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 토크 콘서트의 2번째 손님으로 배우 남명렬씨가 초대되었다. 남명렬씨가 사회를 맡은 대전대학교 김상열 교수와 담소를 나누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 토크 콘서트의 2번째 손님으로 배우 남명렬씨가 초대되었다. 남명렬씨가 사회를 맡은 대전대학교 김상열 교수와 담소를 나누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 조우성


대학교 축제 때 처음 연극 보고 흥미 느껴

지난 17일 오후 9시 30분 대한민국 연극제-토크 콘서트 2번째 손님으로 최근 영화 <탐정 리턴즈>에 출연한 배우 남명렬이 초대되었다. 그는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관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연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우연히 대학교 축제에서 연극을 본 후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라며 "그후 연극반에 가입해 활동했다"고 말했다. 

"충남대학교 1학년 때 축제가 열렸어요. 마음이 붕 뜨잖아요. 그때 축제에 제 누나가 노래하는 행사에 참여한다고 해서 그거 보러 갔어요. 근데 그 행사 다음이 연극반에서 하는 연극이었어요. 뭔지는 몰랐지만 '이왕 온 김에 연극까지 보고 가자'고 마음 먹었죠. 근데 그 연극을 보고난 후 '이게 뭔가 재미있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연극반에 들어갔죠. 제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 거죠."

  그는 "1년 연봉이 360만원 밖에 안되는 시절이 있었지만 그냥 논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연극을 했어요.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니 힘든 시기를 잘 넘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년 연봉이 360만원 밖에 안되는 시절이 있었지만 그냥 논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연극을 했어요.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니 힘든 시기를 잘 넘긴 것 같다.”고 말했다. ⓒ 조우성


제약회사 영업부 입사하기도... "목표달성 못하면 '나쁜 인간' 취급"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전문연극인의 길로 가지 않고 제약회사 영업부에 입사해 6년간 근무했다. 

"영업이 사실은 되게 힘들어요. 제가 영업부에 있을 때는 '좋은 인간'과 '나쁜 인간' 기준은 오로지 하나였어요. 그달 목표를 완수했느냐 안 했느냐 그거예요. 목표를 달성했으면 좋은 인간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인간이에요. 그걸 한 6년쯤 하니까 한계가 느껴졌어요."

제약회사에 다니면서도 그는 틈틈이 연극활동을 계속 했다. 대전에서 5년 정도 근무하다 서울로 발령을 받았는데, 그는 서울에서 생활 하다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연극판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서울연극계에서 자신을 알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한 2년 정도 대전에서 극단 대표를 했어요. 어느 날 서울에서 활동하는 연출가가 자기와 연극을 할 생각이 없냐고 그래요. 제 목표가 서울에서 연극을 해보는 거라 바로 하겠다고 대답했죠. 서울에서 제가 처음으로 했던 연극이 굉장히 인기가 많아 5개월간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두 번씩 공연했어요. 저는 이렇게 인기가 많으니 이 연극이 끝날 때쯤 되면 이쪽 저쪽에서 '연극 같이 하자'라는 제안이 엄청나게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막상 공연이 끝났는데도 누구도 러브콜을 하지 않아요. 어떡하지. 다시 대전 내려가자니 창피하고 서울에 있자니 연극 하자는 사람은 없고. 그런 상황이 되었죠." 

 사회자가 방청객들의 질문을 적은 쪽지를 고르기 위해 살펴 보고 있다.

사회자가 방청객들의 질문을 적은 쪽지를 고르기 위해 살펴 보고 있다. ⓒ 조우성


10년간 무명 생활 "그래도 연극이 즐거워"

그는 할 일 없이 두 달 정도 대학로 단골 찻집에 앉아 하루종일 책을 보다가 들어가는 한량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새로 창단하는 극단에서 두 달 정도 함께 공연하는 기회가 찾아 왔다.

"이 작품이 대학로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어요. 그 공연이 끝날 때쯤 되니까 한 서너 곳에서 작업을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행복하게 작업을 했는데, 그것도 그걸로 끝이에요. 또 6개월 정도 카페에서 책만 읽었죠. 그런 세월을 한 10여 년 보냈어요."

