스는 물론이고, 빠른 역습이 스페인을 혼란에 빠뜨렸다. 아직 만족스러운 활약은 없었지만, '주포' 사르다르 아즈문과 네덜란드 리그 득점왕 알리레자 자한바크슈도 터질 때가 됐다. 무엇보다 포르투갈을 잘 아는 케이로스 감독의 존재는 자신감을 더한다.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이어 날카로운 창까지 꺼내든 이란. 세계 최강 스페인을 당황시킨 그들이 죽음의 조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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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VS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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