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엄마로서 자식을 키우며 늙어가기, 회사의 직원으로서 일하며 늙어가기, 정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정원을 가꾸며 늙어가기... 그 어떤 늙음이 서글프지 않겠냐만 그래도 이런 늙음들은 견딜 만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도 없고 즐거운 것도 없고 가족도 친구도 없는 중년 여성 '루시'의 늙어감은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루시 곁에는 수면제와 담배와 외로움뿐이다.

오는 28일 개봉을 앞둔 일본 영화 <오 루시!>의 언론시사회가 19일 오전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렸다.

영화는 대략 이런 이야기다. 외로운 중년 여성 세츠코(테라지마 시노부 분)가 조카 미카의 권유로 영어학원에 등록하고 그곳에서 만난 영어강사 존(조쉬 하트넷 분)에게 반한다. 존이 미국으로 떠나자 세츠코는 존을 찾아 미국으로 간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영화의 공식적인 줄거리다. 또한 이 영화의 장르는 '러브 어드벤처 무비'다. 역시 공식적인 소개다. 하지만 이 모든 신나고 모험적이고 통통 튀는 공식 소개들 뒤에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루시는 세츠코다. 영어학원에서 새롭게 얻은 미국식 이름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온몸으로 느껴지는 루시의 외로움 때문에 끝까지 보기 불편할 정도다. 단지 루시가 미혼의 중년 여성이라서가 아니다. 소중한 것을 빼앗긴 상실감에서 오는 외로움은 압도적이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 막힐 지경이다.

그런 맥락에서 영어학원 동료 수강생 톰의 외로움은 이 영화가 공식적인 소개에선 숨겨놓은 반쪽의 이야기다. 타케시(아쿠쇼 코지 분)는 루시가 그러했듯 영어 학원에서 '톰'이라는 새 이름을 달고 타케시가 아닌 새 사람으로서 말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그는 털어놓는다.

"저와 톰은 정반대 사람이에요."

세츠코가 루시가 되고서 느낀 설렘, 타케시가 톰이 되고서 느낀 쾌활함은 관객을 짠하게 만드는 포인트다. 두 사람이 설레고 쾌활해질수록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속 발버둥은 더 강해질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 마디로 독특하다. 전에 보지 못한 감성이다. 스토리도 독특하고 등장인물도 독특하다. 루시는 어떻게 보면 '미친 여자' 같다. 그의 언니도, 존도, 조카 미카도 모두 좀 비정상적이다. 기괴함마저 풍기는 이들 캐릭터를 따라가다 보면 (절대 그럴 리 없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당신 자신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영화는 중년여성이 아니더라도, 상실의 아픔을 지닌 중년남성이 아니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인간 보편적인 외로움에 다가간다. 영화에서 줄곧 그려지는 지하철에 투신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단절된 현대인의 외로움을 표현한다.       

이 영화를 만든 히라야나기 아츠코 감독은 미국 교환학생 시절에 자신이 느꼈던 것을 단편 <오 루시!>를 통해 중년 여성 캐릭터로서 그려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단편이 2012년 아시아단편영화제 대상, 칸영화제, 선댄스영화제 등의 영화제에 초청되고 25개 상을 석권하며 주목받았고 이후 단편의 스토리를 장편으로 발전시켜 새롭게 선보인 것이 바로 이번에 개봉하는 <오 루시!>다. 신인감독의 첫 장편영화임에도 독특한 감성과 주제의식으로 70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강렬하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루시나 톰 같은 관객이라면 마지막 장면에서 마음 밑바닥까지 전해지는 위로를 느낄 것이다. 마치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포옹처럼.

한 줄 평: 기괴한데 따뜻하다... 날카롭고 신선한 위로
평점: ★★★☆(3.5/5)

영화 <오 루시!> 관련 정보

원제: OH LUCY! 감독: 히라야나기 아츠코 주연: 테라지마 시노부, 조쉬 하트넷, 야쿠쇼 코지, 쿠츠나 시오리 장르: 리얼 러브 어드벤처 상영시간: 95분 수입/배급: (주)엣나인필름 개봉일: 2018년 6월 28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