사회자가 깜짝 놀라 "10여 년이요? 10년 동안 어떻게 버텼습니까. 그렇게 버틸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었나요"라고 물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하는 연극이 흥행에 실패하고, 연출진들과 알력이 생기기도 하고, 연극을 해석하는 입장에 차이가 있어 속상한 일도 생기기도 하죠, 그럴 때는 연극을 때려 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연극 자체가 저에게 뭔가 커다란 즐거움을 줘요. 그래서 그냥 논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연극을 했어요. 저도 1년 연봉이 360만 원밖에 안되는 시절이 있었지만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니 힘든 시기를 잘 넘긴 것 같아요." 

 대한민국영화제 집회위원장인 복영한씨가 사인을 받기 위해 남명렬씨의 사진을 가져와 건네자, 남씨는 “이거는 수염도 까맣고 머리도 까맣죠. 지금부터 한 12년 전 사진입니다. 어느 잡지사와 인터뷰하는데, 사진 기자가 찍어 준 것입니다. 너무 멋지게 나와서 이 사진을 가지고 왔습니다.”고 사진에 대해 설명했다.

대한민국영화제 집회위원장인 복영한씨가 사인을 받기 위해 남명렬씨의 사진을 가져와 건네자, 남씨는 “이거는 수염도 까맣고 머리도 까맣죠. 지금부터 한 12년 전 사진입니다. 어느 잡지사와 인터뷰하는데, 사진 기자가 찍어 준 것입니다. 너무 멋지게 나와서 이 사진을 가지고 왔습니다.”고 사진에 대해 설명했다. ⓒ 조우성


한 번은 그가 집에 들어와 지갑을 열어보니 지폐는 전혀 없고, 주머니를 뒤져 보니 달랑 600원이 나왔다.  밥 먹을 돈도 안 되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가진 통장을 다 꺼내 잔고를 살펴보니 여기 저기 몇천 원씩 들어 있었다고  한다.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1000원짜리는 나오지 않고 만 원 단위로 출금되잖아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각 통장의 잔고를 한 통장으로 이체를 해서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랬더니 2만6천 원이 되더라고요. 거기서 2만 원을 뽑아 어렵게 생활을 연명하고 있는데, 대전에서 같이 활동했던 임형주 형님이 서울에 올라와서 제게 연락을 했어요. 3년 만에 만났는데 염치 불구하고 다짜고짜로 '형님, 저 100만 원만 빌려주세요' 그랬어요. 형님이 빌려 준 돈으로 두어 달 살고, 나중에 공연비를 받아 보내드렸죠."

"영화 드라마는 감독과 PD가 편집, 연극은 배우가 스스로를 편집"

그는 영화나 드라마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서고 있다. 사회자가 "어떤 매력 때문에 꾸준히 연극무대에 서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경우는 한 대 혹은 몇 대의 카메라가 나를 보고 있지만 연극은 관객들 숫자만큼 카메라가 각기 다른 각도로 배우를 보고 있는 것과 같죠. 연기 행위 자체는 같지만 저에게 연극무대가 훨씬 더 소중한 이유는 드라마나 영화는 내가 한 연기를 감독이나 PD가 자기의 의도대로 편집해서 방영하거나 스크린에 걸잖아요.

그런데 연극은 몇 달 연습해서 무대에 서면 배우 스스로가 자신을 조절하고 스스로를 편집해야 되요. 그러니까 배우의 몫이 훨씬 크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연극이 훨씬 더 매력적이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자꾸 서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배우 남명렬씨가 연극협회에서 보관할 사진에 사인을 하고 있다.

배우 남명렬씨가 연극협회에서 보관할 사진에 사인을 하고 있다. ⓒ 조우성


그는 함께 작업한 연극배우들 중 기억에 남는 인물로 '격정 연기'의 달인 박지일, 화술의 귀재 이호재, 애드립 천재 오광록을 꼽았다.  

"제가 공연을 하고 연습을 하다 보면 잘 안 풀릴 때가 있어요. 그때 제가 모델로 삼는 배우가 있습니다. 제 친구이기도 한 박지일이라는 배우예요. 그 친구는 굉장히 격정적인 연기를 잘 해요. 그래서 때때로 제 연기가 잘 안 풀릴 때는 '만약 박지일이 이 배역을 맡았다면 어떻게  연기 할까'라고 상상해 봐요. 그렇게 상상하다 보면 잘 풀릴 때가 많더라고요.

