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권리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1990년대 미국 사회, 그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집단으로 꼽히는 법조계에서 여권 신장에 앞장선 두 명의 여성 법조인이 있었다. 한 명은 상사의 대법관 임용 청문회에서 성폭력 피해를 용기있게 증언했고, 다른 한 명은 미국의 두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재판에서 여성과 소수자를 대변했다.

지난 7일 막을 내린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이들 각각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아니타 힐>과 <RBG>를 상영했다. 남성 중심의 법조계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본인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에 맞서면서 동시에 사회의 많은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를 냈던 두 사람의 삶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큰 의미를 준다.

'미투'의 시초, 직장 내 성폭력을 고발한 <아니타 힐>

 고용평등위원회(EEOC)에서 근무하던 당시의 클레런스 토마스(왼쪽)와 아니타 힐

고용평등위원회(EEOC)에서 근무하던 당시의 클레런스 토마스(왼쪽)와 아니타 힐 ⓒ SAMUEL GOLDWYN FILMS


1991년, 변호사이자 법대 교수였던 아니타 힐(Anita Hill)은 미국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에 참석한다. 자신의 상사이자 대법관 후보인 클레런스 토마스의 성희롱을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고용평등위원회(EEOC) 위원장인 그는 직원인 아니타에게 자신의 성기 크기, 음모, 여성의 가슴 등을 소재로 성희롱을 일삼았다.  

청문회에 참석한 14명의 상원의원은 모두 남성이었는데, 아니타에게 청문회장인지 재판장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질문을 빙자한 2차 가해를 쏟아냈다. 왜 그 땐 가만히 있다가 지금 와서 문제제기를 하느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등 30여 년 전의 미국이나 지금의 한국이나 피해자에 대한 인식은 한결같았다. 의원들은 집요하게 피해 사실을 캐물으며 답변에서 빈틈을 찾기 위해 애썼지만, 아니타는 모욕적인 질문에도 동요하지 않고 끝까지 차분하게 증언했다.

그러나 클레런스 토마스가 이를 전면 부인하며 흑인으로서 겪는 진입장벽을 이야기한 순간, 상황은 '젠더' 문제에서 '인종' 문제로 전환된다. '흑인 여성'이었던 아니타에게 온갖 공격을 퍼붓던 '백인 남성' 의원들은 '흑인 남성'인 클레런스에게는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못한다. 인종과 성별의 교차점에서 흑인 여성인 아니타는 가장 약자였고, 결국 58대 42로 클레런스는 대법관에 임명되었다(대법관은 종신직으로 그는 아직 현직에 있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그렇듯, 아니타도 이전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클레런스가 대법관으로 임명되면서 아니타를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고, 재직하던 대학에서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사회도 분명 달라지고 있었다. 일상에서 차별과 폭력을 경험한 많은 여성들이 아니타의 고백에 힘입어 입을 열기 시작했고, 실제로 청문회 직후 성폭력 고발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아니타 힐을 믿는다(I believe Anita hill)"는 지지운동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클레런스 토마스 대법관 인준 청문회장에서 선서하는 아니타 힐

클레런스 토마스 대법관 인준 청문회장에서 선서하는 아니타 힐 ⓒ SAMUEL GOLDWYN FILMS


다큐는 이러한 움직임들이 모여 미국 사회를 어떻게 바꿔왔는지를 보여준다. '미투'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아니타 힐의 존재는 세대를 뛰어넘어 지금의 어린 여성들에게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고 있다. 아니타는 성폭력 강의나 논의 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고, 지난해에는 할리우드의 '미투'와 '타임즈업' 캠페인 후속으로 만들어진 '성추행 근절과 일터에서의 성평등 발전을 위한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아니타 힐>을 보며 지난 2월 검찰 내부의 성폭력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가 떠오르는 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다큐는 미투 이후 우리 사회의 변화를 상상해보게 한다.

소수의견 내는 대법관 <RBG>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전설적인 흑인 래퍼 "Notorious B.I.G"의 이름을 따 젊은 층 사이에서 "Notorious R.B.G"로 통하는 그녀는 25년째 미국 연방대법관으로 재임 중이다. 8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가장 핫한 아이콘으로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고,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와 컵도 만들어졌다. 그 인기에 힘입어 지난 5월 초 개봉한 다큐 <RBG>도 현재 북미 박스오피스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RBG>는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맞서 루스가 참여한 몇 가지 대표적인 재판을 보여준다. 그 중 하나로, 대법관이 되기 전 루스는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한 남성의 양육수당 지급 소송을 변호했다. 편부모 여성에게만 양육수당이 지급되던 당시, 이 재판에서 승소함으로써 육아가 여성만의 몫이 아니라는 점과 동시에 성 평등이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것임을 증명해보였다. 

 대법관 청문회장에서 답변하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청문회장에서 답변하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magnolia pictures


1993년 대법관으로 임명된 후에는 자신의 소신에 따라 다수와 다른 소수의견을 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타이어 회사 굿이어의 여성 노동자 릴리 레드베터가 지난 20년간 동료 남성 노동자에 비해 임금을 40% 가량 적게 받았다고 제기한 소송에서 시기가 너무 늦었다며 다수가 회사 손을 들었을 때, 루스는 홀로 반대하며 의회에 공을 넘겼다. 그리고 이 소수의견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서명한 첫 번째 법안인 '레드베터 공정임금법'이 되었다.

2013년 주 정부가 선거법 개정 시 연방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투표권법 제4조에 대해 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렸을 때에도 루스는 반대하며 이렇게 소수의견을 냈다. "투표권법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이유로 사전 허가조항을 폐지하는 것은 폭풍우 속에서 젖지 않을 것이라며 우산을 던지는 것과 같다." 주 정부가 소수자의 투표를 제한하기 위해 선거법을 개정하더라도 사실상 이를 막을 방법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루스의 소수의견은 대법원 판결에 반발하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고, 이를 계기로 국민들에게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재판장에서의 단호하고 뚝심있는 모습과 달리, 일상에서는 인간적인 매력도 있었다. 이념적 가치가 반대인 보수파 대법관 동료와도 사적으로는 좋은 친구로 지내거나, 고령의 나이에도 운동하며 자기관리에 힘쓰는 모습은 왜 많은 미국 여성들이 이 "할머니 대법관"에 열광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 <RBG>의 한 장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영화 의 한 장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magnolia pictures


더디지만 분명한 변화

아니타 힐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법조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 여성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고, 나아가 미국 페미니즘 운동의 한 축을 이끌었다. 대표적인 페미니즘 아이콘인 두 여성은 개인의 선한 의지와 사회적 영향력이 만나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낼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영향력을 가진 여성들이 더 필요하다, 이를 위해 중요한 선제조건은 일단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리더 자리에 여성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현재 여성 장관은 전체 18명 중 5명, 여성 대법관은 14명 중 3명으로 여전히 소수이고, 조만간 낙태죄 위헌 여부를 가릴 헌법재판관 9명 중에서도 여성은 1명뿐이다. 오는 지방선거에 출마한 여성 후보자 비율도 16%에 불과하다.

물론 여성 리더가 많아진다고 당장에 큰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다. 아니타의 증언은 대법관 임명을 뒤집지 못했고, 루스의 판결은 대개 대법원의 판결과는 다른 소수의견이었다. 그렇지만 이를 결코 '실패'라고 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존재 자체로 수많은 여성들에게 '희망'이자 '용기'가 되었고, 더디더라도 분명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공격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해 온 두 사람의 삶은 시대와 공간을 건너,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분명, 찐한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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