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배우 김충길 , 배우 신민재, 배우 백승환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배우 김충길 , 배우 신민재, 배우 백승환(왼쪽부터) ⓒ 이정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라남도 함평 소재 학교의 레슬링부 이야기. 편부모 가정 혹은 다문화 가정 소속으로 하고 싶은 건 레슬링 딱 하나인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웃기면서도 애잔하게 다가온다. 오는 21일 개봉을 앞둔 영화 <튼튼이의 모험>은 이렇게 한국 농촌 사회와 청소년, 장년층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코미디 장르로 푼 '수작'이다.

공식 스태프라고는 붐 마이크를 든 인원 한 명. 촬영과 편집, 각본과 연출은 고봉수 감독이 도맡았고, 종종 출연 배우들이 도왔다. 열악한 환경에서 피어난 레슬링 부원 세 명의 이야기를 두고 'B급 감성'이 충만하다는 수식어가 붙는다. 수십 억에서 많게는 100억 원 대 영화들이 즐비한 한국 영화 시장에서 이들은 틈새를 노리고 있다. 14일 서울 용산CGV에서 감독 이하 출연 배우들을 함께 만났다.

고봉수 사단의 비밀

 영화 <튼튼이의 모험> 중 한 장면.

영화 <튼튼이의 모험> 중 한 장면. ⓒ CGV아트하우스


106분의 분량에서 이들이 레슬링 경기에 참여하는 내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오히려 뚝심 있게 레슬링부를 지키며 훈련에 매진하는 충길(김충길)이 운동을 관두고 생계를 위해 막노동 현장을 전전하는 진권(백승환)을 설득하고, 마찬가지로 학교를 관두고 버스 운전기사가 된 전직 코치(고성완)을 설득하는 과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에 대학입시를 위해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동네 문제아 혁준(신민재)이 '굴러 들어오는' 과정 또한 하나의 축이다. 경기 결과가 아닌 이들이 모이는 과정 자체가 영화의 핵심이다. 진한 '페이소스'가 담겨있다.

시작은 (<방자전> <인간중독> 등을 연출한) 김대우 감독의 말 한마디였다. 고봉수 감독은 "함평에 한 중학교 레슬링부가 국가대표도 배출한 곳인데 존폐 위기인 것 같다. 이 소재 가지고 <스탠 바이 미>(1986) 같은 영화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나"라는 김 감독의 말을 전하며, 이 영화의 시작을 설명했다.

"그래서 직접 취재를 갔다. 가서 코치님도 뵙고 학생들도 만났는데 와,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집단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치님은 마치 (헬렌 켈러의) 설리반 선생님 같았고, 아이들 역시 착하고 예의바른 친구들이었다." (고봉수)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 이정민


출연 배우들은 감독의 부름에 응했고, 당장 함평으로 내려가 한 달 간 합숙훈련을 받았다. 여기에 고 감독의 전작 <델타 보이즈>에 깜짝 출연했던 삼촌 고성완씨를 '공식적'으로 캐스팅했다. 실제로 서울 지역 버스를 모는 고성완씨는 마지못해 응하는 척하면서 10일 휴가를 내고 적극적인 메소드 연기를 선보였다. '레슬링을 다시 한다고? 포기하기만 해봐 아주 그냥 확 죽여불랑께~' 고성완씨의 걸쭉한 즉흥 대사들이 그래서 영화에 담길 수 있었다.

출연 배우들 역시 주어진 상황에서 모두 즉흥 대사로 캐릭터를 소화했다. 백승환, 김충길, 신민재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았다. 고 감독의 전작인 단편 <쥐포>, <사면초가>, 장편 <델타 보이즈> 등에 모두 참여했다. 가히 이들을 두고 '고봉수 사단'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델타 보이즈>에서 남성 4중창 대회에 도전했던 배우들이 캐릭터를 바꿔 레슬링에 도전한 것. 

사실 <튼튼이의 모험>(밴드 크라잉넛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기자 주)은 상업영화로 준비 중인 작품이었다. 10억 원 예산이었고, 투자자도 있었는데 문제는 지금의 배우가 아닌 유명 배우 캐스팅을 요구한 것. 배우 신민재는 "투자하신다는 분이 유명한 배우를 썼으면 했는데 감독님이 거부해서 난항을 겪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투자는 취소됐다. 그리고 지금의 배우들과 감독, 스태프가 십시일반 모은 2000만 원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모든 스태프들이 투자자가 된 셈이다.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배우 김충길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배우 김충길 ⓒ 이정민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배우 신민재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배우 신민재 ⓒ 이정민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배우 백승환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배우 백승환 ⓒ 이정민



깊은 배려심

코미디 장르라지만 배우들은 고민이 많았다. 실제 학생들을 참고하다 보니 이들이 처한 환경이 그리 녹록지 않아 보였기 때문. 배우들은 그들의 밝음 뒤에 자리한 아픔을 이해했고, 영화적으로 조심스럽게 표현하려 했다.

