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 한 편, 열 교과서 부럽지 않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영화를 권하며 건네는 이야기다. 수업 시간 아무리 열심히 판서를 하고 목이 터져라 설명을 해도 아이들의 반응은 날이 갈수록 시큰둥해져만 간다. 그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일'이라고 스스로 다독이지만, 이른바 '영상 세대'에게 글자만 빼곡한 교과서는 이미 권위 운운하기 쑥스러울 만큼 힘을 잃었다.

근래 들어 영화의 위력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영화 <암살>이 아니었다면, 일제강점기 가장 많은 현상금이 걸렸던 거물 독립운동가 김원봉의 존재를 아이들은 지금까지 몰랐을 것이다. 영화 <지슬>이 기억 속에서 가뭇없이 사라져가던 제주 4.3을 다시 끄집어냈고, 최근의 영화 <1987>로 박종철과 이한열이라는 낯선 이름들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됐다.

웬만하면 주말 등 쉬는 날에 강의 준비 삼아 영화 한두 편쯤 꼭 보려고 마음먹은 이유다. 수업시간 틈틈이 주말에 본 영화 이야기를 꺼내며 권하기도 하고, 이미 관람한 아이가 있다면 점심시간 등의 자투리 시간에 불러다 함께 품평하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대학입시가 모든 고등학교생활을 옥죄고 있어서 그렇지, 주위를 둘러보면 영화에 빠져 사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내내 꾸벅꾸벅 졸다가도 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경우가 많아, 억지춘양식으로라도 영화의 줄거리와 수업 내용을 연결지어보려 애쓰곤 한다.

예컨대, 영화 <광해>와 <남한산성>이 만나면,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조선 중기의 역사를 개괄하는 데 더없이 좋은 교재가 된다. 이런 마당에 굳이 교과서로 공부해야 하는지를 묻는 아이가 있을 정도다.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으니 역사를 다룬 영화면 더 좋겠지만, 애니메이션이나 블록버스터 판타지 장르에서도 얼마든지 아이들과 나눌 공부거리는 있다. 내용이 아닌 형식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이따금 배우들의 연기력과 생뚱맞은 손익분기점을 소재 삼아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다. 한 아이는 영화를 보며 '옥에 티' 찾는 게 취미라면서, 고증의 부실함을 문제 삼기도 했다.

'쥬라기빠' 아이들의 한결같은 영화평

 영화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 포스터

영화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이번엔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이 수업 소재가 됐다. 개봉한 지 채 일주일도 안 됐는데, 봤다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인터넷에서 운 좋게 초대권을 얻었다는 아이부터 광고를 보고 오래 전부터 개봉 날만 기다렸다는 아이까지, 다들 영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했다. 듣자니까, 개봉 첫날만 관람객 수가 무려 118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형만 한 아우 없다더니, 전작이 훨씬 나았던 것 같아요. 돈이 아까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대치에는 한참 못 미쳤고, 조금 불편한 내용도 있었어요."

자칭 '쥬라기빠'라는 아이들의 한결같은 영화평이다. 다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좋아한다며 열성팬을 자처했다. 그런데, 좋았던 점부터 부족했던 점, 심지어 나빴던 점까지 평가 내용이 거의 정확히 일치했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까지 기억하고, 거기에 담긴 함의까지 추론해내고 있어서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전작에 비해 CG의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것이 유일하다시피 한 호평이었다. 이걸 먼저 관람한 뒤 전작을 본다면, 장면마다 어설픈 구석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일 거라며 웃기도 했다. 주인공들이 흘러내리는 용암을 피해 해안가로 공룡들과 함께 뛰어가는 장면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공룡의 깜빡거리는 눈동자에 거울처럼 주위 배경이 담겨 비치는 모습은 압권이었단다. 영화가 아니라 CG 기술의 경연장 같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아이도 있었다.