또 이호재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저보다 연배가 많은데, 이 양반은 화술이 정말 좋아요. 효율적이면서도 객석에 아주 쏙쏙 꽂히는 대사를 잘 해요. 저는 대본을 읽으면서 '만약에 이 양반이 이런 대사를 한다면 어떤 식으로 말을 할까, 어떤 식으로 요리할까'라고 생각하면서 고민하죠. 일종의 벤치마킹이죠.

배우 오광록은 굉장히 감성이 좋고, 무대 위에서 항상 살아있으려고 하는 욕망이 큰 배우에요. 저랑 1994~1995년도 쯤에 공연을 하나 했거든요. 다섯 명의 대학교 동창들이 졸업 후에 민주 시화회라는 모임의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회의를 하는 연극장면이었어요. 어느 날 공연하다가 갑자기 얘가 테이블 위로 딱 올라가더니 '나는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연습을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오광록이 이러니까 다들 황당한 거예요. 공연이 끝나고 분장실에서 박지일 배우가 '야 오광록, 그런 식으로 공연을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하냐'라고 따졌더니 오광록이 씩 웃으면서 '연극은 재즈 같은 거 아닌가요' 이러는 거예요. 말은 멋있죠. 박지일이 이 말을 듣고 왈 '우리 재즈 못하니까 앞으로 재즈 하지마!' 그러더라고요." 

 사진에 사인을 마친 후 남명렬씨는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 집행위원장인 복영한씨, 사회자 김상열 교수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였다.

사진에 사인을 마친 후 남명렬씨는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 집행위원장인 복영한씨, 사회자 김상열 교수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였다. ⓒ 조우성


"연극을 하지 않았다면 교사 되었을 것"

그는 만일 연극인의 길을 가지 않았다면 교사가 되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충남대학교 1, 2학년 재직시 교직과목을 7, 8학점 이수를 하기도 했다. 당시는 교직과목을 몇 학점 이상 이수하면 자동으로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주어졌었다.

"제가 입학할 때는 대학교가 지금의 충남대학병원 거기에 있었어요. 캠퍼스가 그렇게 넓지가 않았어요. 2학년을 마친 후 군대에 갔다 오니까 학교를 지금의 유성캠퍼스로 옮기데요. 저는 농대를 다녔는데, 교직과목을 듣기 위해서는 문과대 쪽으로 걸어서 한 20분 정도 가야 되요. 저는 그게 귀찮아 교직과목 이수를 포기했어요. 결국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못 받았죠. 교직을 이수했으면 아마 회사에 취직 안 하고 선생님을 했을 것 같아요. 아이들과 연극반 만들어서 활동도 하면서 그렇게 살았을 것 같아요."

방청객 질문 시간에 맨 뒷줄 어느 남성이 "최근에 <탐정 리턴즈> 영화에 출연하셨는데, 그 영화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합니다"라고 소리쳤다.  

"대전의 자랑 권상우와 성동일, 이광수 등이 나오는 영화인데, 되게 재미있어요. 마지막 장면에 반전도 있고요. 아주 유명한 국회의원이 까메오로 나오는데, 그 사람이 하는 행위나 이런 것도 볼거리에요. 권상우가 시사회가 끝난 후 '선생님이 우리 영화 멋쟁이 담당이에요. 선생님이 제일 멋지게 나와요'라며 저를 부러워 했어요. 코미디 영화는 평점 받기가 쉽지 않은데, 지금 평점이 9.5점 정도 높게 나와요. 많이들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어제 이순재 선생님은 연기에 꿈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고생할 각오를 하고 뛰어들어라'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연기에 관심이 있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연극을 한다는 게 다른 일 하는 거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20대 후반까지 연극뿐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을 한다 해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일이 몇 개나 있겠습니까. 20대는 어떤 일을 해도 불안정합니다. 청년 시절 어려움은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에요. 물론 각오는 해야 되지만 '그것이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아니다'라는 것이죠. '내가 갈 길은 내가 선택했고, 나에게는 그것이 옳다'라는 것입니다."

남명렬 대한민국 연극제 김상열 복영한 탐정 리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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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tracking photographer. 문화, 예술, 역사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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