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에 진출한 32팀 중 가장 FIFA 랭킹이 낮은 데다 마지막으로 A매치를 승리한 지 8개월이 넘었다 해도 러시아는 사우디가 상대하기엔 너무 벅찬 상대였다.

15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에서 러시아는 사우디 아라비아를 5-0으로 물리치며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스코어만큼이나 모든 면에서 러시아가 사우디를 그야말로 압도한 경기였다.

특히 월드컵 개막전에서 5-0이란 스코어가 나왔는데, 이는 월드컵 역사상 개막전에서 두 번째 최다 점수 차이 승리로 기록됐다. 역대 월드컵 개막전 최다점수 승리 기록은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개막전 이탈리아와 미국의 경기에서 나온 7-1이다.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경기 러시아와 사우디 아라비아의 경기.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다.

▲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경기 러시아와 사우디 아라비아의 경기.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러시아 승리의 키워드 '신구조화', '압박', '높이'

3백 포메이션을 즐겨 쓰던 러시아는 4-3-3 포메이션으로 이전보다 공격적으로 나서며 승리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이 포메이션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또한 수비에서부터 공격에서까지 경험 많은 선수의 존재는 러시아에게 큰 힘이었다. 러시아 선수 중 가장 최고령 선수인 세르게이 이그나셰비치와 24살의 일리야 쿠테포프가 구축한 센터백 라인을 비롯해 중원과 공격 쪽엔 조브닌과 골로빈과 같은 젊은 선수에 가진스키, 사메도프 등의 경험 많은 선수들이 조화를 이룬 것이 주효했다.

이들을 바탕으로 전방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펼친 러시아는 사우디 선수들의 실수를 유발했다. 후방에서는 지역 압박 역시 잘 이뤄지며 사우디 공격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한 템포 빠른 압박은 러시아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높이에서 우위를 점한 것도 또 하나의 승리요인이다. 피지컬으로 우세인 러시아는 제공권 싸움에서 유리하게 가져가며 세컨볼 다툼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는 공격적으로 경기에 나선 러시아에겐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진스키의 결승골과 후반 25분 터진 아르템 주바의 득점, 후반 46분 체리셰프의 득점은 제공권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것이 주효한 득점들이었다.

허무하게 무너진 '오합지졸' 사우디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월드컵 개막전을 치른 사우디였다. 하지만 12년 만에 본선에 오른 사우디에게 홈팀인 러시아, 그리고 개막전은 너무나 큰 부담이었던 경기였다.

초반부터 사우디의 축구가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상대의 강한 압박에 허둥지둥대다 볼 트래핑과 패스에서 미스가 나오는 등 기본적인 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제대로 된 경기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선수들간의 동선이 겹치고 손발이 맞지 않는 등 월드컵에 진출한 팀 답지 않은 경기 내용이었다.

전방에서부터 이어진 러시아의 강한 압박 속에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역습은 진행할 수가 없었다. 공격진행시에는 앞쪽으로 패스가 진행되야 함이 당연하지만 사우디의 패스는 측면으로 향하는 횡패스 위주로 진행이 됐는데 그마저도 패스미스가 발생하며 손쉽게 상대에게 볼을 내주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어쩌다 공격으로 나가도 차단돼 러시아의 빠른 역습으로 이어져 수비라인이 순식간에 붕괴되는 현상까지 발생하는 등 공수양면에서 제대로 된 플레이가 나오지 못했다.

슛하는 살렘 알다와사리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사우디 살렘 알다와사리가 슛을 하고 있다.

▲ 슛하는 살렘 알다와사리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사우디 살렘 알다와사리가 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팀이 흔들릴 때 경험 많은 베테랑 선수들이 팀을 잡아줘야 했지만 사우디의 베테랑 선수들은 그러기엔 너무 떨어졌다. 러시아에는 아킨페예프를 비롯해 이그나셰비치, 사메도프, 지르코프 등 월드컵을 경험했던 베테랑 선수들이 즐비해 월드컵이란 무대에서 어떻게 경기를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있었다. 하지만 사우디의 베테랑 선수들은 그러기엔 부족했다. 집중력이 떨어진 사우디는 결국 경기 종료  약 20분을 남기고 연달아 3골을 허용하며 치욕적인 대패를 기록했다.

개막전에서 0-5 스코어의 대패를 기록한 사우디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한 경기씩 대패를 기록한 적이 있는데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이번에도 이어가게 됐다.

*사우디 역대 월드컵 대패 기록
1998년 프랑스 월드컵 : 프랑스전 0-4 패배
2002년 한일 월드컵 : 독일전 0-8 패배, 아일랜드전 0-3 패배
2006년 독일 월드컵 : 우크라이나전 0-4 패배
2018년 러시아 월드컵 : 러시아전 0-5 패배

러시아에게'위기', 사우디에 '기회'였던 알란 자고예프의 부상

전반 12분 선제골을 터뜨린 러시아였지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반 28분 역습상황에서 알란 자고예프가 햄스트링 부상을 입으며 교체아웃되며 체리셰프가 교체투입됐다. 러시아의 공격이 살아나기 위해선 스몰로프를 비롯해 2선의 자고예프와 사메도프의 활약도 필수적으로 중요했기에 자고예프의 부상 아웃은 러시아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로선 예상치 못한 교체카드를 사용하면서 팀 분위기가 자칫하면 꺾일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사우디가 이 상황만 잘 이용한다면 러시아에게 넘어간 경기 분위기를 살리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이미 자신감을 상실한 사우디에겐 그 기회를 살릴 능력은 없었다. 자신감이 상실한 가운데 기본적인 실수가 계속 이어지며 경기흐름을 사우디 쪽으로 가져오는 데 실패하며 러시아는 오히려 날개를 단 격이 되고 말았다.

추가 골 넣는 러시아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전반전 러시아 데니스 체리세프가 팀 두번째 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 추가 골 넣는 러시아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전반전 러시아 데니스 체리세프가 팀 두번째 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고예프 대신 투입된 체리세프는 전반 41분 역습상황에서 팀의 2번째 골을 터뜨리며 체르체소프 감독의 교체카드가 적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체리세프의 골은 사우디의 추격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린 골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팀의 2번째 골을 기록한 체리세프는 이 골로는 부족했는지 경기종료 직전 에르템 주바가 떨궈준 볼을 왼발 아웃프런트로 절묘하게 감아차며 팀의 4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이로써 그는 월드컵 무대에서 A매치 데뷔골과 2번째 골을 모두 터뜨렸다. 그리고 후반 24분 교체투입된 에르템 주바는 들어가자마자 골을 터뜨리는 등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체르체소프 감독의 완벽한 용병술이 더욱 빛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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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월드컵 개막전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체리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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