랩터와 같은 포식자 공룡과 인간의 교감을 내러티브 삼은 것도 나름 후한 평가를 받았다. 아기 공룡을 조련하며 나눈 교감으로 위기를 모면한다는 설정이 언뜻 황당하지만, 인간과 공룡의 공존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런가 하면, 멸종 위기 동물을 보호하자는 의미의 전형적인 '공익 광고' 같았다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의 탐욕이 파멸을 불러 온다'는 주제야 그렇다 쳐도, 큰 반전이 없어 밋밋하다며 무척 아쉬워했다. 다음에 이어질 장면이 누구든 예측 가능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누가 '쥬라기 빠' 아니랄까봐, 전작들의 내용과 일일이 비교해가면서 성공한 전작의 명성에 기대어 쉽게 돈 벌어보자는 심산 아니겠느냐며 혹평하는 아이도 있었다.

영화광 아이들의 안테나에 잡힌 흠결

 영화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 스틸컷

영화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 스틸컷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한 아이는 영화의 도입 부분부터 누가 악당이고, 종국에는 누가 살아남게 될지 거의 대부분 알아맞혔다면서, 자신이 "감독의 머리 위에 있다"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또,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게 될 어린 손녀와 할아버지라는 설정도 식상하고, 백인 남녀 주연 둘과 혼혈로 보이는 남녀 조연 둘의 구성도 작위적으로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영화광 아이들의 안테나에 잡힌 가장 큰 흠결은 정작 '깨알 같은 대사'에 숨어있었다. CG 화면에 정신이 팔려 대사를 놓치기 십상이라, 웬만큼 꼼꼼한 관객이 아니라면 기억하기조차 힘든 장면이었다. 전쟁용으로 만들어진 '인도 랩터'를 시연하는 과정에서 순식간에 경매가 진행되는 장면인데, 경쟁적으로 높은 가격을 부른 바이어들의 국적을 문제 삼은 것이다.

미국을 포함 다른 여러 나라들의 이름이 바이어로 등장했지만, 아이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은 곳은 러시아와 슬로베니아였다. 특히 전투목적으로 공룡을 구매하려고 했던 나라는 러시아였다. 아이들은 러시아를 비롯해 과거 동유럽 공산권 국가인 슬로베니아를 넣어놓은 것은 의도적 설정 아니겠느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또 이런 설정이 은연중에 관객들의 냉전적 사고방식을 부추겨 자칫 언급된 곳들에 대해 '호전적인 나라'라는 편견을 지니게 할 위험이 크다고도 지적했다.

아무리 숙제가 많아도 일주일에 영화 한 편씩은 꼭 챙겨본다는 한 아이는 이 영화를 두고 이렇게 단언하듯 평가했다. "겉은 더 없이 화려하지만, 속은 고작 권선징악의 냉전 영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보다, 수작으로 평가받기 힘든 이 영화가 전국의 상영관을 휩쓸고 있는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를 봤던 지난 6일 조조 시간이었는데도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영화관이 북적였다. 더욱이 10관까지 있는 개봉관인데 이 영화만 하루 스무 번도 넘게 상영하고 있었다. 다른 영화는 네다섯 회 상영이 고작이고, 하루에 단 1회만 상영하는 작품도 있었다. 다양한 영화를 만나고 싶어도, 관객들에겐 애초 선택권이 없는 셈이다.

참고로, 얼마 전 관람한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은 명색이 전국 5대 도시라는 이곳 광주에서도 단 한 곳에서만 하루 한 차례씩 상영하고 있다. 대도시도 이럴진대 하물며 지방의 소도시는 더 말해서 무엇 할까. '관객이 많이 찾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속설은 틀렸다. '좋은'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일찌감치 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내용과 사뭇 동떨어져 있는 영화 밖 현실

 영화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 스틸컷

영화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 스틸컷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이 영화의 부제는 '폴른 킹덤(Fallen Kingdom)'이다. 의역하면 '무너진 탐욕의 제국'쯤 되겠다. 탐욕이 파멸을 불러 온다는 경고를 두 단어에 담은 것이다.

하지만 영화 밖 현실은 영화 속 내용과 사뭇 동떨어져 있다. 현재 전국의 상영관을 독점하다시피 한 이 영화야말로 '탐욕의 제국'일지도 모른다. 이런 배급 구조가 계속되는 한 '탐욕의 제국'은 무너지기는커녕 영생할 수밖에 없다.

영화 밖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던 아이는 영화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의 관람 소감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가장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폐해를 까발리는 영화'라고. 모든 아이들이 '백퍼 동의'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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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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