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스토리'

영화 '허스토리'ⓒ (주)NEW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91년. 그때만 해도 TV에서 보기 힘들었던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 TV에서 이를 처음 접한 여행사 사장 문정숙(김희애 분)은 가슴에서 뭔가 울컥 했다. 그때부터 시민운동가가 되어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은 물론 사업상 불이익까지 감수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을 찾아 다녔다.

부산에서 여행사를 했으므로, 일본 고객들과의 관계가 두터웠다. 그가 이 문제에 뛰어들자 그들이 등을 돌렸다. 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는 배정길(김해숙 분)을 비롯한 위안부 (일본군 성노예) 및 근로정신대 피해자들과 함께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선박과 비행기로 오갔다. 그렇게 재판을 벌인 끝에 제소 6년 만인 1998년, 1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영화 '허스토리'

여행사 사장 문정숙 역의 김희애ⓒ (주)NEW


획기적이고 돌발적인 사건, 관부재판

영화 <허스토리>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지어낸 것이지만, 줄거리 자체는 실제 사실인 작품이다. 허스토리(herstory)란 표현은 남성 중심의 역사인 히스토리(history)에 대한 반성적 의미를 담은 신조어다.

<허스토리>가 다룬 사건은 이른바 '관부(關釜) 재판' 또는 시모노세키 재판이다. 관문이란 단어가 있는 데서 있듯이, 한자 문화권에서 關이 붙은 곳은 대개는 교통 요충지다. 일본 본토섬 혼슈의 서쪽 끝 항구도시인 시모노세키는 육해 교통의 요충지다. 1894년 청일전쟁 전후처리조약인 시모노세키조약(1895년)이 체결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의 한자 명칭은 원래는 적간관(赤間關) 혹은 적마관(赤馬關)이었다. 그런데 청일전쟁 얼마 뒤 하관(下關) 즉 시모노세키로 개칭되면서, 이미 체결된 조약이 시모노세키조약으로 바꿔 불리게 된 것이다. 바로 이 하관과 부산을 오가며 재판을 벌였다 하여 '관부 재판'이란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관부 재판은 한·일 위안부 문제에서 '획기적'이고도 '돌발적'인 사건이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국가 책임을 인정한 최초이자 유일한 판결이었다. 그런 면에서 '획기적'이었다. '돌발적' 사건이었던 이유는 뒷부분에서 따로 설명된다. 

무료변론을 펼치는 재일동포 변호사 이상일(김준한 분)이 영화 속에서 언급하듯이, 일본에는 위안부 문제의 근거가 될 만한 법률이 없다. 판사는 법률이 없으면 재판을 못한다. 그래서 관부 재판을 담당한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는 피해자들의 청구를 인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모노세키 지부는 1998년 4월 27일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부분적으로나마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3개 항으로 이뤄진 판결문 제1항은 피고 일본을 상대로 "(3명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각각 금 30만 엔 및 그것에 대한 1996년 9월 1일부터 지불 완료시까지의 연 5푼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위자료 30만 엔 즉 약 300만 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지연이자는 지불의무 발생 시점부터 지불의무 이행 시점까지의 채무불이행 상태에 관한 것이다.

 ‘일본 재판소’ 홈페이지에 나오는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청사.

‘일본 재판소’ 홈페이지에 나오는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청사.ⓒ www.courts.go.jp


관부 재판에서 제시한 위자료는 금액이 적을 뿐 아니라, 그나마 위안부 피해자한테만 국한됐다. 정신대 피해자들에게는 그것마저 지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가장 강력히 요구한 일본 국가의 사죄도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배상도 인정하지 않았다. 위로금 성격의 위자료를 주라고 했을 뿐이다. 

이처럼 한계가 많은 판결이고 한국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판결이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판결이었다. 그래서 '획기적 사건'이라 한 것이다. 더군다나 근거 법률도 없는 상태에서 일본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더욱 더 그랬다.

