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으로 인생이 바뀐 배우들이 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 배우들의 결정적 영화를 살펴보면서 작품과 배우의 궁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 기자 말

 영화 <스피드> 의 한 장면

영화 <스피드> 의 한 장면 ⓒ 20세기 폭스사


산드라 블록은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배우 중 하나다. 1987년 영화 <행맨>으로 데뷔해 1993년 <데몰리션 맨>으로 주목을 받은 그녀는 1994년 <스피드>의 대성공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스피드>에서 비중은 적으나 조금은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캐릭터는 그녀를 몰랐던 사람으로 하여금 '저 배우는 누구지?'하고 궁금하게 만든다.

다정하고 친근한 캐릭터 '애니'를 통해 아메리칸 스윗하트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 그녀는 여러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흥행시키고 액션, 스릴러,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주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하며 <블라인드 사이드>로 2010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액션 스릴러에 충실한 장르 영화 <스피드>

전직 경찰관 하워드(데니스 호퍼)는 업무 중 입은 부상으로 손가락을 잃고 은퇴하지만 나라에서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몸값 300만 달러를 요구하며 엘리베이터 인질극을 벌인다. 2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인질극이 경찰 특수반 잭(키아누 리브스)과 해리(제프 다니엘스)에 의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잭에게 앙심을 품고 이번에는 370만 달러를 요구하며 버스에 폭탄을 설치한다.

시속 50마일 밑으로 내려가거나 승객이 한 명이라도 내리면 폭발하게 되는 버스에 탄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잭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버스 안으로 뛰어든다. 과연 잭과 승객들이 무사히 버스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관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한 순간도 놓칠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와 버스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변수들을 설정해놓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이 영화의 서스펜스가 있다. 하워드가 설치한 함정과 위험요소들은 영화의 속도감 때문에 보는 순간에는 예상치 못했던 함정처럼 여겨져 박진감 넘치는데 2018년의 관객 이 영화를 보면 하워드의 범죄가 1994년의 관객이 느꼈던 것만큼 치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20세기 폭스사


<스피드>는 액션 스릴러에 충실한 장르 영화다. 반전을 주기 위해 자칫 이야기를 꼬다보면 영화의 서스펜스가 관객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는데 이 영화는 심플한 전개로 관객이 영화를 따라가는데 전혀 어려움 없도록 만들었다.

당시 떠오르는 미남 청춘 스타였던 키아누 리브스 또한 이 영화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가 연기한 잭이라는 캐릭터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불물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경찰로 그의 선한 의지와 몸을 아끼지 않는 희생이 핸섬한 외모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하며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총을 맞은 버스 운전사를 대신해 운전대를 잡은 애니 옆에서 그녀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동시에 승객들을 진정시키고 테러범과도 신경전을 벌이는 그의 모습은 수많은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잭이 영웅적인 이미지라면 버스 운전사와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주고받는 애니는 편안한 이웃 같은 이미지다. 버스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애니는 잭의 지시에 따라 침착하게 운전대를 잡고 미소를 잃지 않는다. 특유의 발랄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애니는 잭과 상호 보완관계를 이루며 산드라 블록의 건강한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시나리오 보는 안목이 탁월한 똑똑한 배우
 영화 <스피드>의 한 장면

영화 <스피드>의 한 장면 ⓒ 20세기 폭스사


앞서 얘기했듯이 <스피드>는 심플한 영화다. 잭의 영웅적 행동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망설임이 없듯이 하워드의 악에도 고뇌와 죄의식의 흔적이 없고 이 둘은 선과 악의 이상적인 균형을 이룬다. 악당 하워드가 전직 경찰이라는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그가 가진 악은 관객의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데니스 호퍼가 그를 연기함으로써 하워드라는 인물은 그저 화면에 담기는 것만으로도 기괴하고 광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며 입체적 악당이 된다.

보고나면 뻔하지만 보는 순간에는 완전히 몰입해서 보게 되는 이 영화는 <다이 하드>, <블랙 레인>, <원초적 본능> 등을 촬영한 얀 드봉의 감독 데뷔작으로 3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가지고 3억 5000만 달러의 엄청난 수익을 올리며 대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에서도 8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고 비디오가 출시되었을 때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대여를 할 수 없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속편제작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1편과 같은 구조의 속편에서는 키아누 리브스가 빠진 자리에 제이슨 패트릭이 들어오고, <스피드> 이후로 출연한 영화들(로맨틱 코미디 <당신이 잠든 사이에>, 스릴러 <네트>, 법정 드라마 <타임 투 킬>)을 연속으로 흥행에 성공시킨 산드라 블록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결과는 대참패였다. 얀 드봉 감독은 속편의 연출뿐 아니라 제작에까지 참여하며 열의를 보였지만 1편의 성공에 너무 도취되었던 것일까? 1편의 재미를 기억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은 상황만 달리 했을 뿐 같은 설정의 이야기에 김 빠진 콜라를 마신 것처럼 실망한다.

<스피드2>의 실패 이후로 얀 드봉 감독의 커리어는 내리막을 걷게 되지만 산드라 블록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을 연이어 성공시키면서 할리우드의 흥행 보증 수표로 확실히 자리 매김하게 된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 특히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의 성공 요인을 봤을 때 그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그리고 30년이 넘는 활동 기간 동안 큰 슬럼프 없이 탄탄한 커리어를 구축해왔다는 점에서, 그녀가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으며 그에 맞게 시나리오를 보는 안목이 탁월한 똑똑한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스피드>의 한 장면

영화 <스피드>의 한 장면 ⓒ 20세기 폭스사


로맨틱 코미디와 스릴러에 한정되어 있던 그녀의 연기 폭이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2009년 <블라인드 사이드>에서의 감동적인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2013년, 여태껏 본적 없는 가장 독특한 우주 영화 <그래비티>에서 홀로 우주에 남겨진 스톤 박사를 연기하며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부분을 홀로 이끌었고 2015년 <미니언즈>에서는 성우로 첫 악역 연기를 펼쳤다.

괴팍하거나 문제적 성격의 인물을 연기해도 유쾌함이 느껴지는 그녀의 강점은 코미디에서 가장 잘 발휘된다. '오션스 시리즈'의 여자 버전 <오션스 8>이 13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영화에서 그녀는 그들의 리더인 데비 오션을 연기한다. 이미 세 편의 '오션스 시리즈'가 나온 상황에서 이 영화가 어떤 차이점을 보여줄지 우려가 되면서도 그녀가 다른 여배우들과 어떤 조화를 이룰지 기대가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피드 산드라 블록 키아누 리브스 아메리칸 스윗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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