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이 14일(이하 한국시각) 개막한다. 한국 대표팀의 전력이 역대 최약체로 꼽힐 정도이고 월드컵을 앞두고 6.12 북미정상회담, 6.13지방선거 같은 국가적인 행사들이 열리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월드컵 열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들과 지구촌 곳곳에 퍼져 있는 축구팬들은 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단일종목 최고의 이벤트를 즐길 준비를 끝냈다.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월드컵 개막전은 전 대회 우승팀이 치르는 전통이 있었다. 지난 2002 월드컵에서도 '아트사커'로 유명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가 아프리카의 복병 세네갈에게 0-1로 패하는 이변의 희생양이 된 바 있다. 당시 개막전 패배의 충격으로 프랑스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세네갈은 8강에 진출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2002월드컵을 끝으로 전 대회 우승팀의 본선 자동진출 혜택이 없어졌고 대신 개최국이 개막전 경기를 치르고 있다. 개최국이 개막전을 치른 지난 3번의 월드컵에서 개최국이 개막전 승리를 차지하지 못한 경우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유일하다(멕시코와 1-1 무승부). 최근 세계 축구계에서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했던 개최국 러시아의 개막전 결과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경기시간 14일 밤 12시).

28년 동안 겪은 조별리그 탈락 수모, 안방에서 깨끗이 씻는다

 러시아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개최국의 자존심을 지키며 다소 침체됐던 축구열기를 끌어 올리려 한다.

러시아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개최국의 자존심을 지키며 다소 침체됐던 축구열기를 끌어 올리려 한다. ⓒ 러시아 월드컵 공식 홈페이지 화면 캡처


2002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 한국과 일본은 세계 축구계의 우려를 동시에 받았다. 역대 월드컵에서 개최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한국과 일본은 16강 진출을 보장할 만한 전력이 아니라고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조별리그에서 나란히 2승1무의 성적(조 1위)으로 조별리그를 가뿐하게 통과하며 우려를 불식시켰다(결국 개최국 최초 조별리그 탈락의 불명예는 2010년의 남아공이 떠안았다).

그리고 또 다시 8년이 지난 올해 러시아가 비슷한 우려 속에서 월드컵 본선을 맞는다. 러시아는 구 소련 시절을 포함해 월드컵에 총 10회나 진출했던 무시할 수 없는 강팀이다. 전설적인 골키퍼 레프 이바노비치 야신이 활약하던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4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6년 멕시코 월드컵 16강을 마지막으로 러시아는 최근 본선에 올랐던 4번의 월드컵에서 28년 동안 한 번도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러시아의 전력은 A포트를 받은 8개 팀 중에서 가장 약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안드레이 아르샤빈이나 로만 파블류첸코 같은 스타 선수들이 대표팀을 떠난 현재 러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는 골키퍼 이고르 아킨페프(CSKA 모스트바)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 한국전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며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기름손' 이미지가 있지만, 아킨페프는 대표팀 경험만 100경기가 넘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갖춘 골키퍼다.

부담스런 개막전에서 A조 최약체로 꼽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하게 된 것은 러시아로서는 그나마 행운이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상대에게 1승을 챙기면서 조별리그를 유리하게 이끌어 갈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2010년 남아공이 그랬던 것처럼 첫 경기에서 승점 3점을 챙기지 못하면 이집트와 우루과이라는 만만치 않은 강호들이 버틴 A조에서 크게 고전할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가 갖게 될 홈그라운드 이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도 한국은 매 경기마다 관중석을 붉은색으로 물들였고 이는 선수들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안겨줬다. 군사대국으로서 자존심이 강한 러시아 역시 개막전에서 일방적인 응원으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기를 꺾는다면 '개막전 이변'의 희생양이 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미국월드컵 16강에 빛나는 중동의 강호, 12년 만에 본선 진출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16골을 폭발한 샤흘라위는 사우디에서 가장 주목 받는 선수다.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16골을 폭발한 샤흘라위는 사우디에서 가장 주목 받는 선수다. ⓒ 러시아월드컵 공식 홈페이지 화면캡처


사우디는 처음 출전한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모로코와 벨기에를 꺾고 1996년의 북한 이후 28년 만에 조별리그를 통과한 아시아 국가가 됐다. 이후 사우디는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4회 연속 본선에 진출하며 아시아 축구를 호령하던 중동축구의 강자로 군림했다. 사우디는 적어도 아시아에서 만큼은 지금의 이란과 비교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 위상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사우디 축구'하면 미국월드컵 16강보다 2002 월드컵에서 독일에게 당했던 치욕스런 0-8 패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미국월드컵 16강 이후 1998 프랑스 월드컵 1무2패, 2002 한·일 월드컵 3패, 2006 독일 월드컵 1무2패를 기록하며 3연속 무승을 기록한 사우디는 최근 두 번의 월드컵에서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따라서 12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한 러시아 월드컵을 맞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A조에 속한 사우디는 '거함'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이에 끼어 있는 이란, 독일, 스웨덴, 멕시코를 만나는 한국과 폴란드, 세네갈, 콜롬비아와 싸워야 하는 일본에 비하면 조편성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4포트에 속한 최약체 사우디가 어느 하나 만만하게 볼 나라는 없지만 그렇다고 독일이나 브라질처럼 이변과 기적조차 꿈 꿀 엄두도 못 낼 낼 절대강자도 없다.

사우디에서는 알 나스르에서 뛰고 있는 골잡이 모하메드 알-샤흘라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리그가 아닌 자국리그에서 뛰고 있어 세계적으로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샤흘라위는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14경기에 출전해 무려 16골을 터트리며 사우디의 본선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우디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선수가 등장한다면 이는 샤흘라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러시아와 사우디의 개막전은 역대 월드컵 개막전 가운데 가장 주목도가 떨어지는 매치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양 나라 입장에서는 승점 3점을 확보하며 조별리그를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리고 아무리 주목도가 떨어지는 팀들끼리의 경기라 해도 역대 월드컵에서 뜨겁지 않았던 개막전은 한 번도 없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