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포스터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포스터 ⓒ 찬란


혹시 어떤 냄새를 맡은 순간 문득 그 향기에 얽힌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적이 있는가. 아마도 다들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생각하며 넘어갔으리라 싶다. 이는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한다. 그 유래는 M.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재밌는 점은 이 작품이 나온 지 88년 후인 2001년에야 과학적으로 입증이 됐다. 100여 년이 지난 2014년에는 이 현상을 모티브로 한 영화까지 나왔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다.

2살 때 부모님을 여읜 폴, 무서운 기억 뿐인 아버지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안나 이모 역의 헬렌 벤상, 폴 역의 귀욤 고익스, 애니 이모 역의 베르나데트 라퐁.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안나 이모 역의 헬렌 벤상, 폴 역의 귀욤 고익스, 애니 이모 역의 베르나데트 라퐁. ⓒ 찬란


피아니스트인 폴(귀욤 고익스)은 2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두 이모의 품에서 자랐다. 그녀들은 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를 홀대하기는커녕 대소사에 일일이 신경 쓰며 과잉보호 한다. 이는 원체 극성인 두 이모의 성격 탓도 있고, 또 다른 진짜 이유도 있다(이 이유는 직접 확인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아무튼 역시나 어린 나이에도 충격이 컸는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말은 아빠다. 말을 잃은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그 주인공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 담배나 뻑뻑 펴대는 무심하고 무섭기까지 한 아빠였다. 반대로 어머니, 아니타(파니 타우론)는 항상 따뜻하고 자상한 여성으로 그에게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아랫집에 사는 마담 프루스트(앤 르 니)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이 때, 그는 그녀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잠시나마 되살려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녀가 만든 쓰디쓴 차를 마시고, 마들렌을 먹는다. 그리고 떠오르고 싶은 기억과 관련된 음악을 틀어놓기만 하면 된다. 그 날부터 그는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에 빠져든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줄거리다. 이제부터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본인의 기억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우리는 자신의 기억력을 과신하는 편이다. 물론 시험을 볼 땐 그 자신감이 온데간데 없어지긴 하지만, 과거 본인에게 있었던 일을 떠올릴 때는 대부분 그렇다. 그러나 왜곡된 경우가 많다. 그것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또는 마음이 편하도록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조금씩 변한다. 군대 시절을 이야기할 때 자신이 마치 천하대장군이었던 것처럼 묘사하는 수많은 남성들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폴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영화 초반, 그에게 아버지는 가족끼리 행복했던 꿈을 악몽으로 바꿔놓을 만큼 싫은 기억이다.

이는 마담 프루스트 덕에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릴수록 더욱 심화된다. 직업이 프로레슬러인 탓인지 과격한 성격을 지닌 아버지가 계속 불안감을 조성하는 듯 하고, 그에게 별 관심도 없어 보인다. 어머니를 무려 폭행까지 하는 모습을 본 날에는 마담 프루스트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는 이내 진실을 알게 된다. 사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이 프로레슬링을 하고 있었으며, 그 폭력은 진짜가 아닌 연습이었다. 그 후로 폴 안에 있던 아버지의 이미지는 변화한다. 폴은 여느 아빠들과 다름없이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를 추억한다.

부모님에겐 사소한 행동도 아이에게는 크게 다가온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아니타 역의 파니 타우론, 마르셸 역의 귀욤 고익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아니타 역의 파니 타우론, 마르셸 역의 귀욤 고익스 ⓒ 찬란


이 같은 폴의 모습은 기억의 왜곡 말고도 시사 하는 바가 또 있다. 부모님이 생각하기엔 사소한 행동이 자녀에게는 훨씬 강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5살이고 아버지가 이따금씩 자신에게 무서우리만큼 버럭 화를 낸다고 상상해보자. 어린 아이에게 어른은 덩치뿐 아니라 존재 자체가 크다. 특히나 몸과 마음이 아직 물렁물렁한 두부와도 같은 아이가 가장 의지하는 부모님의 호된 꾸짖음은, 그 당사자 뿐 아니라 이후 만나는 어른들에게도 자신도 모르게 오버랩 되어 위축되거나 회피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 파급력은 평생 갈지도 모른다.

반대로 부모님이 5살인 자신에게 화를 내지는 않지만, 관심과 칭찬도 거의 없다면 어떨까. 이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거나 포기하고 애정을 갈구할 다른 사람을 찾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만큼 자신에게 사랑을 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리고 이 애정결핍은 성인이 돼서도 연인이나 부부관계로 전이되어 삐뚤어진 애정관을 갖게 될 우려가 있다. 다행히 폴처럼 기억이 잘못돼있었고, 이 오류를 바로잡지 않는 한 말이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마담 프루스트 역을 맡은 앤 르 니.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마담 프루스트 역을 맡은 앤 르 니. ⓒ 찬란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이와 같은 메시지 말고도 두 가지가 돋보인다. 우선, 폴 역을 맡은 귀욤 고익스의 호연이다. 그는 말을 못하는 배역이기 때문에 모든 감정표현과 의사전달을 표정과 몸짓으로 한다. 그런데 영화를 이해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물론 은근히 설명이 담긴 상대 배역들의 알맞은 대사 덕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정작 주인공이 무슨 감정과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아리송하다면 영화의 재미와 감동은 반으로 줄기 마련이다. 여기에 더해 귀욤 고익스는 폴과 아버지, 1인 2역을 맡았다. 거의 정반대 성격을 띤 두 인물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제 몫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두 번째는 연출이다. 폴이 추억을 그리는 장면을 마치 뮤지컬처럼 꾸몄다. 그 덕에 영화상 중요한 과거 장면이 보다 부각됨은 물론이고, 경쾌함까지 덤으로 선사한다. 그리고 장면을 이루는 공간, 배치된 도구들, 배우들의 의상 등 대부분 장면의 색감을 보는 이의 이목을 사로잡으면서도 조화롭게 구성했다. 이를 통해 또 다른 보는 재미를 더하며 연출에 신경을 많이 쓴 티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위에 말했듯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폴은 '아빠'라는 오직 한 마디만 한다. 그리고 이 대사는 처음과 끝, 두 번 나온다. 처음은 갓난아기 때 꿈속에서 아버지를 보며 옹알이하듯이 한다. 두 번째는 마지막에 자신에게 아빠라고 할 듯 말 듯 한 자녀를 보며 다정하게 속삭인다. 이는 부모님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들에게 유일하게 배운 단어만큼은 내뱉는다는 것은 부모님과 좋았던 추억을 항상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비록 부모님은 곁을 떠났지만 이제는 옆에 아내와 자식이라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도 향수에 젖게 만드는 향을 맡으며 한번쯤 과거로 떠나보면 어떨까 싶다. 혹시나 폴처럼 잘못 알고 있는 기억이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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