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빨간사춘기의 새 노래 '여행'이 20일째 음원차트 1위를 지키고 있다. 여행가기 딱 좋은 계절에 듣고 있자니 당장 떠나고 싶어 괴로울 지경이다. '사랑'을 주제로 하는 대부분의 가요들 속에서 이렇게 다른 주제의 노래가 인기를 끄는 건 오랜만이다.

시간을 쭉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아마 1985년의 사람들도 어떤 노래 때문에 몸이 근질거려 괴로웠을 테다.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 말이다. 이 불후의 명곡은 지금도 웬만한 세대의 뇌리에서 여행하면 가장 첫 번째로 떠오르는 곡이다.

음원사이트에서 여행이란 두 글자를 치면 다른 가수가 부른 동명의 곡이 150개 넘게 검색될 정도다. 그만큼 여행은 인류보편적(?) 주제인 것이다. 그 많은 여행 관련 곡들 중에서 1985년도에 발표된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와 2018년에 발표된 볼빨간사춘기의 '여행'을 비교해봤다. 재미로 한 비교지만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게 하나 있다. 여행 노래는 시대를 반영한다는 것.

목적지의 변화: 계곡에서 뉴욕시티로

볼빨간사춘기 '여행'

▲ 볼빨간사춘기 '여행' ⓒ '여행' 뮤직비디오 캡처


"굽이 또 굽이 깊은 산중에/ 시원한 바람 나를 반기네/ 하늘을 보며 노래 부르세/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조용필, '여행을 떠나요')

우리나라는 1989년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되며 국민이 제한 없이 외국여행을 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여권신청에서부터 신원보증인 등록까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해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당시에는 국내여행이 대부분이었고, 1985년에 발표된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는 푸른 언덕과 깊은 산중과 광야와 계곡을 향해서 떠나자고 노래한다. '국내 계곡'으로 한정짓는 가사는 어디에도 없지만 듣고 있으면 국내의 경치 좋은 계곡이 떠오른다. 그럼 2018년으로 가보자.

"Take me to London Paris New York city들/ 아름다운 이 도시에 빠져서 나/ Like I'm a bird bird 날아다니는 새처럼/ 난 자유롭게 fly fly 나 숨을 셔" (볼빨간사춘기, '여행')

요즘 세대는 '여행'이라고 하면 계곡보단 해외의 어딘가를 먼저 떠올린다. 노래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볼빨간사춘기 멤버 안지영이 작사한 이 곡에선 런던, 파리, 뉴욕시티로 가겠다는 글로벌한(?) 계획이 담겨있다. 뮤직비디오도 사이판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했다. 아마 안지영이 1985년의 가수였다면 외국이 아닌 국내의 어딘가를 가사에 썼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탈 것의 변화: 기차에서 비행기로

볼빨간사춘기 '여행'

▲ 볼빨간사춘기 '여행' ⓒ '여행' 뮤직비디오 캡처


볼빨간사춘기 '여행'

▲ 볼빨간사춘기 '여행' ⓒ '여행' 뮤직비디오 캡처


"저 오늘 떠나요 공항으로" (볼빨간사춘기, '여행')

'여행'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해외여행이 늘면서 기차나 버스가 아닌 '공항'이 노랫말에 자주 발견된다. 1998년에 발표된 신화의 '으쌰으쌰'만 해도 "한밤중에 기차타고 가네 어린 시절 바다찾아 가네/ 걱정거리 근심거리 하나 없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라며 기차 여행을 말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확실히 비행기 여행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조용필 역시 계곡으로 떠날 때 버스나 기차를 탔을 것이다. 탈 것의 변화와 더불어 들 것의 변화도 눈에 띈다. 볼빨간사춘기 두 멤버는 뮤비 속에서 커다란 여행 캐리어와 함께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요'에선 배낭을 멘다.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계곡을 향해서" (조용필, '여행을 떠나요')

지금 사람들도 당연히 배낭을 메지만 눈여겨 볼 것은 대중가요가 담아내는 시대상의 변화다. 그런데 잠깐,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로망' 같은 건 있는 듯하다. 바로 히치하이킹이다. 볼빨간사춘기 뮤비에서 이들이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 타는 신을 보면서 이건 옛날부터 보던 장면인데 싶었다. 청춘의 여행은 그때나 지금이나 늘 무모하고 가난한가 보다.

여행 스타일의 변화: 어울림에서 쉼으로

조용필 1985년 발매된 조용필의 7집 앨범 <여행을 떠나요> 자켓.

▲ 조용필 1985년 발매된 조용필의 7집 앨범 <여행을 떠나요> 자켓. ⓒ KBS미디어(주)


"여행을 떠나요/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 함께 떠나요" (조용필, '여행을 떠나요')

조용필은 '모두 함께' 떠나자고 노래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엿보인다. 반면 볼빨간사춘기는 조용히 쉬고 싶은 의지로 충만하다.

"저 이제 쉬어요 떠날 거예요/ 노트북 꺼 놔요 제발 날 잡진 말아줘/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도 어쩔 수 없어 나/ 가볍게 손을 흔들며 see ya-/ 쉬지 않고 빛났던 꿈같은 my youth/ 이리 저리 치이고 또 망가질 때쯤/ 지쳤어 나 미쳤어 나 떠날 거야 다 비켜/ I fly away-" (볼빨간사춘기, '여행')

2018년을 사는 볼빨간사춘기는 쉬지 않고 달리느라 녹초가 된 몸과 마음을 쉬고 싶다고 외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든 공감하는 대목 아닐까?

새로운 권고사항: 전화기는 비행기 모드

볼빨간사춘기 '여행'

▲ 볼빨간사춘기 '여행' ⓒ '여행' 뮤직비디오 캡처


여행이 시대를 반영한다는 걸 느끼게 해준 대목은 사실 따로 있었다. 바로 휴대폰으로부터 해방을 갈망하는 부분이다.

"저 오늘 떠나요 공항으로/ 핸드폰 꺼 놔요 제발 날 찾진 말아줘" (볼빨간사춘기,'여행')

위너도 '아일랜드'란 곡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Baby 떠나자 둘이서/ 전화기는 비행기 모드/ 너와 함께면 어디든/ 아마 그곳은 무인도." 하루 종일 울리는 메시지 알람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이런 노랫말은 1985년엔 확실히 못보던 가사다. 비행기 모드는 2018년 여행자들에게 해당하는 '새로운' 권고사항이자 시대상인 것이다.

공통점: 빌딩숲 벗어나기

"먼동이 트는 이른 아침에/ 도시의 소음 수많은 사람/ 빌딩 숲속을 벗어나 봐요." (조용필, '여행을 떠나요')

"Take me to new world anywhere 어디든/ 답답한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Shining light light 빛나는 my youth/ 자유롭게 fly fly 나 숨을 셔" (볼빨간사춘기, '여행')

"회색 빌딩 감옥 안에서 널 구해줄게/ 파란 하늘 모래 위에서 그냥 쉬어 가면 돼" (위너, '아일랜드')

회색빌딩 숲을 벗어나서 탁 트인 공간으로 떠나는 건 1985년이나 2018년이나 똑같았다. 여행에도 유행이란 게 있어서 휴양지가 대세였다가 문화유적지 관광이 대세였다가 하지만 근본적인 목적에는 변함이 없었다. '자유'를 찾아 떠난다는 것. 

"I can fly away Fly always always always" (볼빨간사춘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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