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11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스포츠다.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경기장 안에서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축구는 결국 모든 선수가 각자의 역할을 함께 해내야 하는 팀 스포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이끄는 '에이스'의 가치는 높다. 흔히 프로축구 선수들 간 실력 차이를 '종이 한 장'으로 표현하지만, 그 차이를 지배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런 선수들을 우리는 에이스라 부른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실수 없이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에게 팬들은 전율을 느낀다.

어떤 경기에서든 에이스의 활약 여부는 중요하다. 그 무대가 월드컵이라면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다. 월드컵은 4년에 한 번씩만 개최되고 축구판에 있어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만큼 경기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때문에 스타 플레이어도 월드컵에서는 실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극한의 압박감을 뚫어낼 선수가 팀에 필요하다. 뛰어난 실력과 고도의 집중력을 지닌 우승후보국의 에이스들을 알아보자.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새로운 사나이가 황제로 등극한 대회다. 170cm가 되지 않는 작은 신장을 가진 이 사내는 마치 탱크처럼 상대 수비를 부쉈다. 폭발적인 속도와 감각적인 드리블에 강인한 어깨까지 갖춘 디에고 마라도나는 1986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8강전 잉글랜드를 상대로 수비수 6명을 제치고 넣은 골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로 남아 있다. 마라도나의 압도적인 퍼포먼스 아래 아르헨티나는 두 번째 월드컵 트로피를 따냈다.

마라도나와 함께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준우승까지 일궈낸 아르헨티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무너졌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후안 리켈메 등이 등장했지만 우승은커녕 준결승에도 올라서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이벌 브라질은 같은 시기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우승-1998년 프랑스 월드컵 준우승-2002년 한·일 월드컵 우승이란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2002년 대회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진정한 '마라도나의 후계자' 메시의 등장

1990년대 중반부터 10년 간 세계 축구의 헤게모니는 브라질 선수들이 주도했다. 호나우두의 1997년 발롱도르 수상을 포함해 10년 동안 브라질 선수가 5개의 발롱도르를 가져갔다. 한편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의 후계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아리엘 오르테가, 하비에르 사비올라 등이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한계에 부딪쳤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오랜 기다림은 2005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마라도나가 그러했듯이 한 조그마한 소년이 대회를 휩쓸었고 대회 득점왕과 MVP를 수상하며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진정한 마라도나의 후계자의 등장이자 감히 마라도나의 아성을 뛰어넘으려 하는 리오넬 메시의 등장이었다.

'메시 동점골' 바르사, 첼시와 1-1 무승부 영국 런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2017-201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첼시와의 1차전에서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가 동점골을 터뜨린 후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이날 메시는 팀이 0-1로 끌려가던 후반 30분 첼시의 골망을 가르며 동점골을 뽑아냈다. 1차전을 1-1 무승부로 마친 바르셀로나와 첼시는 내달 15일 캄프 누에서 8강 진출을 놓고 격돌한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한 리오넬 메시. 사진은 FC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모습. ⓒ EPA/연합뉴스


작은 키, 왼발잡이, 섬세한 드리블 등 마라도나와 비슷한 유형의 메시는 FC 바르셀로나에서 데뷔하며 빠르게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다가갔다. 2004-2005 시즌 프로데뷔를 한 메시는 약관의 나이에 팀 선배 호나우지뉴의 '에이스' 자리를 넘겨 받았다. 그 후 메시의 앞에는 걸림돌이란 없었다.

2009년 첫 발롱도르 수상을 시작으로 2012년에 4년 연속 발롱도르 수상이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다. 어린 시절부터 세계 정상급이었던 드리블 능력은 축구 역사상 최고 수준에 올라섰고, 펩 과르디올라의 지휘 아래 경이로운 득점력도 장착했다. 스페인 라리가의 공격에 관한 모든 기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최고의 드리블러이자 훌륭한 패스 공급처이며 마무리 능력까지 탁월한 메시의 플레이에 상대 수비수들은 속수무책이었다.

2인자였던 바르셀로나를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으로 만든 메시는 커리어가 한창 진행 중인 20대 중반부터 '역사'와 겨루기 시작했다. 펠레, 마라도나와 직접 비교됐다. 그러나 국가대표팀 성적이 메시의 발목을 잡았다. 본격적으로 라 알비셀레스테(아르헨티나 대표팀 애칭) 군단의 에이스로 참가한 2010년 남아공 월드컵부터 눈물을 흘렸다. 무수한 슈팅을 날렸지만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하고 8강 탈락을 지켜봤다.

과거보다 불안한 조직력 속에 아르헨티나의 메시는 어려움을 느꼈다. 마라도나 이상의 플레이를 원하는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절치부심한 끝에 2014년 브라질 땅에서 기회를 잡았다. 메시의 환상적인 활약 덕에 아르헨티나는 결승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상대 독일은 강했다.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3개 대회 연속으로 독일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이어 참가한 2015년 코파 아메리카와 2016년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도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축구선수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린 메시에게 국가대표팀 타이틀은 여전히 꿈의 영역이다.

최강의 공격진과 불안한 수비진... 모든 것은 메시에게 달렸다

과연 메시는 4년 전의 아픔을 러시아에서 씻어낼 수 있을까. 전망은 밝지 않다. 지역 예선부터 크게 고전한 아르헨티나다. 예선 마지막 경기 에콰도르전에서 메시의 해트트릭이 터지지 않았다면 TV로 월드컵을 지켜볼 뻔 했다.

미드필드진과 수비 라인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과거 아르헨티나의 화려했던 선수단에 비하면 액면가상 크게 떨어진다. 니콜라스 오타멘디 정도를 제외하고는 유럽 무대에서 정상급 능력을 보여주는 수비수가 없다. 만 33세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는 이제 중국 무대로 적을 옮겼다. 다른 수비수들은 경험이 부족하거나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애국자' 세르히오 로메로가 떠난 수문장 자리도 고민거리다.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하는 골키퍼 3인의 A매치 출장수 합이 단 8회에 그친다. 월드컵 우승을 노리기에는 턱없는 경험치다. 중원도 경쟁국에 비하면 초라하다. 루카스 비글리아, 에베르 바네가 등으로 월드컵을 정복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나마 희망의 끈이었던 마누엘 란시니가 지난 8일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악재를 만났다.

믿을 구석은 역시 공격진이다. 이번 시즌 이탈리아 세리아A 득점왕 마우로 이카르디가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을 정도로 강력한 아르헨티나의 공격 라인이다. 세르히오 아구에로, 곤살로 이과인 등은 언제나 상대의 골망을 흔들 수 있는 공격수들이다.

표면상으로는 이번 월드컵 최고의 공격진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메시를 제외한 나머지 공격수들은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상대 수비가 메시 견제에 열을 올리는 덕에 매경기 결정적인 기회를 잡지만, 소속팀에서 만큼의 단호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우승의 행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에 기회를 날린 경험이 많다.

지난 대회보다 무거운 메시의 어깨다. 사실 브라질 월드컵 준우승 원동력에는 단단한 수비가 뒷받침이 됐다. 천하의 메시도 흔들리는 수비진을 데리고 월드컵에서 성과를 낼 수 없다. 4년 전보다 좀 더 높은 집중력이 메시에게 요구된다.

여전히 메시는 아르헨티나 공격 작업의 시발점이자 마침표다. 사실상 메시에게 이번 대회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월드컵 트로피가 필요하다. 메시의 운명을 가를 도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메시 아르헨티나 라 알비셀레스테 우승 후보 에이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