"학생들과 훈련 받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밥도 같이 먹고 운동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힘든 와중에서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더라. 개인적으론 그 친구들을 보면서 반성도 했다. 이렇게 밤낮으로 운동만 하는데 저 역시 연기 연습을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에 비해 참 안 하는구나 싶었다." (김충길)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 감독님은 웃기라고 했지만 너무 가볍게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레슬링 부 코치님은 사비를 털어 학생들을 지도하고 정말 목숨을 거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하는 것에) 책임감이 들었다. 아이들이 마치 어른 같더라. 개인적으로는 혁준 역을 하면서 욕을 너무 무분별하게 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 (신민재) 

"레슬링부 아이들이 편부모 가정이나 다문화 가정인 경우가 많더라. 근데 그 안에서 되게 끈끈했다. 시합에 나가면 다른 팀에서 외국인 나왔냐고 놀리는 경우가 있는데 아이들이 하나가 돼서 한국 사람이라고 같이 싸워주고 그러더라. 그 친구들은 편부모든 다문화든 신경 안 쓰고 서로 정말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백승환)

이런 마음으로 임해서일까. 즉흥 대사라지만 배우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캐릭터를 확실히 구축하고 있었다. 이를 테면 충길은 고지식하면서도 강한 집념을, 진권은 진지해보이지만 허당의 면모를, 혁준은 불량 서클 소속이지만 순수한 면을 영화에 잘 담았다. 다만 정해진 대본이 아닌 매번 즉흥 대사를 해야 하는 환경은 자칫 배우들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올 법했다. 이 물음에 세 배우 모두 확고하게 아니라고 답했다.

"연극을 주로 했기에 대본을 가지고 연기하는 것에 익숙했는데 고 감독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맛을 봤다고 할까. 마치 제 안에 다른 기능이 탑재된 느낌이었다. 이렇게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신민재)

"전 오히려 대본이 주어지면 잘 못하는 타입 같다. 상황에 집중해서 자유롭게 하는 연기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감독님을 만났다. 힘든 것 보단 좋은 면이 더 많다." (김충길)

"처음엔 즉흥 대사를 어렵게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원하는 신과 그 목표를 생각하면서 임하니까 지금은 편해졌다. 애드리브는 반드시 웃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사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게 중요하다. 그걸 깨닫게 됐다." (백승환)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배우 김충길 배우 백승환, 배우 신민재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배우 김충길 배우 백승환, 배우 신민재 ⓒ 이정민


다른 개성, 같은 목표

고봉수 감독과 이 세 배우의 인연은 언제부터였을까. 시작은 백승환이었다. 대학입시를 위해 연기학원에 다닐 때인 2005년 무렵, 아는 작가를 통해 고봉수 감독을 만나게 된 백승환은 같은 학원에 다니던 신민재와 김충길을 고 감독에게 추천한다. "우리 셋은 학원에서 이미 서로를 본능적으로 알아봤다"며 백승환이 말을 이었다.

"감독님이 오라고 하기에 마침 하는 일도 없었고 그냥 갔다. 하루 이틀 만에 붐 마이크 한 대와 카메라 한 대로 영화를 찍는 모습이 새롭더라. 영화과 학생들도 그렇게 안 찍는데(웃음). 근데 또 결과물이 좋다. 그렇게 해서 우리 셋이 감독님의 단편 <쥐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백승환)

그렇게 인연을 맺은 이들은 현재까지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만난다. 매주 월요일 마다 모여서 성경 공부를 할 정도로 이들은 진지한 종교인이기도 했다. 참고로 영화에 나오는 음주 장면은 모두 물을 마신 것이라고 한다. "생긴 건 술과 담배 엄청 잘할 것처럼 보이죠?"라며 신민재가 웃어 보였다.

하나씩 짚어 보면 네 사람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주류의 길을 걷지 않았지만 자신의 삶 안에서 나름 진지하게 영화를 대했고, 실력을 쌓아왔다. 어릴 때부터 B급 코미디 영화를 많이 봐왔다는 고봉수 감독은 "대학 때 전혀 관심 없던 전산 프로그래밍을 전공하다가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 때려 치웠고, 이후 한 영화 아카데미 3개월 과정에 등록해서 카메라 조작법과 편집 프로그램 다루는 법을 익혔다"고 말했다.

