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분노>영화의 포스터

<거룩한 분노>영화의 포스터 ⓒ (주)시네마뉴원


1971년 스위스의 작은 마을. 노라(마리 루엔베르게르 분)는 남편 한스(맥시밀리언 시모니슈에크 분)를 내조하고 두 아이를 기르는 평범한 가정주부다. 가사 일을 하거나 농장의 일을 돕고 시아버지의 수발을 들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많은 면에서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지 않다고 느끼던 노라는 우연히 여성해방운동 책자를 접하고 행동에 나선다. '여성 정치화 반대 행동 위원회'의 모금을 거부하고 뜻이 맞는 여성들과 함께 여성 참정권 쟁취를 위한 지역 운동에 앞장선다.

스위스는 영세중립국, 치즈, 스키 리조트, 맛있는 초콜릿, 시계로 대표되는 제조업의 정밀함, 계좌와 고객의 비밀주의 원칙을 고수하는 은행 등으로 유명하다. 반면에 유럽에서 가장 늦게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1971년 2월 7일 일부 주에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고 1991년이 되어서야 모든 주가 받아들일 정도였다.

<거룩한 분노> 영화의 한 장면

▲ <거룩한 분노> 영화의 한 장면 ⓒ (주)시네마뉴원


영화 <거룩한 분노>는 스위스의 한 마을에서 여성 참정권을 얻기 위해 주민 투표를 앞두고 벌어진 몇 주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연출을 맡은 페트라 볼프 감독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당시의 분위기를 담고 싶었다.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요구했던 그 당시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워야 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한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1969년부터 1971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일어난 학생 운동, 흑인 운동, 여성 해방 등 부조리함에 맞서는 투쟁을 담은 기록 영상을 보여준다. 세상은 거대한 변화를 맞고 있었지만, 노라가 사는 마을은 여전히 과거의 시간에 멈춰 있었다. 대다수 남성, 심지어 일부 여성은 여성 참정권 여부를 결정하는 주민 투표를 앞두고 가정에 충실한 건 여성의 특권이며 성 평등은 자연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외친다.

집에서 농장을 가는 동안에 자전거를 타며 가지는 해방감에 만족하던 노라는 여성 인권에 대한 자료를 읽고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를 느낀다. 변화의 물결을 이끌기로 마음을 먹은 노라는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브로니(시빌레 브루너 분), 남편과 별거 후 스위스로 온 그라지엘라(마르타 조폴리 분), 누구보다 수동적으로 지내던 테레사(레이첼 브라운쉬웨이그 분)와 함께 자신과 마을의 여성을 위해 용기 있는 싸움을 시작한다.

<거룩한 분노> 영화의 한 장면

▲ <거룩한 분노> 영화의 한 장면 ⓒ (주)시네마뉴원


이들은 권리를 얻기 위해 값진 발걸음을 내딛는다. 처음엔 '여성투표권을 위한 지역 운동 위원회'를 결성한다. 취리히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하여 용기를 북돋운다. 마을 사람을 대상으로 '여성 투표권 알림 행사'도 개최한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시련을 만난다. 때로는 지쳐 그만두고 싶어진다. 그들은 우정과 연대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마침내 마을의 여성 대부분이 참가하는 파업을 이끈다.

노라를 비롯한 마을 여성들의 싸움은 인류사에서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기 위해 벌인 투쟁의 축소판과 다름이 없다. 외진 마을은 고립성과 보수성을 함축한다. 하나님이 뜻한 '신성한 질서(영화의 원제)'는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하고 참정권을 주어선 안 되는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에게 노라는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람으로 본다." 신성한 질서는 바로 평등인 것이다.

<거룩한 분노>는 "여성의 참정권과 권리는 언제 어떻게 이뤄질까?"란 질문을 진지한 투쟁과 유쾌한 웃음을 적절히 섞은 내용에 담았다. 여성들이 성을 탐구하는 재미있는 장면도 만날 수 있다. 남성들이 행사한 폭력에 맞서는 격렬한 저항도 나온다. 정치-사회 드라마로서의 가치도 있고 페미니즘 코미디로서의 의미도 지닌다. 스위스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도 제공한다.

<거룩한 분노> 영화의 한 장면

▲ <거룩한 분노> 영화의 한 장면 ⓒ (주)시네마뉴원


페트라 볼프 감독은 "오늘날 투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이가 그것을 위해 싸운 결과이며 현재를 사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귀중한 특권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노라'가 한 행동처럼 끝까지 저항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스스로 주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영감을 줄 것이다"라고 바람을 전한다.

<거룩한 분노>는 변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어느 때보다 여성들의 요구와 분노가 강하게 터지는 지금 <거룩한 분노>는 더욱 의미가 깊다. 노라처럼 사회의 변화는 곧 개인의 변화에서 시작한다.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197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여성 운동의 구호는 이랬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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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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