 영화 '허스토리'

영화 '허스토리'의 한 장면ⓒ (주)NEW


일본의 책임 인정한 1심 일본 판사들

1심 법원은 근거 법률이 없는데도 입법 부작위 이론을 내세워 일본의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입법 부작위는 단순히 입법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입법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입법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입법을 해야 하는데도 일본 정부와 국회가 하지 않았으므로 위법이라는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존재하는 법률을 위반해서 위법'이 아니라 '법률을 만들지 않아서 위법'이라는 판결은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도 자극하게 된다. 일본은 의원내각제 국가이므로 의회의 위상이 더 높다. 이런 나라에서 행정부와 의회를 동시에 자극하는 입법 부작위 이론을 사법부가 내세우기는 쉽지 않다. 쓰다주쿠 대학 안자코 유카 교수가 쓴 논문 '일본의 전시동원 관련 재판의 진전과 현황'은 이렇게 말한다.

"국가의 이러한 '입법행위에 대한 위법책임(입법 부작위 책임)'에 관해서는, 일본에서는 이미 1985년 최고재판소에서 '쉽게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국가의 입법행위는 위법으로 보기 힘들다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어 ······"- 2001년 발행된 <한중인문학연구> 제6권 중에서.

일본 최고재판소의 입장은 '국가의 입법 부작위를 위법으로 인정하려면 쉽게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예외적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웬만해서는 위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1심 법원이 이런 판례를 무시하고, 그것도 국가적 위신과 관련된 사안에서 입법 부작위를 인정했다. 그래서 '돌발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던 것이다.

이런 판결을 얻어낸 피해자들과 여행사 사장과 재일동포 변호사들도 대단하지만, 판결을 내린 일본 판사들도 대단했다. 국가의 위신보다 국가의 양심을 우선시한 판사들이었다. 일본 정부는 당연히 충격을 받았다. 영화 끝부분 자막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들은 이 사건으로 다소의 불이익을 받았다.

 고노 요헤이의 2006년 모습.

고노 요헤이의 2006년 모습.ⓒ 위키백과


1심 법원 판사들이 일본의 입법의무를 인정한 근거가 있었다. 바로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의 담화였다. '고노 담화'로 불리는 이 담화는 "장기간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게 인정됐다"면서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고 솔직히 인정한 뒤 이렇게 말했다.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 또 그런 마음을 우리나라가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에 관해서는 식견 있는 분들의 의견 등도 구하면서 앞으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 정부로서도 앞으로도 민간의 연구를 포함해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사과와 반성을 표시하는 동시에 이를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고노 담화의 요지였다. 이를 근거로 1심 법원이 '이 문제를 입법화활 의무가 있으며 이를 하지 않은 것은 위법한 입법 부작위'라고 판결했던 것이다.

이 판결문은 "피고(일본)는 당연히 종군위안부 제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텐데도 일본국헌법 제정 후에도 수년간 위의 작위의무(피해자 구제의무)를 다하지 않고 그녀들을 방치하여 고통을 배가"시켰다는 점을 인정한 뒤 이렇게 말한다.

"늦어도 위 내각관방장관 담화가 나온 1993년 8월 4일 이후의 이른 단계에서, 앞의 작위의무는 위안부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회복하기 위한 특별한 배상 입법을 해야 할 일본국 헌법상의 의무로 전화되었고, 그 취지는 명확하게 국회에 대한 입법 과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 헌법 제정 당시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에 관한 일본의 작위의무가 있었고 이 의무는 고노 담화를 계기로 구체적 입법의무로 전환됐는데도, 일본이 1998년 4월 27일 현재까지도 관련 법률을 제정하지 않는 것은 위법하므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1993년 고노 담화는 한·일 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을 정도로 이 문제가 확산되던 상황에서 나왔다. 거기다가 그 해 7월 18일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해 38년 만에 처음으로 권력이 사회당을 포함한 야권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나왔다.

이렇게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자민당 소속의 고노 요헤이 장관이 공식적 내각 결정도 거치지 않고 획기적이고 돌발적인 담화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관부 재판의 1심 판결은 이를 근거로 영화 <허스토리>의 소재가 된 판결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관부 재판으로 살짝 엿보인 일본의 양심은 그 뒤 도로 모습을 감췄다. 2심과 3심 법원은 일본의 국가 책임을 부정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가 아베 신조 정권이 출현하면서 일본의 양심은 정말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식민지 피해여성들의 한을 풀고 일본 국가의 양심을 찾아주기 위한 'hi스토리' 아닌 'her스토리'의 투쟁이 계속되어야 할 이유다.

 영화 '허스토리'

영화 '허스토리'에서 배정길 할머니 역을 맡은 김해숙.ⓒ (주)NEW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