고봉수 감독은 이 지점에서 세 배우에 대한 무한 애정을 드러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영씨>(배우 김충길이 주연인 로맨틱 코미디 물)를 공개한 그는 이후 50억 원 규모의 상업영화를 준비 중이다. 이 작품에서도 세 배우들이 출연한다.

"백승환 배우를 보시라. 잘 생기지 않았나. 잘 생긴 배우와 작업하고 싶어서 인연이 됐는데 인성까지 좋더라. 그리고 그가 소개한 친구들, 특히 신민재 배우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제가 찾던 이미지였다. 마치 주성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개성 넘치는) 말이다. 그래서 <쥐포>의 주연으로 모신 것이다. 김충길 배우는 음... 마치 한국의 호아킨 피닉스 같다. 어떤 설정을 줘도 동물적인 감각으로 소화해 낸다. 제가 배우들의 수혜를 입는 편이다. 배우들에게 영감도 많이 얻고, 종종 이런 천재 배우들이 또 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고봉수 감독)

앞서 강조했듯 고봉수 감독 사단(세 배우 외에도 윤지혜, 이웅빈 등도 단골 배우다- 기자 주)은 곧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물론 기자가 일방적으로 붙인 의미지만 이들이 의식하든 안 하든 서로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 될 전망이다. 주성치 영화에 오맹달, 홍금보, 주인 등이 있다면 고봉수 감독 영화엔 이들이 있다. 작품 수가 그리 많진 않으니 날 잡고 고 감독의 작품을 쭉 감상해 볼 것을 추천한다.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배우 김충길, 배우 백승환, 배우 신민재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배우 김충길, 배우 백승환, 배우 신민재 ⓒ 이정민


신민재, 김충길, 백승환의 '짧은' 히스토리
재기발랄하고 재능 넘치는 이들은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연기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강했다. 어떤 계기로 배우를 꿈꿨고, 어떤 작품으로 대중과 접점을 마련해 왔을까. 이들이 각자 자신의 히스토리를 털어놨다.

"고봉수 감독님처럼 저 역시 어렸을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돌아보면 제 속의 불만들을 영화로 해소한 것 같더라. 마음속으론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그땐 그걸 말하면 놀림받던 시기였다. 보시다시피 제가 멋있게 생기진 않지 않았나. 마침 그 무렵 송강호, 설경구 선배 같은 연기파 배우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마침 연극을 하기도 했고 연기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연기 학원을 다녔고 지금의 승환이를 만난 것이다." (신민재)

"어릴 때는 개그맨이 꿈이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품행제로>를 틀어줬는데 여학생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아, 영화로도 사람을 웃길 수 있고 인기를 얻을 수 있구나! (웃음) 그래서 고등학교 연극반에 들어갔고, 대학도 연기를 전공하게 됐다. 사실 운이 좋았다. 고등학교 연극반은 인원 미달이었고, 대학교 연기과는 제가 1기였다. 그리고 승환 형과 감독님을 만났다. 전 사람 복이 참 많은 것 같다." (김충길)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안 했다. 당시 사귄 여자 친구가 연기학원을 다녔는데 따라갔더니 거기 학원 선생님이 저에게 대본을 읽어보라더라. 읽었는데 칭찬받았다. 아마 학원 수강생을 끌어 모으려는 수였겠지(웃음). 처음엔 대학 가려고 연극영화과를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열정이 더 강해져서 연기학원엘 다녔고, 사실 배우 매니저도 했었다. 극단에 들어가려다 교통사고를 당해 아예 연기를 그만 두려던 차에 지금의 배우들을 만났다. 그렇게 연기를 이어가게 됐다." (백승환)

배우 신민재는 대학로에서 중소규모 연극에 출연했다. <수레바퀴> <정의의 사람들> <살아남은 자들> 등 다수 작품에 참여했다. 배우 백승환은 여러 단편 영화에 참여했다. 상업영화로는 <뷰티 인사이드> 오디션에 합격해 출연하게 됐으나 최종 개봉 버전에선 편집 당했다. 김충길은 두 배우 보단 다소 화려하다. 드라마 단역을 주로 해왔다. <빅> 1회에선 선생님을 놀리는 고등학생 역, <응답하라 1998>은 박보검과 혜리에게 배구공을 던지던 취객으로, <오 나의 귀신님> 1회에선 보쌈 배달원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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